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세계산악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선임된 산악인 엄홍길씨.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선임된 산악인 엄홍길씨. ⓒ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제공

 
최근 국내에서 개최되는 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에 전문성과는 거리가 먼 인사들이 낙하산 성격으로 선임되면서 영화계 곳곳에서 강한 우려와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영화의 세계화의 바탕이 됐던 영화제가, 이제는 아무나 앉혀도 되는 것처럼 평가되는 분위기에 영화인들은 어처구니없다는 반응과 함께 비난을 쏟아내는 모습이다.
 
울주세계산악영화제는 지난 21일 신임 집행위원장에 산악인 엄홍길씨를 선임했다.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측은 "히말라야 8000미터 이상의 고봉 16좌를 완등한 산악인으로, 프레페스티벌 홍보대사로 영화제와 인연을 맺은 후,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명예 홍보대사로 활동해왔다"며 "지난 2022년 12월, 집행위원장 후보자 공개추천을 진행하고 6명의 추천 후보자 중 선정위원회를 거쳐 엄홍길 대장을 후보자로 정한 후 정기총회에서 확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영화 상영이 중심인 영화제라는 성격에 맞지 않는 인사라는 점에서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영화제라는 정체성을 포기하는 인사로 비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영화제가 아닌 산악제를 하려는 것 같다"거나 "홍보대사에 어울리는 사람을 집행위원장 시킨다"는 비아냥 섞인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엄홍길 산악인은 2001년 이후 최근까지 40여 회 정도 다양한 홍보대사로 활동했다. 박근혜 정권 시절인 2014년에는 한국자유총연맹 홍보대사로 1년간 활동했고, 지난 2월 16일에는 고향인 경남 고성군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또한 현재 정부 부처 장관으로 있는 국민의힘 국회의원 후원회장을 맡고 있다는 사실이 지난 2021년 12월 알려지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되는 등 친여성향 인사로 분류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성보다는 국민의힘이 우세한 지역 정서 등이 작용해 집행위원장이 된 것 아니냐는 일부의 시선도 있다.
 
이에 대해 울주산악영화제 측은 "집행위원장 선임 과정에서 영화인이 아니라는 것에 우려가 나오기는 했으나, 해외 다른 산악영화제에서 산악인들이 집행위원장을 맡은 사례도 있어 선정위원들이 고심 끝에 결정한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다만 영화계 안팎의 잇따른 비판에는 "마음이 아프다"며 곤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엄홍길 신임 집행위원장은 "울산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울산광역시와 함께 새로운 더 큰 비상을 꿈꾸며 세계적인 산악영화제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힘쓸 계획이다"라는 각오를 밝혔다.
 
전주를 시작으로 DMZ 이어 울주까지
 
 지난 2월 19일 베를린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베를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밤에 참석한 정준호 배우

지난 2월 19일 베를린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베를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밤에 참석한 정준호 배우 ⓒ 영화진흥위원회 제공

영화제 집행위원장의 낙하산 선임 논란은 지난해 12월 전주시장이 정준호 배우를 공동 집행위원장에 밀어붙인 것을 시작으로 지난 2월 12일에는 DMZ다큐멘터리영화제가 장해랑 전 EBS 사장을 임명한 데 이어 울주산악영화제까지 최근 3개월 사이 세 번째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전문성과는 거리가 먼 데 있다. 정준호 배우는 독립영화를 중심으로 하는 전주영화제 성격과 전혀 맞지 않는 데다 영화계의 반대가 극심했다. 최근에는 집행위원장 선임 과정에서 정관 위배 논란이 일면서 올해 전주영화제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관련 기사 : "정준호 집행위원장 자격 없어... 직무 정지 가처분 고려" https://omn.kr/22ozi)
 
장해랑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 역시 칠순이 가까운 60대 후반에 들어선 나이로 40대~50대가 이끌었던 젊은 DMZ다큐영화제를 노쇠화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EBS 사장 이후 다큐멘터리 산업에 크게 기여하거나 두드러진 활동이 없었다는 점에서 독립다큐 창작자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관련 기사 : DMZ다큐영화제 장해랑 집행위원장 선임 '논란' https://omn.kr/22pzg)
 
신설되는 영화제들의 경우 영화인이 아닌 지역 출신 문화계 인사들이 맡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서고 위상이 커진 영화제들은 해외 영화계와의 교류 등을 감안해 전문성과 역량이 검증된 인사들이 나서는 게 일반적이다. 국내 영화제들의 최근 모습은 이를 역행한다는 점에서 논란이 생기는 것이다.
 
영화계 인사들은 "자격도 안 되는 사람들이 자리만 생기면 얼씨구나 좋다고 받는 태도가 문제"라며, "영화제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마을 잔치 수준으로 대하는 지자체장들의 문제도 크다"고 비판하고 있다.
 
금강역사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역임하고 독립영화를 꾸준히 제작하고 있는 김대현 감독은 "산악인으로서 엄홍길이란 분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영화제 집행위원장이라는 건 영화적인 전문성이 필요한 자리다"라며 유감을 나타냈다.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엄홍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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