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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이는 설 명절의 예산시장 풍경
 북적이는 설 명절의 예산시장 풍경
ⓒ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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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시장이 시끌벅쩍하다. 이유는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아래 백 대표)의 새로운 프로젝트가 바로 예산시장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9일부터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했다. 백 대표는 유튜브를 통해 '백종원 시장이 되다'라는 영상을 공개하며 이 프로젝트를 지역 살리기 프로젝트라고 불렀다. 백 대표는 이를 "사회공헌"이면서도 "새로운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월 설 명절 예산에 방문했다. 예산에서 나고 자란 어른들은 시장의 변화가 좋게 느껴진다고 말했고 프로젝트 이후 인파가 몰린다는 소식도 전해줬다. 유명 인사가 진행한 프로젝트이기 때문인 걸까? 도대체 어떤 변화가 있기에 많은 인파가 몰린 건지 궁금했다.

예산시장 앞에 도착했다. 야외 주차장은 자동차로 가득했다. 명절에 예산과 인근을 방문한 이들이 소식을 듣고 몰린 듯했다. 
 
예산시장 골목 막걸리
 예산시장 골목 막걸리
ⓒ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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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시장의 첫인상은 '레트로'와 '로컬'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레트로'는 외적인 풍경에 관한 느낌이다. 예산시장은 옛 시장 모습 그대로를 살렸다. 천장 구조와 매장 구조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간판이다. 과거 영업장의 간판을 그대로 사용한 점포도 있고 새로 간판을 제작한 점포도 보였는데 주변 상가들과 조화로운 디자인이었다. 

둘째, '로컬'은 점포에서 판매하는 메뉴에 관한 느낌이다. 당시 시장 내에서는 구운 고기, 치킨, 국수, 막걸리 등을 즐길 수 있다. 국숫집 옆쪽에는 소면을 건조하는 모습도 관찰할 수 있고 예산 쌀과 사과를 활용해 만든 골목 막걸리를 즐길 수 있다. 정육점에서 육류를 구매하고 옆쪽에 '불판을 빌려주는 집'에서 불판을 대여하여 시장 내 노상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작용을 방지하는 선진 사례
 
예산시장 프로젝트 내부
 예산시장 프로젝트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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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예산시장은 매우 흥미로웠다. 옛 시장을 보존하고 개보수했다는 사실에도 놀랐지만 예산시장 프로젝트를 백 대표의 진심이 과정 가운데 느껴졌기 때문이다. 백 대표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점포를 직접 매입했다고 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심 내 낙후 지역에 상류층의 주거 지역이나 고급 상가가 새롭게 형성되는 현상을 뜻한다. 미국에서는 어떤 동네의 부가 늘어나고 과거보다 거주민들 중 부자, 백인, 젊은 층이 많아지는 과정으로 일반화하여 사용된다. 

국내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여 사용하는 측면이 있다. 주거 혹은 상업 목적으로 외부인이 유입되면서 지가와 임대료 상승으로 인해 본래 거주하던 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을 뜻하는 용어로 '둥지 내몰림 현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표적인 지역으로 서울시 이태원, 경리단길을 사례를 들 수 있고 서촌 궁중족발 사례는 젠트리피케이션 부작용의 대표적인 사례다.

백 대표는 시장 내 점포들이 임대료 상승으로 인한 피해를 애초에 차단하기 위해 점포를 매입한 것이다. 사업가로서 사업 영역에서 잔뼈가 굵다 보니 뻔히 예상되는 피해를 방지하고자 한 결정이다. 도시 연구자나 전문가도 방지하지 못하는 피해를 요식업 사업가인 백 대표가 미리 예상하고 방안을 내놓은 게 인상적이다.
 
줄 서서 기다리는 국숫집 풍경
 줄 서서 기다리는 국숫집 풍경
ⓒ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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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점포 매입 때문에 예산 내에서 백 대표의 행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들도 있었다고 한다. 오히려 오해를 산 것이다. 이는 백 대표 유튜브에서도 공개되었는데 필자가 예산을 방문했을 때에도 예산에서 자고 나란 사람들을 통해 소식을 듣기도 했다.

먼저 시장 내 점포를 매입하는 과정이 쉽진 않았다고 한다. 개인 명의로 점포를 매입한 게 아니라, 백 대표가 이사장으로 있는 예덕학원 명의로 매입했다. 도교육청 설득을 통해 허가를 받는 과정을 거쳤다. 그 일련의 과정들이 탄탄대로는 아니었을 것이다. 

공공기관뿐일까. 선한 목적으로 접근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의심하는 상인들이 존재했다. 이는 백 대표가 공개한 유튜브에서는 실제 시장 내부에서 일부 상인들의 부정적인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상인을 설득하는 지난한 소통 과정을 겪었다. 장사가 잘 되면 수익의 절반을 상인회에 내겠다는 약속도 한다. 

백종원이 예산시장으로 간 까닭
 
공사가 완료된 시장 내부 통로
 공사가 완료된 시장 내부 통로
ⓒ 이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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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프로젝트의 비용은 더본코리아와 백 대표 사비로 진행된다. 수많은 오해와 곱지 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왜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걸까? 

유튜브 영상에서 백 대표는 "돈 벌건데, 좋은 일 하면서 벌고, 폼나게 벌자는 거지"라고 말한다. 쉽게 말해 돈도 벌고 좋은 일도 하겠다는 것. 좋은 일이라는 것은 지역을 살리겠다는 사회공헌적 차원을 뜻한다. 

백 대표는 2019년 황량하고 적막한 예산시장을 보면서 양가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이러다 지역이 없어지겠다는 불안함과 동시에 옛날 게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촉이 왔다고 한다. 위기이자 기회로 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지역을 살리려고 한 걸까?

답은 어렵지 않다. 백 대표는 예산고등학교의 재단인 예덕학원 이사장이기도 한 예산 출신이다. 고향을 향한 애착 덕분 아닐까? 이와 완전히 닮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떠오르는 사례가 있다.

마이크로소프사의 공동 창업주인 빌게이츠와 폴 알렌은 뉴멕시코 주 앨버키키에서 창업했다. 그런데 그들은 둘 다 시애틀 출신이었는데 자랐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고 시애틀로 회사를 옮겼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가 시애틀을 변화시켰다. 시애틀은 '절망의 도시'로 표현될 정도로 암울한 도시였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사 이전 이후 가장 성공적이고 혁신적인 도시로 발돋움한다. 이 내용들은 책 <직업의 지리학>에 자세히 나온다.

업종이 다르다는 점과 백 대표가 이주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지역 활성화의 계기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두 사례는 유사하다.

서울시립대 정석 교수는 연구실 세미나 도중 '노블레스 오블리주' 형태의 지역 살리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가진 자들이 베푸는 사회를 만드는 방향의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는데, 예산시장이 이를 대표하는 사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백 대표처럼 '폼나게 돈 벌고자 하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백 대표가 도시 연구자나 행정가는 아니지만, 예산 프로젝트를 보며 도시를 공부하는 필자는 깊은 영감을 얻었다. 막대한 자본과 많은 프로젝트로 도시 전체를 바꾸려는 시도보다 예산시장 프로젝트처럼 특정 공간을 중심으로 변화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배울 점이 있었다. 또한 지역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쩌면 막대한 자본이나 특정 기술이 아닌,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본질적인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그럼에도 유일하게 아쉬웠던 점은 육류 위주 점포였다는 점이다. 백 대표 식품 산업의 주 종목이 육류여서 그런지 육류 위주의 매장 점포였다. 필자와 같이 육식을 하지 않는 이들이 즐길 만한 음식이 많지 않았는데 이런 부분은 점차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백종원 효과'가 전국에 연쇄적으로 퍼지길
 
예산시장 내부 전통과자 판매점
 예산시장 내부 전통과자 판매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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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백종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군에 따르면 1월 9일 정식 오픈 이후 일주일 만에 방문객 1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설 명절 당시에도 시장 내부와 몇몇 국숫집 앞에서 일렬로 늘어선 행렬을 목격할 수 있었다. 

전통시장 내 뻥튀기를 비롯한 전통과자점이 있는데 필자도 뻥튀기를 구매했다. 실제로 예산시장 프로젝트 이후 판매 실적도 오르고 방문객도 많이 늘었다고 한다. 더불어 LG전자와 LG U+도 지역 활성화에 후원을 보태고 있고, 유명 인플루언서들도 시장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양산하고 있다. 

어찌 보면 예산군 입장에서는 복덩이가 굴러들어 온 격이다. 백 대표가 지역 경제 활성화 관점에서 노력하고 있다면 군에서는 시장을 둘러싼 콘텐츠를 만들고 생산하는 데 보탬이 되는 사업을 구상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지금은 상가 내에 새로 입점한 점포들은 요식업에 그치고 있지만, 문화예술에 기반한 창작 활동을 하는 단체나 동네 이야기를 공유하고 만드는 동네 서점과 같은 업종을 지원하는 사업도 모색해 보면 지역 관광 콘텐츠가 더욱 풍성해지지 않을까.

아마도 다른 지자체나 중앙정부 부처에서도 예산시장을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공공기관은 새로운 모험을 하는 사업보다는 성공적인 사례가 있는 사업을 선호하는 편이다. 예산시장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세금을 투입한 여러 사업들이 생겨나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지역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어떤 식으로든 지역이 되살아났으면 좋겠다. 예산시장 프로젝트는 유명 인사의 기업과 지역이 연계한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기사를 빌어 백 대표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백 대표가 놓은 일종의 지역 활성화 '침술'이 예산시장과 인근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계정(@rulerstic)에도 실립니다.


태그:#예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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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에게 덜 폐 끼치는 동물이 되고자 합니다. 그 마음으로 세상을 읽고 보고 느낀 것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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