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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별미 과메기는 미역, 파, 고추 등과 곁들여 먹는다.
 겨울철 별미 과메기는 미역, 파, 고추 등과 곁들여 먹는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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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역이건 그 도시를 떠올리면 동시에 연상 작용으로 이어지는 음식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전남 흑산도는 홍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독특한 발효법으로 숙성시킨 '삭힌 홍어'는 이제 호남만이 아닌 전국의 미식가들을 유혹하고 있다. 경기도 이천은 좋은 쌀로 기억되는 고장이다. 잘 차려낸 '이천 쌀밥' 한 상은 관광객들의 만족스러운 미소를 불러낸다.

경북 포항엔 흑산도 홍어와 이천 쌀밥처럼 지역을 대표하는 특별한 먹을 거리가 없을까? 당연지사 있다. 겨울철 한국인이 맛보는 과메기의 8할은 포항 구룡포 일대에서 만들어진다.

적절하게 건조된 꽁치를 미역과 김, 손질한 파·고추·마늘 등과 함께 먹는 '과메기 쌈'은 큼직한 대게와 함께 포항을 대표하는 겨울 진미(珍味)로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다.

이강수산 호미곶과메기 이강훈(50) 대표는 30대 중반부터 50대에 이른 오늘까지 17년의 시간을 과메기와 함께 울고 웃어온 사람.

"과메기에 술 한 잔으로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고, '잘 먹었다'며 인사하는 손님을 볼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낀다"는 그는 젊은 시절엔 은행에 다녔다. 지난 7일. 호미곶과메기를 찾아 은행원으로 일할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 속에서 살고 있다는 이강훈 대표를 만났다.
 
-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1973년 포항 오거리 인근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와 중·고교도 포항에서 다녔다. 가게가 있는 동네는 내 유년의 추억이 가득한 공간이다."
 
- 은행원에서 과메기 식당 주인으로 직업을 바꾼 계기가 있었나.
"2006년에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17년째 들어섰다. 은행원으로 일할 땐 여행을 다니고, 책 읽을 시간도 충분한 여유로운 삶을 동경했다. 처음 가게를 시작할 때는 낮엔 은행에 나가고, 밤에만 과메기를 팔았는데 식당 이름이 알려지고 손님이 많아지니 두 가지 모두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서른넷에 은행을 나와 본격적으로 가게에 매달렸다."
 
- 과메기 건조와 숙성도 직접 하는지.
"그렇지는 않고 단골 거래처가 있다. 한 살 아래 후배가 16~17년째 덕장을 운영 중이다. 둘 사이가 친밀하기에 과메기의 건조와 숙성 전 과정을 머리 맞대고 의논했다. 그런 적극적인 소통이 우리 가게 과메기의 품질을 높여온 것 같다."
 
- 포항 구룡포에서 만들어지는 과메기가 맛있는 이유는.
"바람과 건조 조건이 생선 말리기에 적합해서 그렇다. 게다가 수십 년 동안 과메기를 만들어온 지역의 노하우가 더해지니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게 아닐까? 나도 어릴 때부터 과메기를 좋아했다. 손님과 더불어 내 입에도 더 맛있는 과메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호미곶과메기 이강훈 대표가 택배로 보낼 과메기와 곁들이 채소를 포장하고 있다.
 호미곶과메기 이강훈 대표가 택배로 보낼 과메기와 곁들이 채소를 포장하고 있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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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과메기 제철'은 11월과 12월이다. 불어오는 동해의 차가운 바람과 구룡포의 맑은 공기가 건조·숙성된 꽁치의 맛을 극대화시키는 시기인 것. 그 기간에 맞춰 호미곶과메기는 10월 중순 가게를 열어 이듬해 2월 말까지 영업한다.

포항 사람들은 1년을 기다려온 탓에 11월 초순부터 과메기를 맛보러 식당을 찾는다. 전국으로 보내지는 택배의 양과 관광객 손님이 본격적으로 늘어나는 건 12월부터.

지난 3년, 그러니까 '코로나19 사태'가 이어졌을 때는 택배 주문이 많았다. 올해는 어떨까? 이 대표에 따르면 "택배량도 줄고, 가게의 손님도 조금 줄었다"고 한다. 어째서 그럴까? "코로나19가 바꾼 생활 패턴이 밤 10시 이후엔 사람들을 집으로 돌아가게 만든 듯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 물가 상승이 가파르다. 가게 운영에 어려움은 없는지.
"원재료 가격과 할복(割腹·꽁치의 배를 가르는 작업)하는 할머니들의 인건비, 전기세, 유류비 등이 모두 대폭 올랐다. 가게 일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었다면 직원을 더 고용해야 했을 테고, 그러면 지금 가격으로 과메기를 판매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 몇 해 전엔 청어과메기가 인기였는데.
"그랬다. 5년 전쯤엔 나도 청어과메기를 팔았다. 하지만, 덕장과 식당을 유지할 정도로 많은 양이 팔리지 않았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꽁치과메기가 대세다. 비율로 보자면 꽁치가 95라면 청어는 5 정도다. '통마리'라고 꽁치를 할복하지 않고 통째 말린 것을 찾는 손님도 있는데, 그건 구룡포의 날씨가 예전처럼 춥지 않고, 건조되기 전에 부패하는 경우가 흔해 판매가 어렵다."
 
- 과메기를 만들던 옛날 풍경이 기억나는지.
"30~40년 전엔 과메기가 포항 서민들의 겨울 군입거리였다. 어르신들에겐 값싼 안주이기도 했고. 어머니가 죽도시장에서 덜 마른 꽁치나 청어를 사와 짚으로 엮어 부엌에서 건조시키던 모습이 생생하다."
 
- 포항에 과메기를 파는 식당은 얼마나 되나.
"최소 200개는 넘지 않을까 싶다. 최근에는 과메기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전문적으로 과메기만을 판매하는 가게도 많이 생겼다."
 
- 손님이 오면 "잘라드릴까요? 찢어드릴까요?"라고 묻던데.
"가위로 자른 과메기와 손으로 찢은 과메기는 식감이 다르다. 예전에 어머니가 신문지 위에 과메기를 놓고 쭉쭉 찢던 모습을 기억하는 손님들이 적지 않다. 우리 가게에선 8대2의 비율로 찢어달라는 분들이 훨씬 많다."
 
- 맛있는 과메기는 어떤 조건에서 만들어지는가.
"'속도'와 '습도'가 중요하다. 꽁치의 배를 가를 때도 그렇고, 건조된 과메기의 껍질을 벗길 때도 빠른 속도로 해야 한다. 숙련된 할머니는 1~2초에 꽁치 한 마리 배를 가르고 내장을 빼낸다. '생활의 달인'급이다. 가능하면 손에서 머무는 시간이 짧아야 한다. 거기에 더해 과메기 만들기는 습도 조절이 관건이다. 과하게 습기에 노출되면 과메기에서 비린내가 난다. 그런 이유로 생산과 판매 모든 과정에서 가장 신경 쓰는 게 속도와 습도다." 

노력 없이 그저 얻어지는 성장과 발전은 없다. 과메기 전문식당도 이 명제에서 벗어날 수 없을 터. 호미곶과메기가 '포항 맛집' 중 하나로 자리 잡기까지 이 대표는 적지 않은 노력을 했다.

과메기를 찍어 먹기에 최적화된 초장의 완성을 위해 고추장과 식초 한 드럼통쯤을 버렸다. 과메기가 구룡포 덕장을 출발해 가게로 도착하기까지의 짧은 시간에도 습도를 맞추기 위해 냉장 트럭을 이용하는 것은 물론, 최상의 식감을 지키고자 가능하면 과메기 껍질은 손님이 주문한 후에 벗긴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호미곶과메기는 1년에 5개월만 운영한다. 가게를 여는 10월부터 2월까지는 아침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방문객과 주문량이 많으면 하루에 말린 꽁치 1천~2천 마리를 파는 날도 있으니 5개월 동안은 휴일도 없다.

그렇다고 나머지 3월부터 9월까지는 편하게 쉬느냐? 그렇지 않다. 그 기간엔 다른 식당의 영업 전략도 배우고, 더 맛있는 과메기를 만들어내기 위한 시스템을 고민하는 게 이강훈 대표의 일상.
 
과메기를 맛보는 포항 시민과 관광객들.
 과메기를 맛보는 포항 시민과 관광객들.
ⓒ 경북매일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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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사람들에게 과메기는 일종의 '소울 푸드'(Soul Food)다. 결혼해서 미국에 사는 딸이 임신을 해 친정인 포항으로 돌아왔다. 입덧이 심해 고생하는 딸이 과메기만은 잘 먹기에 사흘이 멀다 하고 가게를 찾아 과메기를 사갔다는 어떤 어머니를 이 대표는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물었다. "은행을 그만둔 걸 후회한 적은 없나?" 잔잔한 웃음 끝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안정적인 직장생활도 매력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가게 과메기를 먹으며 즐거워하는 손님들을 보는 게 더 좋다. 앞으로도 행복한 과메기 식당 주인으로 살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태그:#과메기, #호미곶과메기, #포항 구룡포, #소울 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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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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