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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 도시 흘레바하에서 주민들이 러시아군 공격으로 무너진 이웃집의 잔해를 정리하고 있다. 미국과 독일 등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전차를 지원하기로 한 다음날인 26일 새벽부터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전역에 공습을 가해 11명이 숨지고 11명이 부상했다.
 지난 1월 2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 도시 흘레바하에서 주민들이 러시아군 공격으로 무너진 이웃집의 잔해를 정리하고 있다. 미국과 독일 등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전차를 지원하기로 한 다음날인 26일 새벽부터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전역에 공습을 가해 11명이 숨지고 11명이 부상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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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은 한국에 사는 우크라이나인으로, 시부모님은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이우 도심 한복판에 살고 계신다. 일 년 전 어제(2월 24일), 지인들로부터 갑자기 전화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가끔 안부를 물어오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날은 좀 달랐다. 

"전쟁이 터졌대! 빨리 뉴스 확인해 봐!"
"우크라이나 가족들은 연락 됐어?"


그날 저녁, 퇴근한 남편이 축 처진 어깨로 내게 말했다.

"결국 전쟁이 시작됐어."

러시아가 '특별군사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이다. 남편은 서둘러 시댁 식구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수도 키이우는 아직 괜찮다는 답변을 들었지만, 현지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일은 걱정밖에 없었다. 

전쟁이 터진 지 며칠 뒤 뉴스에서는 러시아군이 키이우까지 접근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급기야 키이우 시내와 동물원 근처에서 교전이 있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키이우 동물원은 내 시댁에서 도보 20분 정도 떨어져 있는 곳으로, 과거 시댁에 방문할 때마다 아이와 손잡고 가던 곳이었다. 익숙한 지명이 등장하자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당시 밤마다 2~3시간도 채 못 자고 깨곤 했는데, 남편은 나보다도 먼저 일어나서 계속 우크라이나 뉴스를 찾아보고 있었다. 그저 불안에 떨 수밖에 없는 시간들이었다. 시차 때문에 한국 시간으로 오후 3~4시가 되어야 시댁과 통화가 가능해지니, 새벽에 잠이 깬다고 해도 시댁의 안전이 확인되는 오후까지 불안해 해야만 했다. 

헤어진 가족들 다시 볼 수 있을까... 전쟁이 주는 공포
  
2013년에 결혼하면서 키이우 방문했을 때, 별장에 가족들이 모였던 사진. 바닥에 개를 안고 앉아계신 분은 둘째 외삼촌으로, 자국을 떠나 독일에서 투병과 피란생활을 하다 돌아가셨다.
 2013년에 결혼하면서 키이우 방문했을 때, 별장에 가족들이 모였던 사진. 바닥에 개를 안고 앉아계신 분은 둘째 외삼촌으로, 자국을 떠나 독일에서 투병과 피란생활을 하다 돌아가셨다.
ⓒ 박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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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시작된 뒤 우크라이나에 있는 시부모님께 한국에 오지 않으시겠느냐 수차례 물어봤지만, 당시 시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아 장거리 비행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 데다 시어머니도 아직 키이우를 떠날 생각이 없다고 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걱정뿐이었다. 

그렇게 불안과 걱정의 나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 아이는 자신의 유일한 우크라이나 친구 마리아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마리아는 우크라이나인 남편의 학창시절 친구인 안드레이의 딸이자, 시부모님댁과 같은 아파트에 살던 이웃이다. 전쟁이 터진 뒤 시댁 가족들 안부와 함께 가장 먼저 걱정된 것이 마리아네 가족이었다. 

이들이 기억하는 '전쟁 발발' 그 날의 기억은 이렇다. 2022년 2월 23일, 마리아의 아빠 안드레이는 평소처럼 일했고, 그의 부인 이방카는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24일 새벽, 안드레이는 폭발음과 경보음에 잠이 깼고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안드레이는 결국 '나는 남을테니 당신은 아이들을 데리고 키이우를 떠나라'고 하루 종일 아내 이방카를 설득했지만, 이방카는 더 지켜보겠다며 떠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다 며칠 뒤, 러시아군이 자포리자의 원자력발전소를 점령하자, 이방카는 결국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이 있는 리비우로 피란길에 올랐다.

그 이후 남편 안드레이는 수도 키이우에 남아 군대에 자원하려했으나, 이미 많은 자원병이 몰려든 탓에 자원병 모집이 중단된 상황이었다. 안드레이는 관련 자원봉사를 시작했고, 동네의 방위대로도 활동했다. 우크라이나군과 지역방위대와는 또 별개로, 주민들은 스스로 방위대를 조직해 동네에 수상한 사람이 돌아다니지는 않는지, 수상한 물건은 없는지 돌아가면서 순찰을 돌았다고 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서부지역인 리비우에까지 미사일 공격을 퍼붓기 시작하자, 이방카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체코로 넘어가게 됐다. 아빠는 집과 마을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남고, 엄마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피란길에 오르는 상황.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지난 1년을 그렇게 버텨내고 지켜내 왔다. 

현재도 동부와 남부에서는 격전이 벌어지고 있지만, 결국 우크라이나 북부지역에서 러시아군이 패퇴했다. 그제야 이방카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우크라이나로 돌아왔고, 생이별했던 가족들이 다시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2022년 2월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루간스크 지방 세베로도네츠크의 버스에서 한 여성과 아이가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내 군사작전을 선언하며 전면전을 개시했다. 2022.2.24
▲ 불안한 표정으로 차창 밖 내다보는 우크라 동부 주민들 2022년 2월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루간스크 지방 세베로도네츠크의 버스에서 한 여성과 아이가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내 군사작전을 선언하며 전면전을 개시했다. 2022.2.24
ⓒ 연합뉴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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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공포 속에 떨던 어느 날, 갑자기 만 8세인 딸아이가 내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아빠랑 싸울 거야?"

나는 별 생각 없이 "싸울 일이 있으면 싸울 수도 있지" 대답했지만, 내 답을 들은 아이는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말했다.

"만약에 엄마랑 아빠랑 싸워서 우리 가족이 헤어지면 어떡해! 그러면 우리 우크라이나도 다시 못 가게 될 텐데, 그래서 바부시카(할머니)도 못 만나게 되면 어떡해!"

아이의 말을 들은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해졌다. 나는 가끔 남편과 다툴 일이 있어도 홧김에라도 '이혼'이란 말은 절대 꺼내지 않는 편인데, 아이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의문이었다.

아마도 전쟁이 난 상황에서 우리가 애초 계획했던 우크라이나 방문이 무산되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키이우 집을 떠나 피란민이 된 것이 아이의 생각에 영향을 끼친 게 아닐까 싶었다(관련 기사: 피란민 된 우크라 시부모님... 민간인 위협하는 러시아 https://omn.kr/1xwbf ).

당시 피란을 떠난 시부모님은 친척이 있는 독일 에센에 터전을 잡고 생활하고 있었는데, 아이는 여름방학에 독일에 할머니 만나러 가자고 졸라댔다. 당시 나는 새로운 연구소로 옮기게 되어 당장 장기간 휴가를 내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다시는 못 만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아이는 혼자서라도 독일에 가겠다는 용기를 냈다. 결국 아이는 여름방학 때 혼자 비행기를 타고 독일로 향했다. 보호자 없이 혼자 항공기에 탑승하는 어린이·청소년도 안전히 여행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항공사 '비동반 소아'(UM·Unaccompanied Minor) 서비스를 통해서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다시는 못 만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아이는 혼자서라도 독일에 가겠다는 용기를 냈다. 항공사 '비동반 소아' 서비스를 통해서 혼자 독일로 떠나는 아이의 뒷모습.
 할머니 할아버지를 다시는 못 만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아이는 혼자서라도 독일에 가겠다는 용기를 냈다. 항공사 '비동반 소아' 서비스를 통해서 혼자 독일로 떠나는 아이의 뒷모습.
ⓒ 박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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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지난해 독일에서 그렇게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두 달여를 보냈다. 나와 남편은 그 이후 독일로 짧은 휴가를 떠나서야 다시 시부모님 얼굴을 마주하고 안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시어머니는 5남매인데, 그 중 둘째 외삼촌 댁이 자포리자이다. 자포리자 원자력 발전소의 엔지니어로 일하다 은퇴하신 둘째 외삼촌은 지난해 전쟁이 터지자 바로 딸이 사는 독일로 갔지만, 재작년 수술한 암으로 인해 투병 중이었다.

앞서 남편과 내가 시부모님을 만나러 독일에 갔을 때 둘째 외삼촌을 직접 만날 수 있었지만, 투병 생활과 피란 생활로 인해 몰라보게 말라있던 둘째 외삼촌은 우리가 만난 지 한 달여 뒤 결국 세상을 떠나셨다. 그렇게 기다리던 조국 우크라이나의 전쟁 종료조차 보지 못한 채, 머나먼 이국 땅에 묻히시고 말았다.

떠나지 못한, 떠나지 않는,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이들

시댁 첫째 외삼촌 댁은 자포리자 근처의 시골마을이다. 전쟁 초기에 러시아군에 점령당한 지역에 첫째 외삼촌은 아직 남아계신다. 자식들을 재빨리 다른 나라로 대피시키고, 고향에 홀로 남으신 첫째 외삼촌이 걱정돼 연락하지만 그는 아직 '괜찮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수도 키이우에 사는 막내 외삼촌 또한 집을 두고 떠나지 않겠다며 고향을 지키고 계신다. 우크라이나인 남편은 가끔 키이우에 계신 막내 외삼촌과 통화를 한다. 생활은 괜찮은지, 아프신 곳은 없는지 이것저것 물어보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비슷하다. 괜찮다는 말씀 뿐이다.

"나는 괜찮다."
"여긴 가끔 전기가 끊기지만, 견딜 만하다."
"가끔 수돗물이 끊기지만, 괜찮다."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지만, 많은 우크라인들은 신변이 위험할 때엔 자국을 잠시 떠나 있다가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우크라이나, 그곳은 그들이 지키고 살아가야할 그들의 터전이자 땅이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들을 위해 나는 한국 내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짜뉴스를 바로 잡으려 노력하고, 남편은 주변의 우크라이나인들과 함께 조국을 위한 모금을 시작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와 관심을 잃지 않는 게 우리가 1년 여간 해온 일이자, 앞으로도 이어나가야 할 일이라 믿는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응원을 부탁한다. 

태그:#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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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다문화사회전문가. 다문화사회와 문화교류에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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