*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이발사, 강필석 지난 2022년 12월 6일,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열린 뮤지컬 <스위니 토드> 프레스콜에서 배우 강필석이 열연하고 있다.

▲ 욕설 연습 ”사실은 입에 처음에 잘 붙지 않아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주변에서도 어색하다는 평이 많더라고요. 이게 또 일상에서 욕설을 하는 것과 무대 위에서 하는 건 또 달라서…. 그래도 하면 할수록 자연스러워졌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 곽우신

 
벤자민 바커는 이발사였다. 아내 루시와 딸 조안나를 사랑하는 평범한 남자였다. 그러나 억울하게 추방당한 뒤로는 더 이상 평범하게 살 수 없었다. 터핀 판사로부터 누명을 쓰고 쫓겨난 그는 간신히 런던으로 돌아온다. 가족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그러나 여지없이 깨져 버렸다. 루시는 스스로 독약을 먹었고, 조안나는 터핀의 수양딸이 되어 있었다.
 
스위니 토드, 벤자민 바커의 새 이름. 토드는 러빗 부인이 보관하고 있던 자신의 면도칼을 돌려받는다. 다시 완벽해진 오른팔 덕분에 사기꾼 이발사 피렐리를 공개적으로 망신 주고 자신의 이름을 알린다. 변해 버린 자기 얼굴도, 이름도,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스위니 토드는 벤자민 바커가 그랬던 것처럼 실력이 뛰어난 이발사였지만, 그의 가게에 올라간 이들 중 살아서 나오는 사람은 운이 좋은 몇몇뿐이었다. ·
 
그의 이발소가 자리한 건물의 1층은 러빗 부인의 고기파이 가게였다. 밤마다 굴뚝에서 역한 냄새가 올라오는 그곳. 미용업계와 요식업계의 환상적인 컬래버레이션이 이뤄지는 곳. 스위니 토드는 러빗 부인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그대로 이행한다. 그는 사람의 목을 긋고, 러빗 부인은 그 고기로 인육 파이를 만든다. 윗놈이 아랫놈 등쳐먹는 세상에서 일어난 기막힌 반전, 이제 런던은 윗놈이 아랫놈 식삿거리가 되는 세계이다.
 
하지만 스위니 토드가 애초에 노리는 목숨은 정해져 있다. 터핀 판사, 그를 죽이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티고 버틴 그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다시 찾아온다. 첫 번째 기회는 허무하게 놓쳤지만, 두 번째 기회도 놓칠 그가 아니었다. 이발사 탈을 쓴 악마는 또 다른 악마의 목에 칼을 들이민다. 이 모든 이야기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그는 멈출 줄 모른다.
 
"시대가 좀 맞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좀 신기해요. 이게 1970년대에 만들어진 작품인데, 당시에 너무 충격적이었겠죠? 지금도 되게 센세이셔널 하잖아요. 저도 무대를 20년 했지만, 이 작품은 되게 새롭고 놀라워요. '지금도 이렇게 놀라운데, 그때는 얼마나 놀라웠을까?' 싶죠. 요새 콘텐츠들이 얼마나 많은데 고전이라는 느낌이 안 들잖아요.
 
우리 관객들의 수준이 굉장히 높은 것 같아요. 손쉽게 다양한 콘텐츠들을 접하시면서 작품을 보는 눈이 높아지고, 그래서 이 작품을 처음 보실 때도 새로우면서도 너무 멀리 있는 새로움은 아닌 느낌을 받으시는 게 아닐까요? 거리가 별로 느껴지지 않으니까, 작품에 적응하는 데도 시간이 별로 안 걸리는 거죠. 거부감보다는 새로움으로 받아들여 주시죠. 바꿔 말하면 시대를 참 앞서갔던 작품인 것 같아요. 해외에서 옛날에 올라왔던 때와 비교해도, 특별히 순화되거나 각색된 부분도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정말 끝내주는 작품인 것 같아요."
 

뮤지컬 <스위니 토드>는 블랙 코미디와 스릴러가 결합한 기괴한 작품이다. 무대 위에는 유혈이 낭자하고, 의도된 불협화음은 관객의 귀를 자극한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도 아니고, 감동적인 휴머니즘이 있는 극도 아니다. 그러나 프로덕션이 바뀐 후 세 번째로 돌아온 이 공연에 많은 관객이 열광하고 있다.
 
배우 강필석도 친절하지도, 대중적이지도 않은 이 작품을 선택한 게 많은 의미의 도전이었다. 지금까지 그가 소화해 온 역할들과는 여러모로 결이 다른 배역이었지만, 그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훌륭하게 성과를 내고 자신을 증명해 냈다. 2022~2023시즌을 마무리하는 <스위니 토드>, 그 폐막이 가까워져 온 2월 어느 날, 서울 성동구의 한 카페에서 스위니 토드 역의 배우 강필석을 만났다.
 
들어는 봤나, 스위니 토드? 이발사 탈을 쓴 악마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이발사, 강필석  지난 2022년 12월 6일,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열린 뮤지컬 <스위니 토드> 프레스콜에서 배우 강필석이 열연하고 있다.

▲ 살인의 동기 ”딸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가 있는 상황이거든요. 앞뒤 맥락을 따져보면 그 시간에 이발소에 있을 만한 사람이 누구겠어요. 그런데도 다짜고짜 ‘너는 왜 왔어, 너도 잘라줄까?’하면서 자칫하면 죽일 뻔하죠. 그저 관성적으로 살인을 한다는 행동 자체만 남은 거니까, 그 행동에 특별한 동기도 찾을 수 없죠.“ ⓒ 곽우신

 
"처음 무대 올라갔을 때와 지금 달라진 점은 분명히 있죠. 강약 조절이라든지, 회차를 거듭할수록 찾아지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이제 너무 무대에 익숙해지다 보면, 무대 위에서 내가 지금 하는 게 옳은 건지 옳지 않은 건지 사실 헷갈릴 때가 있어요. 그래서 계속 연습 과정에서 연출과 나눴던 것들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중반 넘어가면서 공연이 풀리기 시작하는 느낌도 들지만, 또 헷갈리는 순간들이 있다 보니까 오히려 더 연습 때 연출과 이야기했던 것들을 집중해서 생각하며 연기하고 있습니다."
 
<스위니 토드>는 무대에서 작품을 풀어내는 배우들에게 참 어려운 숙제 같은 작품이다. 사회 비판과 풍자 요소 곳곳에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작품이기도 하고, 그 과정을 언어유희와 코미디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희극적 요소도 두루 갖추고 있다. 비극과 희극의 경계에서 모든 불협화음이 조화를 이루는 아이러니. 스릴러와 코미디 사이에서 어디에 더 방점을 찍어야 할지, 주연 배우 역시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저희 작품이 굉장히 진한 스릴러이기도 하고 블랙 코미디이기도 하죠. <스위니 토드>는 딱 그 중간 지점에 있는 작품인 것 같아요. '관객분들을 만나면서 어디까지 우리가 허용할 것인가?' '작품의 드라마를 진하게 보여주기는 해야 하는데, 이 작품의 코믹한 부분들을 어느 정도까지 갈 수 있을까?' 와 같은 고민의 중간 지점이요. 사실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우리가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해서 관객분들이 웃는 게 아니잖아요. 무대 위에서 우리는 너무 진지한데, 그 말을 하는 상황이 너무 아이러니하고, 또 너무 또 날카로우니까 그게 웃긴 거잖아요.
 
그 유머를 잘 살리는 게 되게 어려운 것 같아요. 이 작품에 처음 접근할 때도, '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일차원적인 힘이 뭘까?' 고민했죠. 이 작품이 벌써 네 번째잖아요. 이미 본 사람들도 많은데, 더 웃기게 가야 하나? 그래서 연습 때 매우 가볍게 간 적이 있었죠. 동료들도 다 굉장히 많이 웃었죠. 그런데 연출이 '절대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진지하게 해야 더 재미있는, 작품의 매력이 더 잘 드러나는 작품이더라고요.
 
이 작품은 음악도 좋고, 다 좋지만, 사실 서사가 그 중심에 있는 구조거든요. 거침없이 드라마가 쭉쭉 가는데, 그 과정에서 관객들이 살짝 빠져나오기도 했다가, 다시 잘 몰입했다가, 그 순환을 살짝살짝 시켜주면서 배우들이 끌고 가야 해요. 그거를 잘해야 하는데, 막연히 무겁게만 가면 이 작품이 너무 어둡다 보니 계속 거부감이 느껴질 수도 있죠. 보는 관객들도 너무 지칠 수 있으니까 유머가 필요하고, 그러면서도 드라마에 너무 방해되어서는 안 되고, 그 지점들에 대해 계속 생각하면서 마무리하고 있어요."

 
죄다 죽어야 해, 당신도, 이런 나도 똑같아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이발사, 강필석  지난 2022년 12월 6일,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열린 뮤지컬 <스위니 토드> 프레스콜에서 배우 강필석이 열연하고 있다.

▲ 작품의 매력 ”<스위니 토드>의 많은 장면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는 해결되지 않아요. 그게 이 작품의 매력인 것 같고요. 어디로 갈지 예상할 수 없는 이 인물들은 아무도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않죠. 관객들이 ‘당연히 여기로로 가겠지’라고 생각할 때 저기로 가버리는 거죠. 그 일반적인 생틀을 깨기 때문에 연출도 ‘인물이 어디로 갈지 모르기 때문에 롤러코스터 같은 작품’이라고 한 것 같아요. 사실 우리도 살면서 항상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지는 않잖아요.“ ⓒ 곽우신

 
사회 부조리가 만연할 때 프랑스 파리에서 혁명(<레미제라블>)이 일어난다면, 영국 런던에서는 연쇄 살인(<지킬 앤 하이드> <잭 더 리퍼>)이 발생한다. 벤자민 바커를 스위니 토드로 만든 배경에는 계급적 모순과 기득권의 위선, 사법 제도의 붕괴 등이 있다. 스위니 토드는 이 응축된 원한을 풀기 위해 복수를 꿈꾸고, 그 대상은 자신과 가족을 망쳐버린 터핀 판사 그리고 그의 수하인 비들 뱀포드에 국한된다. 아니, 국한되어야 했다. 터핀을 이발소로 꼬드겨 처리하겠다는 첫 번째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후, 그의 복수는 무차별적인 학살로 바뀐다.
 
'고상한 손님'만 받았다고 하지만, 정작 그가 깔끔하게 목을 잘라드리는 손님에는 구분이 없었다. 동반자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래서 자신의 범죄가 들킬 염려가 없는 사람이라면 일말의 망설임 없이 목을 그었다. 그 동기는 런던 전체로 퍼져버린 복수심일까, 분노일까, 허무일까.
 
"일반 사람들을 살해할 때는 아무런 감정이 없어요. 이 사람에 대한 원한도 없고, 그 사람이 복수의 대상도 아니죠. 만나기도 힘든 터핀을 처음 보고 절호의 찬스가 왔는데 실패하잖아요. 다시는 그 사람 가까이 갈 수 없다는 생각에,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하고 길을 잃은 상태죠. 러빗이 '우리 이렇게 하자'라고 할 때 '너무 좋은 생각이야, 한번 해볼까'라고 하지만, 내가 뭘 위해서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걸 왜 하는지도 모르죠. 고기파이를 만드는 일이 토드의 목적은 아니잖아요. 러빗한테는 목적이 될 수 있지만, 토드에게는 아무 필요도 없는 일을 하는 거죠. 그렇다고 또 러빗과 '잘살아 보세'도 아니죠. '우리 행복한 가정을 이뤄서 성공해 보자'라는 게 아니니까요.
 
토드는 그저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뿐입니다. 화병이 난 사람처럼 가슴 속에서는 계속 뜨거운 불이 타고 있고, 그게 불쑥불쑥 튀어나오기는 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죠. 살인이라는 행동만 남은 거예요. 그리고 그 행동이 스위니 토드를 잡아먹은 거죠. '조안나(Johanna)'라는 아름다운 멜로디의 노래가 기가 막히게 잔인한 장면과 어우러지잖아요. 그래서 그 슬픔이 더 두세 배로 다가가는 것 같아요."

 
별다른 감정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별다른 관심도 보이지 않는 토드. 그가 유일하게 말을 섞고 반응하는 존재는 러빗 부인이다. 러빗은 토드의 복수를 적극적으로 조력하는 한편, 토드에게 일방적으로 끌려다니기보다는 오히려 토드를 끌고 이야기를 진행하는 인물이다. 강필석 배우는 토드와 러빗의 관계를 마치 "오래된 부부" 같을 때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마치 퉁명스러운 남편과 수다스러운 아내처럼. 이 작품 중간중간 웃음으로 숨구멍을 만들어주는 것도 두 사람의 '티키타카'이다.
 
"저는 토드를 연기하면서 러빗을 생각할 때 되게 짠해요. 특히 마지막 장면은 음악을 들으면서 연습할 때 많이 울었어요. 처음 1막 마지막(A Little Priest)에서 토드와 러빗이 같이 그 노래를 부를 때, 사실 그때가 제일 좋은 때였죠. 거의 처음으로 두 사람이 쿵짝이 맞을 때기도 하고요. 두 사람이 즐거운 한때를 보냈을 때와 같은 멜로디가 2막 마지막(Final Sequence)에 들어오는데, 너무 슬프더라고요. 같은 멜로디인데 감정이 완전히 극단적으로 다르죠. 러빗이 '맞아, 우리 행복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데, 러빗을 그대로 오븐에 넣어 버리잖아요.
 
사실 따지고 보면 러빗은 굉장히 무서운 사람이죠. 어떤 면에서는 토드보다도 더 무서운 사람이에요. 토드의 첫 살인은 협박받는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벌어진 거였다면, 그 시체를 보고 '너무 아깝다'라며 인육파이를 만들자고 제안하는 건 러빗이죠. 가볍고 웃기게 표현이 되어서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진짜 너무 무서운 이야기잖아요? 러빗이 아니었다면 처음 이 이야기도 시작하기가 어려웠겠죠."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이발사, 강필석  지난 2022년 12월 6일,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열린 뮤지컬 <스위니 토드> 프레스콜에서 배우 강필석이 열연하고 있다.

▲ 스위니 토드와 터핀 판사 ”정확하게 ‘뭐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폭력적인 부분에서 비슷한 것 같아요. 이번 시즌에 터핀을 연기하는 배우들을 봤을 때 되게 흥미로웠던 게, 진짜로 너무 사랑을 해요. 표현 방식이 폭력적이고 왜곡됐지만, 진짜 너무 사랑해서 나오는 행동이라 이들의 변태적 행위가 더 변태적으로 다가오는 거죠. 결국은 표현의 방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 같아요. 토드 역시도 너무나 사랑하는 인물들을 빼앗겨서 복수를 하려는 인물이지만, 기본적으로 이 극에서 태어난 인물들의 원천은 다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그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안소니처럼 될 수도 있고, 터핀처럼 될 수도 있고, 토드처럼 될 수도 있죠. 그 사랑을 폭력적으로 표현한다는 법에서 똑같은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 곽우신

 

운명은 두 사람의 죄악을 좌시하지 않았다. 러빗은 루시가 독약을 먹었다고 이야기했지만, 그 약을 먹고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는 토드에게 하지 않았다. 복수에 눈이 멀어 아내도 딸도 알아보지 못하는 스위니 토드는 자기 손으로 루시의 숨을 끊어내고 만다. 토드와 러빗에게는 파멸 말고 다른 종류의 끝은 없었던 걸까? 러빗이 그토록 노래(By The Sea)했던 바닷가에서의 삶은 정녕 불가능했던 것일까?
 
"여지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좀 더 슬프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만약 어떤 감정도 없었다면, 마지막에 루시에 관해서 이야기해주지 않은 데 대해서도 토드가 배신감을 느꼈을까요? 연인으로서는 모르겠지만, 인간적인 케미스트리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두 사람은 사랑에 기반한 관계는 아니거든요. '아주 조금은 사랑하죠?'라고 러빗이 물어볼 때, 토드가 '응'이라고 하는 건 그냥 맞춰주는 거예요. 그렇다고 이용해 먹는 것과는 또 달라요. 자신과의 어떤 선을 넘는 건 거부하지만, 그렇지만 않으면 '네 좋을 대로 해라' 정도.
 
그런데 중요한 건, 둘이 점점 가까워질수록 이야기의 상황은 점점 더 파국으로 가고 있거든요. 그 둘이 가까워지고 있는 느낌 때문에 이야기가 파국으로 가고 있다는 걸 놓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두 사람 사이가 좋아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벌어지는 일은 돌이킬 수 없이 가고 있죠. 그러니 그 둘의 결론은 사실 뻔하죠. 토드가 러빗을 사랑했으면 모든 게 잘 마무리될 수 있었을까요? 터핀을 죽인 후에는? 인육파이로 만든 후에는? 더 이상 어디 갈 길도 없는 막다른 곳으로 더 깊이 가고 있는데, 어떻게 이 사람들이 행복하게 지낼 수가 있겠어요? 이들이 목표한 대로 일이 아무리 잘 해결이 된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해결이 아무것도 안 되고 있거든요."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것, 잘 봤지?
 

뮤지컬 <스위니 토드>의 이발사, 강필석 지난 2022년 12월 6일, 서울 샤롯데씨어터에서 열린 뮤지컬 <스위니 토드> 프레스콜에서 배우 강필석이 열연하고 있다.

▲ 작품의 메시지 ”이 작품에는 정말 명확한 선도 악도 없잖아요. 주인공도 사실은 굉장한 악인이고요. 제정신인 사람들이 하나도 없는 이 드라마에서 관객들마다 다른 메시지를 얻을 수도 있겠죠.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치유를 받을 수도 있고, ‘내가 저들보다 낫구나’ 혹은 ‘결국은 인생은 저런 거구나’ 같은 것들이요. 그리고 그게 작품의 메시지 전달과 연관이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스위니 토드>라는 작품 자체가 강한 메시지를 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보다는 보는 입장에서 다를 수 있는 메시지를 던지는 거죠, 그걸 위해서 저는 이 이야기를 잘 전달해 줘야 하는 거고요.“ ⓒ 곽우신

 
극의 마지막, 벤자민 바커는 죽은 루시를 안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지하에 숨어있던 토비아스는 상황이 일단락이 난 뒤에 현장에 나타난다. 러빗이 아껴주었고, 그만큼 러빗을 애정했던 소년은 토드의 손에 죽어있는 여자와 바닥에 널브러진 면도칼을 발견한다. 칼, 피, 복수. 토드를 끊임없이 경계했던 소년은 자기 손으로 토드에게 죽음을 선사한다.

자신이 죽이려 했던 소년에게, 자신의 오랜 친구나 다름 없던 칼에 의해 끝을 맞이하는 그. 하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 그는 아무런 저항 없이 그대로 죽음을 받아들인다.
 
"토드는 사실 어떤 상황들을 빼놓고는 거의 죽어 있거든요. 현실의 목적을 결국 다 달성했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러빗에게 굉장히 폭력적으로 반응하죠. 미쳐 있는 거죠. 광견병에 걸린 것처럼 무엇이든지 다 물어뜯어 버릴 기세로요. 눈이 멀어버린 거죠. 알아볼 수 있는 찬스가 크게 한 번 있었는데,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 들이대는데도 루시를 못 알아보죠. 조안나도 알아보지 못해서 죽일 뻔하고요. 그런데 루시를 보는 순간, 루시를 알아본 순간, 멀었던 눈이 다시 떠진 거로 생각해요. 그리고 자신이 벌였던 모든 일들에 대해 자각하게 되는 거죠.
 
이미 그는 삶 자체를 포기한 인간이에요. '내가 한 복수가 아무 의미가 없구나' '루시가 죽었으니 나도 세상을 따로 떠나야 하겠다' 같은 감정과도 조금 다른 것 같아요. 그러니 토비아스가 면도칼을 들고 자신을 죽이러 오든 말든 그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할 수 없는 거죠. 루시가 죽은 걸 봤을 때부터 이미 토드는 죽어 있는 사람이니까요."

 
공연 막바지에 이른 지금, 강필석은 "기회만 된다면 또다시 '스위니 토드'를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와 여러 번 만났지만, 본인이 소화했던 인물을 흔쾌하게 '다시 해보고 싶다'라고 답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색다른 작품"이었고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큰 도전"이었다. 무대 위에서 강필석의 '스위니 토드'를 지켜 본 관객들에게도 분명 색다른 경험이었을 테다.
 
죽은 토드와 러빗은 작품의 막을 내리면서 다시 한번 관객 앞에 선다. 그리고 "잘 봤지?"하고 관객들에게 말을 건넨다. 3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무대를 지켜본 관객들에게 이들이 전달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이 무대에 서는 순간들이 되게 짜릿한 경험이었어요. 저에게는 에너지를 또 이렇게 많이 써본 경험이 드물거든요. 이 무대에서 에너지를 썼을 때, 관객들한테 그 에너지를 전달하면서 얻어지는 어떤 쾌감을 느꼈어도. 제가 여태까지 했던 연기나 노래와는 전혀 다른 표현 방식을 이 작품에서는 접목을 많이 시키려고 노력했고, 그래서 좀 색다른 부분들이 생긴 것 같아요.
 
특별히 이 작품을 통해서 '복수는 의미가 없으니, 복수를 하지 맙시다' 같은 메시지를 전달해드리고 싶지 않아요. 그냥 '재밌는 작품을 보고 간다'라는 마음만 들어도 너무 좋아요. 짜릿하고 경쾌하고 무섭기도 한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기분, 그 기분이 때로는 되게 통쾌하기도 하고, 속이 시원해지는 게 있잖아요? 그런 기분을 느끼고 가시면 좋을 것 같아요. 마치 잔인한 악몽을 꿨을 때, 그 꿈에서 깨고 나면 되게 행복하잖아요. 그건 꿈일 뿐이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 현실에 안도하게 되죠. 그렇다고 <스위니 토드>가 악몽 같은 작품이라는 건 아니고요. (웃음)"  

스위니토드 강필석 벤자민바커 인터뷰 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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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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