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나는 여행을 할 때 도시의 야경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는 편이다. 서로 다른 개성있는 도시의 야경은 활기찬 에너지로 둘러보던 낮 시간과는 달리 조금 더 깊은 감성과 상상력을 자극한다. 무엇보다 도시의 수준을 조금 더 여유있게 감상할 수 있게 한다.

파리의 야경은 세계 최고다. 세느강 주변에서 맥주라도 한 잔 하고 있자면 멀리 에펠탑이 빛나고, 루브르와 오르세 미술관으로 개성있고 낭만적인 풍광이 매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로마의 야경은 또 어떤가? 지하철 출구를 나오자마자 콜로세움이 빛나고, 로마제국의 전성시대를 보여주는 포로로마노, 팔리티노 등 세계적인 유적지들이 이어지고 또 이어지며 도시 전체가 달빛과 함께 야경의 진수를 보여준다. 

인도의 타지마할 야경은 잔상이 매우 오래 남는다. 2만명이 넘는 건축공들이 무려 23년에 걸쳐 완성한 건축물 하나로 불가사이한 월광 야경을 뽐내 준다.   

어느 각도에서도 굴욕이 없는 파리가 부러웠다. 뒤로 던져도 유적지에 돌이 맞을 정도로 도시 전체가 보물인 로마가 부러웠다. 타지마할 하나로 온 도시가 꿈처럼 빛나는 인도 아그라가 신비로웠다.
 
1300년을 신라시대 원형 그대로 지켜온 유일한 건축물 첨성대
▲ 첨성대 야경 1300년을 신라시대 원형 그대로 지켜온 유일한 건축물 첨성대
ⓒ 곽상원

관련사진보기

 
우리에겐 경주가 있다. 아니 이미 있었다. 신라 천년의 수도, 서라벌, 30여년 만에 다시 방문한 경주는 놀라운 발견이었다. 기억 저편 고등학교 수학여행의 추억으로만 간직되던 낡은 이미지에서 신라의 전성기를 재건한 듯 젊음과 야경이 매우 역동적이었다.

'아 경주가 이토록 볼 것이 많고, 콘텐츠가 풍성한 도시였던가?' K-팝, K-드라마, K-좀비, K-뷰티까지 K의 전성시대에, K를 대표할 K-야경의 성지로 요즘 여행의 가장 중요한 트랜드 중 하나인 사진 스폿으로서의 경주는 도시 전체가 마치 무대 조명을 한 초대형 야외 박물관 같았다.

우선 젊음의 거리 황리단길은 불야성이다. 서울 성수동의 연무장 길, 용산의 경리단길, 신사동 가로수 길이 무색할 정도로 평일에도 인파로 가득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경주역에서 바로 캐리어를 끌고 온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는 점 정도일 듯하다.

소형 서점, 수많은 사진관, 십원 빵집, 전통과 모던이 어우러진 감성 식당들, 점 집, 힙한 옷을 빌려주는 옷 집들... 별다른 계획 없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둘러볼 수 있는 재미있고 힙한 거리다.

무엇보다 색다른 경험을 감성을 자극하는 것은 경주에서만 볼 수 있는 멋스러운 기와 지붕을 한 세련된 건물들의 조화다. 예스러움을 힙함으로 개성 있게 재해석한 좋은 도시 콘텐츠들이다.

계획없이 들어서서 식욕이 없어도 무언가 먹게 하고 쉴 새 없이 사진을 찍게 하고 사람들을 보게 한다. 힙한 상점들 너머로 멀리 보이는 이름 모를 신라 왕족들의 봉분들과 유적들이 경주라는 도시의 품격을 보여준다.

경주 야경의 정점은 통일 신라의 왕자들이 머물던 별궁터, 동궁과 월지에서 시작한다. 전쟁과 일제 시대를 거치며 아름다운 연못과 건축물들이 모두 회손되고, 페허된 유적지를 경주시 <신라왕경조성계획>의 일환으로 2010년부터 약 8년간 복원했다.

26개의 별궁 중 세 곳을 복원하여 사라진 천년 신라를 조금이나마 상상해 볼 수 있는 야경 스폿으로 재건되었다. 복원 과정에서 역사적 사료의 부족 등 아쉬움들을 남겼지만 드넓은 별궁 터에 섬처럼 환하게 밝히고 있는 세 곳은 도시의 활력을 찾아주는 역할을 충분히 해주고 있다.
 
2018년에 복원된 최고 최대의 석교 월정교
▲ 월정교 2018년에 복원된 최고 최대의 석교 월정교
ⓒ 곽상원

관련사진보기



한국 최고 최대의 돌 다리인 월정교는 부족한 자료와 논란 끝에 2018년에야 복원이 마무리되어 경주 최고의 야경을 보여준다. 마치 정교한 데칼코마니를 보는 것처럼 물에 비친 월정교 야경은 규모와 화려함에서 멀리서도 가까이서도 독보적인 야경을 자랑한다.

80년대 경주 수학여행 필수 코스였던 첨성대는 여전히 인기가 식지 않고 야경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1300여년 동안 수많은 전쟁과 지진 등 천재지변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묵묵히 서 있는 모습이 우선 감동적이다. 날이 조금 맑은 날은 첨성대 너머로 달과 별이 뜨는 그야말로 멋진 신라의 달밤 사진을 연출할 수 있다.
 
교촌마을 카페에서 본 석양. 멀리 왕릉들이 흔하게 보인다.
▲ 교촌마을 카페 BAGEL BAGELER 교촌마을 카페에서 본 석양. 멀리 왕릉들이 흔하게 보인다.
ⓒ 곽상원

관련사진보기

     
해질녘 황리단 길 루프 탑 카페에서 본 힙한 경주의 야경, 경주엑스포 공원 전망대에서 본 도시 야경, 뭔가 조심스러운 신라 왕과 귀족들이 잠든 대릉원의 야경, 복원된 동궁과 월지, 월정교의 야경, 변치 않은 내 마음속 경주 No.1 첨성대의 야경 등 각자의 취향에 따라 최고의 야경은 다를 수 있다.
 
2018년 복원된 통일신라 왕자들의 별궁터
▲ 동궁과 월지  2018년 복원된 통일신라 왕자들의 별궁터
ⓒ 곽상원

관련사진보기

 
중요한 것은 우리는 파리, 로마에 결코 뒤지지 않을 정말 멋지고 신비로운 야경 도시, 경주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 책 속의 도시 경주는 복원 사업과 옛 것을 새롭게 해석하는 MZ세대들의 SNS를 통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태그:#사진맛집, #경주, #황리단길, #첨성대, #야경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프로듀서,작가, 콘텐츠 대기업 월급쟁이 25년. 크리에이터로 진화 중.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