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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선 능주역사 뒤쪽 모습, 오른쪽이 광주 왼쪽이 순천 방향이다.
▲ 능주역 경전선 능주역사 뒤쪽 모습, 오른쪽이 광주 왼쪽이 순천 방향이다.
ⓒ 김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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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 플랫폼 벤치에 화사한 햇살이 앉았다. 먼 길 달려온 봄바람이 햇살과 눈인사 나눈다. 서울 가는 기차는 더 이상 오지 않는다. 목포와 부산을 하루 한 번, 광주에서 순천까지 세 번 오간다. 손님이 없어 조만간 그 열차도 멈출 거라고 한다. 추억 속으로 사라질 날이 머지않았다.

경전선이 지나는 화순군 능주역. 지석천 너른 물가에 자리하여 연주산(連珠山)을 병풍처럼 둘렀다. 풍광이 빼어나 옛 어른은 영벽정을 세웠다. 오래도록 시인 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음악가 정율성은 이곳에서 어린 시절 낚시를 하며 놀았는데 아름다웠노라고 회상했다.

능주역은 늘 조용하다. 예능프로그램에서 제작해 준 플랫폼에 자리한 이정표가 그나마 쓸쓸함을 달래준다. 배우 이동휘와 고아성이 그린 세상에 단 하나뿐인 것이라 한다. 역무원은 없다. 승차권은 모바일로 혹은 열차에서 승무원에게 구매해야 한다. 하루 몇 사람 안 되는 관광객과 운전이 힘든 노인 몇 분이 주요 고객이다.
 
부산에서 출발하여 목포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이다. 하루 한 번 오고 간다.
▲ 무궁화호 부산에서 출발하여 목포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이다. 하루 한 번 오고 간다.
ⓒ 김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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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그랬다. 할아버지 한 분이 서성였다. 부산에서 오는 할머니를 기다린다고 했다. 목포행 무궁화호 열차가 도착했다. 승무원 두 분과 부산 딸 집에 다녀온다는 할머니 한 분이 큼지막한 가방 두 개를 들고 내렸다. 승객보다 승무원이 더 많다. 타는 사람 없이 기차가 떠났다.

1930년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대합실은 비좁았다. 보성, 벌교, 순천은 물론 부산, 서울까지 늘 붐볐다. 높다란 은행나무와 널따란 광장은 예전 이곳이 번성했음을 말해 주는 듯하다.

근대화로 있던 길이 넓혀지고, 없던 길이 뚫렸다. 기차에서 버스로, 버스에서 자가용으로 갈아탔다. 고속 열차가 직행으로 달린다. 느려터진 무궁화호 열차는 역마다 들러 쉬었다 간다. 늘 바빠야 하는 우리네 삶에 어울리지 않는 교통수단으로 전락했다.

능주역 시계는 멈춘 지 오래다. 전형적인 50년대 기차역의 모습을 그대로다. 맞배지붕은 녹색과 청색이 섞였다. 벽은 맑고 연한, 빛바랜 노랑이다. 한국전쟁 때 불탔던 것을 1957년에 다시 지은 것이라 한다. 60년 넘은 세월이 켜켜이 묻어 있다.
 
능주역 전면 모습. 1950년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 능주역 능주역 전면 모습. 1950년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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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주는 오래된 고을이다. 지금은 화순군 능주면으로 불리지만 흔적을 더듬어 보면, 이곳이 실질적인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화순이라는 지명은 고려 때, 능주의 옛 이름인 능성은 통일신라 때부터 사용되었다. 두 고을이 합쳐치고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일제 강점기 때 동복군이 더해져 지금의 화순군이 되었다.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의 앞 글자에서 따왔다. 경상도는 경주와 상주를 합한 명칭이다. 주(州)는 지방행정의 중심이었다. 화순군 능주(綾州)는 다른 의미이다. 본래는 능성현(陵城縣)이었다.

조선 인조는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후, 정통성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아버지 정원군을 원종(元宗)으로, 어머니 구씨(具氏)를 인헌왕후(仁獻王后)로 추존하였다. 어머니 고향인 능성현을 능주목(綾州牧)으로 승격시켰다. 그 덕에 전라도는 나주·전주·능주라는 세 개의 주를 가지게 되었다.
 
배우 이동휘와 고아성이 만든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이정표.
▲ 능주역 이정표 배우 이동휘와 고아성이 만든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이정표.
ⓒ 김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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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목마름을 가라앉혀 주는 알약을 파는 장사꾼을 만났다. 일주일에 한 알씩 먹으면 물을 마시고 싶은 욕망을 느끼지 않게 해 준다. 왜 그걸 파느냐고 물었다. "그건 시간을 굉장히 절약하게 해 주거든. 전문가들이 계산해 보았어. 매주 오십삼 분씩 절약하게 되는 거야"라고 장사꾼이 답했다.

"그 오십삼 분으로 뭘 하지?" 어린 왕자가 물었다. 장사꾼은 얼버무렸다. "하고 싶은 걸 하지… ." 어린 왕자는 '만일 나에게 마음대로 사용할 오십삼 분이 있다면 샘을 향해 천천히 걸어갈 텐데…'라고 생각했다.

나에게도 마음대로 사용할 오십삼 분이 주어진다면 무얼 할까. 아마도 완행열차를 탈 것 같다.
 
능주역으로 들어서기 전 기차 모습. 지석천 다리를 지나고 있다. 뒤로 영벽정과 연주산이 보인다.
▲ 경전선 능주역으로 들어서기 전 기차 모습. 지석천 다리를 지나고 있다. 뒤로 영벽정과 연주산이 보인다.
ⓒ 김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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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주역에 내려 어디든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면 된다. 오랜 역사를 지닌 행정과 교통의 중심답게 둘러볼 곳이 많다.

옛 동헌 뜰은 고즈넉하다. 녹의당(綠倚堂) 정문 '죽수절제아문(竹樹節制衙門)'은 전국 몇 안 되는 관아의 대문으로 고흥의 동헌 아문과 더불어 전라남도에 단 두 곳밖에 없다. 영벽정과 왕버들, 주자묘, 조광조 유배지, 정율성 고향 집과 다니던 학교, 이한열 열사 출생지도 있다.

넓지 않아 쉬엄쉬엄 걷기에 좋다. 마실 나가듯 동네 한 바퀴 돌고, 다음 기차로 훌쩍 떠나기에 능주역만 한 곳도 없을 성싶다. 곧 봄이다.​​ 지석천 왕버들이 일품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화순매일신문에도 실립니다. 네이버블로그(cumpanis, 쿰파니스) "맛담멋담"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태그:#쿰파니스, #맛담멋담, #화순여행, #능주역, #화순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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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파니스'는 함께 빵을 먹는다는 라틴어로 '반려(companion)'의 어원이다. 네이버 블로그(cumpanis) <쿰파니스 맛담멋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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