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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여러분, 안녕하세요. 조지 포크에요.

오늘은 먼저 매우 끔찍한 이야기를 해야겠군요. 갑신정변에서 타살될 뻔했던 민영익 이야기입니다. 1884년 12월 말경에 문안을 가서 보니 정말로 소름이 끼쳤습니다. 일찍이 본 적이 없는 그런 처참한 모습이었답니다.

그는 원래 작고 통통한 체구인데 자그마한 장방형 방안에 누워 있더군요. 주위에는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일군의 종복들이 둘러싸고 있었구요. 그가 피습을 당했을 때에는 출혈이 너무 심해 거의 다 죽은 상태였다고 합니다. 처음 의사가 와서 보니 맥박도 뛰지 않았고 얼굴엔 핏기가 없고 몸은 차갑게 식어 있었답니다.

내가 첫 문안을 갔을 때에 민영익의 몰골은 해골 같았답니다. 안색은 유령처럼 노랗고 큰 눈동자가 동공 속에서 서서히 구르더군요. 정수리는 다 잘려 나갔고 그 주위에 머리칼이 헝크러진 채 엉겨붙어 있더군요.

오른 쪽 귀는 거의 잘려 나갔고 거기에서부터 상처 자국이 목을 지나 등짝으로 선명하고 깊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상처의 길이가 1피트나 되었습니다. 여러 줄기의 동맥이 잘려 있었고 목정맥도 다쳤더군요. 오른쪽 팔꿈치 부분이 거의 잘려나가 있었고 왼쪽 팔, 허벅지, 양 다리에도 깊은 상처가 나 있었습니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 그가 나를 알아보더군요. 내가 그를 향해 몸을 숙이자 그는 해골같은 왼팔을 들어 내 목 위에 얹었습니다. 나는 머리를 숙여 그의 볼에 나의 얼굴을 댔습니다. 그는 곧 잠들었다가 몇 분 후에 깨어났고 나를 다시 붙잡았습니다.

그러더니 자신을 난자질한 다섯 사람에 대하여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하더군요. 내가 그의 손을 얼마동안 잡아 주었더니 다시 잠을 자더군요. 그날 후로 그는 빠른 속도로 회복되어 갔습니다. 나는 그에게 나의 담요와 부드러운 베개를 가져다 주고 음식도 제공하였습니다. 

민영익이 목숨을 구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마침 좋은 의사가 한양에 있었던 덕분입니다. 미국인 의사 알렌이었지요. 서양식 치료를 하는 알렌을 주위 사람들은 모두 비웃었답니다. 이를테면, 알렌이 병수발하는 이들에게 우유를 먹이라고 지시하면 그들은 인간이 소 젖을 어떻게 먹느냐면서 기어코 개장국을 먹이는 것입니다.

가련하고 불쌍한 민영익! 미국에서 돌아온 후 민영익은 몹시 심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생각은 진보적이면서도 부친을 두려워 하며 복종했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스스로 배반하고 청나라를 위한 도구로 쓰여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 때문에 개화파들이 자신을 증오하고 있다는 것을 벌써부터 알고 있었고 언젠가 재앙이 닥칠지 낌새를 채고 있었지요.

사실 그는 갑신정변이 일어나기 전 몇 달 동안을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았지요. 나는 그가 결국 외국으로 떠날 거라고 예견했습니다.

"만일 그가 건강을 되찾더라도 그는 여전히  비참할 것입니다. 그가 외국을 갔다 왔기 때문에 조선인들은 그를 불신합니다. 만일 개화 운동이 재개된다면 그는 또 다시 불신의 대상이 될 겁니다. 그의 친인척은 모두 살해당했습니다. 그는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 1995.1.5일자 부모님 앞 편지 

민영익은 1월 4일 내게 사람을 보내, 만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미국 군함으로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간청해 왔습니다. 나는 수긍했지요. 

비밀을 하나 털어 놓아야겠습니다. 시골에 숨어 있던 서광범의 모친과 처에게 극비리에 3만량(30불 상당)을 보낸 것입니다. 역적의 가족에게 돈을 보내는 일이 발각되면 나의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지만 나는 양심의 명령에 따랐습니다. 

조선은 너무나 어두웠고 무지와 억압과 잔인이 판을 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벌을 내릴 것만 같았습니다.

12월 22일 푸트 공사 부부는 서울에서 일본으로 피신했습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29일 푸트 공사는 다시 돌아왔지만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주일 후인 1885년 1월 12일 그는 다시 일본으로 갔습니다. 그의 행동은 참으로 무책임했습니다. 공사 자리가 공석이 되자 나는 대리 공사로 임명되었습니다. 나처럼 낮은 계급의 해병이 그런 직책에 임명된 것은 아마도 전례가 없을 겁니다.

그 난리 통에 내가 서울에 홀로 남았던 것은 순전이 개인적인 의지였습니다. 나도 얼마든지 떠날 수 있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것이죠. 나는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제가 여기에 잔류한 것은 순전히 자발적인 선택입니다. 원하면 떠날 수 있었지요. 그러나 저의 양심은 지금이야말로 이 나라를 도울 외교관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정변으로 조선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이 모두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러한 폐허 위에서 양국 관계를 재건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저의 당연한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우방에 참극이 일어나는 것을 미국이 방관하거나 조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저는 기어코 증명해 보일 결심입니다. .... 저의 이러한 행동과 제가 보낸 정보에 대하여 본국정부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몹시 궁금하답니다." - 1885.1.18일자 편지

-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태그:#조지 포크 , #민영익, #서광범, #알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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