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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0년 경기도에서 최초로 학생인권조례가 공포된 지 13년이 지났습니다. 지금까지 학생인권조례는 경기, 광주, 서울, 전북, 충남, 제주 6개 지역에서 제정·시행됐는데, 최근 서울, 충남 등지에서는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경기, 전북 등에서도 교육감이 학생인권조례를 축소시키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에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와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은 '지켜라 학생인권'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학생인권조례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모든 지역, 모든 학교에서 학생인권을 함부로 침해하지 않고 지키도록 '학생인권법(초·중등교육법 개정안)' 통과를 요구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학생인권조례와 학생인권법의 필요성을 전하는 글을 다섯 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지켜라 학생인권' 서명주소: https://campaigns.kr/campaigns/851).[편집자말]
서울지역 진보와 중도 단체 251개가 모인 서울학생인권조례 지키기 공대위 출범식이 1월 26일 오후 서울시교육청 정문 앞에서 열렸다.
 서울지역 진보와 중도 단체 251개가 모인 서울학생인권조례 지키기 공대위 출범식이 1월 26일 오후 서울시교육청 정문 앞에서 열렸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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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치러진 지방선거에 의해 서울시의회 전체 의석수의 68%인 76석을 국민의힘이 차지했다. 그리고 그 76석 중 한 자리엔 김혜영 서울시의원이 있다. 김혜영 의원은 바로 서울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고자 하는 세력의 중심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인물이다.

김 의원을 포함해,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앞장서 요구하는 단체들은 학생인권조례가 '성해방을 조장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된 관심거리는 학생과 교사의 학교생활이 아니라 종교적 색채를 띤 '성윤리' 문제인 듯하다. 학생의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임신·출산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도록 한 차별금지 조항이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고자 하는 주된 이유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한 폐지 요구인가

그동안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공격은 조례가 제정되었던 11년 전부터 꾸준히 있었다. 모든 압력과 공격에도 학생인권조례는 살아남았고 대법원 등 주요 사법기관을 통해서 그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그 후에도 제도권 밖의 단체들로부터의 공격은 계속되었지만 말이다.

이번엔 상황이 좀 다르다. 오랫동안 보수 기독교단체가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말해도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그들이 아무리 떠들어봐야 그 내용은 학교의 교사나 학생들 대부분에겐 의미 없는 시대착오적 주장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시대착오적인 목소리를 받아주는 시의원이 있고, 그는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소속이며, 그 시의원이 속한 당이 서울시의회 2/3 이상의 의석을 가진 상황이니 이번 공격은 정말 막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왜 2023년에 학생인권이 이런 공격을 당하고 있어야 하나. 학생도 교사도 원하지 않는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왜 서울시의회에서 다뤄야 하나. 서울 지역의 교사로서 의문스럽고 답답하기만 하다. 대체 누구를 위한 폐지 요구인가.

학생인권조례 제정 후 지난 10여 년간, 조례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단체들은 학생인권조례 폐지가 마치 교사를 위한 것처럼 보이기를 원했다. 자신들의 진짜 목적은 숨긴 채 '교권'을 들먹였다. 보수적인 언론도 자극적인 기사들로 그런 단체들을 도왔다. 극히 일부의 사례들을 과장되게 보도하며 교권이 추락하였다고 공포심을 조장하고 일부 학생의 문제 상황이 전체의 문제인 양 확대 해석하면서, 교대, 사범대, 초·중등교육의 수많은 문제들이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발생했다는 오해를 부추겼다. 그런 기사들은 학교 현장의 목소리라면서 한두 명의 교사의 인터뷰를 싣긴 하지만 대부분 자신이 겪지 않은 일들이었다. 그럴 것 같다는 느낌, 그럴 수도 있다는 상상으로 대단한 위험 상황이 아닌 것도 실체가 있는 위험인 것처럼 꾸며댔다.

하지만 정작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자고 나서는 교사들의 조직적인 움직임은 없었다. 교권이 추락했다며 교권을 보호하자고 말하는 교사들은 있었지만, 그들이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교사들은 지난 10여 년 동안 학교 현장에서 학생인권조례를 겪었기에, 이미 학생인권조례에 익숙해졌고 그 필요성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특히 조례 이전에 학교에 다녀본 경험이 있는 대부분의 교사들은, 교복 치마 길이와 두발을 단속하며 교사가 학생의 머리카락을 자르던 야만의 학교에 비해 단연코 지금의 학교가 더 낫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에 지금 교총, 전교조, 서울교사노조 등 어느 교사단체도 서울 학생인권조례의 폐지 주장을 공식적으로 말하는 곳이 없는 것 아닐까.

교사들도 학생인권조례의 혜택을 받았다
 
서울을 비롯해 학생인권조례는 도입 초기부터 교육부 등의 무효 소송, 상위법 개악 등에 가로막혔고, 진통을 겪으며 제대로 정착되지 못했다.
▲ 2013년 서울시교육청 앞, 학생인권조례 지키기 기자회견 서울을 비롯해 학생인권조례는 도입 초기부터 교육부 등의 무효 소송, 상위법 개악 등에 가로막혔고, 진통을 겪으며 제대로 정착되지 못했다.
ⓒ 유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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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시기엔 잘 알지도 못한 채 반대하는 교사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대개 학생인권조례가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에게도 필요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서울 학생인권조례가 처음 제정되었을 때는 교육부의 딴지 걸기와 교육감 교체 등을 겪으며 허둥지둥, 우왕좌왕했다. 조례를 무시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하는 관리자와 교사들도 있었다.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교육에서 중요한 것이 교복과 머리카락 모양, 색깔이 아님을 인정하고 아침마다 단속하는 일을 멈추었다. 학생들의 전자기기도 자율적으로 관리하도록 한다.

조례에 맞게 학칙을 제·개정해야 했기에 학생들은 처음으로 학교의 학칙을 자세하게 들여다볼 기회를 가졌고 학교의 규칙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학생들 사이에 토론의 기회가 생겼고, 교사들도 필요한 규칙에 대해서 무조건 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이유를 설명하며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군림하는 느낌을 지울 수 있었다. 심지어 조례가 생기기 전 한 번도 학칙을 바꾼 적이 없던 우리 학교의 경우 '껌 씹기 금지', '걸으면서 먹기 금지', '흰 양말만 착용' 등 같이 교사가 보기에도 이해하기 어려운 사문화된 규칙들이 남아 있는 것을 교사들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학생들과 함께 교칙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기분도 들었다.

교사들도 학생만큼이나 인권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에 인권이나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잘 몰랐다. 하지만 서울 학생인권조례 시행 이후 11년이 지났고, 이제 웬만큼은 알고 있다. 학칙을 제·개정하는 절차도 매뉴얼이 생겼다. 교사 워크숍에서 생활지도에 관한 주제가 나오더라도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힘들다는 말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예전엔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학생의 옷차림과 머리카락에 집착하고 잡지 못해서 안달이었나 후회하기도 한다. 아침마다 얼굴 붉히며 만나는 교사와 학생의 모습 대신 웃으며 아침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자연스럽기만 하다.

지금 교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제 와서 학생인권조례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조례에 대해 아직도 잘 모르거나 조례 내용이 무조건적인 자유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줄어들 수 있게 지속해서 홍보하고 인권교육을 하는 것이다. 학생인권이라는 말이 낯설던 시절엔 교사들도 인권에 대해 무지하여 자신의 인권이 침해되는 상황에도 학생들처럼 침묵하고 참기만 해왔다. 하지만 학교에 인권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으며 관리자로부터의 부당한 지시, 동료 교사, 학생, 보호자 등으로부터 당할 수 있는 폭력적인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알아가고 있다. 이와 같이 학생인권조례는 학교의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고 그 혜택은 교사도 받았기에, 결코 학생인권조례가 교권을 추락시켰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교사들이 자신들의 권리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이니 교사에게도 학생인권조례는 반가운 존재일 수 있었다.

성소수자 학생을 차별할 권리가 교권인가

결국 학생인권조례의 폐지를 원하는 단체들은 '교권'을 핑계로 자신들의 목적을 실현시키려는 것일 뿐이다. 이번에 나란히 알려진 두 조례안을 보면 이런 느낌이 더욱 강해진다. 지난 1월 25일, 서울시의회는 서울시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의원 발의안 2건에 대한 검토를 요청했다. 하나는 '학교구성원 인권증진 조례안'이었고 다른 하나는 '학교구성원 성·생명윤리 규범 조례안'이었다. 후자의 경우엔 성교육은 절제에 주안점을 두어야 하고 성관계는 혼인 안에서만 이뤄져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논란이 일었다. 대체 누가 이런 시대착오적인 조례를 발의했냐 비판받자, 시의회는 기독교단체에서 만든 조례안을 의견 문의만 한 것이라고 발뺌했다(<오마이뉴스> <"[단독] '시대착오적 성윤리' 조례안... "기독교단체 등이 제안"> 2023.01.31.).
서울시의회가 지난 1월 25일 서울시교육청에게 보낸 공문
 서울시의회가 지난 1월 25일 서울시교육청에게 보낸 공문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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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생명윤리 조례안을 제안했다고 스스로 밝힌 단체 중에는 '건강한가정만들기운동본부'(건가본)이 있다. 건가본은 차별금지법에 반대하고, 혼전순결을 주장하며 낙태를 반대하는 운동을 하는 단체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단체에서 만든 조례안을 시의원 발의안이라고 하며 서울시의회 이름으로 교육청에 공문까지 보낸 것일까. 대체 이 조례안을 받은 시의원은 이 단체와 어떤 관계일까. 

한편, 성·생명윤리 조례안과 달리 '학교구성원 인권증진 조례안'의 발의자는 김혜영 의원으로 알려졌다. 김혜영 의원의 학교구성원 인권증진조례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바로 기존의 학생인권조례 내용에서 성소수자 차별 금지, 임신·출산한 학생 차별 금지와 같은 부분만 삭제한 것이다. 김혜영 의원의 학교구성원 인권증진조례안과 건가본의 성·생명윤리 규범 조례안이 같은 날 하나의 공문에 나란히 실린 것은 우연일 수 있지만, 나는 두 조례안이 같은 목적을 품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특히 2022년, 김혜영 의원은 건가본의 조용식 목사와 '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 주민청구 정책 간담회'를 연 적도 있으니, 두 조례안과 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 움직임이 한 묶음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2023년 2월, 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 청구 주민발안의 수리가 확정되었다. 이제 김혜영 의원이 있는 교육위원회에서 이 안건을 심의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본회의에 상정되면 표결로 폐지 여부가 결정될 텐데, 68%를 차지한 국민의힘이 폐지에 찬성하면 무조건 폐지이다. 대다수 학생과 교사가 원하지 않는 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가 이렇게 정말이 될 수도 있다. 만약 폐지가 안 되더라도 김혜영 의원과 보수 기독교단체들이 원하는 것들만 남기고 조례가 개정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바라는 단체들이 말하는 '교권'이 조금은 늘어날 수도 있겠다. 교사가 성소수자 학생을 차별할 수 있는 권리 말이다.

태그:#학생인권, #서울시학생인권조례, #폐지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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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손이 자유롭고 싶어서 비가 와도 우산을 안쓰는 사람입니다. #연대하는교사잡것들 #특성화고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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