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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경기도에서 최초로 학생인권조례가 공포된 지 13년이 지났습니다. 지금까지 학생인권조례는 경기, 광주, 서울, 전북, 충남, 제주 6개 지역에서 제정·시행됐는데, 최근 서울, 충남 등지에서는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경기, 전북 등에서도 교육감이 학생인권조례를 축소시키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에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와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은 '지켜라 학생인권'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학생인권조례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모든 지역, 모든 학교에서 학생인권을 함부로 침해하지 않고 지키도록 '학생인권법(초·중등교육법 개정안)' 통과를 요구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학생인권조례와 학생인권법의 필요성을 전하는 글을 다섯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지켜라 학생인권' 서명주소: https://campaigns.kr/campaigns/851).[기자말]
수능을 앞둔 한 고등학교의 모습. (자료사진)
 수능을 앞둔 한 고등학교의 모습.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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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세상에서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세상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2010년 10월, 고등학교 1학년 끝자락에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다. 당장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 야간자율학습이 사라졌다. 야간자율학습은 말그대로 '자율'이 되었다. 더는 강제로 밤에 학생들을 학교에 가두어둘 수 없었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성심성의껏 야간자율학습에서 도망 다녔다. 교정 때문에 치과 정기검진을 가야 한다, 수족냉증으로 한의원 정기검진을 가야 한다... 그러고도 너무나 많이 남았던 평일들에는 화장실 가는 척 튀거나 가방을 던지고 도망가거나 방법도 가지각색이었다.

그럼 나는 지각을 밥 먹듯 하고 학교 땡땡이도 자주 치는 학생이었을까. 그렇지는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학교를 매우 좋아했고 졸업장과 함께 3년 정근상을 받았다. 다만 자율이라는 이름이 붙는 시간에 강제로 붙들려 있는 것을 납득할 수 없었고 반감이 들었다. 여러 핑계와 술수를 동원하여 도망 다닌 그 시간에는 동네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했다. 말 그대로 그 강제성이 싫었던 것이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고 야간자율학습이 폐지된 후, 나는 오히려 야자에 더 많이 참여했다. 고3 때는 도서관이 문을 닫는 공휴일이면 학교에 갔다.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공부해도 된다는 '권리'가 생겼을 때 나는 비로소 해가 진 이후에도, 공휴일에도 학교에 남을 이유가 생겼다.

청소년인권운동가 공현이 쓴 <유예된 존재들>에도 비슷한 대목이 나온다. 한 학교에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후 복장단속 등이 사라지면서 실외/내화 단속도 중단했다. 대신 실내외화를 혼용하여 사용할 경우 발생하는 위생적 문제 등을 알리며 실내/외화 구분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자리를 몇 번 열자,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실내화를 신고 밖에 나가는 일을 줄였다. 

학생인권조례는 교육의 주체인 학생들에게 권리를 일깨워주면서 언어를 제공한다. "정규 교과 시간이 끝난 이후에도 학교에 앉아서 공부해야 해"보다 학생에게 교과시간 외에도 교실에서 공부할 권리가 주어졌다는 사실이 나를 책상에 앉게 했듯, 실내화를 신고 밖에 나가면 손바닥을 때리기보다 운동장을 거닌 실내화가 교실에 섞일 때 그 먼지가 유발하는 각종 질병을 설명하는 것이 더 많은 학생들의 신발을 갈아 신겼다. 

인권조례는 "해" 혹은 "하지 마" 이후에 부재한 이유를 들을 수 있게 하거나 물을 수 있게 했다. 마치 차별금지법이 어떤 이가 겪는 이름 모를 불쾌감, 분노, 좌절에 '차별'이라고 판단할 근거와 언어를 제공하는 것처럼 말이다.

평등은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소양

우리 사회는 아직 '동등한 입장'이 되는 데 대단히 미숙하다. 평등은 선언만으로 이루어지고 이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토론하고 때로는 부딪치고 깨지며 배워나가는 것이다. 그 고민은 특정 영역에서 어떤 사람들만의 노력으로 결코 달성할 수 없다. 그러니 학교는 더더욱 평등을 습득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지금 학교에서 이미 민주주의를 가르치듯 말이다.

일정 연령부터 한국의 대부분의 어린이, 청소년들은 학교라는 공적 공간에서 민주주의의 기본을 배우고 생활에서 경험한다. 어설프게라도 학급임원을 선출하고 학교대표를 선출한다. 크고 작은 공적약속을 하는 법을 배우고 1인 1투표의 원칙과 선거의 중요성을 경험한다. 심지어는 '돈 있는' 후보의 선거운동이 더 멋들어지거나 때론 그걸 뒤엎기도 하는 진정성 있는 후보의 선전 같은 것들을 목격하기도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 사회가 작동하는 가장 기본원리이기 때문에 교육하고 온몸으로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학생들은 다양한 의견을 조율해내는 경험, 갈등을 겪고 극복하는 일, 말처럼 쉽지 않은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는 일, 다수결의 원칙처럼 달콤하지만은 민주주의 사회의 쓴맛 단맛을 배운다.

이제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기본소양은 투표와 선거에서 그치지 않는다. 민주주의 작동원리가 어느 정도 자리 잡은 민주사회에서 평등은 그것이 작동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민주주의는 1조가 있는 자와 100만 원이 있는 자도, 여성도 남성도, 이성애자도 성소수자도, 고용주도 노동자도 동등하게 딱 1표를 행사하는 데서 출발한다. 평등을 보장할 의지 없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알맹이 껍데기일 뿐이다.

권리 없던 이들에게 권리가 생길 때

사실 톡 까놓고 이야기하면, 지금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자는 측은 청소년 성소수자의 존재가 가시화되길 바라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누려서는 안 된다고 콕 집어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성소수자이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나 권리가 없던 이들이 나와 같은 보편적인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지난 수십 년, 가시화되지도 못한 채 혐오와 배제의 공기 속에 조용히 살아가던 성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도 군대에서 내 성별대로 군 복무 하고픈 사람이고, 나도 동성인 반려자를 법적인 보호자로 보장받고 싶다고 얼굴과 이름이 있는 사람들이 용기 내기 시작해왔다. '모두에게' 동등하지 않던 권리들이 조금씩 모두를 향해가는 중이다.

이 사회에 권리 없던 이들이 어디 성소수자뿐인가. 학생 시기에는 마치 인권을 일괄 회수해가기라도 하는 듯, 공부를 위해 모든 것을 하고 모든 것을 앗아가는 것이 당연한 한국사회에서 청소년들은 권리란 없는 존재로 여겨져 왔다. 그런 청소년들에게 '인권'이 쥐어졌다.

학생들이 머리카락을 잘리지 않을 권리와 매맞지 않을 권리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청소년 중에도 성소수자가 있다는 선언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필사적으로 입을 막으려 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세상은 청소년들에게도 마이크를 주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어두운 그림자에도 불구하고
 
동성부부 피부양자 자격 인정 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소성욱·김용민씨 부부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동성부부 피부양자 자격 인정 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소성욱·김용민씨 부부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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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지난 2013년, 차별금지법안에서 성적지향을 삭제하라는 보수기독교 세력에 굴복한 정치가 가져온 대한민국 인권의 암흑기를 겪었다. '나중'으로 밀려난 차별금지법은 다시 발의되기까지 7년의 시간 동안 여의도에서 존재하지만 그 이름을 거론할 수 없는 존재나 다름없었다. 이번 서울학생인권조례를 개악/폐지시키려는 흐름이 심상치 않다고 느껴진다. 그에 앞서 이미 여러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 시도가 무산되기도 하였다.

그러던 와중에 지난 21일, 역사적인 판결이 있었다. 소성욱, 김용민 부부의 동성부부 간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선고 즉시 공개된 판결문은 종일 화제였다. 재판부는 입법적으로 미비하다는 이유를 들며 동성 간의 사실혼 관계를 인정하진 않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이성 사실혼 관계의 파트너십과 달리 볼 타당한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는 평등의 원칙 위배임을 분명히 하고, 나아가 판결문에는 여러 이유를 들며 "사회보장제도를 포함한 공법적 관계를 규율하는 영역에서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만이 아니다. "혐오표현 금지한 서울시 학생인권조례는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판단도, 변희수 하사의 노동권을 부당하게 침해한 육군에 대한 법원의 판단도, 성소수자단체 주관의 체육행사라는 이유로 대관을 취소한 동대문구청에 대한 법원 판단도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하는 것에 제동을 걸었다.

'차별금지법'이 한국 사회에 등장하고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후 세상은 비틀거리지만 앞으로 나아갔다. 인권을 인정받은 청소년들의 투쟁이 앞으로만 걸어가길 바라며 녹록지 않은 차별금지법 제정의 길을 걷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역시 그 곁에서 함께 한다.

*'지켜라 학생인권' 서명주소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장예정씨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입니다.


태그:#학생인권조례, #차별금지법, #나중에, #성소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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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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