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의 한 장면.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의 한 장면. ⓒ 채널A

 
남들과 삶의 방식이 조금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다. 전문가 오은영도 인정한 역대 출연자 중 '자아강도 1위'라는 정훈희의 파란만장 인생사가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2월 3일 방송된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는 가수 정훈희가 의뢰인으로 출연했다. 데뷔 56년 차인 정훈희는 17살에 데뷔곡 '안개'를 히트시키며 스타덤에 올랐고, 국제가요제 6관왕을 휩쓸며 원조 한류스타로 등극했다.
 
'안개'는 지난해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의 OST로 쓰이면서 반세기 만에 다시 역주행 신화를 쓰기도 했다. 박 감독은 <헤어질 결심>의 기획이 정훈희의 '안개'에서 시작되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정훈희는 2022년 청룡영화제 축하무대에서 직접 '안개'를 열창했고, 주연배우 탕웨이가 노래를 듣다가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훈희의 고민은, 남들과는 조금 다른 결혼생활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었다. 정훈희의 남편은 1세대 로커인 가수 김태화다. 남편 김태화와 라이브 카페를 운영 중인 정훈희는 당시에도 파격적인 무대로 유명했던 김태화의 첫 인상에 "미친 X이었다"고 돌직구를 날리면서 "그렇게 노래하는 사람을 처음봤다.미친 X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그런 남자라서 매력에 빠졌다"며 러브스토리를 전했다.
 
하지만 정훈희는 44년째 부부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김태화와 '각방'에 살다가 심지어 지금은 '각집'에서 살면서 별거하고 있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전했다. 두 사람은 주말에는 라이브 카페에서 만나 듀엣을 하고 방송에도 함께 출연하면서 따로 또 같이 일명 '별거부부'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정훈희는 "1980년대는 사회분위기가 지금과 달랐다. 여자연예인에게 연애-결별-결혼-이혼했다는 것은 '여자 팔자 끝'이라고 하던 시절이다"라고 밝혔다. 그런 시대에 정훈희는 혼전동거에 혼전출산을 했고 결혼식도 하지 않고 혼인신고만 하는 등, 그야말로 시대를 앞서간 파격적인 부부 라이프를 살았다.
 
수상한 낌새를 채고 연애를 하냐고 묻는 한 기자의 질문에는 쿨하게 "연애가 아니라 같이 산다"고 밝혔다고. 정훈희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1년 이상 살면 장 지진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벌써 44년을 살았는데 장 지진 사람 아무도 없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그런 사람들에게는 '너나 잘살아'라고 해주고 싶다"고 팩트폭행을 날렸다.
 
결혼식 없이 동거를 하게 된 계기에 대하여 정훈희는"데이트 해야 하는데 갈 곳이 없어, 시선을 피할 데이트 장소가 필요해 친구 집에 빈방을 얻게 됐다. 우리 아지트였고 같이 있다가 여기서 자자! 그랬다"며 당당하게 고백했다.

당시 사회는 여자 연예인들에 대한 보수적인 시선이 강했다. 한 연예언론에서는 '미혼모 정훈희, 아들 낳다'는 제목의 자극적인 보도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훈희는 "가수가 노래만 잘하면 되지"라며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은영은 "요즘 시대의 기준을 봐도 범상치 않다"면서 감탄했다.
 
별거 이유도 별 것 없이 간단했다. 정훈희는 "저녁이 되면 김태화는 컴퓨터를 하고 난 책만 읽으며 각자 생활을 했다. 그럴 바엔 각방 쓰자는 생각이 들었다"라면서 "이제 부산으로 가며 자연스럽게 별거하게 됐다 가까운 사람은 안다. '저 부부가 편하게 살기 위해 따로 사는 구나'라고. 짜인 틀에 맞춰살 필요 없으니까"라고 답했다.
 
오은영은 정훈희에게 결혼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정훈희는 잠시 생각하다가 정훈희는 "좋아하고 사랑하니까 같이 있자. 그리고 아이를 낳은 후에는 아이를 함께 키우는 '친구'였고, 중년이 됐을 때는 '동지', 노년의 부부는 전쟁터에서의 '전우'가 됐다"면서 인생의 연륜이 담긴 통찰을 전했다.
 
어느덧 70대의 고령이 된 부부는 건강문제로 번갈아 어려움을 겪었다. 김태환은 위암수술, 정훈희는 뇌혈전으로 고생했다. 정훈희는 "우리가 언제 어디서 아플지 모른다. 삶이란 전쟁터에서 서로 내 전우를 지켜야 하는 전우애가 생겼다"고 고백했다.
 
오은영은 김태화-정훈희에 대하여 '분거 부부'라는 정의를 내렸다. 갈등이 있어서 떨어져지내는 부정적 의미가 강한 별거부부와는 달리, 주말부부나 기러기부부처럼 특정한 목적으로 인하여 따로 사는 부부를 의미한다.
 
아무리 사이가 좋고 편안한 부부라고 해도 각기 다른 사람이 한 가족이 되었을 때 이른바 갈등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오은영은 결혼생활 중 최소한의 두 번의 '대환장기'가 찾아온다고 분석하며 대표적으로 신혼 초기와 중년기에 이혼율이 높아진다고 밝혔다.
 
정훈희는 자신의 결혼생활 첫 번째 대환장기였던 신혼 시절을 회상하며 "동거 시작하면서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다"는 놀라운 일화를 고백했다. 또한 김태화가 "타협이 안 되는 성격"이라고 언급하며 "그만 살아야하나 싶어 가출해서 절친 임희숙 집으로 갔다"는 일화도 밝혔다. 결국엔 이틀 뒤 김태화가 찾아와 사과하면서 마음을 풀고 그후 결혼식까지 올렸다고.
 
중년 시절에는 소통, 중년 우울증, 자녀와의 갈등으로 고비를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 정훈희는 "50대 중반에 갱년기가 오면서 우울증에 걸린 적이 있다"고 밝히며 "그때는 부모 자식이고, 친구, 남편도 아무 이유없이 다 싫었다. 나 스스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더라"며 심각했던 순간을 회상했다. 김태화가 "우리 이혼해야 하나. 내가 그렇게 싫어?"라고 이야기할 정도였다고. 그제야 머리에 무언가 얻어맞은 듯 충격을 받은 정훈히는 "여보 미안해,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고 사과하며 남편을 붙잡았다.
 
정훈희와 김태화는 알고보니 성향이 극과 극이었다. 정훈희는 남편 김태화가 상남자 로커의 이미지와 달리 잘 삐지고 꼼꼼하고 예민한 성격인 반면, 자신은 쏘쿨하면서 털털하고 허당끼가 있는 여장부 타입이라고 고백했다.
 
오은영은 정훈희 부부가 "서로를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맞추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상대의 생각, 취향, 관심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특징을 분석했다. "현재의 분거생활은 부부가 더 함께 잘 살기 위한 슬기로운 타협점을 찾은 것"이라고 칭찬했다.
 
그 이유로 오은영은 "정훈희는 정서적 개방성이 높다"는 진단을 내렸다.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만큼, 타인의 경험과 감정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나와 다른 의견과 지적도 겸허하게 수용하는 것은 정서적 개방성이 높은 사람들의 특징이다.
 
정훈희는 한창 활동하는 당대에 보기드문 개방적인 여성가수로 살면서 뜻하지 않은 고초에 휘말리기도 했다. 군사정권 시절인 1970년대 사회정풍운동의 일환으로 벌어진 대대적인 연예계 대마초 파동 당시, 정훈희는 마약을 하지 않았음에도 연루되었다는 의혹에 휩싸이며 방송출연정지를 당했다고 밝혔다.

또한 정훈희는 김태화와 동거기간 중 다툼으로 한때 이별을 고민했던 시기에 한 기자가 임의로 작성한 이별기사 때문에 2년간 또 방송정지를 당했던 코미디같은 일화도 고백했다. 그렇게 정훈희는 무려 7년 가까이 신곡을 발매하지 못하고 억울하게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암울한 시기를 보내던 정훈희를 구원한 것은 7년 뒤 작곡가 이봉조의 명곡인 '꽃밭에서'를 만나게 되면서부터였다. 이봉조 작곡가는 다른 가수들의 러브콜도 거절하며 오직 정훈희만을 위하여 기다려줬다고.
 
정훈희는 "이봉조 선생님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꽃밭에서'와 '안개'로 지금까지 사랑을 받을 줄 몰랐다. 선생님은 저에게 은인"이라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렇게 가수 정훈희는 성공적으로 재기할 수 있었다. 오은영은 정훈희의 사례를 시련을 겪은 후 더 성숙해지고 단단해지는 '외상후 성장'이라고 표현했다.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의 한 장면.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의 한 장면. ⓒ 채널A

 
이러한 정훈희의 외상후 성장이 가능했던 숨은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아버지였다. 여성에게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정훈희의 부친과 오빠들은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선입견을 깨고 고명딸 정훈희를 존중해줬다고. 정훈희의 이름에 담긴 남다른 의미도 '나라에 훈풍을 몰고 올 여성'이 되라는 뜻이라고 한다.
 
부친은 정훈희에게 항상 "능력있는 여자가 돼라. 남자에게 끌려가는 삶을 살지마라"고 가르쳤다고. 그 시절 어른들과 달리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없었던 아버지는 항상 정훈희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면서 응원하고 독립심을 불어넣었다. 정훈희는 "아버지와 오빠들의 가르침 덕분에 그 시절 여성과는 다르게 컸다. 이렇게 키워주신 아버지께 감사하다"고 고백했다. 오은영과 패널들도 시대를 앞서간 정훈희 부친의 깨우침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오은영은 정훈희가 '자아 강도(인생의 경험을 적극 수용하고 책임질 수 있는 정도)가 높은 사람'이라고 진단했다. 자아강도가 뛰어난 사람들은 불안과 두려움을 잘 견디고, 내면의 충동을 억제하며 자아를 위협하는 좌절에 대한 내성이 높다. 오은영은 "금쪽상담소를 찾은 사람 중 정서적 안정과 건강성, 통찰력이 가장 높다"며 정훈희를 극찬했다.
 
다만 자아강도가 높다는 것도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오은영은 "자아강도가 높으면 이상과 목표도 높아진다. 무소의 뿔처럼 자꾸 혼자서만 가려고 하면 옆에 있는 사람들이 힘들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훈희는 이에 수긍하며 "남편에게 44년을 살면서도 사랑표현이 부족했다. 손편지 한 장 써보지 못했다"고 반성했다.
 
오은영은 정훈희를 위한 솔루션으로 영화 제목을 빗댄 '사랑할 결심'을 조언했다. 오은영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면서 살아온 만큼, 이제는 주변을 돌아보며 더 견고하고 단단하게 사랑할 결심을 하시라"고 당부했다.

정훈희는 "오늘 상담을 받으면서 내가 진짜로 잘 살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남편에게 편지 한 줄부터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고백하며 "태화 오빠 표현력이 없어서 미안해. 잘할게"라며 남편에게 보내는 애정의 메시지로 훈훈하게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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