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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열린 건설 현장 불법행위 관련 현장 방문에서 발언하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열린 건설 현장 불법행위 관련 현장 방문에서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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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타워크레인 조종기사들의) 사정을 알고 있을 겁니다."(김성진 민주노총 광주법률원 변호사)

윤석열 정부가 타워크레인 조종기사들이 최대 2억 원대에 이르는 월례비를 불법적으로 수취하고 있다며 이를 '건폭(건설노조 폭력)'으로 규정하면서, 면허정지 카드까지 꺼냈다. 특수한 고액 사례를 부각하면서 월례비 자체를 처벌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하지만 월례비에 대해 "사실상 근로의 대가인 임금의 성격"이라는 2심 판결을 이끌어낸 변호인의 설명은 달랐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21일 '건설현장 불법·부당행위 근절대책'을 발표하고 "법 외에 또는 일방적으로 계약서에 사인하도록 해 (월례비를) 강요하면 현재 건설기계관리법에 의해서도 면허정지를 할 수 있다. 이 돈 자체를 금지할 수 있는 규정이나 시행령을 명확히 하겠다"며 "앞으로는 법적으로 (월례비 지급을) 다 금지시키겠다"고 선포했다.  

이어 "2월 계도기간을 갖고, 3월 1일부터 월례비를 받는 타워크레인 조종사들에게는 자격정비 처분을 내려 시장에서 퇴출시킬 것"이라고도 했다. 타워크레인 조종기사들이 건설업체로부터 급여와 별도로 받는 성과급 개념의 월례비 자체를 '불법'으로 못박은 것. 

하지만 최근 타워크레인 월례비 사건을 다룬 재판부의 판단은 확연히 달랐다. 지난 16일 광주고법 민사1-3부(재판장 박정훈)는 한 철근콘크리트 업체가 타워크레인 조종기사에게 지급된 월례비를 돌려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특기시방서에 원고를 비롯한 입찰 참여 업체(전문건설업체)들은 타워크레인 기사들에 대한 월례비 등을 견적 금액에 반영해 입찰할 것이 규정된 점, 원고가 소속된 광주·전남 철근콘크리트협의회도 철근콘크리트업체가 지급해야 할 월례비 액수를 통일하기도 한 점" 등을 토대로 업체와 기사 사이에 월례비에 관한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봤다. 

설계·시공 등 도면으로 나타낼 수 없는 사항을 문서로 규정한 것이 시방서인데, 여기 나온 견적금에 월례비가 반영됐고, 업체들이 액수를 미리 정해둔 점에 비춰 월례비를 '임금'으로 판단한 것이다. 정부는 월례비가 강요에 의해 지급되는 것처럼 말하지만, '합의'가 있었던 것이다. 

김성진 민주노총 광주법률원 변호사는 지난 22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전문건설업체들이 현장 설명서라든지 시방서를 보고 응찰하게 되는데, 여기에 월례비 등을 견적 금액에 반영해 입찰할 것이 규정돼 있는 경우가 있다"며 "입찰에 참여하면서 충분히 예상을 하고, 낙찰하면 기사에게 월례비를 지급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타워크레인이 지상 노동자 200명 분의 일을 해내는데, 월례비는 노동자 1인의 임금 정도다. 타워크레인을 통해 공사기간은 단축되고, 업체는 이윤을 남길 수 있는 구조여서 이를 고려해 월례비를 지급하게 된 것"이라며 "사측 이익에 의해 (월례비가) 만들어진 측면이 있는데, 마치 노동자가 부당한 금품을 받는 것처럼 매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렇다면, 노동의 대가로 받는 월례비가 왜 근로계약서에 적혀있지 않을까? 김 변호사는 기사와 타워 임대 업체가 근로계약을 체결하지만, 작업 지시는 원청사 또는 전문건설업체가 하는 기형적인 고용구조를 배경으로 지목했다. 

고용관계 아닌 건설업체 지시로 노동... "추가 수당 성격도"
 
대구광역시 어느 아파트 건설현장에 설치된 타워크레인이 모습이다.
▲ 아파트 공사장 위 타워크레인 대구광역시 어느 아파트 건설현장에 설치된 타워크레인이 모습이다.
ⓒ 이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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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과거 타워크레인 기사는 대형 건설사에 소속된 노동자였다. 그런데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이후 대형 건설사들이 타워크레인을 포함한 건설기계들을 외주화했다. 이후 기존 원청 소속 기사는 타워크레인 임대 업체와 근로계약을 맺게 됐다"며 "통상 현장에는 임대 업체 관련자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타워크레인 기사는 원청이나 원청이 하도급을 준 전문건설 업체 지시를 받고 일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실질적으론 건설 업체 지시로 업무를 수행하지만, 근로계약상 기사가 건설 업체에 소속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관련 추가 임금은 건설 업체에서 월례비 형태로 지급하게 됐다는 얘기다. 

김 변호사는 "월례비가 추가 수당 성격인 경우도 있다"며 "타워크레인 임대 업체가 기사에게 주 40시간 노동에 대한 임금만 지급하고, 초과 노동에 대한 임금은 건설 업체가 부담하는 경우도 있다"고 부연했다. 

또 정부는 월례비 관련 처벌 의사를 명확히 하는 한편 월례비 액수가 과도하다는 점도 부각했는데, 이 또한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토부는 "실태조사 결과 총 438명이 월례비를 받은 바 있고, 상위 20%(88명)이 9500만 원 이상을 수취했다"며 "가장 많이 수취한 1인은 총 2억2000만 원(월평균 약 17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월례비가 2억? 재판부는 "300만원, 통상 지급되는 수준"

하지만 실제 일부 지역에서의 월례비는 이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월례비 사건을 다룬 재판부는 "광주·전남 철근콘크리트협의회 및 부울경 철근콘크리트연합회에서 정한 월례비의 상한선이 각 250만 원, 350만 원인 점 등을 고려하면, 원고가 피고들에게 지급한 이 사건 월례비 약 300만 원은 통상적으로 지급되는 월례비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 변호사도 "현장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들었던 가장 큰 액수는 600만 원대였다. 이마저도 연장근로수당 성격으로 지급된 돈이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또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보통 1년에 8~9개월 정도 일하고, 나머지는 현장 이동을 위한 소요시간 등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한다"고도 설명했다. 월례비가 월급처럼 고정적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월례비 문제는 기형적인 고용구조와 임금체계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노사간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며 "이런 사안을 국가가 범죄화하고, 이에 무리하게 개입하는 순간 (타워크레인 기사의) 노동자로서의 권리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태그:#타워크레인, #월례비, #국토부, #원희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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