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숨 못 쉬겠다" 신고, 못 찾은 소방·경찰... 13일 뒤 변사체로

소방·경찰, 문 두드리고도 구조 못 해... 유족 "억울하게 보내지만 말자, 그 마음뿐"

▲ 지난해 12월 20일 긴급구조를 요청했던 고인은 지난 1월 2일 자신이 거주하던 반지하 건물에서 집주인에 의해 발견됐다. ⓒ 유족 측 제공

서울시 동대문구의 한 골목 반지하 다가구 건물 B101호, 고 노경아씨(여, 가명, 44)는 전신 부패 상태로 발견됐다. 지난 1월 2일 오후 3시께 일이다. 발견 당시 노씨의 왼손 바로 아래에는 휴대전화가 놓여 있었다. 그가 통화한 마지막 기록은 신고 전화. 고인은 사망 13일 전인 지난해 12월 20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119에 전화를 걸었다. "숨이 안 쉬어진다"며 "빨리 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그는 구조되지 못하고 숨졌다.

가족들은 평소 지병인 간경화를 앓던 고인이 홀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다고 생각했다. 상황이 바뀐 건 유품으로 가져온 휴대전화에서 발견한 통화 녹음 내역을 접하면서다. 어머니가 휴대전화를 열었고 119 신고 내역을 발견한 것.

'공백'의 시작

유족들은 정보공개 청구와 관련 기관 문의를 통해 고인의 신고 기록을 수집했다. 이를 통해 119와 인근 지구대가 공동 대응해 집 앞까지 와 문을 두드리기까지 했으나 결국 고인을 찾지 못하고 되돌아갔고, 당일 경찰로부터 조회된 통신 정보가 잘못 전달된 사실을 알게 됐다.

아래는 당시 2분 28초간의 노씨의 마지막 신고 통화 내용을 정리한 내용이다.

신고자 : "여보세요. 숨을 못 쉬겠어요. (숨에 찬 목소리)"
119 : "주소가 어떻게 됩니까."
신고자 : "아... 휴... 저.. 휴... 주소..."
119 : "여보세요?"
신고자 : "휘경로... XX-X요."
119 : : "그냥 휘경로 XX-X에요? 몇 길은 없어요?"
신고자 : "아니고..."
119 : "휘경로 XX-X번지로 가면 돼요?"
신고자 : "지하 101호요. 지하 101호로. 빨리 와주세요... 아..."
119 : "차 나갔으니까 간호사 분 연결할게요."


(통화연결음)

신고자 : (괴로운 신음)
119 : "본인이세요?"
신고자 : "빨리요 빨리."
119 : "지금 구급차는 가고 있어요. 편하게 앉으셔서..."
신고자 : "어지러워서 못 있겠어요. 지금..."
119 : "편하게 앉으셔서. 일어나면 쓰러질 수 있잖아요. 더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 안 되고요."
신고자 : (구토하며 신음)
119 : "호흡을 천천히 하세요. 아무것도 드시지 마시고요. 출동하는 구급대원 하고 3자 통화할 겁니다. 전화 끊지 마시고요."
신고자 : "아..."

(통화연결음)

119 : "신고자 분? 신고자 분?"
신고자 : "아...(마지막 음성)"
119 : "여보세요?"
119 : "제가 끊고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통화 종료)


<오마이뉴스>가 확보한 동대문소방서 청량리119안전센터의 신고 당일 구급활동일지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해 12월 20일 오후 1시 3분, 119와 통화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통화는 119에서 먼저 종료했다. 119가 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 12분. 이후에는 모든 통화 시도가 부재중 전화로 남았다.

당시 구급대원이 남긴 기록에는 "경찰 공동 대응 요청해 경찰도 함께 기지국 위치 인근을 수색했다"라고 돼 있다. 동대문경찰서에서 처리한 사건접수 내역에는 '당일 오후 3시 45분 소방에서 사건을 종결'했고, 경찰은 신고자의 '휴대전화에 대한 통신수사 등 계속 조사 중' 상태로 사건을 종결했다고 적었다.

그로부터 13일 뒤 경찰·소방 어느 곳도 찾지 못한 노씨를 집주인이 발견했다. 창문을 통해 누워 있는 고인을 확인한 것이다.

기지국에서 60걸음, 그곳에 그 집이 있었다

지난해 12월 20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노씨가 전달한 주소는 조회가 안 되는 주소지였다.

그럼에도 구급대원과 경찰은 고인의 집으로 추정되는 곳을 찾아냈다. 그러나 살리지 못했다. 당일 상황을 담은 구급활동일지를 보면, 119는 신고 당일 기지국 위치 정보 조회로 노씨의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초입까지 찾아냈다. 유족이 확인한 CCTV에 따르면 119는 인근 지구대 경찰과 함께 오후 1시 20분께부터 해당 골목을 수색했다.

유족 측은 지난 15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경찰이 확보한 CCTV에는 오후 1시 28분부터 5회 (고인이 사는) 그 집 건물로 (경찰과 구급대원이) 들어갔다"고 전했다. 건물에 들어갔는데 왜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을까. 유족 측은 "(당시 담당자는) 문을 두드렸는데 개 짖는 소리만 들리고 인기척이 없었다고 했다. (집주인이 발견한 것처럼) 창문은 보지 못 했냐고 하니 '창문은 못 봤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소방이 파악한 기지국 위치에서 고인의 집까지 거리는 직선거리로 약 40m. 성인 보폭으로 약 60걸음 거리다. 신고 당일 출동한 구급대원은 "기지국 위치에서 약 2시간 30분간 인근 주변 및 (신고자가 말한 번지 수) 주변 지층 모두 확인했으나 찾지 못했다"고 기록했다.

출동했던 소방 측은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이다. 동대문소방서 청량리119안전센터는 지난 17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어느 정도 아프다는 소리가 들리거나 근거가 있었다면 강제 개방을 할 수 있었다"라면서 "2시간가량 수색했는데 (구조 요청자를) 못 찾았다"고 밝혔다. 또 "(신고 요청) 당일 (통신 관련 자료) 조회가 돼 (구조 요청자의 지인들과) 연락이 닿았다면 구조가 됐을 것"이라고 답했다.

긴급 상황 시 개인정보 처리 및 보호수칙을 보면, 소방과 경찰 모두 긴급 구조를 요청한 대상자의 '위치 정보'를 조회할 수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2021년 9월~12월 기준 단말기 측위 기술을 측정한 결과, 기지국 방식의 위치정보 측정 성공률은 KT기준 약 168m 위치 정확도로 나타났다.

현장을 조사했던 경찰은 다만 "옆 건물을 통해 들어가야 창문이 보이는 구조"라면서, 건물 구조 상 현장에서 곧바로 창문을 떠올리긴 힘든 상황이었다고 했다. 유족들도 현장을 봤다. 그러나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유족 측은 "다섯 번이나 구조대가 (집 앞으로) 갔다고 했는데, 왜 강제개방을 하지 않았는지, (건물 벽에 있는) 계량기에도 'B101'이라고 쓰여 있는데 왜 의심하지 않았는지, 왜 창문을 찾기 위해 (건물) 뒤로 가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2022년 12월 20일 오후 1시 3분
노경아(가명)씨는 호흡곤란을 느껴 119에 구조 요청을 했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주소를 말하지 못했습니다.

소방과 경찰은 기지국을 중심으로 반경 500m에서 비슷한 주소의 반지하를 수색했습니다.

노씨의 집 골목을 5차례 찾았지만,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노씨의 집 문을 두드렸지만, 인기척이 없고, 개 짖는 소리만 들려 강제개방없이 철수했습니다.

13일 뒤인 1월 2일. 집주인이 건물 뒷면에 있는 반지하층 창문 너머로 침대에 반려견과 함께 숨져 있는 노씨를 찾았습니다.

▲ 위 그래픽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실제 건물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알뜰폰이라 오늘 조회 힘들다"했지만... 고인은 KT 가입자

경찰은 '수사' 중 사건만 전기통신사업자인 통신사를 통해 이름과 주소 등의 통신자료정보를 요청하도록 돼 있다. 노씨처럼 긴급구조 요청에 대해선 개인정보를 요청할 근거가 없다.

그럼에도 경찰은 구조 요청자에 대한 통신 자료 제공을 3개 통신사에 요청했다. 경찰 관계자는 "워낙 급해 관행대로 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경찰이 구조 요청자의 휴대전화가 알뜰폰, 즉 별정통신사 휴대전화로 보여 '(정보가) 안 나온다'고 오후 2시께 지구대로 통보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고인은 KT 가입자였다.

동대문경찰서 관계자는 지난 17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당일 담당자가 다른 사건에 투입된 사정을 설명하면서 "(KT에서 회신이) 안 오니까 별정 휴대폰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그렇게 (지구대에) 전달됐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당일 KT로부터 회신을 받았다. 당시 제공된 고인의 정보는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이었다. 그러나 이 사실은 구조 당일 현장 담당자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경찰은 "가입 주소지가 (고인의 어머니가 살고 있는 본가인) 충북 청주로 돼 있고 가족 중 (고인의) 주소를 아는 분들이 없었다"며 "통신 조회를 해도 고인의 현 위치를 당장 특정하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경찰 측 관계자는 다만 "(정보 조회와 별개로) 지구대와 119에서 (신고 당일 이후) 전화를 (구조 요청자에게) 계속 한 부분이 있는데, 그렇다면 밤에라도 그 집을 다시 가서 집주인 집을 확인해 '밑에 누가 살고 있냐'고 확인하는 등의 조치를 했다면 좀 더 빨리 발견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족 측은 "경찰서에서 (고인에 대한) 정보 전달을 제대로 했다면 가족들은 고인이 (변사체로) 발견되기 이전에 긴급한 상황을 인지했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추가 수색을 위한 기회를 놓친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경찰도 소방도 모두 "권한 밖의 일"... 유족 "구조될 수 없다는 불안감"


▲ 긴급구조를 요청한 지 12일 만에 집주인에 의해 변사체로 발견된 고인의 곁에서 함께 죽은 채 발견 된 반려견. ⓒ 유족 측 제공

긴급구조 신고 이후, 시신으로 발견되기까지 13일간의 시간. 그 사이 공백은 경찰도 소방도 누구도 알지 못한다. 사건을 조사 중인 경찰은 고인의 정확한 사망 시점을 확인하기 위해 고인의 휴대전화를 디지털 포렌식 하고 있는 상태다.

결과적으로, 신고 당일 공동대응에 나섰던 소방과 경찰은 구조 요청자를 찾지 못했다.

구조 요청자를 찾지 못했는데 사건을 종결한 이유를 묻자 소방은 '권한 밖의 일'이라고 했다. 이어 "(구조자 개인 정보를 조회할) 권한이 없으면 경찰에 인계하고 일지에 사건 정황을 기록해야 한다고 매뉴얼에 쓰여 있다"라며 "권한 밖의 업무를 우리가 할 수는 없어 그 (개인 정보 조회) 권한을 가진 경찰에 인계하고 왔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범죄 혐의점이 있는 사건'이 아닌 구조에 관한 업무이므로, 경찰 소관이 아니라고 답했다. 먼저 공동 대응을 요청한 소방이 매뉴얼에 따라 '주도적으로 종결했어야(책임졌어야) 했다'고 책임을 돌렸다.

유족은 사건 이후 '수색'이라는 단어 뜻을 국어사전에서 찾았다.

'수색 : 구석구석 뒤지어 찾음'.

그러나 유족이 보기에 소방이나 경찰 모두 수색이라 볼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

유족은 부검 결과 나온 '호흡곤란으로 인해 신속한 응급조치가 필요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소견 때문에 억장이 또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인지 "(고인을) 억울하게 보내지만 말자. 그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한편, 독신으로 살아 온 고인의 곁에는 12년을 함께한 반려견이 숨진 채 함께 누워 있었다. 노씨의 방을 가족들과 함께 치운 청소업체 직원은 유족에게 반려견이 고인 곁에서 숨을 거둔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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