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09 06:56최종 업데이트 23.02.09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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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 [편집자말]

2022년 12월 13일 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며 한덕수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전날 한 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 윤 대통령은 12월 임시국회에서 '법인세법 개정안'은 반드시 통과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대통령실


코로나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로 인한 에너지와 공급망 위기로 세계 경제는 차갑게 식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한국은 고물가와 고금리에 더불어 수출 부진까지 더해지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런 요구에 윤석열 정부가 선택한 정책은 이명박 정부와 마찬가지로 경제활성화를 위한 노동규제완화와 법인세 감세이다. 법인세 최고세율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25%에서 22%로 인하한 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부터 연 소득(과세표준) 3000억 원 초과 대기업을 대상으로 25% 세율이 적용됐다.


윤석열 정부 들어 법인세 인하 문제가 다시 쟁점이 되었고, 국민의힘의 3%p 인하안과 민주당의 1%p 인하안이 대립하다가, 최종적으로는 1%p 인하로 결정되어 최고세율 24% 적용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법인세 인하가 투자 촉진과 낙수효과를 낳을 수 있는가? 재계인사들도 법인세 인하가 투자와 직결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례로 최태원(SK 회장)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작년 말 대한상공회의소 기자간담회에서 '법인세를 무차별로 인하한다고 투자가 일어나지 않는다', '정부가 취약계층을 보호해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최태원 회장의 발언 취지는 투자를 명분으로 SK의 주력 사업인 반도체 업종 등에 세금 감면을 요구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재계도 일괄적인 법인세 인하가 곧 투자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법인세 인하를 통한 투자 촉진과 경제활성화 방안은 현재 복합적 위기인 한국 경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안이한 처방임은 분명해 보인다.

복합위기에 빠진 한국 경제

2023년 현재 한국 경제는 복합적 위기 상황이다. 기재부 전망에 따르면 2023년 물가상승률은 3.5%인 반면, 경제성장률을 1.6%의 저성장이다. 저성장의 원인은 무엇보다 외적 요인이 크다. 미중 패권경쟁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예상치 못한 코로나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병목현상과 에너지 위기는 인플레이션을 불러왔다.

여기에 미국발 금리 인상과 달러 강세는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쳐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을 촉발시켰다. 이런 대외 압력과 세계 경기둔화, 3고 시대는 부동산과 주식 시장 침체, 가계부채와 난방비 등 한국 경제 전반과 가계에 심각한 부담을 주고 있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서 수출 전망도 좋지 않고, 수출을 주도하는 대기업들은 투자에 적극적이지 않으니 경기회복의 실마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고 미국의 금리가 인하되어 외적 요인의 압박이 줄더라도 한국의 성장률 둔화가 쉽게 반등할 것 같진 않다. 한마디로 한국 경제는 복합위기이다.

많은 사람들이 위기 극복 대책으로 수출을 살려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 투자 확대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나라든 수출과 투자가 확대되면 좋은 일이고 축소되면 나쁜 일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현재 경제 구조가 수출에 대한 의존성이 크기 때문에 수출이 위축되면 충격이 작지 않다. 게다가 에너지 원료와 자원을 거의 보유하지 않은 우리나라는 외국에서 이를 사오기 위해서라도 일정 규모의 달러는 반드시 벌어야 한다.
 

[그래프 1] 실질경제성장율과 법인세 최고구간 세율 출처: 실질경제성장률은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자료. 법인세율은 예산정책처, 조세의 이해와 쟁점Ⅱ-법인세(2014) & 예산정책처, 조세수첩(2022). ⓒ 정세은

 
문제는 윤석열 정부가 노동규제를 완화하고 최고구간 법인세 세율, 즉 거의 수출 대기업에만 적용되는 법인세 세율을 인하해서 투자와 수출을 증가시키자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실제로 그 효과가 나타날 것인가이다. [그래프 1]을 보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고 법인세율은 계속 낮아져 왔지만 한국경제 성장률도 계속해서 같이 하락해 왔다. 한국 경제를 돌아보면 수출 대기업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준다고 투자와 수출이 자동적으로 늘 것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크게 두 개 시기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 2008년 세계금융위기까지이다. 이 시기는 세계화 시대이자 중국이 세계 경제대국으로 급속히 성장한 시기이다. 한국은 중국발 성장동력에 힘입어 성장했고,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래프 2]에서 볼 수 있듯이 대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수출이 늘었지만 성장률은 오히려 낮아졌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수출의 낙수효과 감소 때문이다. 그 원인은 대기업이 노동규제 완화를 이용하여 노동을 구조조정하고 세계화를 활용하여 공급망을 국내 중소기업보다 해외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허용한 것은 비효율적 부문을 덜어내고 효율적인 일자리를 더욱 많이 만들라는 취지였지만 결과는 노동을 구조조정하고 국내 중소기업과의 연계성을 줄여버렸다. 물론 전통적으로 행해오던 단가 후려치기, 기술 탈취도 계속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양극화가 과거에는 대기업-중소기업 간에 발생했다면 외환위기 이후에는 대기업-중소기업/정규직-비정규직이라는 여러 개의 균열로 복잡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그래프 2] 수출증가율 출처: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자료 ⓒ 정세은

 
두 번째 시기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 발생부터 현재까지이다.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금융위기 직후 반짝 회복했던 수출증가율은 곧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2014년 이후로는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 시기 수출둔화는 미중패권경쟁이 야기한 세계화의 후퇴, 안전하고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를 위한 세계화 재편이 진행되는 것에 기인한다.

이것은 가격 효율성이라는 이유만큼이나 신뢰할만한 공급망이 수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세계화 재편이라는 구조적 문제에 대해 윤석열 정부는 우리나라 수출 대기업이 '초격차'를 달성하면 된다는 식으로 더욱 강력한 노동규제 완화와 세율 인하 혜택을 몰아주려 하고 있다.

대기업은 투자 꺼리고 투자해도 늘지 않는 고용

현재 세계 경제는 패권 경쟁으로 인한 세계화 퇴조·공급망 재편성이라는 '경제의 안보화'와 더불어 디지털 전환 및 에너지 전환이라는 판의 재편 과정에 있다. 디지털 전환과 에너지 전환 시대를 맞아 주요 산업 선진국들은 국가와 기업이 함께 대대적인 선제 투자에 나서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한국의 투자 전략은 매우 중요한 사인이다.

현재 총투자율 즉 '국내총생산(GDP) 대비 총투자 비중'이라는 지표상으로 한국의 투자는 30% 정도를 유지하고 있어서 이를 근거로 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 힘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투자가 많고 적음은 총투자율뿐 아니라 투자증가율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투자증가율은 크게 하락했다. 단지 경제성장률이 동시에 떨어져서 GDP 대비 총투자 비중이 일정한 규모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외환위기 이후 투자는 분명 둔화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으며 이러한 현상이 외환위기 이후 경제성장률 하락의 중요한 요인이 되어왔을 것이고 향후에도 지속된다면 디지털과 에너지 전환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투자가 활발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투자 재원이 부족해서일까? 그렇지는 않다. 외환위기 이후 전체 GDP가 가계, 기업, 정부 사이에 분배되는 비율을 살펴보면 정부 소득 비중과 분배되는 비율은 그대로인데, 가계소득은 줄어들고 기업소득은 증가했다.
 

[그래프 3] GDP가 가계, 기업, 정부 소득으로 분배되는 비중 (단위 GDP 대비 비중, %) 출처: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 정보 ⓒ 정세은

 
이와 동시에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이 빠르게 증가해 왔다. 사내유보금은 모든 비용을 지출하고 법인세를 내고서 남은 이윤으로서 배당하지 않고 법인 내에 유보한 이윤이다.

2022년 10월 국회 예산정책처가 더불어민주당 홍성국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00대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지난 10년간 약 400조 원 가까이 늘어 2012년 630조 원에서 2021년 1025조 원에 달했다. 10대 기업으로 범위를 좁혀도 같은 기간 260조 원에서 448조 원으로 188조 원 늘었다.

기업들은 이 사내유보금을 모두 현금의 형태로 쌓아두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만일 이 사내유보금을 가지고 대규모 실물투자에 나선다면 이윤이 증가하면 투자가 증가하고 고용이 증가한다는 낙수효과를 기대해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법인의 자산 내역을 보면 공장이나 기계설비 자산보다 금융투자자산이 더 많다는 것이다.

결국 수출기업이 충분한 재원이 있어도 실물투자보다는 금융투자로 수익을 내고 있으니 중소기업과 상생발전이나 일자리 창출을 통한 낙수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사내유보금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세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투자에는 소극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핵심은 돈이 없어서 투자를 못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기업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투자처가 없으니 투자를 안 한다'고 한다. 그러니 당연히 세금을 내리더라도 그것 때문에 투자가 늘 리가 없다. 반대로 중소기업들은 투자를 하고 싶어도 투자할 여력이 없다.

따라서 국가 전체 차원의 총투자를 늘리기 위해서 정부가 신경 써야 할 정책은 대기업의 법인세 인하보다 중소기업의 투자 확대를 위한 파격적이면서도 세심한 정책일 것이다.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성장할 수 있는 가치사슬과 공급망을 탄탄하게 재구성하는 것이며, 이를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다. 정부의 지원은 이미 글로벌 기업으로 알아서 잘하고 있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의 기술경쟁력과 인적 지원에 초점을 둬야 할 것이다.

대기업의 투자와 중소기업으로의 낙수효과와 더불어 투자에서 봐야 할 또 하나의 문제는 가계소득으로의 '낙수효과'이다. 투자는 기업소득 성장과 더불어 가계소득 성장으로 이어질 때 소위 '낙수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 즉 기업의 성장이 좋은 일자리 확대와 안정화로 이어지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래프 4] 전 세계 산업용 로봇 밀도(2021) 출처: World Robotics 2022. 숫자는 노동자 1만명당 로봇 대수. ⓒ 국제로봇연맹

 
그런데 한국은 대기업의 투자가 고용 확대로 이어지지 못했다. 현재 한국 대기업의 투자는 주로 자동화와 로봇 투자이기 때문이다. [그래프 4]에서 볼 수 있듯, 전 세계 산업용 로봇 밀도에서 한국은 독일과 일본, 중국 등 세계 주요산업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3~4배 가량 월등히 높다.

특히 한국의 대표적 수출산업인 전자산업과 자동차산업에서 로봇화 수준이 높은데 그러다 보니 이 산업들에서 투자와 수출이 일어나도 낙수효과가 발생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자동화 투자가 무조건 부정적이라고 볼 수 없지만 현재 한국에서는 투자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 투자가 고용으로 연결되는 효과는 매우 약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한국 경제 성장 위해 필요한 정책

세계화 시대에 대기업은 한국 중소기업 대신 세계 속에서 효율적인 공급망을 찾았고 법인소득과 가계소득의 양극화를 발판으로 글로벌 기업에 올라섰다. 또한 대기업은 중소기업과 동반성장을 할 수 있는 투자보다는 사내유보금을 활용한 부동산과 금융투자로 수익을 냈으며 그사이 사회 양극화는 심화되었다.

세계화가 퇴조하고 공급망 경쟁이 안보가 된 오늘, 우리 경제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위치는 이전과 확연하게 다르다.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안정적인 공급망 파트너로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폐화되고 약체화된 한국 중소기업은 '부메랑'이 되어 한국 대기업들에 돌아오고 있다.

약한 중소기업 문제는 세계 공급망 재편으로 열린 기회의 시기에 한국의 도약할 기회를 줄일 것이다. 공급망 재편 시기에 한국 중소기업이 강력한 소부장(소재·부품·장비)기업과 강력한 기술특화기업으로 자리하고 있다면 한국 대기업의 공급망 파트너를 넘어 세계적인 유니콘, 데프콘으로 성장할 기회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수출 대기업의 법인세 인하와 같은 단선적인 경제정책으로는 현재의 복합적인 경제 위기를 넘을 수 없다. 대기업-중소기업의 상생 생태계를 전략적으로 구축해야 하고, 이 성과가 좋은 일자리와 노동 보호로 이어져야 한다.

현재 윤석열 정부의 정책은 1980년대 영국의 경제위기 때 이루어졌던 대처 정부의 극단적인 보수개혁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해서 영국은 제조업 경쟁력을 상실한 탈제조업 국가가 됐다. 수출주도경제인 한국이 영국을 따라 탈제조업국가가 되는 것이 우리의 미래는 아닐 것이다.

수출 대기업의 성장은 중요하다. 그러나 법인세 인하는 답이 아니다. 대기업이 나서서 강한 중소기업과 혁신적인 스타트업이 나올 수 있는 생태계의 선구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이 방향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우수한 인재들의 창업을 돕고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 또한 모든 기업이 좋은 일자리를 창출해서 사회양극화 완화와 내수진작을 통한 성장동력을 확보하도록 정책을 펼쳐야 한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이러한 논리로 노동규제 완화와 법인세 세율 인하를 추진해 왔지만 낙수효과는 없었다. 투자 확대와 수출경쟁력 강화는 단순히 노동규제를 완화해 주고 수출 대기업의 세금을 감면해주는 방식의 지원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은 국내 중소기업의 기술경쟁력 강화와 대기업-중소기업 연계 재구축, 미래 기술산업에 대한 정부의 선제적 인프라 구축 등을 포함해서 한국의 경제전략을 근본적으로 다시 짜야 하는 시기이다.
  
필자소개 :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실행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관심 영역은 한국경제 성장과 분배 선순환 문제, 복지국가 실현을 위한 조세 및 재정정책 등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기획자문위원회와 국민경제자문회의의 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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