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에 개봉했던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씨(이영애 분)는 자신의 딸을 유괴하고 자신을 유괴범으로 만든 백선생(최민식 분)에게 원한을 갖고 교도소에서 복역하는 13년 동안 철저한 복수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교도소에서 출소한 금자씨는 곧바로 자신이 유괴했던 원모의 부모를 찾아가 스스로 손가락을 자르며 용서를 빈다. 자신에게 원수는 백선생이지만 원모의 부모에게 '가해자'는 자신이기 때문이다.

같은 해 개봉했던 방은진 감독, 엄정화 주연의 또 다른 복수극 <오로라 공주> 역시 마찬가지. 여러 사람의 무관심과 불친절로 사랑하는 딸을 잃은 순정(엄정화 분)은 딸의 죽음과 관련이 있었던 사람들에게 복수를 시작한다. 자신의 딸을 죽인 후 정신병으로 교도소가 아닌 치료감호소에 들어간 진범까지 죽인 순정은 면도칼로 자신의 목을 긋는다. 딸을 죽게 만든 책임이 있는 '마지막 사람'을 향한 최후의 복수를 행한 것이다.

흔히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복수를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영화에서 주인공에게 자주 등장하는 복수의 이유는 바로 '모성애'다. 여성의 모성애야 말로 영화에서 관객들을 설득시키기 가장 좋은 명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여러 사람을 죽인 여성이 주인공이지만 그녀에겐 모성애 따윈 찾을 수 없다. 진지함을 빼면서 오히려 관객들에게 독특한 웃음을 제공했던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이었다.
 
 <달콤,살벌한 연인>은 순제작비 9억으로 전국220만 관객을 모은 가성비가 매우 뛰어난 영화였다.

<달콤,살벌한 연인>은 순제작비 9억으로 전국220만 관객을 모은 가성비가 매우 뛰어난 영화였다. ⓒ CJ ENM

 
최강희의 반전 연기

1995년 <신세대 보고-어른들은 몰라요>를 통해 데뷔한 최강희는 이듬해 청소년드라마 <나>에서 청순한 매력을 뽐내며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1998년 한국영화 역사상 최고의 호러영화로 꼽히는 <여고괴담>에서 그 유명한 학교 복도귀신 역을 통해 관객들을 큰 충격에 빠트렸다. 최강희가 연기했던 <여고괴담>의 명장면은 20년이 넘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예능프로그램에서 수시로 패러디되고 있다.

최강희는 매우 인상적이었던 영화 데뷔작 이후 <학교1>과 <광끼>, <단팥방>,<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등에 출연하며 영화보다는 드라마에서 더욱 활발하게 활동했다. 2001년 영화 <와니와 준하>에서 신인이었던 조승우와 멜로연기를 선보였지만 <와니와 준하>에서 최강희와 조승우는 메인이 아닌 서브커플이었고 영화 역시 서울관객 10만으로 좋은 흥행성적을 기록하지 못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그렇게 'TV전문배우'로 이미지가 굳어지던 최강희는 2006년, 박용우와 함께 신인 손재곤 감독의 독특한 로맨틱 코미디 <달콤, 살벌한 연인>에 출연했다. 상업영화로는 턱없이 적은 순제작비 9억 원에 불과했던 <달콤, 살벌한 연인>은 두 주연배우의 호연과 신선한 시나리오가 조화를 이루며 전국 220만 관객을 동원했다. <달콤, 살벌한 연인>은 2006년에 개봉한국영화 중에서 흥행 10위를 기록할 정도로 극장가에 작은 이변을 일으켰다.

2009년 고 김영애 배우와 가족 드라마 <애자>, 2010년에는 이선균과 로맨틱 코미디 <쩨쩨한 로맨스>에 출연한 최강희는 2011년 드라마 <보스를 지켜라>,2012년 <7급 공무원>에 출연하며 영화와 드라마 활동을 병행했다. 하지만 2013년 최강희의 단독주연영화 <미나문방구>가 전국 33만 관객에 그친 후에는 <화려한 유혹>과 <추리의 여왕>,<굿 캐스팅> 등 드라마 위주로 활동을 하고 있다.

도덕적 죄책감 잊고 즐겨야 하는 영화
 
 <달콤,살벌한 연인>은 로맨스 영화답게 두 주인공의 달콤한 애정행각도 대단히 많이 등장한다.

<달콤,살벌한 연인>은 로맨스 영화답게 두 주인공의 달콤한 애정행각도 대단히 많이 등장한다. ⓒ CJ ENM

 
물론 9억은 일반 직장인이라면 평생 손에 쥐어 보기도 쉽지 않은 엄청나게 큰 돈이지만 거대 자본이 투입되는 상업영화에서는 그리 큰 돈이 아니다. 실제로 <달콤, 살벌한 연인>과 같은 해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달콤, 살벌한 연인>의 12배에 달하는 11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하지만 <달콤, 살벌한 연인>은 최소한의 제작비로 최대의 효과를 누리며 관객들에게 쏠쏠한 사랑을 받았다.

청순하고 매력적인 여주인공 미나(최강희 분)는 최소 3명의 남자를 죽인 살인자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미나의 살해과정이나 동기, 그 속에 담긴 끔찍한 뒷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대신 서른이 넘도록 연애를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순진한 대학강사 대우(박용우 분)와 본의 아니게 사람을 죽여야 했던 미나의 로맨스에 집중한다.

미나 역의 최강희 역시 매력적인 연기를 선보이지만 박용우의 연기도 발군이었다. <쉬리>에서 낙하산 요원, <동감>에서 다정한 선배, <작업의 정석>에서 손예진의 스토커를 연기했던 박용우는 <달콤, 살벌한 연인>에서 고질적으로 허리가 좋지 않은 대학강사를 실감나고 코믹하게 표현했다. 시종일관 코믹연기를 선보이다가 자신을 왜 신고하지 않았냐는 미나의 물음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신고해요?"라고 반문하는 반전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장편 데뷔작으로 대한민국 영화대상 각본각색상과 디렉터스 컷 어워즈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손재곤 감독은 2010년 한석규와 김혜수 주연의 <이층의 악당>을 차기작으로 선보였다. <이층의 악당>은 전국 60만 관객으로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훗날 관객들에게 '코미디 영화의 수작'으로 재평가 받았다. 손재곤 감독은 2020년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만든 안재홍, 강소라, 전여빈 주연의 3번째 영화 <해치지 않아>를 통해 전국 120만 관객을 동원했다.

영화를 이끄는 두 명의 명품조연
 
 조은지(왼쪽)와 정경호는 뛰어난 연기로 주인공 못지 않은 존재감을 뽐냈다.

조은지(왼쪽)와 정경호는 뛰어난 연기로 주인공 못지 않은 존재감을 뽐냈다. ⓒ CJ ENM

 
<달콤, 살벌한 연인>은 대부분의 이야기가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혼자 사는 대우와 달리 미나는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2명의 주변인물이 꽤 높은 비중으로 등장한다. 미나가 평소엔 순진한 표정으로 대우를 만나지만 알고 보니 사람을 죽이는 반전행동으로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면 미나의 룸메이트 장미는 술을 들고 미나의 남자친구 대우를 유혹하러 갈 정도로 과감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장미는 미나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미나와 동갑이라고 나이를 속이고 같은 집에서 함께 산다. 하지만 미나가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후에는 자신의 실제 나이를 밝히고 미나에게 언니라고 부르며 짐꾼을 자처한다. 조은지는 2000년대 초반부터 여러 영화에서 개성 있는 연기를 선보이다가 지난 2021년 류승룡, 오나라 주연의 <장르만 로맨스>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해 백상예술대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미니홈피가 유행하던 시절, 자신의 1촌 신청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후배를 심하게 구타하는 장미의 남자친구 계동은 미나가 전남편의 유산을 물려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장미와 미나가 살고 있는 집으로 찾아온다. 처음엔 미나의 유산을 받기 위해 미나의 시체유기까지 돕지만 장미와의 다툼 후 칼을 휘두르다 자신의 목에 상처를 낸다. 이성을 잃은 계동은 칼을 들고 미나에게 달려 들지만 미나는 소주병으로 계동을 제압한다.

현재 드라마 <일타스캔들>에 출연하고 있는 1983년생 배우 정경호와 동명이인인 1972년생 배우 정경호는 서울예대 연극과 출신으로 <두사부일체>,<목포는 항구다>,<구타유발자들> 등에서 깡패나 동네 양아치로 출연했다. 2007년 드라마 <하얀 거탑>에서는 장준혁(김명민 분)의 오진으로 세상을 떠난 환자의 동생으로 출연했는데 재판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다가 결정적인 순간 돈을 들고 잠적하며 형수와 조카에게 비수를 꽂는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달콤,살벌한 연인 손재곤 감독 최강희 박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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