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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해외투자기업연수생제도, 1994년 외국인산업기술연수생제도, 2000년 2+1(연수 2년+취업 1년) 연수취업제, 2002년 1+2 연수취업제, 2004년 고용허가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일하러 온 노동자에게 적용하는 제도는 조금씩 개선되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그들이 겪는 차별은 여전히 남아 있다. 실제 노동현장에서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는 이주노동자 차별 사건, 사고 뉴스를 더이상 접하지 않으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과연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까 싶은 제목의 책 <돼지똥통에 빠져 죽다>가 작년 11월 말 출간되었다. 도서에는 대구 경북 이주노동자 인터뷰, 이주활동가와 법률가가 직접 그간의 사건을 정리한 내용이 실렸다. 책 제목은 책 내용으로 실려 있는 군위 돼지농장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일컫는다. 네팔에서 온 92년생, 93년생 노동자는 돼지 분뇨로 막힌 집수조를 뚫기 위해 그곳에 들어갔다가 질식으로 사망했다. 2017년에 일어난 일이다. 국내 이주노동자 수는 미등록 노동자까지 합하면 12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지난 9일 오후 대구 중구 혁신공간 바람에서 저자 최선희(전 대구경북이주연대회의 집행위원장), 박정민(변호사)이 참석한 가운데 <돼지똥통에 빠져 죽다> 북토크가 열렸다. 책에 나온 사례를 비롯해 요즘 더욱 문제가 되고 있는 강제단속까지 들어볼 수 있었다.
 
<돼지똥통에 빠져 죽다> 북토크 현장 질문
▲ 이주노동에 대하여 당신의 질문은 무엇인가요? <돼지똥통에 빠져 죽다> 북토크 현장 질문
ⓒ 생명평화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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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북토크에서 다루어진 질문과 답변이다. 진행은 심순경 사무국장(대구청년유니온)이 맡았다.

- 예전 제도인 산업연수생제 하에서는 상황이 어떠했나? 
최선희 : "예전에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식조차 없었다. 1990년대에 이주노동자 운동을 하면서 그들이 겪는 문제가 부각되었다. 산업연수생제도의 큰 문제는 그들을 노동자로 보지 않는 것었다. 상당수 이주노동자가 견딜 수 없어 일터를 이탈했고 더이상 제도가 유지되지 못할 지경이었다."

- 이주노동자 운동을 해오면서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는지?
박정민 : "대경이주연대회의 의뢰를 받아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한 사건이 있다. 태국 여성이 토끼몰이식 단속 과정에서 사망한 사건이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와 관련한 문제는 사실 책 한 권에 다 담지 못할만큼이다."

최선희 : "산재노동자를 지원하기 위해 노동자와 병원에 갔다. 그 병원에는 손가락이 없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내 옆에 앉은 산재노동자에게 손가락을 다치면 산재가 가능하다고 안내하니, 그 노동자가 사업주의 눈치를 봤다. 사업주는 '손가락 가지고 산재 신청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는 말을 했다. 가해자가 더 당당하고, 피해자는 죄인처럼 앉아 있던 이 모습이 활동가로서의 나의 첫 기억이다."

- 이주 노동 운동에서는 현행 제도인 고용허가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고 들었다. 고용허가제는 어떤 제도인가?
박정민 : "이주노동자라고 해도 노동자인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들이 노동자로서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 아닌지가 쟁점인 시절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업연수생제도에서 고용허가제로의 변화는 어쩌면 획기적인 일로 보일 수도 있다.

고용허가제 하에서는 특정 사유가 있을 때 이주노동자가 세 번에 한해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 사업주가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려면 일정 점수가 필요하다. 사업주가 문제를 일으키면 이 점수가 깎이게 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영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주노동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노동허가제'가 필요하다."

* 노동허가제: 일정한 요건을 갖춘 외국인이 국내 취업허가를 받으면 자신이 원하는 사업장에서 일할 수 있는 제도

최선희 : "회사가 문제가 있을 때 고용 인원수를 제한하는 방법, 고용을 취소하는 방법을 취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대응이 실제로 있었는가 하면 거의 없다. 군위 돼지농장에서 질식사 한 이주노동자의 경우 농촌에서 일할 수 있는 비자를 지녔다. 농촌 노동자의 경우 계절에 따라 일이 늘고 줄어드는 작물 쪽보다는 축산업을 선호한다. 해당 사건의 경우 노동자 사망사고까지 일어났는데, 사업장 고용 제한이나 취소가 필요하지 않은지 문제제기를 했다. 그러나 해당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입장에서는 갑자기 환경이 어떨지 알 수 없는 다른 사업장으로 옮겨야 하는 문제가 된다.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이동으로는 문제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고, 이런 딜레마가 계속되고 있다. 힘을 합쳐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은 어렵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식이 되버린다."
 
왼쪽부터 심순경 사무국장(대구청년유니온), 저자 최선희, 저자 박정민
▲ <돼지똥통에 빠져 죽다> 북토크 현장 왼쪽부터 심순경 사무국장(대구청년유니온), 저자 최선희, 저자 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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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강제단속하는 정부의 기조를 어떻게 보는지?
최선희 : "정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수를 줄이고자 하는 입장을 계속 지니고 있다. 고용허가제의 허점으로 미등록 노동자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기 때문에 10% 수준으로 그 비율을 유지하려고 해왔다. 코로나19 시기 동안은 강제단속이 전보다 뜸했다. 미등록 노동자가 20, 25%로 늘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단속이 나오면 미등록 노동자는 저승사자를 만난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두려워 도망치면서 3층 높이에서 뛰어내리기까지 한다. 이주인권단체에서는 단속 과정에서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을 촉구해왔다." 

- 가난한 나라에서 돈 벌러 왔으니 불합리해도 참고 일해라는 일부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선희 : ""당신은 어리니까 참아.", "당신은 여자니까 참아." 이런 말과 다름없게 느껴진다. 질문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불합리함을 얼마나 잘 참는 사람인지 물어봐야 할까. 이주노동자가 우리의 일자리를 앗아간다, 그들 때문에 우리가 피해를 본다는 인식이 있다. 이주노동자가 한국에서 노력해온 나보다 못한 대우를 받아야 공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박정민 : "그 말은 당신이 선택한 일이니 감내해야 하지 않냐는 의미로 읽힌다. 우리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한다. 이주노동자에게는 이런 보이지 않는 차별에 '국적'이라는 요소가 하나 더해진 것이다. 같은 유형의 산재사고라도 한국인과 이주노동자가 보상받을 수 있는 금액이 다르다. 이주노동자에게는 자국에서 일했을 때의  기대소득을 기준으로 적용한다. 젊은 이주노동자가 일하다가 팔이 잘리는 사고를 겪어도 받을 수 있는 보상금은 거의 없다. 이건 인권의 문제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북토크에서 두 저자는 이주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특별 대우가 아니라고 말했다. 이주노동자가 바라는 것은 그저 노동자로서 동등한 처우를 보장받는 것이다. 심지어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비자가 없다는 이유로 사람 자체에 '불법'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는다. '이런 현실이 당연한가'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메아리친다.
 
이주노동자와 이주활동가가 들려주는 인권 이야기
▲ <돼지똥통에 빠져 죽다> 이주노동자와 이주활동가가 들려주는 인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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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북토크, #돼지똥통에빠져죽다, #이주노동, #미등록이주노동자,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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