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28 05:02최종 업데이트 23.02.28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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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국가정보원 청사를 찾아 2023년도 업무계획을 보고받기 전 방명록을 작성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규현 국정원장,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윤 대통령. ⓒ 대통령실

   
2023년 글로벌 경제는 팬데믹의 여파, 고물가-고금리의 글로벌 경기침체 그리고 미·중·러를 둘러싼 군사, 외교 및 경제의 다중적 긴장 관계가 복합적으로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는 복합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높은 무역의존도와 대중국 무역비중, 정전체제와 복잡한 지정학적 특성까지 있는 한국 경제의 특성을 고려하면 다른 어떤 선진국보다 대비책 마련에 전력을 다해야 할 중대한 국면이다. 과연 한국의 정부, 정치와 사회는 이 복합위기에 적절히 대응하고 있는가?


작년 5월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우리 사회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무엇인가? 검찰, 경찰, 국정원, 감사원, 국세청, 군 등 대통령의 권한이 미칠 수 있는 권력이 총동원되어 실체가 불분명하고 납득하기도 어려운 고강도 수사, 감사, 사정, 고소와 고발이 전방위에서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권력의 칼은 지난 정부의 정책, 그와 관련된 부처와 기관들, 비판적 정당, 정치인, 언론, 시민단체, 노조 등을 향해 있다. 과거 군사독재의 엄혹한 권위주의 체제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일들이 버젓이 일상처럼 일어나고 있다. 한국의 주요 언론은 정적 수사내용을 연일 검찰 발 피의사실로 중계하고, 사법화된 정치인과 대통령, 정권 핵심 관계자 말을 앵무새처럼 옮기며 대서특필하고 있다.

정책과 정치 행위로 대응해야 할 비판과 견제를 공권력을 이용한 보복과 응징으로 대적하는 '보복정국'이다. 숙의와 합리적 설득의 과정을 거쳐 수립해야 할 정부 정책까지도 보복의 수단이 되어, 지난 정권에서 시작된 정책을 지우고 과거로 회귀하는 '보복정책'들이 이어진다.

시대 과제에 대응하여 건설적으로 의제를 설정하고 정당 간 대화와 협력이 이뤄지며, 각계각층의 토론으로 사회적 담론이 형성되어 사회적 대타협으로 합리적 대안을 찾아가는 성숙한 민주주의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워졌다. 정치와 사회의 이런 험악한 분위기는 앞으로도 지속되리라는 것이 대체적인 전망이다.

배가 낭떠러지로 흘러가는데 배를 운항하는 사람들이 위험을 피할 방안을 놓고 다투지 않고, 전혀 관계없는 사적이고 정략적인 이해의 문제에 매달려 다투고 있는 한심한 형국이다. 그것도 선장의 진두지휘하에서 말이다. 상식의 우선순위에 반하여 정치와 사회의 어젠다가 정해지고 국가의 인적, 물적, 사회적 자원이 고갈되면 결국 중대한 문제에 합리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추락하는 사태를 막을 수 없다.

복합위기 국면에 대비하는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들의 정책에는 두드러진 공통점 있다. 위기에 취약한 부문과 계층을 국가재정이 나서서 선제적으로 보호하고, 위기에 영향을 받지 않거나 오히려 위기에 편승하여 초과 수익을 획득하는 부문에 대해서는 과세를 강화하여 정부의 재원을 확충하는 것이다. 아울러, 에너지 전환과 디지털 전환을 위한 기술 및 인프라 투자를 강화하는 중장기적 정책도 위기 대응 전략의 일환으로 강조되고 있다.

실각한 영국 내각 답습하는 한국 정부
     

2022년 10월 20일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밖에서 사임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다. 이 법은 성공적 에너지 전환과 기술 안보를 위한 산업정책 수립과 이를 위한 중장기적 재정 지출계획, 사회복지 확대와 취약계층 지원 등의 복지 지출계획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기업과 고소득 가구를 겨냥한 부자 증세 등도 포함하고 있다. 금리 인상과 긴축적 통화정책을 지속하면서도, 위기 극복을 위해 적극적 재정 지출과 부자증세를 병행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연합(EU)과 일본 역시 미국과 같은 포용적 위기 대응 정책을 통해 복합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특히 영국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작년 9월 취임했던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는 다른 선진국들과는 정반대의 위기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 대규모 부자 감세와 규제 완화로 이뤄진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이었다.

그 후 영국 정부의 재정 부담에 대한 우려와 불신이 금융시장에 확산되었고, 국채가격 급락, 파운드화 가치 폭락 등 금융시장의 대혼란이 이어졌다. 결국 트러스 총리는 집권 44일 만에 사임하고 새로 출범한 리시 수낵 내각이 전면적인 정책 전환을 선언하면서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불행하게도 한국 정부의 위기 대응과 경제정책 방향은 실각한 트러스 내각의 경제정책과 흡사하다. 다른 선진국과 달리 부자 감세와 기업 규제 완화, 시장의 자율과 작은 정부를 추구하고 있다. 정부의 손과 발을 묶고 미비한 복지제도와 후진적 시장의 냉혹한 질서에 취약 계층과 취약 부문을 내맡길 수밖에 없다.

놀랍게도 정부는 이런 정책을 복합위기 대응 방안 혹은 한국경제의 누적된 폐해를 해결하는 개혁정책으로 허위광고까지 하고 있다. 정부가 가장 중요한 과제로 부르짖는 노동개혁은 개혁이 아니라 비뚤어진 구체제를 강화하는 것에 가깝다.

고질적 노동 양극화의 원인은 후진적 노동시장의 느슨한 규제와 기업과 자본에 편향된 규율, 그리고 자율이 만드는 약육강식의 질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시장이 정글이 되지 않고 누구나 노동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행복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에서 인간 중심의 규제를 하고 헌법적 가치가 보장되는 규율을 바로 세우는 것이 우선이다.

이런 선진적 규율과 약자의 안전장치를 훼손하면서 자율을 강조해서 노동시장의 고질적 이중구조와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주장은 어리석은 아집이거나 파렴치한 이율배반이다.
 

주병기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소셜 코리아 편집·운영위원) ⓒ 주병기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셜 코리아>의 편집·운영위원과 서울대 경제연구소 분배정의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미 캔자스대와 고려대 경제학과에서 재직했으며 한국응용경제학회장, < Journal of Institutional and Theoretical Economics > 편집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미시경제학, 재정학, 정치경제 등이고 분배적 정의, 불평등과 소득분배, 공정한 경제기제 등의 주제로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 <분배적 정의와 한국사회의 통합>, <정의로운 전환>, <정책의 시간>, <혁신의 시작> 등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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