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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코타이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치앙마이까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5시간이 채 못 되는 여행 끝에 치앙마이 버스터미널에 닿았습니다. 타이완 섬에서 시작한 여행은 벌써 한 달이 되었고, 이제 태국에서도 열흘 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 달이라는 시간도, 열흘이라는 시간도 긴 시간은 아닙니다. 한국에서 25년을 넘게 살아도 한국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 걸요. 하지만 늘 새로운 천장을 보며 일어나는 감각. 새로운 도시를 만났을 때의 긴장과 설렘. 다시 만날 일 없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감각. 이런 것들에 저는 조금씩 익숙해져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편안해졌기 때문일까요. 치앙마이라는 도시는 왠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마음이 편안합니다. 제가 이제껏 만난 다른 도시들과의 다른 점도 눈에 띄기 시작하고요.

태국 북부 최대의 도시
 
치앙마이 선데이 마켓
 치앙마이 선데이 마켓
ⓒ Wider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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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는 태국 북부 최대의 도시입니다. 방콕과 그 위성도시를 제외하면 사실상 태국 제2의 도시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요.

하지만 방콕의 인구가 800만을 넘어선 것에 반해, 치앙마이의 인구는 12만을 겨우 넘는 수준입니다. 물론 치앙마이 시의 면적이 좁은 것도 감안해야겠지만, 도시권 전체의 인구를 비교해도 치앙마이의 인구는 방콕의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합니다.

인구의 차이뿐 아니라 문화권의 차이도 존재합니다. 사실 치앙마이를 비롯한 태국 북부 지역은 태국 중부 지역과는 오랜 기간 다른 문화권을 꾸리고 있었습니다. 지난 번에 언급했던 것처럼 동남아시아의 정치체제는 각 도시 사이 후원-피후원 관계에 기반한 '만달라적 정치체제'였고, 각 지방 도시들은 독립적인 정치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치앙마이를 비롯한 태국 북부 지역에는 '란나 왕국'이라는 독자적인 왕국이 존재했습니다. 원래 치앙라이에 자리를 잡고 있던 란나 왕국이 13세기 말에 새로 건설한 수도가 바로 지금의 치앙마이입니다. 벌써 700년 전의 일이지만, 치앙마이 구시가에는 여전히 성벽과 해자의 흔적이 뚜렷한 구획으로 남아 있습니다.

란나 왕국은 미얀마나 남부의 태국과 정치적으로 경쟁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란나 왕국이 쇠퇴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의 일이고, 1556년에 미얀마의 타응우 왕조에 병합됩니다. 이 땅이 태국에 병합된 것은 1775년의 일이니, 이제 250년 정도 된 것입니다. 이후에도 몇 차례 미얀마의 공격을 받아 점령당하기도 했고, 북부 태국의 핵심 도시로서 독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지금도 방콕에서 치앙마이까지는 기차로 12시간이 걸리는 먼 거리입니다. 지금이야 큰 길도, 철도도, 심지어 공항도 있지만 과거에는 산지와 정글로 뒤덮인 험한 길이었겠죠. 사실 직선거리로는 치앙마이에서 방콕보다 네피도나 양곤이 한참 가깝습니다.
 
썽태우
 썽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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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방콕의 도회적인 풍경과 치앙마이의 풍경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느껴집니다. 치앙마이는 태국 제2의 도시이지만, 변변한 대중교통 하나 없습니다. 지하철은 물론 시내버스도 없고, 대중교통이라고 할 법한 것은 트럭을 개조해 사람이 탈 수 있게 만든 '썽태우'라는 교통수단 뿐입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정확한 노선을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합승 택시 개념으로 운영됩니다. 내가 가는 곳을 기사에게 말하고, 지금 타 있는 사람과 방향이 맞으면 합승하는 방식이지요. 이런 도시의 모습은 여행자에게는 매력적입니다. 고즈넉하고, 복잡하지도 않지요.

대중교통의 부재는 불편하지만, 썩 비싸지 않은 택시를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마저도 조금 길게 걸을 결심을 한다면 불편할 것도 없죠. 곳곳에 역사유적과 사원이 남은 이 도시는 걷는 것만으로도 좋은 여행이 되니까요.

매년 외국인만 5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도시

그래서 치앙마이의 구시가에는 언제나 여행자들이 북적입니다. 매년 외국인 여행자만 5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도시니까요. 서양인 여행자도, 한국인 여행자도 아주 많습니다. 작은 구시가에 여행자들이 많이 몰려서 그런지, 저는 솔직히 방콕에서보다 치앙마이에서 더 많은 한국인을 만난 것 같습니다. 소위 '디지털 노마드'도 많아서, 제가 머무는 숙소 로비에도 저녁 늦게까지 노트북을 켜 두고 일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치앙마이 시가 풍경
 치앙마이 시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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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이 도시의 건강한 생활 방식일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물론 관광업은 중요한 산업의 하나입니다. 치앙마이는 그 덕도 많이 보고 있지요. 농업을 비롯한 상당수의 지역 산업이 관광업과 함께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여행자들의 방문 덕에 지역 예술문화의 발전도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 수는 없겠죠. 민감하고 정치적인 이야기이지만, 태국 정치의 강력한 혁신을 주장한 탁신 친나왓의 지지세가 가장 강력했던 지역 중 하나가 치앙마이라는 점은 많은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탁신 스스로가 치앙마이 출신이기도 하지요.

어떤 의미에서 방콕과 다른 치앙마이의 정치와 문화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셈입니다. 방콕이 중부 도시권과 중산층을 대변하는 도시라면, 치앙마이는 북부와 지방 농촌을 대표하는 도시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모든 것이 이분법적으로 나뉠 순 없겠지만, 흐릿한 여행자의 눈에도 두 도시의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물론 탁신 전 총리는 부패 혐의와 쿠데타로 축출되었고, 치앙마이의 일상은 변함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이 도시에는 많은 여행자가 오가고, 거리에는 붉은색의 썽태우가 달리는 낭만적인 공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치앙마이를 다스렸던 세 왕
 
삼왕상
 삼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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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 구시가 중심에는 일요일 밤이 되면 거대한 야시장이 열립니다.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치앙마이 선데이 마켓'입니다. 이 야시장에서는 주로 수공예품과 미술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지역의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을 꺼내놓고, 여행자들은 그 거리에서 북새통을 이루지요.

야시장에서 벗어나 숙소로 돌아오는 길, 우연히 작은 광장과 동상을 만났습니다. 세 명의 사람이 서 있는 동상이었는데, 찾아보니 셋 모두 이 지역을 다스렸던 왕이라고 합니다. 가운데에 있는 사람이 바로 치앙마이를 건설한 란나 왕국의 국왕, 멩라이 왕입니다.

해가 진 광장, 사람들은 여전히 그 왕의 동상 아래에 향을 피우고 있습니다. 날이 어둡도록 광장에서 스케이트보드를 연습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았습니다. 굳이 더 정치적인 이야기를 꺼낼 필요는 없겠지요. 하지만 치앙마이를 세운 왕과, 그 아래 향을 피우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은 아무 상관 없다는 듯 보드를 타고 있는 학생들. 그 풍경이 왠지 모르게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만나는 날부터 떠나는 날까지 치앙마이는 왠지 마음이 놓이는 도시입니다. 그런 도시의 모습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이 도시의 여유로운 풍경이 변하더라도, 저는 언젠가 치앙마이를 다시 찾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치앙마이가 번화하고 북적이는 도시가 되었더라도, 제 마음은 썩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태그:#세계일주, #세계여행, #태국, #치앙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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