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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입구에 들어서 오른쪽 언덕 위에 있다. 탑 위에 돌이 많이 쌓여 있다. 돌을 올리지 말라는 안내판이 눈에 띈다.
▲ 운주사 석탑 절 입구에 들어서 오른쪽 언덕 위에 있다. 탑 위에 돌이 많이 쌓여 있다. 돌을 올리지 말라는 안내판이 눈에 띈다.
ⓒ 김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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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는 전라남도 화순에 있다. 황석영이 대하소설 <장길산>에서 미륵의 성지로 소개했다. 이를 계기로 운주사 소문이 멀리까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운주사를 이렇게 말한 이도 있었다. "어찌 보면 절인 것도 같고, 달리 보면 아닌 것도 같고…" 대단한 안목이다. 불국토를 구현한 여느 절집과 사뭇 달라서 그랬던가 보다. 담장은 고사하고 일주문조차도 없다. 지금 마주하는 일주문이 도리어 거슬린다. 근래 단장하며 세운 것이라는데, 환하게 웃는 치아 사이에 낀 고춧가루 같다고나 할까.

발굴조사도 여러 차례 실시했다. 양파 같아서 그 연원은 밝히지 못했나 보다. 문화재 수리 보고서 끝에 공식처럼 등장하는 "좀 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라는 말이 이처럼 잘 어울릴 수가 없다. 면밀한 검토가 완결되기 이전엔 여느 절집처럼 꾸밀 수밖에 없었을 게다. 지금 운주사의 모습이 되었다.

이러하니 오랜 시간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설만 무성했다.​

절 같지 않은 절, 운주사
 
발굴 때 나온 석탑과 석불의 잔재들이다. 운주사 경내에 들어서서 바로 볼 수 있다.
▲ 운주사 석탑 발굴 때 나온 석탑과 석불의 잔재들이다. 운주사 경내에 들어서서 바로 볼 수 있다.
ⓒ 김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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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할미가 치맛자락에 돌을 담아다가 천불천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도선국사가 한반도의 좋은 기운을 간직하기 위해 도력을 발휘했다고도 한다. 백제 부흥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성공을 기원하며 지극정성으로 쌓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지금은 100여 구의 불상과 21기의 석탑이 있다.

​탑이나 불상은 예배의 대상이다. 좋은 재료와 훌륭한 솜씨는 불문가지(不問可知)다. 운주사에 널린 불상과 석탑은 좋게 말하면 투박하고 나쁘게 말하면 거칠다. 그렇더라도 그 많은 것을 쌓으려면 돈도 인력도 적지 않게 들었을 것이다.

어떻게 충당했을까. 어느 독지가가 비용을 댔다면 그리 엉성하게 만드는 걸 용납했을까. 나라에서 만들었다면 이렇게 거칠었을까.
 
대웅전 뒤쪽이다. 풍수지리로 보면 천하 제일 명당이라 한다. 탑 아래에 장보고의 시신을 묻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 운주사 석탑 대웅전 뒤쪽이다. 풍수지리로 보면 천하 제일 명당이라 한다. 탑 아래에 장보고의 시신을 묻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 김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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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일이 떠오른다.

2000년, 새로운 천년을 앞두고 세상이 종말론으로 뒤숭숭했다. 1992년 10월 28일 수요일 자정, 다미선교회의 휴거가 있었다. 세상이 심판받을 때 신앙이 깊은 자들은 하나님의 이끌림으로 하늘로 오르는데 이를 휴거(携擧)라 한다. 살아있는 채로 공중 부양이다. 말만 들어도 짜릿하다.

이장림 목사는 종말론을 주장하며 다미선교회를 설립했다. 그리곤 종말의 날을 선포했다. 새 천 년 불안심리 때문인지 급격하게 세를 확장했다. 세상이 망하는데 가정은 뭐고 재산은 어디다 쓰겠는가.

휴거 당일 모든 관심은 다미선교회에 몰렸다. 영원히 이별할지도 모를 가족을 친구를 애인을 찾아온 사람들, 진짜로 사람이 살아 있는 채로 하늘로 올라가는지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밤 12시. 하늘은 평온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나님의 이끌림으로 하늘로 오르는 대신 경찰의 안내에 따라 집으로 돌아갔다.

퇴직금까지 모두 헌금한 가장, 아이와 가정을 등진 주부, 학교를 떠난 학생, 가출하고 교회로 들어간 청소년 등 어수선했다. 이런 풍문도 나돌았다. 휴가 나왔다가 귀대하지 않은 이야기, 휴거 때 몸이 무거울까 봐 낙태했다는 사연… .

휴거를 간절히 원하듯 예전의 민중들도 환난이 닥치면 미륵을 찾았다. 미륵은 석가모니불에 이어 중생을 구제할 미래의 부처다. 구원의 손길이요, 구세주였다. 궁예도 미륵을 자처했다.
 
운주사 경내에 들어서서 처음 만나는 탑과 불상이다. 앞쪽의 9층 석탑은 보물로 지정되었다.
▲ 운주사 석탑 석불 운주사 경내에 들어서서 처음 만나는 탑과 불상이다. 앞쪽의 9층 석탑은 보물로 지정되었다.
ⓒ 김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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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는 휴거의 아주 오래된 미래가 아니었을까. 천 개의 탑을 쌓고 천 개의 불상을 만들면 미륵이 예정보다 앞당겨 세상에 내려와 구원하리라고 희망가를 불렀을지도 모른다. 고통에서 구원받고자 미륵이 구원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 많은 탑을 쌓고 불상을 깎았을 것만 같다.

모두가 바란 새로운 세상

운주사의 특별함은 돌에 있다. 에워싼 야트막한 산 모두가 돌이다. 시루떡처럼 층층이 쉽게 떼어낼 수 있는 층상 응회암이다. 돌이 무르고 결대로 뚝뚝 떼어진다. 초보라도 어렵지 않게 다룰 수 있다. 고통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자들이 간절함으로 모여들어, 자기의 탑을 쌓고 불상을 만들며 기도했을 터이다. 불상이 참 자유분방하다. 식구의 형상으로 불상을 깎으며 가족의 평화를 염원하지는 않았을까.

환난으로 세상이 깜깜할 때마다 천불천탑은 달콤한 미래였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으면 절 앞에 장이 서고 그곳을 중장터라 불렀을지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운주사 대표적인 불상이다. 와불이 벌떡 일어서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한다.
▲ 운주사 와불 운주사 대표적인 불상이다. 와불이 벌떡 일어서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한다.
ⓒ 김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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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산마루에 불상이 불편한 자세로 누워 있다. 천불천탑이 완성되면 와불이 일어서면서 새로운 세상이 열린단다. 박철의 시 '사랑'이 생각난다. "나 죽도록 / 너를 사랑했건만, / 죽지 않았네 // 내 사랑 고만큼 / 모자랐던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자위하지 않았을까. 내 정성이 부족하여 와불을 일으켜 세우지 못해 미륵은 오지 않았다고.

거친 돌탑과 투박한 불상을 마주하면 근원을 알 수 없는 슬픔이 앞선다. 마고 할미든 도선국사든 백제부흥운동이든 천불천탑은 이런 뜻이었다. '새로운 세상'의 도래.

운주사는 언제나 슬프고 불편하다. 죽도록 열과 성을 다했건만 와불은 끝내 일어서지 못했고. 그래도 깎고 쌓는 그동안은 행복했을까.​​ 와불이 내일 새벽 느닷없이 벌떡 일어서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화순매일신문에도 실립니다. 네이버 블로그(cumpanis, 쿰파니스) '맛담멋담'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태그:#운주사, #천불천탑, #와불, #쿰파니스, #화순매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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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파니스'는 함께 빵을 먹는다는 라틴어로 '반려(companion)'의 어원이다. 네이버 블로그(cumpanis) <쿰파니스 맛담멋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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