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애프터썬> 포스터

영화 <애프터썬>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

 
일상을 살다 보면 문득 어린 시절 기억에 남는 여행을 떠올릴 때가 있다. 수많은 여행 중에서도 그 여행의 공기와 분위기를 세세하게 떠올릴 수 있는 그 여행은 마음속 깊이 남아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때 겪었던 즐거운 기억과 부모와 다퉜던 기억까지도 무척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 당시 부모의 나이가 된 자식의 입장에서 그 여행은 지금의 내 위치에서 그 당시 부모의 어려움과 감정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추억이기도 하다.

사실 어린 시절, 특히 사춘기 시절에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기 어렵다. 많은 것을 부모에게 바라지만 부모는 모든 것을 다 해줄 수 없다. 금전적인 문제도 있고, 그 당시의 상황이 그것에 장애가 되기도 한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부모는 자신의 아이에게 좋은 것을 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어딘가로 같이 여행을 가는 것은 자신들의 휴양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이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아니 부모와 자식 모두가 같이 기억할 수 있을 만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비싼 여행비를 들여가면서 여행을 다니지 않을 것이다. 그 여행에서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자식들은 그때 부모의 마음을 어렴풋이 떠올리게 된다.

아빠와 딸의 평범한 튀르키예 여행을 따라가는 이야기

영화 <애프터썬>은 튀르키예로 여행을 떠난 아빠 캘럼(폴 메스칼)과 딸 소피(프랭키 코리오)의 모습을 보여준다. 현재의 소피(실리아 롤슨 홀)는 이미 성인이 된 상태고 아이도 있다. 그가 과거 아빠의 캠코더에 녹화된 여행 영상을 보며 떠올리는 과거의 모습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다. 영화 속 캘럼과 아내는 이미 이혼한 상태이고, 캘럼은 딸 소피와 같이 살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서 아빠 캘럼은 튀르키예의 한 호텔을 예약하고 딸과 휴가를 함께 하며 시간을 보내려 한다.
 
 영화 <애프터썬> 장면

영화 <애프터썬>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

 
캘럼이 예약한 호텔은 그렇게 좋은 곳은 아니다.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는 캘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호텔로 예약했고, 여행 내내 소피에게 미안해한다. 이제 막 사춘기가 된 소피는 그런 아빠의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고 그런 아빠와 잘 지내려고 한다. 소피의 눈에는 주변 자신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언니와 오빠들의 행동들에 관심이 더 가게 되고 그런 호기심이 자꾸만 다른 행동을 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그것이 나쁜 짓은 아니고 여행의 일반적인 루틴에서 조금 벗어난 정도다.

수영을 하고, 선탠을 하고,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 아주 일반적인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의 여행은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인다. 이국적인 튀르키예의 풍광과 새로운 사람들, 그리고 옆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빠와 소피가 영화가 담는 전부다. 때론 소피는 아빠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기분이 상한 아빠는 소피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이내 사과하지만 그만큼 그때의 아빠는 여유가 없어 보인다. 영화 후반부 침대에 앉아 펑펑 우는 캘럼의 뒷모습은 무척 공허하고 슬퍼 보인다.

어려움을 감추고 추억을 선사하려 노력하는 아빠

자신들이 처한 상황이 아주 행복한 건 아니지만 두 사람이 여행을 즐기는 모습은 꽤 보기 좋다. 서로의 모습을 캠코더에 담으면서 작은 농담을 주고받고 주변 여행지에 쇼핑을 다니면서 우스꽝스러운 스트레칭 동작을 같이 하기도 하는 두 사람은 여행지에서 만큼은 무척 행복해 보인다. 특히나 영화 중반에 두 사람은 튀르키예 전통 무늬로 만들어진 카펫을 구경한다. 두 사람이 멍하니 같이 카펫을 보고 앉아있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소피가 수영장에서 노는 사이에 캘럼은 혼자 카펫 가게를 찾아 한 카펫을 구입한다. 그 카펫을 자신이 가져갈 것인지, 아니면 누구에게 선물할 것인지를 영화는 알려주지 않지만 영화 후반부에 비추는 성인 소피의 집에 깔려있는 카펫은 아빠가 구입한 그 카펫 무늬다. 그것이 실제로 아빠가 선물한 것이든 소피가 한참 뒤에 비슷한 무늬의 카펫을 산 것이든 그것이 아빠와의 여행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영화 <애프터썬> 장면

영화 <애프터썬>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

 
동영상 캠코터로 녹화된 그 당시의 영상을 보고 있는 성인 소피는 그 여행 즈음 아빠의 나이가 되었다. 조금은 지쳐 보이는 그 모습은 여행지에서 지쳐 보이는 아빠의 모습과 겹친다. 어린 소피가 아빠에게 '11살로 돌아간다면 뭘 하고 싶은지' 묻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그 질문에 아빠 캘럼은 답을 하지 못한다. 그 당시 자신이 처한 현실은 11살로 돌아간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딸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을 해주면서도 그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그에게는 과거로 돌아가기보다는 지금 만난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었을 것이다.

사춘기인 소피가 그 여행지에서 본 것들은 새로운 것들이다. 다른 커플들의 스킨십 장면에 특히 눈이 자주 간다. 아주 사소하게 스쳐 지나가지만 여행지에서 벌어지는 조금 적극적이고 과감한 장면들은 아빠와의 추억과는 별개로 소피의 기억에 남았다.

아련한 추억, 그때의 아빠 나이가 된 소피의 시선

소피의 11살 아빠와의 여행은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그리고 성인이 된 소피는 과거의 영상을 보면서 그 당시 아빠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아빠가 최선을 다해 행복한 추억을 남기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는 아주 평범한 여행의 모습을 담는 것 같지만 그 여행은 소피가 자라면서, 또 성인이 되면서 계속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이다. 영화는 어쩌면 사소하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한 순간이 얼마나 오랫동안 한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영화는 샬롯 웰스 감독의 자전적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유년기 시절 빛바랜 사진같이 남아있는 기억들을 영화적으로 아름답게 담아 보여준다. 유년기에 받은 추억의 감정을 잘 살린 영화 <애프터썬>은 57회 전미 비평가 협회에서 감독상을 수상했고, 39회 뮌헨 국제영화제에서 시네비전상을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부모와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영화다. 또한 현재 아이를 키우고 있는 성인들이 과거 자신들이 부모와 갔던 여행을 떠올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약간은 촌스럽고 투박해 보이는 화면을 보면서 관객 자신이 가지고 있는 추억을 꺼내보게 만든다는 측면에서 꽤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영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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