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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건강센터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산업보건 서비스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다. 고용노동부가 산업재해보상보험 및 예방기금을 안전보건공단에 출연하고 안전보건공단이 각 센터의 운영기관을 공모하여 위탁 운영한다. 나는 경기도 성남, 광주, 하남, 이천, 여주, 양평 지역을 담당하는 경기 동부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 센터는 2013년에 문을 열었다. 나는 2014년에 처음으로 주 1회 센터에 나가기 시작했고 부센터장으로서 반상근을 하는 지금까지 만 9년간 일해왔다. 센터 일을 하면서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산업보건 서비스를 제공한다'라는 이 기관의 사명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이 사명을 다하기에 너무 부족하다는 걸 날마다 느끼기 때문에 나 개인은 물론 우리 센터가, 정부가,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노력해서 채워야 할 지점은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고민을 통해 얻은 답을 크게 두 갈래로 말하면 양과 질이다. 여러 분야의 산업보건 전문인력을 갖춘 근로자건강센터 수를 2배로 늘리고, 그보다 작은 규모지만 기초적인 산업보건 서비스를 전달할 수 있는 기관의 수를 10배 이상 늘려야 한다. 지역과 업종에 따른 노동환경과 노동인구의 다양성을 고려하여 이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연구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쪽으로 사업의 질을 높여야 한다.

기초 산업보건서비스 전달 기관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근로자건강센터 사업의 규모는 너무 작다. 2020년도 산재보험 적용 사업장 기준 전국에 50인 미만 사업장이 약 267만 개소,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가 약 1128만 명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산업보건 서비스를 제공할 근로자건강센터는 고작 23개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센터마다 한두 개의 분소를 설치할 수 있는데 그것도 전국에 총 20개뿐이다. 우리 센터도 분소 하나를 두고 있는데, 센터와 분소를 합쳐 스무 명도 안 되는 인원이 경기 동부 지역 내 7만 3538개 사업장과 약 43만 명의 노동자를 만나야 한다.

안전보건은 노동자의 기본권이다. '기본권'은 인간다움의 기초, 근본, 필수라는 뜻으로 정부가 어떤 상황에서도 그 보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할 책무를 가진다는 의미로 붙이는 표현이다. 모든 노동자에게 안전보건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얼마나 부족한가는 다른 기본권과 비교해보면 쉽게 체감할 수 있다. 가령 십여 명의 교사가 일하는 학교 23개를 만들어 1128만 명의 교육권을 보장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근로자건강센터 사업의 양이 이렇게나 작다는 사실은 이 사업이 내건 표면적 사명과 달리 그 철학적 뿌리는 아직은 적극적 권리 보장보다 잔여적 시혜 쪽으로 치우쳐 있음을 보여준다.

지역보건법에 따라 설치된 보건소는 전국에 258개다. 보건소 1개당 평균 20만 명 정도를 커버한다. 근로자건강센터도 지금보다 2배 정도 늘려 시, 군, 구 단위에 종합적인 안전보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분소는 지금의 20개에서 최소한 열 배 정도 늘려야 대중교통이 잘 갖춰져 있지 않은 지역에도 기초 안전보건서비스를 전달할 수 있다. 공공의료의 경우 보건소, 보건지소, 건강생활지원센터, 보건진료소 등을 모두 합쳐 전국에 3487개의 공공의료 서비스 기관이 있어 기관 1개가 평균 1만 5천 명을 커버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200개의 분소가 결코 많은 것도 아니다.
 
열 명이 채 안 되는 작은 주물 공장에서 망치와 연마기로 제품을 다듬는 노동자
 열 명이 채 안 되는 작은 주물 공장에서 망치와 연마기로 제품을 다듬는 노동자
ⓒ 공유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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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업장의 다양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작은 사업장은 아주 다양하다. 경기 동부 지역만 보더라도 50인 미만 사업장 중 도소매업이 가장 많고(1만9829개소), 숙박음식점업과 제조업도 각각 1만1000개소를 넘지만, 그 밖에도 보건 및 사회복지 서비스업, 교육업, 건설업, 사업시설 관리 및 임대서비스업, 운수 및 창고업 등 10개 업종에 각각 1천 개 넘는 업체들이 있다.1) 업종마다 노동환경, 노동자의 특성, 사업주의 특성, 고유의 안전보건 문제가 매우 다르다.

같은 업종이라 해도 세부 분류에 따라 차이가 크다. 특히 경기 동부 지역 소규모 제조업체들은 정말 다양하다. 이천의 SK하이닉스 반도체, 여주의 KCC 글라스, 광주의 롯데칠성, 성남의 SPC 계열사 샤니, 파리크라상 등 도시마다 유명한 대기업들의 업종이 서로 다르다 보니 작은 업체들의 업종 분포도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는 편이다. 우리 센터에서는 특수건강진단 사후관리 상담을 하러 일 년에 약 180개 사업장을 찾아가는데, 건설 현장, 실험실, 자동차 정비소 등 여러 업종이 있지만 아무래도 제조업 사업장이 많은 편이다. 제조업이라 해도 피자나 케이크용 종이 상자 공장, 수도관 등의 콘크리트 제품 공장, 라면 봉지 같은 플라스틱 인쇄 공장,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 공장, 조립식 컨테이너 제작 공장, 건축용 석재 공장, 냄비 등을 만드는 주물 공장, 헬스장 운동기구 공장 등 온갖 제품을 만들어내는 공장들이 포함된다. 공장마다 노동환경에서 발견되는 문제의 양상이 아주 다르다.

안전보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 노동자와 사업주도 매우 다양하다. 한글을 읽을 줄 모르는 노동자, 손가락이 없어서 귀마개를 착용할 수 없는 노동자, 한국어를 몰라서 어디가 아픈지 말할 수 없는 노동자와 상담해야 한다. 자기 기술을 가지고 창업한 사장이 안전보건에 대해 먼저 진지하게 물어올 때도 있고, 은행에서 퇴직한 뒤 지인의 회사에 자리를 얻어 현장을 하나도 모르는 공장장에게 문제점과 개선책을 설명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현장의 위험, 위험에 노출된 노동자, 위험을 관리해야 하는 사업주의 특성이 각각 천차만별인데 여기에 전달할 안전보건 서비스의 형태가 일률적이어서는 소용이 없다. 근로자건강센터는 작은 사업장의 다양성에 맞추어 기획하고 실행하고 평가하는 전략적 역할을 해야 한다. 몇 명을 상담했는가 하는 피상적인 실적이 아니라 이런 질적인 성과가 훨씬 더 중요하고 절박하다.

2011년 근로자건강센터가 시작된 지 10년이 넘었다. 첫 10년이라 여러 문제가 돌출될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두 번째 10년은 달라야 한다. 모든 노동자가 산업보건 서비스를 누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노력은 더 넓고 더 깊게 발전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공유정옥 님은 경기동부근로자건강센터 부센터장입니다.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지 일터에도 실립니다.


태그:#작은_사업장, #근로자_건강센터, #산업_재해, #소규모_사업장, #산업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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