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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광장시장 음식점에서
 오래된 광장시장 음식점에서
ⓒ 김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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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도장 깨기 하듯 노포집을 찾아다니는 재미에 푹 빠졌다. 노포집은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를 뜻하며, '아재 맛집'으로 불리기도 한다. 지금까지 찾아다닌 서울 노포집 중 대표적인 곳으로는 을지로 우래옥과 황평집, 후암동 일미집, 마포 을밀대, 충정로 호수집 등이 있다.

한 자리를 오래 지키고 있던 음식점일수록 찾는 사람들이 많아 기본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만 들어갈 수 있지만, 그 정도 감수할 가치는 충분하다. 맛은 물론이거니와 시간 여행을 온 듯한 인테리어, 시끌벅적한 분위기까지 모든 요소가 새롭고 즐겁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포에 방문해보면 고객의 과반수가 MZ세대다. 특히 이삼십 대 여성의 비율이 많은데, 그들은 낡은 테이블에 올려진 플레이팅과는 거리가 먼 음식 사진을 찍어 SNS에 자랑스레 올린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과 젊은 세대가 한 공간에 삼삼오오 모여 같은 메뉴를 주문해 식사하는 모습은 이질적이면서도 재미있는 풍경이다.

MZ세대는 어쩌다 본인이 태어나기도 전에 생긴 음식점을 한 시간 이상 기다렸다 입장하고, 아재들의 대표 메뉴라고 불리는 국밥과 평양냉면을 먹게 된 걸까? 어쩌다 본인들보다 나이가 지긋한 노포를 사랑하게 된 걸까? 나름의 경험을 통해 그 이유를 찾아보았다. 
  
첫 번째, 보장된 맛

오랫동안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을 수 있던 가장 큰 이유는 맛에 있다. 노포라면 누구라도 믿고 방문할 수 있을 만큼 신뢰가 쌓인 곳이기 때문에 긴 대기시간을 차치하고서라도 찾아가게 된다. 수십 년간 다녀간 많은 이들이 보증수표인 셈이다.

이렇게 편하고 간단하게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다니! MZ세대가 노포를 제외한 진짜 '맛집'을 찾기 위해서는 번거로운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선 블로그부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각종 SNS 및 커뮤니티에 'OO(지역 이름) 맛집'을 검색 후, 광고와 미묘하게 뒤섞인 게시글 중 진짜 필자가 경험하고 작성한 순수 '내돈내산' 콘텐츠를 찾아내야 한다.

그렇게 몇 개 음식점을 추려내곤 다시 그 리스트 중 본인 취향과 주머니 사정에 맞는 곳을 골라야 최종 목적지가 정해진다. 또 얼마나 '인스타그래머블(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한지도 큰 기준점 중 하나다. 맛있는 음식 하나 먹으러 가기가 이렇게 복잡하고 힘든 MZ세대에게 보장된 맛집 노포는 환영받을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새로움


MZ세대는 '조이 헌터'다. 끊임없이 새로운 걸 찾아 나서고, 독특하거나 재밌는 걸 보면 지체없이 지갑을 연다. 새로운 경험에 높은 가치를 두고 특정 제품이 아닌 재미 자체를 구매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이들이 '펀슈머'라고 불리는 이유다.

윗세대가 어릴 적부터 자주 들렀던 친근하고 친숙한 노포는 어린 세대에게 새롭고 신기한 느낌으로 다가갔고, 이색적인 분위기에 매료된 이들은 노포 경험을 적극적으로 소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 세대는 구시대 상권 을지로를 '힙지로'로 바꿔 놓은 장본인이 아닌가. 늘 보던 화려한 네온간판과 높은 건물 대신,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색 잃은 간판이 가득한 거리에 더 매력을 느낀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미 공장과 쌀가게만 가득했던 문래와 신당동도 젊은 층의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옛날 세대의 취향이 듬뿍 들어간 인테리어와 아재들이 즐겨 먹는 투박한 음식 등 모든 것이 개성 있고 새롭게 느껴지는 노포는 MZ세대의 발길을 잡아끌 만하다.

세 번째, 사람 온기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생활에 지쳐가던 젊은 층은 사람 냄새나는 곳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양한 연령대가 좌석 간격 좁은 테이블에 모여 앉아 왁자지껄 대화하며 식사하는 노포는 최적의 장소다.

클릭 몇 번으로 결제까지 완료되는 키오스크 대신 '이모'를 외쳐 주문하고, 때로는 물이나 술을 직접 챙겨오거나 옆 테이블에서 케첩을 빌려 오기도 해야 하는 투박한 아날로그 감성을 택한 것이다.

불편함을 감수하면 난생처음 보는 '이모'의 친근함도,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제공되는 정이 담긴 음식들을 받아 보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은 MZ세대들에게 생소하고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다.

구석구석 숨어있는 노포집을 발견하는 게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요즘. 젊은 세대는 간접적으로나마 아버지 세대를 체험하고 이해한다. 서로 대화하기 좋은 공통분모가 생기기도 했겠다, 어쩌면 노포가 세대 간 거리를 좁혀 줄 수 있는 매개체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태그:#MZ세대, #노포, #노포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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