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5.02 11:00최종 업데이트 23.05.0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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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집의 방 천장이 될 판재 작업이 끝나고, 처마 쪽 판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노일영

 
남편은 흙집의 천장이 되는 부분의 서까래 위에다 판재를 자르고 못질을 하기 시작했고, 6일이 지나 대충 완성했다. 하지만 흙벽 밖으로 나온 서까래에 올려야 할 판재 작업이 남아 있었다.

나는 나무망치로 흙벽을 두드리다가 남편이 판재를 올려 달라고 하면, 판재를 서까래 위로 올려 주는 일을 했다. 그런데 남편이 판재를 자르고 못질을 하는 걸 보면 탄식이 절로 나왔다.


내가 보기에 흙벽을 쌓는 것에 비하면 그다지 힘든 작업도 아닌데, 갈수록 진도가 느려졌기 때문이다. 못을 10개 정도 박고 30분을 쉬고, 또 못 10개를 박고 물 마시고 오줌 누고 내게 말을 걸어서 자화자찬에 빠지고···.

요즘 말로 일과 개인의 삶 사이의 균형을 이르는 개념인 '워라밸'의 균형이 심각하게 편향적이었다. 남편은 지붕 위에서 하는 작업은 원래 속도가 느려진다고 말했지만, 그 말은 그저 추레한 변명 정도로 느껴졌다.

남편이 뭔가를 시도해서 아예 실패해 버리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수작을 부릴 때 애초에 처음부터 결사반대해서 의지를 꺾을 수 있는데···. 문제는 남편이 내놓는 결과물이 성공도 아니고 실패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가 많다 보니, 나는 실패라 여기고 남편은 성공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별명이 '경솔의 아이콘'인 남편은 경솔을 정상이라 여기며, 더욱 경솔해지면서 경솔의 극한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남편이 투덜대며 망치질을 하는 걸 보며 '이제는 경솔을 마무리 지어야 할 때가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보, 흙집 이거만 끝내고 이제 딴 일은 그만 좀 벌이면 안 될까? 지금 상태를 보면 당신 인생에서 최고 걸작이 나올 거 같으니까, 이걸로 종결을 지으면, 최고 수준에서 은퇴하는 거잖아, 안 그래?"
"그렇지? 나 잘하고 있지?"

"그럼! 더 이상 완벽할 수 없지. 이거 끝내고 괜히 딴 거 뭐 만들었다가, 그게 잘못되면 이 흙집은 재수로 얻어걸린 게 되는 거잖아. 그러니까 이번 생에서 이걸로 건축 여정은 막을 내리는 게 어때?"
"어쨌든 이 흙집 쿨한 거지?"


남편은 내 말에 담긴 의도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그저 칭찬에만 귀를 쫑긋 세웠을 뿐이다. 그래도 남편은 내가 한 말에 힘을 얻었는지, 덜 투덜대며 못 20개 정도를 박고 5분만 쉬는 패턴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어이구, 그놈의 칭찬이 뭐라고···.'

깐죽거리는 게 귀여울 뿐이다
 

남편이 판재 작업을 하다, 잘못 못질한 판재를 뽑고 있다 ⓒ 노일영

 
서까래 위에다 판재를 잘라 못질하는 작업은 흙벽을 경계로 안쪽과 바깥쪽이 좀 달랐다. 6일이 걸려 마무리한 방의 천장이 되는 부분은 조각조각 자른 판재를 판판하게 펼쳐 못을 박았지만, 처마 쪽의 작업은 판재의 끝부분을 겹겹이 겹쳐서 못질을 했다. 궁금해서 물었다.

"이쪽은 왜 이렇게 나무를 겹쳐서 못질하는 건데?"
"그게, 그게···."


남편은 지붕에서 내려와 흙집 안에 놓인 '흙집 짓는 법' 책을 집어 들고 한참이나 뒤적이기 시작했다. 남편은 허세의 끝판왕이라서 쥐꼬리만큼 아는 내용을 가지고도 전문가처럼 말할 줄 알았다. 뭐 그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남편은 자기가 하는 작업이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게, 흙집의 천장이 되는 부분은 흙으로 덮고 난 뒤에 방수포를 까는데, 이쪽 처마 부분은 흙을 덮지 않고 방수포를 깔아야 하니까, 방수 기능을 위해 이렇게 작업하는 거라고. 판재들을 이렇게 겹쳐서 못질하면 아무래도 비가 새지는 않을 거니까. 이제 알겠지?"

'어쭈구리? 이 양반 좀 보소. 책을 30분이나 뒤적여서 알아낸 내용을 마치 내게 강의를 하듯이 말하네.'

"아, 그래서 겹쳐서 못질하는 거구나. 우리 남편은 모르는 게 없네?"
"당신도 알다시피 내가 한 똑똑하잖아. 머리 좋아, 몸도 튼튼해서 이런 흙집도 직접 노동해서 만들어···. 내가 당신한테 좀 과분한 편이지."


예전 같았으면 내 입에서 "에라이, 뭐라고?"라는 말이 자동적으로 튀어나왔겠지만, 이제는 남편이 깐죽거리는 게 그냥 귀여울 뿐이다.

따듯한 감정이 일렁거렸다
 

눈이 와서 작업 중인 흙집을 가빠로 덮었다. ⓒ 노일영


처마 쪽 판재 작업을 8일 정도 했을 때 오전에 비가 요란하게 쏟아졌다. 판재 작업이 거의 끝나 갈 즈음이었다. 남편과 나는 준비해 놓은 가빠(두꺼운 비닐로 만든 덮개)로 흙집 전체를 덮기 시작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허둥지둥거리느라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대형 가빠 2개를 서까래에 걸쳐 놓기만 했을 뿐, 사전에 어떻게 흙집을 덮을지 예행연습을 한 번도 하지 않은 터라 나 역시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때 엄마가 나타났다. 엄마는 5분도 안 걸려서 가빠로 진공 포장하듯 흙집을 완전히 밀봉해 버렸다.

농민들은 가빠 같은 덮개 작업에 익숙하다. 비가 오면 말리고 있는 수확물이 젖지 않도록 최대한 빨리 덮개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50년 가까이 농사를 지은 엄마에게 가빠로 흙집을 덮는 건 누워서 전원일기를 보며 식은 죽 먹는 것보다 쉬운 일이다.

딸에게 막노동을 시키는 사위를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엄마는 밭에서 일하다가 비가 오자마자 바로 흙집이 들어서고 있는 자신의 집 마당으로 뛰어온 것이다. 그만큼 사위와 딸이 미덥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분명 엄마는 우리가 가빠를 붙들고 갈팡질팡 어쩔 줄 몰라 할 것이라 생각했고, 실제로 남편과 나는 그런 처지였다.

"아이고, 우리 장모님은 날다람쥐다, 날다람쥐! 어쩌면 이리 재빠르신지···."
"사위, 사위 말은 내가 짐승 새끼란 기가?"


엄마의 대꾸에 남편은 기가 죽어서 아무런 말도 못 했다. 눈치코치가 전혀 없는 남편이지만, 엄마의 일격에는 숨이 턱 막혀 버린 것이다. 엄마는 원래 가족이나 남들에게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그런데 흙집을 짓는다며 자신의 딸을 쥐어짜 내며 노동 착취하는 사위가 미웠던 모양이다.

그날 오후 밀봉된 흙집 안에서 엄마와 나, 남편 셋이서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비가 많이 와서 엄마도 밭일을 하러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빠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소주를 마시니, 굳이 흙집이 완성되지 않아도 이 정도라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슴 속에서는 뭐라 정의할 수 없는 따듯한 감정이 일렁거렸다.

"사위, 아까 내가 한 말은 묵히 놀 필요 엄따.(묵혀서 오래 생각할 필요 없다.)"
"아닙니다, 장모님. 저는 장모님의 통찰에 놀랐을 뿐입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다 짐승 새끼가 맞구요. 그저 문화라는 코드가···."


남편은 주절주절 어려운 말을 늘어놓았다.
'어이구, 이 화상아! 지금 그 분위기가 아니라고!'
 
덧붙이는 글 <함양타임즈>에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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