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린 시절, 엄마의 손을 꼭 잡고 할머니 댁에 가면 할머니가 버선발로 맞아주시며 하시던 말씀이 있죠?

"아이고, 우리 강아지 왔어?"

할머니의 환대가 푸지도록 마음을 채워주었지만 한편으론 얼떨떨하기도 했어요. 왜 나를 자꾸 강아지라고 부르시는 걸까? 강아지라고 부르는 거 별론데. 난 아이이긴 하지만 사람인데. 

그런데 그 시절의 어머니만큼 나이를 먹은 지금은, 할머니가 왜 손주들을 강아지라고 부르셨는지 납득이 가요. 아이들을 보면 정말이지 '강아지 같다!' 싶거든요. 쫄랑쫄랑 걸어가는 품새며 쪼르르 뛰어가는 경쾌한 움직임이며, 작고 아담한 사이즈며, 발걸음마다 뚝뚝 떨어지는 사랑스러움과 귀여움까지. 

강아지라는 말이, 어쩔 줄 모르게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할머니의 애정 표현이었음을 알게 되었지요. 
 
아이들
 아이들
ⓒ Unplash

관련사진보기

 
산책을 하다 보면 귀여운 아이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시큰둥한 표정까지 똑 닮은 일란성 쌍둥이가 나란히 유모차를 타고 있는 모습이나, 걸음마를 막 떼기 시작한 아이가 떨어진 나뭇잎을 나름 진지하게 탐색하는 모습,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어린 동생을 호위하듯 걸어가는 모습. 어찌나 실컷 뛰어놀았는지 발그레진 볼에 아이스크림 바를 하나씩 물고 있는 아이들에게선 추위의 기색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갈증을 가시는 달콤하고 시원한 맛, 그것이 지금 저 아이들이 느끼는 세상에 대한 맛이겠지요.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에 구겨진 마음을 펴며, 지치지 않고 뛰어노는 마음을 생각합니다. 운동장의 끝에서 끝으로 내달리고 철봉에 거꾸로 매달리며 정글짐을 스파이더맨 저리 가라 가로지르고 싶은 열망 같은 것을. 
 
문방구
 문방구
ⓒ 김지영

관련사진보기

 
초등학교 앞, 오래된 문구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코팅과 복사도 해주는, 역사가 오래된 듯한 가게입니다. 조심스럽게 문구점 출입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들어서자마자 박스 채로 바닥에 늘어선 장난감들이 보입니다. 

고철에 회색칠을 한 선반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그 위에 문구류며 학용품들이 사람의 손을 탄 후 어지러워진 채로 놓여있습니다. 기대했던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아니어서 조금은 아쉬운 마음으로 가게를 빠져나옵니다. 

문득 문방구 탐색을 더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지도 앱에 '문방구'를 검색해 보니,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문구점이 있습니다. 오래된 주택 골목을 구불구불 걸어 또 다른 문구점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기쁜 마음도 잠시, 생기를 잃은 듯 낡고 오래된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문구점은 구도심의 상가 건물들 뒤편에 위치해 있습니다. 근처엔 동네 시장도 있어 예전엔 제법 번화가 역할을 했을 듯한데, 지금은 인적조차 줄어든 모습입니다.

고개를 돌려 골목의 끝에서 아이들이 뛰어오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아이들은 참새가 방앗간을 드나들 듯 문구점을 들락날락하며 골목 전체를 놀이터 삼아 놀았겠지요. 지난날의 영광을 품고 있는 문구점을 찬찬히, 눈에 담아 봅니다.

어린 시절, 학교 앞 문방구는 그야말로 보물섬이었습니다. 문구용품, 장난감, 화방용품, 군것질 거리까지 어린이의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문방구에 있는 것만 같았지요. 슈퍼마켓집 딸, 빵집 딸 다음으로 되고 싶은 것이 문방구집 딸이었어요. 

이 무궁무진한 보물섬의 세계에 매일 머무를 수 있다니. 알록달록한 물감과 공주 인형, 각종 놀이용품과 부대끼며 살아갈 수 있다니, 세상 부러운 사람이 따로 없었습니다. 아마, 문방구집 딸의 사정은 저의 짐작과는 조금 달랐겠지만요.

문방구 사장님은 학교 선생님 다음으로 아는 게 제일 많은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학교 준비물을 사러 가면 그게 무엇이든 척척 가져다주시는 것이, 세상에서 사장님이 모르는 물건이란 없는 것 같았어요. 문방구는 놀이터이면서 아지트 때론 만남의 장소가 되어주었지요. 

이제 문방구는 프랜차이즈 생활용품점이나 무인 문구점, 혹은 디자인 문구점으로 대체되는 것 같습니다. 추억의 문방구는 이제 문구 거리나 관광지의 상점 정도로만 흔적을 남기고 사라져 가는 듯 보입니다. 

문방구가 사라진다고 삶의 불편을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던 정취를 아이들이 더는 느끼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면 조금 아쉽습니다. 동심을 애써 지워가며 숙제처럼 매일을 살아가는 동안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합니다. 

매일이 즐거운 놀이로 가득했던 축제 같던 시절을 떠올립니다. 수업이 끝나고 열기가 식어버린 난로 앞에 친구들과 모여, 다른 반 아이들과의 고무줄 시합을 기다리던 설렘을 생각합니다. 
 
공기
 공기
ⓒ 김지영

관련사진보기

 
어른이 되어서야 아이의 마음을 배웁니다. 삶을 숙제가 아니라 축제로 대하는, 지치지 않고 노는 마음을 생각합니다. 다시 노는 법을 배워야겠습니다. 문방구에서 공기 한 세트 사는 것으로 시작하면 괜찮을까요? 

오늘도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내일도 즐거운 마음으로 산책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태그:#산책, #걷기, #동네, #문방구, #아이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