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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인 응우옌 티탄씨가 2월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대한민국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 선고 공판에서 일부 승소한 뒤 영상통화를 통해 소감을 말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피해 생존자인 응우옌 티탄씨가 2월 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대한민국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 선고 공판에서 일부 승소한 뒤 영상통화를 통해 소감을 말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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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 피해에 대해 정부가 배상해야 한다는 1심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7일 베트남인인 응우옌 티탄씨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국가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지난 21일 응우옌 티탄 씨 변호인단으로 활동한 김선영 법무법인 시민 변호사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김 변호사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최근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정부 책임을 인정하는 1심 판결이 나왔어요. 변호인단에서 활동한 변호인으로서 소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사실 이 사건에 대해선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시민평화법정을 했잖아요. 그때는 제가 참여를 안 했고요. 소송이 법원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기되기 전에 참여해서 소장 작성부터 같이했었어요. 어쨌든 이 사건이 나름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잖아요. 그래서 참여할 수 있어서 보람이 있었습니다. 가끔 이 사건에 대한 기사가 올라오면 누군가는 반감을 가지고 또 누군가는 공감하고 이러잖아요. 원고가 베트남 분이기는 하지만 이게 심각한 인권 침해 사건이잖아요. 인권이라는 건 국적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또 그 사람이 느끼는 고통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죠. 그건 어느 나라나 공통된 거예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같이 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을 한 건가요?
"결과를 딱히 예상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이 사건의 사실관계나 증거들은 명확했어요. 증거만 보면 원고가 승소할 거라 생각했지만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어요. 우선 소멸 시효 부분이 오래됐잖아요. 이 사건의 준거법을 뭘로 해야 하는지의 문제도 있고요. 또 피고 측에서 정당행위라는 주장도 하는 등 다양한 쟁점들이 있었어요. 단순히 사실관계 부분만 문제였다면, 증거들이 명확해서 인정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다른 법리적인 부분들도 많아서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려웠고,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자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 그럼, 판결 나왔을 때 느낌이 어땠나요?
"우선 제가 열심히 한 사건이었으니까 기뻤죠. 또 다른 생각은... 한국전쟁 당시에 민간인 학살 사건도 있었고 일제강점기 시기에 강제징용 사건이나 일본군 '위안부' 사건이 있었잖아요. 그건 우리가 피해자 입장에서 일본에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일본에서 사실상 대부분 패소한 걸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인권침해 판결이 축척되다 보니 결국 이 사건도 법원이 그런 법리를 적용해서 동일하게 판단한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 이번 판결의 의미는 뭘까요?
"원고가 요구하는 것은 그렇게 크지 않잖아요. 저희가 청구한 게 3000만 100원이에요. 원고는 소송을 제기하기 전부터 사과를 요구했고요. 근데 사과받는 방법이 소송 제기밖에 없었고, 소송을 제기하려면 청구 금액을 기재해야 하기 때문에 3천만 100원을 적은 건데 그게 모두 인용이 됐잖아요. 원고 입장에서는 본인의 억울함이 덜어졌을 거라 생각해요. 또 우리나라가 이런 사건들에 대해서 일본과는 다른 판결을 했잖아요. 그런 점에서 좀 의미가 있는 판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사건의 가장 큰 의미는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이 공무 수행 중 민간인 학살을 하였다는 걸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란 점입니다. 참고로 이 사건 당시 사망자가 70명 이상이었습니다."

- 청구금액 3000만 100원에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요?
"소송에서 3천만 원 이하의 금액은 소액 사건으로 분류되거든요. 소액사건은 법원이 판결 이유를 제시하지 않고 판단할 수 있어요. 3천만 원을 넘겨야만 판결 이유가 제시돼요. 우리는 만약에 이기든 지든 그 판결의 이유는 듣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3000만 100원으로 한 거예요."

- 베트남인인 응우옌 티탄 씨는 1심 판결에 대해 뭐라고 하나요?
"저희 소송 대리인단의 변호사 두 분께서 사건이 판결이 나고 베트남에 가서 만나 뵈었는데. 매우 기뻐하셨다고 합니다."
 
김선영 법무법인 시민 변호사
 김선영 법무법인 시민 변호사
ⓒ 김선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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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사건은 베트남인인 응우옌 티탄 씨가 우리 정부를 상대로 낸 국가배상 청구로 시작된 거잖아요. 처음 이 사건을 접했을 땐 어땠나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하기 전에 시민 평화 법정이 진행됐고 당시 다른 여러 변호사님이 현장도 방문하고 자료 조사도 해서 자료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증거가 미군 감찰 보고서인데요. 조금 멀기는 했지만, 미군이 이 사건을 지켜보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한국군이 마을에서 철수하고 난 이후 바로 들어가서 구조 작업을 했는데 그때 미군 병사가 찍은 사진, 그리고 미군들의 진술, 함께 지켜봤던 남베트남 민병대의 진술 이런 것들이 다 감찰 보고서에 남아 있었어요. 민간인 학살이 있었을 수도 있다라는 얘기는 사실 그전에도 나왔잖아요. 그런데 사진과 함께 보니까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그래서 저도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했던 기억이 나요."

- 이번 판결에 대해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17일 국회 국방위에 출석해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법원 판결에 대해 동의 못 한다고 했는데.
"우선 이 사건은 원고와 대한민국 사이의 소송이고 대한민국의 소송 수행 주체는 아마 대한민국 내에서도 국방부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 국방부 장관으로서 한 이야기이신 것 같아요."

- 한기호 국회 국방위원장은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의 명예가 훼손될 수 있다며 국방부에 항소를 촉구하는 별도의 입장을 발표했어요.
"제가 기사를 찾아서 봤더니 국방위원장님께서 '국군에 의한 학살은 없었고 그래서 국방부를 비롯한 당국이 명확한 진실 규명을 통해서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의 명예를 폄훼하려는 시도를 단호히 배제해 달라'라고 요청했다고 하시는데 이거는 맞죠.

베트남 전쟁이 1960년부터 1975년까지 계속됐거든요. 그리고 한국은 1964년부터 1973년까지 파병했고 아마 파병된 국군이 30만 명이 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 기간 동안 그 많은 인원이 참여했는데 모든 사람이 한 개별 사건들과 행위들을 다 알 수가 없잖아요. 결국은 국방위원장님이 하신 말씀은 사실관계를 보고 하는 말씀이 아니고 본인의 희망을 말씀하신 것 같은 느낌이에요.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어쨌든 국방위원장님이 하신 얘기는 진상 규명을 하자는 거잖아요. 저도 접근하는 관점은 다르지만 그 부분에 대해선 동의합니다. 

사실 민간인 학살에 대한 이야기만 있었지, 우린 실제로 정확히 몰랐잖아요. 그런데 적어도 이 사건에 대해서는 법원이 국군이 업무 수행 중에 민간인을 학살한 걸 명확히 인정한 거거든요. 그러니 우리 대한민국이 미리 결론을 내리지 말고 우선 조사하고 그 다음에 결론 내리자는 겁니다."

- 그럼, 지금까지 진상규명이 없었나요?
"없었어요. 없었던 이유가 다양한데 우선 베트남전 종전 이후 국교가 단절이 된 시기가 되게 길었어요. 그리고 국교가 정상화된 이후에도, 베트남도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이 있었는데 북베트남이 전쟁에서 승리했잖아요. 이 사건은 대부분 남베트남에서 일어난 사건들이에요. 그래서 사실상 국가 간에 이와 관련된 특별히 이야기가 오고 간 적이 없어요. 사실은 이게 특별히 누구도 크게 문제 삼지 않아서 진상 규명이 없었던 거죠."

- 이게 50년이 지났잖아요. 진상규명이 가능할까요?
"그 당시에 참전했던 분들이라든가 거기 피해 생존자 중에도 사망하신 분들이 많긴 할 거예요. 그래서 진상 규명에 한계가 많이 있을 거예요. 또 전쟁 중에 발생한 사건이라서 증거도 많이 남아 있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해요."

-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대한민국과 베트남 정부가 함께 조사해야 하겠죠. 이건 국군의 공무 수행 중에 발생한 사건이니, 대한민국에서 나서야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2심과 3심은 어떻게 전망하세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사실은 1심도 열심히 했지 전망한 건 없었다고 했잖아요. 증거가 명확한 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법리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서 전망할 만한 게 없었어요. 2심, 3심도 역시 최선을 다 할 뿐입니다. (2심, 3심 때도)이렇게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게 바람입니다."

- 앞에서 얘기했는데 우리나라도 강제동원이나 '위안부' 문제로 일본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잖아요. 오버랩 되기도 하던데.
"강제징용 사건이나 일본군 '위안부' 사건 같은 것들도 반인륜적 범죄잖아요.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사건도 있고요.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이게 법리적으로 정비가 어느 정도 돼 있고 그런 점이 이 사건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해요. 일본과 우리나라의 입장의 차이는 있었어요. 일본은 행정부도 부인하고 사법부도 모두 원고 패소 판결을 했지만, 우리는 적어도 1심이지만 법원에서 인용해줬거든요. 한국 같은 경우는 피해국이었던 적도 있지만 가해국이었던 적도 있죠. 이 사건과 비교하자면 모두 가해국으로서 동일한 입장이었지만 서로 다른 결론을 내렸다는 거죠. 그런 점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해주세요.
"결론을 미리 내리고 사실관계를 바라보지 마시고 사실관계를 다 보시고 그걸로 결론을 내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사건은 누구에게든 어느 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잖아요. 피해자가 누구고 가해자가 누구고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지 마시고 다시는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선례를 남겨야 된다는 점을 생각하며 이 사건을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태그:#김선영, #베트남 전쟁, #민간인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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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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