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글을 쓴 시민기자는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던 현장에 있었습니다. 참사의 생존자인 그는, 지난 11월 2일 한 포털사이트 커뮤니티에 참사 이후 자신이 받은 상담 기록을 일기와 대화 형태로 정리해 올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태원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독자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그 기록을 그대로 옮깁니다. 그간 '水'라는 필명으로 글을 썼으나, 이제는 실명을 밝히고 기사를 연재합니다.[편집자말]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국회 추모제에서 유가족들이 헌화하고 있다.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국회 추모제에서 유가족들이 헌화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선생님, 지난 5일 이태원 참사 100일을 맞아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국회추모제에 다녀왔습니다. 생존자 발언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나선 자리지만, 도착하자마자 숨이 가빴어요. 

희생자들의 영정사진과 이름들이 모셔져 있는 광경에 갑자기 예상치 못한 슬픔이 닥쳐왔고, 수없이 많은 취재진의 숫자에 압도당해 시작부터 힘들어졌던 게 사실입니다.

지난 1월 국회에서 열린 2차 공청회 때처럼 국회의원들 앞에서 발언하는 건 줄 알았는데, 국화꽃을 받기엔 너무 어린, 밝게 미소를 짓고 있는 친구들의 사진 앞에 무너졌습니다. 역시나 국회의원은 하나도 무섭지 않았던 겁니다. 나를 약하게 하고 울게 만드는 건, 오로지 희생자와 유가족이었습니다.

내게 '잊으라'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 

한 차례 주저앉고 다시 정신을 차려 어찌저찌 발언하고 나왔더니 이번엔 나를 안고 한 희생자의 어머님이 말하셨습니다.

"용기내줘서 고마워요. 나는 초롱씨가 다 잊고 행복하고 밝게만 살아줬으면 좋겠어. 다 잊고, 잘 살아줘요. 행복하게만, 응? 그러면 난 정말 바랄 게 없네. 이 이야기 꼭 해주고 싶어서 찾아왔어요. 

진상 규명도, 그냥 우리가 다 할 일이니까 신경 쓰지 말고, 이제 더 울지 말고 씩씩하게 잘 살아줘요. 너무 큰 짐은 다 버려두고, 앞으로는 웃고 살 일만 걱정했으면 좋겠네. 그간은 용기 내주길 바랐는데 오늘 보니 못 할 짓이다 싶어. 그냥 젊은 친구들은 원래 살던 대로 밝고 밝게 사는 게 그게 우리를 위한 것 같아. 그동안 고마웠어요."


내게 '잊으라'고 했던 많은 사람들 중에, 잊으라고 말해도 되는 유일한 사람은 유가족밖에 없습니다. 잊어달라는 요청이 이렇게도 슬프고 위로가 된다니, 도대체 어떤 슬픔이 나와 그들에게 존재하는지. 우리가 갖고 있는 연대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 그건 우리만 알겠지요. 

내가 밝게 사는 게, 평범하게 웃고 지내는 게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열심히 웃으며 살아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들의 잊어달란 요청은 고이 접어두고 사는 동안 내내 기억하며 살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이 등장해 이태원 참사 유족을 위한 노래를 부를 때,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너와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슬피 울었습니다. 당리당략도 없었고, 정쟁도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이래야 했습니다. 이런 공적 추모가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사는 동안 절대 끝나지 않을 그들의 이야기, 네버엔딩 스토리로, 노란 리본이 빨간 머플러를 위로합니다.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 가기를' 

백발의 아버지가 노란 리본을 붙들고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리며 합창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년이 다 되어도 저들의 슬픔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노란 리본의 슬픔이 빨간 머플러의 현재 슬픔을 위로하는 것을 보며 정말 '끝나지 않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잊으란 말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이 슬픔에 과연 '치유'라는 게 있을까요. 

적극적으로 먼저 무언갈 하며 도울 수는 없지만, 방관자의 삶으로부터 벗어나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습니다. 치유는 없지만, 위로와 연대는 만들어 갈 수 있으니까요.

유가족 분들이 저의 글을 모두 다 챙겨보셨다며, '앞으로 계속 글을 써주세요'라고 말하시는 걸 들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아픔에 공감해줄 수 있는 일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글쓰기뿐이니, 저는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과연 영화가 될 수 있을까. 정말 그럴까요. 알 수는 없지만... 그런 영화 같은 일이 이뤄져 가기를 바라며 네버엔딩 스토리를 그려보려 합니다. 

용기를 냈습니다, 변화를 목격하고 싶습니다 
 
6일 오전 서울시청앞에 설치된 이태원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영정사진에 노란리본이 달려 있다.
 6일 오전 서울시청앞에 설치된 이태원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영정사진에 노란리본이 달려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10.29 이태원 참사 국회추모제 발언 전문>

정말... 울고 싶지 않았습니다.
강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왔고,
저도 제가 여기까지 와서
또 이렇게 눈물을 흘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슬픈 11월을 석 달에 걸쳐 지나왔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그리워하던 시간이었는데 
여기 와서 직접 보고 들으니
그리움이 구체화돼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100일간 심리상담기를
신문사와 인터넷에 연재한 김초롱입니다.

글의 제목은 '선생님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였고,
지난 100일간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이런 반응들이 보이더군요.
'제목 한번 감상적이다, 힘들고 슬픈 건 알겠는데, 너무 오바한다.
저게 다 사실이라고는 거짓말 같은데 msg 많이 쳤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상담 첫날, '나는 왜 이렇게 힘드냐, 내가 참사 생존자가 맞느냐'고
선생님께 직접 여쭤봤던 그 말이
누군가에게는 소설이라고 읽힐 정도인가 봅니다. 

글 속에 묘사된, 내가 직접 겪고 나를 지금까지 힘들게 하는 상황이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났다고는 믿을 수 없는 끔찍한 참사이긴 하구나 하면서
역으로 이태원 참사의 참혹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이 현실은 일반 시민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2차 공청회 때 생존자 발언을 하러 국회에 온 날(1월 12일),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들에게 기대감이 없었습니다.
실상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 조치도 하지 않는 거라 굳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생존자 발언이 시작된 후,
놀라우리 만큼 집중하는 여야 의원들을 보며 당황했습니다. 
이것이 진짜 생존한 사람들의 감정이구나,
실제 현장은 이랬구나, 느끼는 듯한 모습들이 놀라웠습니다.
이것을 희망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절망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참사가 발생한 지 약 70일이 된 시점이었고,
특수본 수사발표(1월 13일)가 있기 하루 전이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알아주어 감사하다고 해야 할지,
왜 이제까지 모르고 있었느냐고 원망해야 할지. 어지러웠습니다. 
그리고 오늘 100일입니다. 여전히 변한 것이 없습니다. 

참사 이후 제가 용기를 계속해서 내며 세상에 목소리를 낸 이유는
세상이 조금이라도 변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습니다.
정말 이대로라면, 용기를 낸 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하며 비관적으로 살아가겠지요.
용기를 낸 대가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을 목격하는 것뿐이라면 
저는 정말이지 다시는 용기를 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오늘 나오면서도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안고 가까스로 나왔습니다.
용기를 내기가 정말 어려운 나라입니다. 

저는 최근에 가장 염려하던 그날을 맞이했습니다.
심리 상담사 선생님께,
'죄송하지만 이제 더는 당신의 상담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고백할 그날을 말이죠. 

세상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진상규명이 되지 않으면 결국 본질적인 원인이 제거되지 않습니다. 
진상규명을 하려는 세상의 의지가
재난 트라우마를 갖은 사람에게는 유일한 극복의 열쇠입니다. 

아직도 나서지 말라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이 참사의 참상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데
저조차 외면한다면, 그저 그런 일 정도로 묻힐 겁니다. 

저는 자꾸 남아있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기억해달라는 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사실 많이 슬프고,
오늘도 사실 이 자리를 나가지 못 하겠다고 거절할까,
직전까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오고 나서 많이 후회했습니다. 

꼭 올해도 이태원으로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즐기러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태원이 위험한 곳이라고 금기시되고,
무서운 곳이라는 인식이 없어질 수 있게 도와야 합니다.
나의 일상을, 그들의 일상을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복구시켜줘야 합니다.
학습되지 않게 도와주세요. 

이태원으로 핼러윈을 즐기러 갔던 이유는
매년 별 문제 없는 곳이었기에,
이번에도 별 문제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참사가 일어나고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그곳에서 사고가 나지 않은 이유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고가 나지 않기 위해 예방했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참사의 유일한 원인은, 정말로,  
그동안 했던 것을 하지 않은 것, 바로 군중 밀집 관리의 실패입니다. 
진상규명이 절실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트라우마를 없애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입니다. 

잘못 없는 이들이 더이상 고통을 겪지 않게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태그:#이태원참사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 기사는 연재 이태원 압사 참사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Welcome, We stand with you. You are safe here


독자의견

해당 기사는 댓글 서비스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