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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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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이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됐다. 김건희 여사 주가 조작에 관한 의혹, 곽상도 전 의원을 비롯한 이른바 '50억 클럽'에 대해 특별검사를 임명하여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야당 주장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어제(13일)와 오늘(14일) 진행된 국회 원내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도 초점은 역시 특검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김건희 여사에 대한 특검을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했고,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다수 폭거로 의회민주주의가 붕괴되고 있다"고 맞받았다. 언론도 양당의 정치 논쟁에 주목할 뿐이었다. 정치 분야 기사가 '김건희 특검'과 '내로남불'로 도배된 이유다.

그러나 나는 다른 부분에 눈길이 갔다. 바로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가 "우리도 생활동반자제도 도입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때"라며 '생활동반자제도' 도입 필요성을 역설한 부분이다. 정치적 논쟁으로 서로를 공격하는 와중에도 양당은 저출생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공통의 문제의식을 보여줬다. 박 원내대표는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 제도를 언급하며 "다양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지금의 가족 규정은 사각지대를 만든다"고 지적하기도 했다(관련 기사: 박홍근 "위기의 대한민국, 문제는 대통령" https://omn.kr/22po6 ).

'생활동반자제도'는 비록 혼인이나 혈연의 관계는 아니지만, 같이 살면서 서로를 돌보기로 약속한 관계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제도적 장치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이 가족'이라는 문구가 가장 마음에 와닿는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생활동반자법 입법 움직임은 지난 국회에서도 있었으나, 법제사법위원회 계류 뒤 임기만료 등으로 폐기됐다.  

아플 때, 꼭 필요할 때 '법적 가족' 아니라서... 관련한 차별 아직도

가족 형태를 이유로 한 차별은 일상의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법적으로 가족이 아닌 경우 응급 수술에 필요한 동의서에 서명하기 어렵고, 장례를 치러도 시신을 인수하거나 사망진단서를 받을 수 없다. 생활동반자의 생사가 오가는 순간에도 법적 가족 구성원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애태우기만 해야 한다. 

의료와 장례는 물론 세금과 주거, 복지의 영역에서도 차별을 받는다. 2021년 10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 결과('2021년도 가족과 출산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애인이나 배우자와 함께 산다"고 답한 사람의 10명 중 3명(28.3%)이 주거정책·건강보험·세금 등 정부가 지원하는 혜택에서 제한받는 경험을 했다고 답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배우자나 애인, 파트너와 함께 사는 291가구의 19∼49세 남녀 336명(남성 159명, 여성 177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다.

때문에 생활동반자가 일상에서 법적 가족 구성원과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20년 7월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조사(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10명 중 7명(69%)이 혼인이나 혈연 여부와 상관없이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면 가족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했고, 10명 중 6명(61%)은 법령상 가족의 범위를 사실혼과 비혼 동거까지 넓히는 것에 찬성했다.

가족에 대한 인식과 현실은 바뀌고 있지만, 정치와 행정은 여전히 멈춰 있다. 정부는 구시대적 인식을 담고 있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에 반대하면서 생활동반자를 비롯한 비혼 동거 관계를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절반 이상의 임기가 지난 21대 국회는 아직까지도 생활동반자법안을 발의하지 않고 있다(2021년 8월 12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국회의원이 생활동반자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를 연 적은 있다). 저출생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이중적인 태도, 이를 고치지 않으면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말인가. 정치와 행정이 답해야 할 문제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전경
 여의도 국회의사당 전경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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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특검' 토론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실체적 진실을 밝혀 마땅한 책임을 지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운영 원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의 본령은 시민의 삶을 바꾸고 지키는 일에 있다. 수사와 사법에 대한 문제 제기 못지않게 다양한 가족의 권리 보장 또한 시급하고 중요하다. 국회가 정치의 본령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까닭이다.

생활동반자제도와 관련해 국회에 기대를 걸어본다. 큰 기대는 아니다. 그저 앞서 약속한 바를 지켜주기를 바라는 수준의 기대일 뿐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생활동반자제도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연대관계등록제도' 도입을 공약한 바 있다.

마침 박홍근 원내대표가 생활동반자제도 도입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까지 밝혔다. 논의를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재명은 합니다', '민생은 민주당' 같은 정치 구호가 공허한 말잔치란 결말을 맺지는 않으리라 믿고 싶다. 

때마침 여야 18인으로 구성된 국회 '인구위기 특별위원회(인구특위)가 14일 출범과 동시에 활동을 시작한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포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절호의 기회다.
 
혹시라도 '동성애 옹호·조장 우려' 같은 철 지난 성소수자 혐오를 부추겨 대충 시간이나 끌고 말 생각이 있다면, 접어두기를 권한다. 가족 형태를 이유로 한 차별 해소는 저출생 문제 해결의 필수 전제 조건일 것이기 때문이다. 필수 전제 조건을 이해하지 못하면 문제는 결코 풀 수 없을 것이다. 바라건대 인구특위가 이를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쓰지는 않기를 소망한다. 

태그:#생활동반자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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