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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따사로운 햇살이 개똥이가 사는 산동네를 비춥니다. 개똥이가 살고 있는 산동네에도 봄은 왔습니다."

어머니가 식탁에 앉아 책을 읽는다. 나는 어머니의 책 읽는 소리를 들으며, 주방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사고 이후 어머니를 위해 책 빌리는 일도 당연히 중단되었다가 8개월 만인 작년 12월부터 다시 책을 빌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병원에 있을 때 어머니는 오빠에게 그리고 언니에게 "진순이 나 읽을 책 빌리레 가당 사고 나실 거여"라는 말을 했었다고 한다.

아마도 사고 전날, 어머니에게 내일 책 반납하고 또 빌려오겠다는 말을 했던 것 같다. 그 말을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다.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건강하게 낳아준 덕분에 하루하루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어머니는 그러냐며 그다지 씩씩하지 않게 말끝을 흐렸던 기억이 난다.

지난 8월, 4개월간의 병원생활을 마치고 퇴원하던 날, 어머니는 어디 특별히 아픈 데는 없냐, 병원비는 그쪽에서 다 대는 거냐, 앞으로 완치돼야 할 텐데...라는 말을 몇 번 반복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어머니는 나와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만 기억하는 듯했다.

센터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면 내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물었더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내가 병원에 있느라 한동안 집에 없었던 것 기억하냐고 하니 그러냐고, 나랑 쭉 같이 있었던 것만 같다고, 앞으로도 쭉 같이 있을 걸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를 향해 웃으면서 그럴 거라고 했다.

이렇게 어머니와의 일상이 다시 시작된 지도 6개월이 되었다. 3개월쯤 되었을 때 이사를 했고, 집들이 겸 일산에서 친구가 내려왔다. 친구는 로봇 청소기, 같이 먹을 횟감 등을 들고 와서 저녁 준비를 했다. 

친구와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한 동네에 살았다. 전도사였던 아버지가 그곳 교회로 가게 되어 내 10대의 대부분을 보낸 동네이다. 부모님이 젊었던 시절,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도 그 교회에서 일하신 적이 있었으니 부모님은 그 동네에서 두 번을 사셨다.

오지랖이 넓었던 아버지는 꽤 많은 분들의 결혼을 성사시켰는데, 친구의 부모님도 아버지의 오지랖 덕 혹은 탓(?)에 부부가 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자신과 몇 살 차이도 나지 않는 분들의 결혼을 성사시키는 오지랖과 추진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사는 곳이 멀어서 서로 얼굴 볼 일이 거의 없어진 우리 어머니들을 모시고 언제 한 번 같이 보자고 친구랑 이야기를 했었다. 오래도록 못 봤던 어머님들끼리 살아계실 때 만나서 옛 이야기를 하며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데 두 딸의 마음이 통했다.

차도 운전면허도 없고, 몸도 시원치 않은 나에 비해 기동성이 좋은 친구가 움직인 덕에 어머니 둘과 딸 둘이서 만났다. 이렇게 네 명이서 만나는 일은 아마 처음이었던 것 같다.

장어, 소고기, 빙수 등 평소에 잘 안 먹던 음식들을 먹으며, 웃고 수다 떨며 놀았다. 친구 어머니는 내 아버지의 중매로 결혼하신 이야기, 결혼해서 고생고생하며 살았던 이야기 등을 하셨고, 내 어머니는 이제 이만큼 살게 되었으니 잘 됐다고 하시며 주거니 받거니 하셨다.
 
젊은 시절부터 알고 지내시던 두 분이 오랫만에 만나셨다. 친구의 어머니는 얼마전에 오토바이 사고를 당하기도 했지만, 거뜬히 회복하셨다. 정말 건강하신 80대, 90대 두분의 삶에 응원을 보낸다.
▲ 어머니들과 함께  젊은 시절부터 알고 지내시던 두 분이 오랫만에 만나셨다. 친구의 어머니는 얼마전에 오토바이 사고를 당하기도 했지만, 거뜬히 회복하셨다. 정말 건강하신 80대, 90대 두분의 삶에 응원을 보낸다.
ⓒ 이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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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만나난(이렇게 만나니) 너무너무 좋다이?"

헤어지고 나서 친구가 신나는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마음 맞고 추진력 있는 친구가 있어서 다행스럽고 고맙다. 친구가 아니었더라면 머릿속에 막연하게만 있었을 바람이 현실이 되었다. 94세와 87세의 어머니들이 밝게 웃으며 살아갈 수 있는 한해를 기원한다.

저녁 시간마다 어머니와 종종 보곤 하는 TV 프로그램 '6시 내고향'에서 장어를 잡고 요리하고 먹는 장면이 나오자, 어머니는 "너 장어 먹어 봔?" 하고 묻는다.

"응. 저번에 홍정숙 권사님이랑 성신이랑 같이 밥 먹어난 거 기억 나맨?"
"응. 경 해난(그랬던) 거 닮다."
"그때 우리 장어도 먹고 소고기도 먹언."
"아, 기가(그러냐)?"


금방 이야기한 것을 잊어먹고 또 묻기를 반복하면서 우리의 저녁시간이 흐른다. 아이들 키우랴 살림하랴 돈 걱정 하랴 젊었을 때 했던 고생이 끝난 지금, 사는 게 괜찮은지 아니면 늙어서 싫은지 물었더니 어머니는 조금 생각하는 듯하더니 좋은 것 같다고 하신다. 100점 만점에 80점쯤 되는 것 같다고. "그럼 늙는 것도 괜찮은 일이네"라고 했더니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인다. 늙는 게 괜찮은 어머니가 <개똥이 이야기>를 읽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 동네도 철거하겠지?"
"하기야 하겠지, 씨이.....발!"


낭독하느라 평소에 한 적 없던 욕을 또박또박 뱉는다. 웃음이 나온다. 동화책을 읽고, 책에 있는 그림을 보며 따라 그리고,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딸들의 칭찬 세례를 받으며 어머니는 괜찮게 늙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를 보며 나의 미래를 그려보기도 한다. 10대의 내가 50대의 나를 상상하기 힘들었듯 지금의 나는 90대의 나를 상상하기가 버겁다. 그 버거운 때를 지금의 어머니는 당당히 그리고 담담히 살아가고 있다.

태그:#어머니, #개똥이 이야기, #추억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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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겨울밭, 붉은 동백의 아우성, 눈쌓인 백록담,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포말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제주의 겨울을 살고있다. 그리고 조금씩 사랑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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