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민호는 1969년 박정희와 그를 둘러싸고 전개된 권력추구배들의 3선개헌 야욕을 지켜보면서 조선왕조의 왕좌를 고사한 고사를 들어 <요구되는 지도자의 자세>란 시론을 썼다. 중견 정치인들의 수필집에 실렸다.

조선조 3대 임금 태종의 장자 양녕대군이 자기보다 우수한 막내 동생 충녕에게 세자의 자리를 넘기게 되는 비화를 소개하면서 권력에 도취되어 망동하는 위정자를 빗댄다.
  
세종대왕께서는 아버지와 형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어 왕위에 오르게 되었으나 항상 형에 대한 미안함과 애잔한 마음을 갖고 있었으며 형제분이 우의를 나누는 데 각별한 정을 보였다고 한다. 내가 이러한 이야기를 체제도 서지 않게 장황하게 늘어놓아 본 것은 양녕대군의 선견지명이 뛰어났음은 물론이요, 절대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왕권은 오늘날의 대통령 중심제의 권한 정도가 문제가 아니였음에도, 나라와 백성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그의 의연한 자세는 세종대왕 못지않게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믿어졌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왕위에 올랐다 하더라도 백성을 위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치적을 남겼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바이다. 

그런데 오늘날 국가와 정치의 형태가 발달을 했고 인간의 두뇌는 극한점에까지 발전을 보게 되었는데도 미련스럽게 권력에 대한 악착스러운 집념때문에 국가와 민족을 위기에 몰아넣고 장기 집권으로 지배자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졸렬하게도 잔꾀를 부리는 것을 보면, 소인배들의 하는 짓이라고 웃어넘기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국가적 희생이 따르기에 용납할 수 없을 것 같다. 

우리는 지금 군주국가의 독재 하에 사는 것은 아니다. 왕의 절대권이 필요없고 현대과학은 우주를 개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누가 정치를 잘하고 누가 애국자냐 하는 것은 훗날에 역사가 증명할 것이고 우리는 그러한 사소한 문제로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국정을 안정하고 세계의 움직임에만 따르려 해도 요원한 거리에 있으면서 자기네의 욕망은 계산해 보지 않고 권력에 대한 매력 때문에 비겁한 자세를 노출시키고 있다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다. 앞에서 얘기했던 양녕대군 역시 권력에 대한 욕망이나 집착이 없고 만백성 앞에 군림하는 왕좌의 매력을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을 보다 더 잘 알면서도 양보할 수 있었던 것은 현대인도 따를 수 없는 뛰어난 지성과 높은 안목 때문에 자신의 욕망쯤은 억제할 수 있었던 것일 게다.

현재 우리가 눈앞에 보고 있는 여러 국가들을 볼 것 같으면 후진국일수록 지배자의 자세가 확립되어 있지 않은 것 같은 데 이러한 경향은 국민의 후진성을 이용해서 지배자의 욕망을 무한정 채워 보자는 데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최후에 어떤 비참한 모습으로 국민들로부터 도태당했던가는 인도네시아의 스카루노 전 대통령이나 파키스탄의 아유브 칸 전 대통령의 예를 보더라도 알 수 있는 것이며, 우리나라의 이승만 전 대통령의 최후가 보여준 비극만으로도 충분한 본보기가 되었을 텐데 그래도 그 전철을 밟으려는 심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리더십에 어긋남이 없는 투철한 자세를 취할 수 있는 지도자라면 머지 않아 역사적인 인물로 추방받게 되리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지도자는 자신의 역량을 과대평가하는 편견을 버려야 하며, 양심과 인격으로써 위치를 판단할 수 있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지도자를 국민은 진정으로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또한 개인의 욕망을 떠나서 대의를 따르는 청렴, 결백하고 과감한 인격의 소유자가 어느 시대에나 요구되고 있다는 것을 덧붙여 말해 둔다. (주석 3)


주석
3> <자료집 02>.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월파 서민호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서민호, #월파_서민호평전, #월파서민호평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