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16 11:43최종 업데이트 23.02.16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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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 연합뉴스


2022년 11월 28일 강원도 양구군에 위치한 육군 제12사단 소속 일반전초(GOP)에서 김모 이병이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신병 훈련을 마친 김 이병이 육군 12사단에 배치된 건 2022년 10월 27일이다. 김 이병은 최전방 GOP 근무를 자원했다. GOP에 투입되는 인원은 경계작전 교육을 받는데 김 이병은 교육도 받지 않고 전입 열흘만인 11월 7일에 GOP로 조기 투입됐다. 경계태세 격상으로 근무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간부들은 하지도 않은 교육을 완료한 것처럼 서류만 꾸며뒀다.


교육도 없이 갑자기 근무에 투입된 탓에 매사 낯설고 서툴 수밖에 없었다. 그런 김 이병에게 돌아온 것은 선임병들의 폭언과 괴롭힘이었다. 29페이지에 달하는 암기 노트를 달달 외우게 하고, 외우지 못하면 "총으로 쏴버리겠다"는 식의 폭언이 이어졌다. 괴롭힘에는 선임병뿐 아니라 간부인 A하사도 가담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GOP 근무는 고됐다. 경계태세가 올라가 할 일은 더욱 많았다. 4시간 경계 근무, 2시간 영상감시, 2시간 취침이 반복되었다. 밥 먹을 시간이 없어 과자로 때울 때도 있었다. 김 이병은 극한의 환경에 반복되는 스트레스 상황까지 겹쳐 많이 힘들어했다고 한다.

그렇게 20일이 지나 11월 28일이 되었다. 저녁 무렵 경계 근무를 서던 김 이병이 피아식별 과정에서 실수를 했다. 상황실에 있던 선임병은 이 사실을 듣고 득달같이 초소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곤 "이따 보자. 가만히 두지 않겠다. 죄송하다는 말로 넘어갈 수 없을 것이다"라고 겁박했다. 30분 뒤인 오후 8시 44분 김 이병은 방아쇠를 당겼다.

석연치 않은 구석

그 시간 같은 초소 내에서는 김 이병의 선임인 B일병이 경계를 서던 중이었다. 밖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나길래 나가보았다고 한다. 문을 열고 나가니 김 이병이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고 곧 쓰러졌다. 놀란 B일병이 상황실로 전화를 걸었고 곧 A하사가 상황을 파악하러 초소로 향했다는 것이 육군의 설명이다. A하사는 괴롭힘 가해자 중 한 명이다.

현장에서 상황을 파악하던 A하사는 몇 분 지나지 않아 사건 관련 대대 주관 화상회의에 참여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A하사는 현장에서 확인한 내용을 보고했고, 곧 부중대장이 육군전술지휘정보체계(ATCIS)에 보고서를 올렸다.

그런데 보고서에 담긴 내용은 "김 이병이 B일병에게 라이트를 받고 방탄조끼에 넣다가 판초 우의에 걸려서 1발을 발사했습니다"였다. 극단적 선택이 느닷없이 오발 사고로 바뀐 것이다. 23분 뒤에 '원인 미상 총상'으로 정정 보고가 올라가기 전까지 이 사건은 '사고사'로 전파되고 있었다.

유가족의 의구심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총기 사건이 발생했으니 부대는 발칵 뒤집혔을 것이고 혼란스러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장에 가서 목격자까지 만나고 온 A하사의 보고를 듣고 부중대장이 있지도 않은 오발 사고 정황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보고서에 기재했다는 점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실수나 착오라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김 이병을 잘 교육하고 보호하지 못한 소속 부대와 가해자들에겐 피해자의 자살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망 이후 군사경찰이 부대원 여럿의 범죄 혐의점을 파악하여 입건하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계획적이든, 우발적이든 소속 부대가 사건 은폐를 시도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23분 뒤에 정정 보고가 이루어지긴 했으나 최초에 어떤 경위로 총기 발사 사건이 오발 사건으로 보고된 것인지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 사건 은폐는 시도만으로도 심각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2014년 윤 일병 사건 때에도 구타로 인한 쇼크사를 음식물에 의한 질식사로 둔갑시키려다 들통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군사경찰은 A하사도, 부중대장도 사고사 보고 건으로 입건하지 않았다. 변사사건 수사를 맡았던 군사경찰은 왜 보고서에 '사고사'로 기재된 것인지 최초 상황 보고를 하였던 A하사에게 물었고, A하사는 '무서웠기 때문'이라고 답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풀리지 않는 의문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육군 제12사단 52연대 소속 GOP 33소초에서 발생한 김 이병 총기 사망 사건 관련 기자회견에서 김 이병의 부친이 사건 관련 심정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그래서인지 이들은 형사 입건은 되지 않고 징계위원회에만 회부된 것으로 파악된다(A하사는 괴롭힘 혐의로만 별도 입건되었다). 고의성을 인정하지 않고 착오나 실수쯤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다.

단순 착오나 실수로 단정하고 수사조차 해보지 않고 넘기기엔 풀리지 않는 의문이 많다. 오발 사고의 내용이 너무 구체적으로 꾸며져 있는 데다 최초 보고자는 가해자 중 1명이다. 충분히 입건하여 허위보고 유무를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 하지만 무슨 까닭인지 육군 군사경찰은 요지부동이다.

유가족이 이러한 의혹을 제기한 뒤로 육군이 보인 태도 역시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육군은 지난 2월 13일, 유가족이 기자회견을 열어 의혹을 제기하자 곧장 반박 입장을 냈다.

'판초 우의가 총기에 걸려 격발되었다는 내용이 언급된 바 있으나, 이는 해당 간부(하사)가 사고현장을 보고 임의로 추정하여 상황 보고한 것이고 이후 사단에서 상황을 재확인하여 최초 상황보고 이후 23분 만에 상급부대로 정정보고(원인미상 총상)하여 수사에 혼선을 초래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수사결과 '허위 보고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유가족은 A하사가 임의로 추정하여 있지도 않은 사실을 보고한 동기와 까닭을 규명해달라고 요구한 것인데, 그에 대한 답은 하지 않고 무작정 '허위보고는 아니다'라는 말만 전해왔다.

다음 날에도 육군은 유가족이 제시한 시간상의 미세한 오차를 반박했을 뿐,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은 회피했다. 입건하지 않기로 결정했으면 그러한 판단을 하게 된 경위에 대해 소상히 설명하면 될 텐데, 말을 빙빙 돌리고 있는 셈이다.

유가족의 바람은 분명하다. 자식의 죽음 앞에 한 점 의혹이 없길 바랄 뿐이다. '사고사' 운운은 대체 어떻게 등장하게 된 것인지 경위를 규명하고 유가족에게 알릴 몫은 육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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