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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깨끗한 물이 사시사철 흐른다.
▲ 대관령옛길 맑고 깨끗한 물이 사시사철 흐른다.
ⓒ 김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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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관령옛길을 좋아한다. 생각보다 꽤 깊은 산의 면모를 보여주지만 너무 높거나 험하지 않고 집에서도 가깝기 때문이다. 겨울 옛길은 깊고 좁은 계곡에 낮게 드리운 태양으로 따뜻함과 차가움을 동시에 품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른 아침보다 점심때쯤 옛길을 걷는다.

다른 지역도 이상기후에 대한 이야기가 많겠지만 작년 강릉 날씨는 유독 변덕스러웠다. 11월은 유난스레 따스하고 12월은 쨍하게 춥고 1월 상순은 놀랍도록 온화했다. 1월인데도 낮 기온이 영상 19도까지 오르던 날, 가벼운 차림으로 옛길을 따라 걸었다.

계곡 음지 곳곳에 얼음은 남아있지만 많이 이른 봄기운도 느낄 수 있었다. 빈 나뭇가지 사이로 묵은 둥지들을 찾으며 한 걸음씩 오르던 중, 굵은 나무의 가슴높이쯤 둥치가 갈라지는 지점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응? 제게 뭘까?
▲ 멀리서 본 흔적 응? 제게 뭘까?
ⓒ 김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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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동물의 똥일 것이라 추정할 수 있었다.

'음... 새는 아니고 쥐도 아니고 너구리도 아니고... 다람쥐인가?' 하면서 자세히 보니 쌀알 튀밥모양 알갱이들이 가득하다. 나무와 비슷한 갈색빛에 냄새는 별로 없으며 촉촉(!)하고 반질거렸다.
 
수북히 쌓아두었다. 오랫동안 사용한 화장실인가?
▲ 하늘다람쥐 똥 수북히 쌓아두었다. 오랫동안 사용한 화장실인가?
ⓒ 김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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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 찾아보니 하늘다람쥐의 똥이었다. 하늘다람쥐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이며 한반도 내에서만 자생하는 고유종이다. 다른 설치류와 달리 견과류보다 나무 새순이나 연한 열매를 좋아한다. 앞발과 뒷발 사이에 피부가 이어진 커다란 비막이 있어 나무사이를 날아다닌다. 몸길이는 11~12cm, 비막을 펼치면 '하늘을 나는 손수건'같다고 한다. 야행성이라 이렇게 흔적으로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사는 동네 뒷산에도 10여 년 전에는 하늘다람쥐가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게 되어 산이 깎이고 나무들이 뽑혀나갔다. 서식지는 파괴되었고 그들은 떠나버렸다. 반면 미국서 수입한 남부하늘다람쥐는 사람의 손길에 익숙해지게 하려고 랭귀지스쿨이라는 유치원까지 다니게 한다고 한다. 사람들의 이익에 따라 살 곳을 잃고 떠나야 하거나, 사는 곳에서 잡혀 낯선 곳으로 보내지고 길들여져야만 하는 하늘다람쥐의 운명이 씁쓸하다.

만약 우리 동네 뒷산 숲이 건강하게 살아있고 아이들과 함께 하늘다람쥐의 먹이 흔적이나 똥을 찾아 관찰하고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운 마음이다.

실제로 만나지 못한 하늘다람쥐를 사진으로 보며 그려본다. 털 한 올 한 올이 포근하게 느껴진다. 동그란 눈이 나를 바라보며 무슨 말을 할 것 같다. 언젠가 우연히 만날 수 있기를 또는 만나지 못한다 해도 앞으로도 오랫동안 수북한 똥으로 안부를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
 
보송보송한 털과 동그란 눈, 세모난 귀가 포인트!
▲ 하늘다람쥐 그림 보송보송한 털과 동그란 눈, 세모난 귀가 포인트!
ⓒ 김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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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강릉, #대관령옛길, #하늘다람쥐, #똥, #야생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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