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24 21:12최종 업데이트 23.02.24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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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진보당 홍희진 대표와 당원들이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곽상도 전 국회의원 50억 뇌물 무죄 판결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희훈

 
국민의힘 곽상도 전 의원의 뇌물수수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1심 법원의 판단을 보면서 사법부가 정의의 마지막 보루라는 관용구가 여전히 유용한가 의문이 들었다. 서른 초반 나이의 청년이 7년 남짓 근무한 직장의 퇴직금으로 50억 원을 받았다? 길거리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정당한 퇴직금이라는 대답은 듣기 어려울 것이다.

재판부는 국민의 상식과 통념에 반하는 판결을 했다. 곽상도 전 의원 아들인 병채씨가 성인이고 결혼을 통해 독립 생활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뇌물이라고 볼 수 있는 증거도 많았다. 화천대유 대주주였던 김만배씨의 '병채 아버지가 돈 달래, 병채 통해서'라는 녹취 내용과 김만배씨와 유동규씨가 어떤 방식으로 50억 원을 줄 것인가 상의하는 내용이 공개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50억 원이 퇴직금으로 지급됐다(관련기사: '50억' 곽상도 무죄? 녹취록 곳곳에 돈 전달 고민 흔적 https://omn.kr/22nxc).

국민들이 판결에 황당해하고 분노하는 건 당연하다. 서른 초반 청년에게 50억 퇴직금이 지급된 이유를 재판부 판결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사법부가 법의 정의를 앞장서 훼손했다는 비난이 쇄도했다.

국민 상식을 뒤엎은 사법부 판결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은 또 있다. 지난 10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3억 원의 선고가 내려졌다. 같이 기소된 피고인들에게도 집행유예와 벌금형이 내려졌다(관련기사: 도이치 주가조작 권오수 1심 유죄...일부 관련자 면소 및 무죄 https://omn.kr/22os5).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행위는 시세 조종의 동기와 목적이 있었지만, 시세 차익 추구라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해 성공하지 못한 시세 조종으로 평가된다"라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수천 명의 주주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주가 조작은 미국 등 자본 선진국에서는 종신형까지 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라임자산운용 펀드 자금이 투입된 코스닥 상장사 주가를 조작한 주범에게 징역 12년, 벌금 300억 원 처벌이 내려진 것과 비추어 봐도 형평성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13일 공개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1심 판결문에는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계좌의 통정매매, 가장매매가 거래가 나타난다. 재판부가 유죄로 인정한 통정·가장 매매 102건 중 48건이 김건희 여사 계좌를 통한 거래다. 유죄로 인정된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여기에 사용된 계좌의 주인인 김건희 여사에 대해 검찰은 이렇다 할 소환 조사도 없다. (관련기사: '김건희 계좌' 동원 거래 유죄 인정... 더 커진 김 여사 수사 필요성 https://omn.kr/22ouj).

1심 재판부가 판결한 권오수 전 회장에 대한 집행유예와 벌금 3억 원, 검찰의 김건희 여사에 대한 불투명한 수사 의지. 사법부와 준사법기관이라는 검찰의 공정성과 정의 실현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우려가 드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회사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이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은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곽상도 전 의원의 뇌물수수 혐의가 1심에서 무죄로 선고되자 사법 당국을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윤석열 정권이 사법부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성토도 이어졌다. 그러나 곽 전 의원의 뇌물수수 무죄 선고는 사법부가 비난받을 일이지, 윤석열 정부에 직접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엄연히 삼권 분립이 헌법에 명문화된 나라에서 재판부의 판결을 대통령에게 따지는 건 온당치 않다. 대통령의 입김이 검찰에 이어 사법까지 미쳤다는 주장도 확인안 된 추측에 불과하다.

잘못된 판결에 관해서는 대통령이 아니라 사법부가 지탄받아야 한다. 곽상도 전 의원의 50억 뇌물수수 혐의가 왜 무죄인지 국민들은 물을 수 있어야 하고, 사법부는 국민들에게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주가 조작 사건에 솜방망이 처벌을 한 재판부. 김건희 여사를 위한 봐주기 재판이 아니냐는 여론이 팽배하다면 이 또한 국민에게 설명할 책임은 사법부에 있다.

법원은 흔히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며 개별 재판에 관해 판결 이외에 별도로 견해를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태도를 취해왔다. 그러나 잘못된 판결에 관해 아무 설명 없이 넘어가는 재판부의 행태는 못된 짓을 하고 법의 권위를 방패 삼는 권력의 횡포나 다름없다.

국민 주권의 머리 위에 올라선 사법·검찰 권력

법관의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는 대명제를 부인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법의 권위는 판결이 공정하고 정당할 때 지켜진다. 곽상도 전 의원 뇌물 수수 혐의에 무죄를 선고하고 주가 조작 주범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한 사법부가 법의 권위를 말할 수 있을까? 법정이 정의의 마지막 보루이기는 한 건가? 사법부는 국민의 이런 질문에 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어떤 권력도 국민 주권의 머리 위에 올라설 수 없으니 말이다.

검찰 수사의 불공정성은 한둘이 아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 수사와 김건희 여사 수사는 극단의 대조를 보이고 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탈북어민 북송 사건에서 전 대통령과 야당 정치인을 파헤치려는 검찰의 집요함을 50억 클럽, 현 여권 실세들의 비리 의혹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여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울산 KTX 역세권 땅 투기 의혹이 불거졌다. 야당 경선 과정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검찰이 지금처럼 침묵했을까? 윤석열 정부 들어 검찰의 정치인 수사는 거의 다 야당 인사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형평성을 상실한 검찰을 정치 검찰, 윤석열 검찰이라 부르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정치·경제 권력이 부패했더라도 사법부와 검찰이 온전하다면 법의 정의, 국가의 근간은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말 한마디로 국방부를 내몰고 혈세를 써서 대통령실과 관사를 옮길 수 있는 대통령이라도 5년이면 물러나야 한다. 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대통령은 진보와 보수가 몇 번이나 바뀌었다. 입법부도 마찬가지다. 4년에 한 번은 국민의 심판대에 서야 하고 때로는 정당의 존립을 위협받는 궁지에 몰리기도 한다.

그러나 선출되지 않는 권력인 사법부와 검찰은 변화의 무풍지대나 다름없다. 내부 자정 능력과 국민 여론이 막혀 있는 권력. 오늘날 사법부와 검찰이 법비(法匪) 카르텔로 비난받는 건 그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고 심판해야 할 사법부와 검찰이 스스로 권력화 되고 정치권력, 경제권력과 이권을 주고받는 관계가 된다면 그 해악은 상상 이상이다.
 

대법원 정의의 여신상 대법원 직원이 정의의 여신상 앞을 지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정권의 폭주가 전부는 아니다. 잘못된 정치 권력을 단죄하기는커녕 법의 권위를 내세워 부실 수사와 엉터리 재판을 하는 검찰과 사법부가 더 큰 문제다. 딱히 국민의 심판대에 설 일이 없는, 그러면서 힘을 무한히 키우는 사법부와 검찰 권력. 이들을 통제할 수단이 딱히 없다는 게 놀랍지만 사실이다.
   
브라질에서는 2016년에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을 탄핵하고, 퇴임까지 87% 지지율을 유지했던 룰라 전 대통령을 하루아침에 범죄자로 만든 일이 있었다. 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이 쿠데타는 검찰과 사법부, 정치권력의 검은 카르텔에서 기획되었다.

상식, 통념과 공정성을 잃어버린 대한민국 사법부와 검찰을 보면서 브라질에서 일어난 법을 내세운 쿠데타가 떠오른다면 과연 기우일까? 견제와 자정 능력을 잃어버린 사법부와 검찰을 국민 머리 위에 두고는 정치도 경제도 바로 설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점점 커지는 요즘이다. 사법부와 검찰, 대체 어디로 가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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