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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고갯길을 계절마다 걸으며 수려한 자연이 품고 있는 역사와 문화를 찾아 이야기합니다.[기자말]
입춘 절기를 앞둔 2월 초순에 전북 남원시 이백면 양가리에서 운봉고원의 운봉읍 장교리로 올라가는 2.8km의 여원재(女院峙, 477m) 옛길을 찾아 걸었다. 겨우내 여원재 옛길의 들머리에 있는 양가저수지의 수면을 덮었던 얼음도 봄을 기대하는 희망으로 점차 걷히고 있었다.

여원재 옛길 곳곳에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로 안내판이 있어 산길을 혼자 걸어도 든든하다. 여원재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남원 동쪽의 응령역(應領驛)과 운봉고원의 인월역(引月驛) 사이에 성벽처럼 우뚝 선 백두대간을 넘어서 전라도 남원에서 경상도 함양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관문이었다.

이순신이 백의종군한 여원재
 
여원재 옛길 들머리. 여원재 옛길은 저수지에 잠겨 있다. 저수지를 우회하여 갈대가 무성한 임도를 걷는다.
 여원재 옛길 들머리. 여원재 옛길은 저수지에 잠겨 있다. 저수지를 우회하여 갈대가 무성한 임도를 걷는다.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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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올라온 2.8km의 여원재 옛길과 제법 멀리 떨어져 산비탈을 비스듬히 올라온 자동찻길 24번 국도가 여원재 고갯마루에서 서로 만난다. 여기서부터는 옛길은 흔적이 없고 24번 국도가 운봉고원으로 들어선다.

광주대구고속도로(예전, 88올림픽고속도로)는 운봉고원을 넘는 들머리를 바꿨다. 남원 산동에서 장수 번암을 지나고 백두대간을 넘어 운봉고원 인월면에서 지리산IC를 이루고 경남 함양으로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도로는 파충류처럼 진화하여 시대에 따라 형태를 바꾸고 있다.

백두대간은 운봉고원의 서쪽과 남쪽의 외륜(外輪)을 성벽처럼 에둘렀다. 운봉고원의 동쪽은 노고단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지리산의 주능선이다. 운봉고원의 북쪽인 경남 함양 쪽은 백두대간에서 파생된 연비지맥이 벽을 쌓고 팔량치(八良峙)를 열어놓았다.

운봉고원은 전북이지만 낙동강 수계이다. 전북 운봉고원을 흐르는 대부분 하천은 경남 함양과 산청을 거쳐 진주 남강에 이르고 낙동강을 따라 먼 여행을 계속한다.

여원재는 고개 정상이 바로 운봉고원 운봉읍과 거의 수평을 이루어 고갯마루가 바로 평원으로 연결되는 색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고원 지대인 운봉고원(450~550m)은 이웃 지역보다 20일이나 벼농사의 모를 일찍 내어 한여름인 7월 중순이면 벼 이삭이 팬다.

운봉고원의 대장간

남원시는 판소리의 고장이다. 판소리 춘향가와 흥부가가 남원 지역에서 탄생하였다. 남원 광한루를 무대로 판소리 춘향가가 이루어졌고, 운봉고원에서 판소리 흥부가가 태어났다. 춘향가의 사랑가나 흥부가의 화초장타령 등 판소리 가락은 이 지역에서 익숙하다.

신라시대에 고구려 유민들은 익산 금마지역에서 보덕국으로 고구려를 되살리려다 실패하고 남원 지역으로 이주되었다. 그들의 일편단심 주체성에서 판소리 춘향가의 정신적 뿌리의 한 단면을 본다. 가야 세력이 제철 활동으로 재화를 생산했던 운봉고원에서 박을 타서 재화를 얻어 갈등을 해결하는 판소리 흥부가는 이용후생의 맹아(萌芽)를 보여준다.
 
여원재 24번 국도. 24번 국도가 여원재(477m) 고갯마루에서 여원재 옛길과 서로 만난다.
 여원재 24번 국도. 24번 국도가 여원재(477m) 고갯마루에서 여원재 옛길과 서로 만난다.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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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고원은 그리 넓지 않은 지역인데도 실속 있게 펼쳐진 산줄기와 산봉우리를 품고 다양한 역사 문화의 내용을 발전시켰다.

- 아영면 월산리와 인월면 두락리 등의 가야 고분군.
- 백제의 칠지도, 아막성 전투와 실상사 철조여래좌상 등 운봉고원 활력의 중심인 제철 유적지.
- 선종 불교를 개척하며 천년 한지와 목기인 바리의 중심이 된 산내면의 실상사.
- 조선시대 후기 구비문학의 꽃인 판소리 흥부가와 판소리 명창의 고향인 운봉고원.
- 백성들의 소망을 담아 새로운 시대를 기약한 운봉읍의 황산대첩.
운봉고원 곳곳의 험상궂은 형상이지만 인정 넘치고 건강한 생명력의 돌장승.


이처럼 다양한 운봉고원의 활력 중에서 가장 근원적인 것은 운봉고원의 제철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경제력의 근본이 되는 제철 활동은 운봉고원의 역동적인 역사 문화의 다양한 전개를 가능하게 하였을 것이다.

삼한시대에는 진한(辰韓)의 영토였던 운봉고원에서 가야, 신라와 백제가 서로 세력을 확장하려는 대립하였던 것은 고원의 전략적 이점과 제철 활동을 부강한 국력으로 삼고 싶어서였다. 고려말 황산대첩에서 고려군과 맞서던 왜구들이 운봉고원에 오래 머문 것도 무기를 벼리고 말편자를 만드는 등 운봉고원의 대장간이 필요해서가 아닐까?

신라의 4대 임금인 탈해 이사금은 철광산을 개발하여 대장간을 운영한 대장장이이며 도깨비 활동의 효시라고 한다. 운봉고원에서 판소리 흥부가가 형제우애설화, 보은설화와 도깨비설화 등을 근원으로 형성될 때 도깨비설화가 근본 동기(動機, motif)가 되었다고 본다. 운봉고원에서도 대장장이는 흔한 돌을 값진 철(鐵)로 제련하는 도깨비였을 것이다.

운봉고원의 곳곳에서 개성 있는 돌장승을 만날 수 있다. 운봉고원에서 돌장승은 돌(철광석)을 다루는 도깨비(대장장이)를 형상화한 것이 아닐까? 돌장승의 험상궂은 표정은 운봉고원에서 철광석을 다루는 대장장이들의 제철 활동의 비밀을 지키려는 결속력과 건강한 생명력이 장승에 투영된 것으로 추리해본다.

뼈아픈 역사의 교훈
  
여원재 마애불상. 바위 옆에 20m가 넘는 높이로 서 있는 서어나무가 우람하고 당당하다.
 여원재 마애불상. 바위 옆에 20m가 넘는 높이로 서 있는 서어나무가 우람하고 당당하다.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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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고갯길은 계곡의 여울을 몇 번이고 가로질러 지덕(地德)이 포근한 곳을 따라 길이 열리기 마련이었고, 두 산봉우리의 안부(鞍部)를 찾아 수월하게 고갯마루를 넘었다. 여원재 옛길도 고갯마루에 가까워질수록 건천(乾川)이 된 여울에 조화롭게 길을 열면서 올라가고 있었다.

1593년5월,'劉綎過此'유정과차, 유정이 이곳을 지나다. 1594년3월,'劉綎復過'유정부과, 유정이 다시 지나다.

여원재의 고갯마루가 멀지 않은 곳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의 명나라 장수 유정(劉綎, 1558~1619)이 이 여원재를 통과했다는 행적을 기록한 암각서가 두 곳에 있다.

1598년의 왜교성 전투는 정유재란 최대의 전투였다. 순천 가까운 왜교성은 왜장 소서행장(小西行長)이 축성했고 조명연합군에게 맞서는 일본군의 근거지가 되었다. 조명연합군은 9월20일부터 왜교성을 공격했다.

5만2천 명의 조명연합군 육군과 수군이 1만3천7백 명의 일본군이 주둔한 왜교성을 바다와 육지에서 포위했다. 군대의 사기나 전력으로 보아 조명 연합군이 우세가 분명했다.

이순신 장군, 명나라 장수 진린과 유정 등 최고 지휘관들이 부대를 지휘하며 참전하였다. 그러나 유정은 몇 번에 걸친 소극적 전투와 전투 기피로 시일을 끌다가 일방적으로 철군하였다. 이로 인해서 10월 7일 성과 없이 왜교성 전투는 끝나고 말았다.

왜교성 전투가 끝난 직후 소서행장에게 풍신수길(豊臣秀吉)의 사망 소식과 철군 명령이 전달되었다. 1598년 11월 18일에 왜군의 철군을 봉쇄하기 위한 노량해전이 전개되고 이순신 장군은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전쟁터에 와서 유람하듯 방명록처럼 암각서를 남기고 전투에는 기회주의적으로 대처한 명나라 장수 유정이었다. 여원재 옛길은 이순신 장군이 의금부에 억울하게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된 길이고, 의금부에서 방면되어 백의종군하며 운봉으로 올라가고 순천으로 가기 위해 내려오며 걸었던 인고의 길이다. 여원재 옛길을 걸으면서 역사의 교훈을 뼈아프게 되새기게 된다.
  
여원재 마애불상.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백성들의 간절한 염원을 여원재 마애불은 설화로 전승하고 있다.
 여원재 마애불상.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백성들의 간절한 염원을 여원재 마애불은 설화로 전승하고 있다.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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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원재 고갯마루에 거의 다다르니 24번 국도의 가이드레일과 지나가는 자동차들이 보이고 아래쪽에 가로로 길게 단애를 이룬 병풍 같은 바위에 여원재마애불상(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62호)이 희미하다.

고려말 왜구들이 운봉고원에 주둔해 있을 때 이곳 여원재에서 왜구에게 희롱당한 여인이 자결하였다. 이성계 장군이 군대를 이끌고 왜구를 토벌하러 운봉고원으로 출정했을 때 이 여인이 장군의 꿈에 나타나 전투에 이길 방책을 알려주어 황산전투에서 승전했다고 한다.

평화로운 세상에 대한 백성들의 간절한 염원이 이 설화로 전승되었다. 바위 옆에 20m가 넘는 높이로 서 있는 서어나무가 우람하고 당당하다. 신비로운 곤충인 장수하늘소는 서어나무를 기주목으로 삼는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방망이를 두드리면 무엇이 될까.
금 나와라 와라 뚝딱.
은 나와라 와라 뚝딱.


대장장이(야철장이)들이 둘러서서 노동요를 부르며 쇠를 다루는 장면을 이 동요 <도깨비 나라>에서 그려볼 수 있다.
 
여원재 고갯마루 돌장승. 여원재를 올라서니‘雲城大將軍’운성대장군 돌장승이 환영한다.
 여원재 고갯마루 돌장승. 여원재를 올라서니‘雲城大將軍’운성대장군 돌장승이 환영한다.
ⓒ 이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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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원재를 올라서니 '雲城大將軍(운성대장군)' 돌장승이 환영한다. 운봉고원이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처럼 펼쳐졌다. 황산 비전 마을의 손흥록 판소리 명창 생가에서 흥부가 한 소절을 들을 수 있다. 어느 마을 어귀에서 돌장승을 만나면 반갑게 다가가도 좋다. 생명력 넘치는 대장장이의 활력은 운봉고원이 선물하는 희망이다.

태그:#운봉고원 여원재, #여원재마애불상, #판소리 흥부가, #운봉고원 낙동강, #운봉고원 돌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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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입니다. 향토의 역사 문화 자연에서 사실을 확인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여행의 풍경에 이야기를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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