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얼 22일 파주 임진각에서 개최된 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식.

2022년 9얼 22일 파주 임진각에서 개최된 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식. ⓒ DMZ다큐영화제


경기도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아래 DMZ다큐영화제) 집행위원장에 방송 쪽 인사를 물색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영화계 일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독립다큐멘터리에 특화된 영화제의 특성과는 다르게 전문성 없는 인사를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고 있는 것이다.
 
복수의 영화계 인사들은 7일 "경기도가 방송 쪽 인사를 DMZ다큐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정하려는 것 같다"며 "자칫 영화제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인사가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DMZ다큐영화제 측은 "우리도 그렇게 들었다"면서 "경기도에서 실무적인 진행을 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영화제 담당 국장은 DMZ다큐영화제 이사를 맡고 있다. 경기도청의 실무 관계자는 "이사회를 거쳐야 한다"면서 "아직 결정이 끝나 임명이 확정된 사안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앞서 정상진 DMZ다큐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지난 2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달을 마지막으로 3년간 수행해 온 집행위원장의 소임을 마치게 되었다"면서 "이제 곧 신임 집행위원장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를 새롭게 이끌게 된다"고 인사를 남겼다.
 
방송 인사 내정설에 뜬금없다 반응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는 경기도지사가 이사장을 맡고 있기에 집행위원장 임명권을 갖고 있다. 2009년 처음 시작할 때는 조재현 배우가 집행위원장을 맡았고, 이후 영화계의 의견 수렴을 통해 다큐 영화감독과 제작자 등이 집행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지난해까지 14회를 이어오며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전문가들이 집행위원장과 부집행위원장, 영화제 이사 등으로 선임되면서 무난한 운영의 바탕이 됐다. 그런데, 갑자기 방송 쪽 인사가 집행위원장으로 거론되면서, 영화계에서는 뜬금없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국제영화제 전문가인 전양준 전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제작지원이나 구매 및 방영 때문에 방송 쪽 역할이 중요해도 방송 쪽 인사가 다큐멘터리영화제를 이끄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2022년 9월 22일 파주 임진각에서 열린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식에서 개막선언을 하는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정상진 집행위원장

2022년 9월 22일 파주 임진각에서 열린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식에서 개막선언을 하는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정상진 집행위원장 ⓒ DMZ다큐영화제 제공

 
한국 독립다큐멘터리의 특징은 다수의 창작자가 지난 보수 정권 시절 블랙리스트에 오를 만큼 정치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태생적으로 정치적 압박과 맞서면서 국내 독립 다큐영화제는 전반적으로 힘겨운 상황이다.
 
하지만 DMZ다큐영화제는 2009년 처음 시작한 이래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한 것이 성장의 바탕이 됐다. 다큐영화 전문가들이 참여해 실질적인 운영을 책임지면서 국제적 위상도 높아졌다. 이를 바탕으로 최근에는 국내 다큐멘터리의 작품성과 예술성이 해외 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자칫 전문성이 약한 인사가 낙하산 임명될 경우 이런 성과가 무너질 수 있기에 집행위원장 선임에 영화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다.
 
다큐 영화는 방송 다큐와 비슷해 보여도 구성이나 소재 선택 등에서 다소의 차이가 있다. 심의를 받아야 하는 방송 보다는 아무래도 표현의 강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국내 방송사에서 진행하는 다큐영화제도 있으나 TV 상영에서는 소재와 표현 수위, 심의 등의 요소가 작용한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측면이 있는 탓에 영화제라는 정체성에 맞는 인물이 집행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물론 일부에서는 "방송 쪽 인사가 와도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라는 의견도 있다. 국내 한 다큐멘터리 창작자는 "해외 다큐의 경우 영국 BBC나 일본 NHK 등 방송사가 제작과 투자의 큰 손이다"라며, 전문성 있는 인사라면 방송 쪽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해외 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수석 프로그래머의 역할도 맡는 것처럼, 영화와 산업의 국제적인 흐름과 네트워크, 국내 다큐멘터리 상황에 대한 이해가 집행위원장으로서 필수적인 조건이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전문성 없는 인사 임명은 영화계 반감 불러
 
 국내외 다큐관계자들이 참석한 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인더스트리 행사 모습

국내외 다큐관계자들이 참석한 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인더스트리 행사 모습 ⓒ DMZ다큐영화제 제공

 
문제는 행정 관료 출신 자치단체장들이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서 영화제의 특성을 간과한 채 일반적인 산하기관 인사로 착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경우 전문성은 중요도에서 밀려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예전 방송계 인사가 국내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아 혼란만 일으킨 사례도 있다.
 
최근에도 비슷한 사례가 생겨났다.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인 전주시장이 정준호 배우를 낙하산 집행위원장으로 임명해 영화계로부터 지탄받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기본 자질이 안 된다는 영화계의 비판에도 이를 무시한 채 임명을 강행한 오만이 영화인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강원도에서 지원을 끊는 방식으로 영화제를 없애고, 독립영화관 지원까지 끊는 현실에서 DMZ영화제가 영화계에 근심을 더하는 모습이다.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문화예술의 기조가 흔들리면서 독립성 보장이 영화계의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임기제를 둔 것은 계획성 있게 운영하려는 것인데, 집행위원장이 3년 만에 관료들에 의해 갈아 치워지는 방식은 영화제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재고가 필요해 보인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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