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는 말야, 사랑에 성공이란 게 있을까.
다만 어디까지 가다가 멈추는 게 사랑 아닐까.
언제나 불완전하고 미완으로 끝나기 마련인 것이 사랑의 본질이 아닐까. 언제나 서툴고 모자란 것이 사랑이 아닐까. 

나태주 시인이 BTS의 노랫말에 글을 덧붙인 <작은 것들을 위한 시> 중 한 부분이다. 이를 읽으면,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 속 상황을 정리한 문장처럼 느껴진다.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 스틸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 스틸 ⓒ JTBC

 
'아니 조영민 PD는 어디서 저렇게 딱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골라내는 걸까?'

조영민 PD가 연출했던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사랑의 이해>는 분명 다른 작가들이 쓴 다른 드라마인데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이어진다. 하나의 주제를 가진 서로 다른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옴니버스 드라마처럼. 등장인물들은 서로 다른 배경,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결국 '사랑'이라는 매개를 통해 자신에 이른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사랑의 이해>가 사랑이라는 걸 매개로 자신에게 이르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다른 점도 있다. <사랑의 이해>는 14부까지 여전히 사랑을 두고 좀처럼 '조우'하지 못하는 주인공들을 통해 사랑이 가지는 맹목적인 지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들은 사랑을 한다. 온 마음을 다해서. 그런데 그 사랑이 쉬이 상대방에게 가닿지 않는다. 왜? 그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사랑, 자신의 삶에 천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사랑

저마다의 사랑이라는 점에서 가장 이해하기 쉬운 인물로 꼽을 만한 이는 박미경(금새록 분)이겠다. KCU은행 영포점에 대리로 발령을 받아 온 박미경은 오랜만에 본 학교 선배 하상수(유연석 분)에게 끌린다. 호의를 표하면서 서슴없이 다가서는 박미경, 하상수는 말한다. 자신은 박미경에게 100%가 아니라고, 박미경은 그래도 괜찮다고 한다. 자기가 좋으니까.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좀처럼 가까워지지 못한다. 마치 박미경이 가지고 싶다면 그 무엇이라도 가지게 해주고 싶다는 박미경의 아버지처럼, 그는 하상수의 처지에서는 부담스러운 비싼 양복과 거기서 한 술 더 뜬 외제차를 선물하려 한다. 그가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한껏 퍼붓는다면 하상수도 자신의 것이 될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외려 하상수는 그만큼 멀어진다. 비단 안수영(문가영 분) 때문만은 아니다. 

드라마 속에서 배경이 된 '은행'이라는 공간은 평범한 직장이지만, 동시에 우리 사회의 겹겹이 뚫기 힘든 계급적 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박미경은 그저 자기 잘난 덕에 대리가 된 줄 알았지만 성과와 실적, 그리고 배경이 중요한 은행에서 아버지라는 후광 덕에 어린 나이에 대리가 될 수 있었다. 연수원 실적 1등이지만 가진 것 없는 배경으로 실적에 고군분투하는 하상수는 그래도 대졸이라는 뒷배를 가진 은행 내 진골에 속한다.

하지만 같은 진골이라 하더라도 말이 강남이지 친구네 빌라 지하에서 오로지 공부만을 통해 스스로를 길어 올렸던 하상수에게 박미경이 보이는 넘치는 부의 친절은  그가 가진 상대적 결핍이라는 트라우마를 건드리고 만다. 그래서 그는 박미경이 온갖 선심을 쓰며 다가갈수록 오그라든다. 자신과 결혼하면 어차피 네 것이 될 것이라는 그 말에 하상수의 마음은 굳게 닫힌다.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 스틸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 스틸 ⓒ JTBC

 
그저 사랑이면 되는 건데, 사람 사는 세상의 사랑은 저마다 사람들이 걸친 세상의 굴레로 인해 사랑의 거리를 멀어지게 만든다. 하상수에게 마음을 열까 했던 안수영처럼 말이다. 

계약직으로 시작해서 하나하나 스스로 쌓아 올려 주임이 된 안수영(문가영 분)은 그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창구 전담직이라는 이유로 성 밖의 사람 취급을 당한다. 일반직 전환 면접에서 면접관들은 외려 묻는다. 왜 자꾸 전환 신청을 하냐고. 청경 정종현(정가람 분)과의 스캔들이 나자, 은행 직원들은 '어울리는 사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안수영은 교차로에 선 복잡한 하상수의 표정에 지레 뒷걸음질 친다. 그리고 어울린다는 정종현과의 관계로 도망친다. 그는 사랑을 선택한다 했지만, 그 속에는 그가 지난 4년 동안 은행에서 견뎌낸 '트라우마'가 속속들이 배어있다. 

정종현은 따스하게 다가왔던 사람이다. 하지만 막상 두 사람이 '연인'이라는 관계가 되자 또 다른 서열이 등장한다. 드라마는 '사랑'을 하겠다는 데 자꾸 현실이 발목을 잡는다. 정종현이 가진 가정적 어려움을 안수영이 이해할수록, 아낌없이 도울수록 정종현에게는 사랑이 아니라 빚이 늘어나는 듯하다. 

자신이 사랑에서 '을'이 되고 싶지 않았기에 하상수를 떠났고, 안심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종현과의 사랑을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종현과의 사랑을 펼쳐보니, 그곳에 있는 건 '연민'이거나 혹은 안수영 자신이 짊어졌던 어두운 지난날의 그림자뿐이었다.  

아마도 14회에서 가장 충격적인 건, 사라져 버린 안수영이었을 것이다. 소경필(문태유 분)까지 내세우며 도망쳤던 그에게 하상수가 다가갔다. 여느 드라마라면 이쯤에서 두 사람의 해피엔딩이 이루어질 만도 하건만, 안수영은 하상수와의 관계를 지우듯 떠나버린다. 

사랑으로 치자면 이보다 더한 순애보가 어디 있을까. 드라마 소개에서도 사랑의 '상수'라고 하던 하상수는 안수영에 대한 자신의 사랑에 있어서 한결같다. 안수영이 정종현과 사귀고 자신에게 다가온 박미경에게 마음을 여는가 싶었지만, 안수영을 향한 그의 마음은 도무지 꺾일 줄 모른다. 이제 정종현도 사라지고, 박미경도 사라졌는데 안수영마저 사라졌다. 

사랑조차 버거운 청년들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 스틸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 스틸 ⓒ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는 사랑에 대한 이해라는 제목을 갖고 있지만 사실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사는 젊은이들에 대한 이해라고 하는 게 더 맞지 않을까 싶다. 은행이라는 같은 공간을 공유하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네 명의 젊은이들에게는 사랑조차 버거울 정도로 저마다의 삶이 있다.

안수영은 왜 사라졌을까. 지난주 방송에서 수영은 함께 술을 마시던 상수에게 '거짓말 게임'을 빙자한 고백을 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그는 하상수를 사랑하지 않아서 사라진 게 아닐 것이다. 하상수와의 사랑을 버텨낼 자신이 없었기에, 사랑의 모래성이 허물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허물어 버리고 떠난 게 아닐까. 

하지만 하상수에게는 지친 안수영이 보이지 않는다. 한결같이 뜨거운 자신의 마음만으로도 벅차다. 사랑이라 말하지만 그런 면에서 하상수 역시 자신만의 맹목적인 마음에 매달려 있다. 

박미경은 스스로 포기했다. 정종현은 이제 더는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안수영은 사라졌다. 달려가던 하상수는 주저앉고 만다. 세상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저마다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사랑을 하는 이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이들은 자신만의 울타리를 깨고, 사랑의 이해(利害)를 넘어 진정으로 사랑을 향한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사랑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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