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26 13:53최종 업데이트 23.02.26 14:03
  • 본문듣기
기사 265건
누적 원고료 총액 963만8000원
활동 기간 2013년 9월~


2013년 <오마이뉴스>에 시민기자 회원으로 가입해 첫 기사를 탈고한 지 꼭 10주년이 됐다. 그동안 쓴 기사의 수만 265건에 이르고 누적 원고료 총액은 1000만 원을 바라보고 있다. 새삼 <오마이뉴스>와 함께 한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실감한다.
 

2017년 오마이뉴스 창간 17주년을 맞아 '2월 22일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 김경준

 
기자의 꿈을 이루다

원래 전공은 역사였지만 학부 시절 우연히 장준하 선생의 <돌베개>와 <사상계>를 읽고서 '정론직필'로 세상을 바꾸는 기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그러나 '언론고시'를 통과하지 못한 내가 꿈을 펼칠 방법은 없었다. 왕성한 블로그 활동으로 세상에 내 생각을 널리 알리고픈 욕구를 해소해보려 했지만, 파워 블로거가 아닌 이상 파급력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오마이뉴스>를 만났다. 시험적으로 쓴 초반의 기사들은 모두 가장 낮은 등급인 '잉걸'을 받았다. 초보 시민기자가 거쳐야만 하는 당연한 과정이었다. 사실 그때는 오름이든 잉걸이든 상관 없었다. 그저 내가 쓴 글이 정식으로 채택되어 포털에 올라간다는 점, 적어도 블로그보다는 더 많은 이들이 내 글을 봐준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감격스러웠다.

그러다 5번째 시도 만에 첫 '오름'을 달성했다. 오름에 오르자 잉걸 채택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더 큰 기쁨과 감격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 기사가 <오마이뉴스> 메인을 차지하면서 잉걸 기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대중들의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그에 수반하는 원고료까지. 짜릿했다. 
 

2014년 3월 27일, 안중근 의사 유해 매장 추정지 보도로 첫 오름을 달성했다. 오름이 되자 조회수도 확 늘었다. ⓒ 김경준

 
"그야말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뿐만 아니라 모든 시민기자들이 대개 비슷한 감정일 거라 생각한다. 오름을 한 번 맛보면 그 맛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한다. 기사쓰기의 요령을 습득하고 비로소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면서 꾸준한 글쓰기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야말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2016년 8월 이달의 뉴스게릴라로 선정되면서 <오마이뉴스> 편집부에서는 나를 이렇게 소개했다. 정치, 책동네, 사는이야기, 스타, 교육 등 분야를 막론하고 기사를 써냈기 때문이다.

편집부의 표현처럼 내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세상만사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리라. '일상이야기도 기사가 될 수 있다'는 <오마이뉴스>의 철학은 그저 블로그에만 묵힐 뻔했던 자잘한 에피소드들을 기사화하는 데 큰 격려가 되어주었다.

때로는 감명 깊게 본 영화에 대한 리뷰 기사를 쓰기도 했고, 개인적인 취미 활동(중국무술·활쏘기)을 소개하기도 했고, 평소 자주 가던 동네 책방을 인터뷰하는 등 일상의 소소한 이야깃거리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냥 가벼운 기사만 쓴 것은 아니었다. 전공을 살려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등 국내외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기 및 독립운동가 열전을 연재하기도 했다.

2016년 연말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박근혜 탄핵정국'은 시사에 대한 진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나 역시 촛불로 가득한 광화문광장의 한복판에서 촛불의 열기를, 시민들의 목소리를 기사로 전달하기 위해 열심히 발로 뛰었다. 정치권에 보내는 시민사회의 원로들의 목소리를 인터뷰하거나 서평을 통해 정치권에 대한 비평도 시도했다.
 

2016년 10월 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하야촉구 촛불문화제 현장 ⓒ 김경준

 
소 뒷걸음 치다 쥐 잡은 격이긴 했지만 '단독 특종'을 터뜨렸던 적도 있다. 2017년 학부 졸업반이던 때였다. 시민기자 활동을 하면서 늘 부족하다 느꼈던 취재와 보도 요령을 익히기 위해 전공도 아닌 언론정보학과 수업을 들었다. 해당 수업에서는 한 학기 동안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를 취재한 뒤 학기말에 한 편의 기사로 발표하는 것이 과제였다.

언정과 학생들 다수가 교내 문제 위주로 주제들을 선정했는데, 나홀로 박근혜 정부 당시 활동했던 '통일준비위원회'의 향방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들고 왔다. 그러자 교수님은 "이런 굵직한 주제를 정식 기자도 아닌 학생이 감당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주제 변경을 권하셨다.

그러나 이미 시민기자 활동을 통해 자신감이 넘쳤던 나는 그대로 밀고 나갔다. 그리고 관련 인사들을 인터뷰하던 중 문재인 청와대 관계자와 밀접한 연락을 주고 받던 인사로부터 "통준위가 결국 폐지될 것"이라고 하는 청와대 내부의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이는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대외비였고 결국 <오마이뉴스>를 통해 '단독 보도'로 이어졌다(관련 기사 : [단독] 통일준비위·문화융성위 등 박근혜 정부 5개 위원회 폐지).

학교 가는 버스 안에서 노트북을 켜고 기사를 쓸 때의 흥분은, 마침내 '단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기사가 나왔을 때의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학기말에 특종 소식을 교수님과 학생들 앞에서 발표할 때의 뿌듯함이란. '이 주제는 안 될 것'이라던 교수님은 모든 학생들 앞에서 비로소 나를 인정하고 격려와 축하를 보내주셨다.
 

2017년 6월 1일 통일준비위·문화융성위 등 박근혜 정부 5개 위원회 폐지에 대한 단독 보도 ⓒ 김경준

 
힘 없고 빽 없는 소시민들의 '빽'이 되어주다

원고료 역시 시민기자 활동의 원동력이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 했던가. 큰 액수는 아니었으나 기사를 쓰며 차곡차곡 쌓은 원고료는 가난한 학생이 학비를 마련하고 밥값을 해결하는 데 귀한 밑천이 되어주었다.

원고료 덕분에 큰맘 먹고 구입한 노트북 PC는 대학원에 들어온 이후로도 아주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활성화되면서 노트북 없이는 수업을 받기 불가능한 환경이 된 탓이다. 원고료로 마련한 노트북 덕분에 나는 지난 2년 동안의 석사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 박사과정에 진학하면서 앞으로도 '풀타임' 대학원생으로서 힘겨운 삶을 한동안 계속 이어가야 할 듯싶다. 이렇다 할 고정 수입이 없는 내 입장에서는 <오마이뉴스>는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앞으로도 꾸준한 <오마이뉴스> 활동을 통해 등록금까지는 힘들어도 참고문헌 정도는 구입할 수 있는 학비를 마련하고자 한다.
 

2017년 2월 17일에 열린 2016년 올해의 뉴스게릴라 시상식에서 오연호 대표와 함께 ⓒ 김경준

 
결국 기자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시민기자로서 '준'기자의 삶을 살 수 있어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슬로건이야말로 <오마이뉴스>가 가진 강점이고 존재 가치라 생각한다.

과거 학생운동을 하던 당시 아무도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아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 일부 매체들은 자신들이 필요할 때만 연락하고 심지어 인터뷰에서 한 말을 왜곡하여 보도하는 바람에 언론에 대한 강한 불신과 회의를 품게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직접 기사를 썼다. 진실을 알리기 위해. 힘없고 빽 없는 소시민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할 수 있는 창구로서 <오마이뉴스>는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플랫폼이자 '빽'이다.

<오마이뉴스>의 창간 23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향후 50년, 100년 뒤에도 창간을 축하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이 기사를 읽는 분들께도 권하고 싶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을 통해 앞으로의 50년, 100년 역사를 함께 만들어가면 어떨까.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