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28 13:38최종 업데이트 23.03.02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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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막장, 마지막 정거장, 밑바닥 인생, 완행열차...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폄훼와 하대, 조롱, 멸시당하며 눈물 젖은 밥벌이에 뛰어든 일용잡부를 흔히들 '노가다'(일본어, dokata, 土方)라 칭한다. 노가다 꾼은 씹다 씹다 단물이 쏙 빠진 껌처럼 끝내 버려지는 비운의 삼인칭이다. 27년 동안 한 기자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노동으로 지난해 9월 노가다를 시작했다. 몇 차례에 걸쳐 직접 겪은 땀의 현장을 전한다.[기자말]

공사장 게이트 앞에 설치된 개인보호구 보관소 모습. 근로자들의 안전모가 걸려있다. ⓒ 나재필

 
나는 노가다 꾼이다. 그런데 그 이름 앞에 여러 가지 수식어가 붙는다. 나는 누군가의 자식이다. 누군가의 남편이고 누군가의 사위다. 그리고 누군가의 아버지다. 아버지라는 가장의 무게는 그 어떤 질량과도 비교되지 않는다. 열심히 살려고 하는 이유다. 누구보다 많이 울었지만, 누구보다도 눈물을 많이 삼켰다. 보이지 않는 눈물의 결정체가 바로 땀이다.

난 이 땅의 아버지, 자식, 남편, 사위들의 삶에서 뜨거운 경외를 품는다. 그들이 화이트칼라든, 블루칼라든, 아니면 그 어떤 언저리에도 속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라 할지라도 그들은 오늘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진정한 노동자다. 산다는 건 삶의 결절을 인정하고 하나하나 봉합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어디 한쪽 아프지 않은 사람이 있던가.

걸음과의 싸움

새벽 4시 30분. 이 시각엔 여명도 없다. 별들도 코를 곤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찬물에 세수하기다. 정신이 바짝 들도록 몸의 이완상태를 옥죄고 1000억 개의 뇌신경 세포를 깨우기 위해서다.


대부분의 근로자는 아침을 거르거나 간단히 먹는 편이지만 난 밥상을 차려 먹는다. 몇 종류의 약과 블랙커피도 잊지 않는다. 옷을 단단히 챙겨 입고 각반(발목에서부터 무릎 아래까지 돌려 감거나 싸는 띠)에 안전모, 출입증까지 확인하면 출근 채비가 끝난다.

건설 현장까지는 시내버스나 오토바이를 이용한다. 폭설이 내리거나 강추위가 오면 버스로 가는데 5시 50분경에 첫차가 온다. 승강장 이동시간을 포함해 1시간 정도 걸린다. 오토바이는 시속 60㎞ 기준으로 30분이면 도착한다. 근로자의 80~90%는 자기 차로 움직이고, 나머지는 오토바이, 자전거, 버스 이용자다.

7시 이전에 타각(打刻, 출입 카드를 기계에 대서 출퇴근 기록을 남기는 것)을 끝내면 본격적인 노가다가 시작된다. 대기업 공사판은 난장판이 아니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현장에서 쌍욕 얻어먹어 가며 하는 일은 없다. 해 질 무렵, 현장소장에 머리를 조아리며 일당을 받지도 않는다. 퇴근 후 라면을 안주 삼아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켜지도 않는다.

인력직업소개소에서 파견 나와 일하는 일반 공사 현장(용역)과 대기업 현장은 다르다. 일반현장은 공기(工期)에 맞춰 일을 다그치거나 무리한 작업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대기업 현장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작업 거부권도 행사할 수 있다.

보통 건설 현장에는 배관, 비계, 철거, 토목, 미장, 방수, 도장, 용접, 타일, 설비, 조립, 보온, 전기, 통신, 소방, 미화, 경비 등의 업종이 있다. 나는 비계(飛階, 높은 곳에서 공사를 할 수 있도록 임시로 설치한 가설물)팀이다. 그곳에서 '양중' 일을 한다. 양중은 밀차나 대차, 수레 등을 이용해 자재를 옮기는 일을 말하는데 특별한 기술을 요하지 않는다.

건축자재(시멘트, 벽돌, 모래, 타일, 돌, 석고보드, 나무, 합판 등의 중량물)를 인력으로 운반하는 '곰방'과는 다르다. 흔히들 우리가 알고 있는 노가다는 곰방이다. 장비를 사용해서 작업하는 것보다 계단으로 운반하는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현장에서 주로 하는데 등짐으로 옮기면 '수평곰방'이라고 부른다. "5층까지 계단으로 시멘트 50포 곰방하다가 조상님 뵐 뻔했다"는 우스개가 있을 만큼 고되다.

대기업 현장의 양중은 '걸음'과의 싸움이다. 계단을 포함해 하루 2만~3만 보를 움직인다. 1층 화물 엘리베이터에서 자재를 싣고 2·3·4·5층·옥상에서 받아 설치구간에 건네주는 역할이다. 5~15㎏ 중량물은 취급 시 무게중심을 확인하고 15~25㎏짜리는 한 손으로 작업해서 안 된다. 25㎏ 이상 자재는 절대 인력으로 하지 않고 대차를 이용해야만 한다. 물론 층에서 층으로 이동하는 자재들도 많다.

비계작업(강관비계, 시스템비계, 달비계, 말비계)은 고소작업, 즉 높은 곳에서 하는 일이 주를 이뤄 위험하다. 비계 조립·해체 시 추락, 작업발판 추락, 외부 벽체에 설치된 비계를 타고 내려오다 추락, 외부 비계와 본채 사이의 간격 틈으로 추락, 이동식 비계에 탑승한 채로 이동 중 전도·추락, 물건 방치로 인한 낙하 등이 재해 발생의 주요 요인이다. 때문에 설계도서, 시방서 또는 안전기준에 의해 작업해야 한다.

양중은 손힘을 쓰는 일이 많다. 자재를 들고 빼고 옮기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어깨와 팔꿈치(엘보·elbow)가 저리고 쑤신다. 특히 신체의 일부분이 기계나 자재에 끼이거나 물리는 협착(狹窄·narrowness)을 조심해야 한다.

파이프를 까대기·받아치기할 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면 등 부상의 위험도 크다. 까대기는 근로자들이 줄지어 물건을 옮기는 것이고, 받아치기는 아래층에서 위층까지 자재를 올리거나 내려야 할 때, 사람과 사람 간 간격을 두고 이어받는 방식이다.

요즘엔 일주일에 1공수(오전 7시~오후 5시 30분)짜리 1회, 1.5공수(오전 7시~오후 7시 30분)짜리 4회를 뛴다. 토·일요일은 휴무이니 한 달 벌이가 400만 원쯤 된다. 제법 쏠쏠한 액수이지만 50대 중반의 체력을 생각하면 벌써 장기전이 걱정이다.

퇴근하면 보통 오후 8시~9시에 집에 도착한다. 그러면 선택지는 두 개다. 밥을 먹느냐, 술밥(酒飯·주반)을 먹느냐다. 아내는 땀범벅으로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 내게 따뜻한 밥상을 내밀지만, 난 술밥이 당긴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술로 허기를 채우고 이내 쓰러져 잔다.

돈 냄새가 싫어졌다
 

게이트 앞에 설치된 건설근로자 전자카드 부스 모습. 건설 쪽 일을 252일 넘게 할 경우 하루 6000원씩 적립된 금액을 환급받을 수 있다. ⓒ 나재필

 
노가다 일을 처음 할 때는 '배관' 조공을 했었다. 토·일요일도 없이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10시 30분까지 배관사가 지시하는 잡일은 물론 용접 보조, 그라인딩, 양중 일을 했다. 쥐새끼처럼 비좁은 배관 사이를 옮겨 다니며 자재와 공구를 나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배관이 마치 혈관 같았고, 세포 사이로 쇳가루가 흐르는 느낌이었다. 솔직한 말로 '살맛'이 안 났다.

퇴근 후 숙소로 돌아가면 씻는 것조차 귀찮을 때가 많았다. 4~5시간을 자고 다시 그 패턴이 이어지니 아침이 오는 게 두려웠다. 나중엔 돈 냄새도 싫어졌다. 병원 갈 시간도 없어 몸은 몸대로, 정신은 정신대로 황폐해졌다. 한 달 만에 '두 손 두 발' 모두 들었다. 완벽한 KO패였고 백기투항이었다.

막일하면서 힘에 부칠 때면 부모님과 가족을 떠올린다. 하루에도 수백 번 생각한다. 나의 부모는 평생을 농사일하며 자식농사를 해내셨다. 구부러진 허리, 밭고랑같이 깊이 팬 주름, 퇴행성관절염이 스치고 지나간 손 마디마디. 그 잔혹한 훈장들을 보며 (가슴은 울지만) 힘을 내보는 것이다. 간혹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땐 두 아들을 생각한다. 그리 잘해주지 못했는데 잘 커 준 아이들을 생각하면 두 주먹에 힘이 생긴다.

월급날이면 내 가슴속에 푸른 태양이 뜬다. 부모님께 용돈을 드릴 수 있고, 자식들에게 마음껏 통닭을 살 수 있으니 이보다 더한 제2의 삶이 어디 있겠는가. 나의 뼛속엔 나름 근력이 조금씩 붙어 앞으로도 잘해 나갈 자신이 있다. 그래서 오늘도 '별'을 보고 출근해 '달'을 보며 퇴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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