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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전교조 조합원 선생님들께 올립니다.

불쑥 동료 선생님들께 언짢아하실 공개 편지를 드리려니 적이 민망합니다. 저 역시 전교조 조합원으로, 교직 경력 25년 차의 교사입니다. 정년이 아직 10년 가까이 남았으니 선배랍시고 젠체하긴 뭣하지만, 동료 교사들에게 어쭙잖으나마 조언 정도는 건넬 수 있는 자격은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는 매일 꺾이고 흔들리는 저를 위한 질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외람되이도 그 간단한 호칭과 수식어를 적는 것조차 썼다 지우기를 반복할 만큼 심경이 복잡합니다. 차마 여느 글에서처럼 '존경하는'이라는 수식어는 쓰진 못하겠습니다. 언뜻 비아냥거림처럼 들릴 수도 있을 듯해서입니다. 고백하자면, 대신 쓴 '사랑하는'도 조합원 개개인이 아닌, 참교육에 헌신해온 전교조에 바치는 제 나름의 헌사입니다.

엊그제 우연히 동네 주민 몇 분과 술자리를 함께한 적이 있습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산다지만, 서로 눈도 못 마주칠 만큼 제겐 무척 데면데면한 자리였습니다. 통성명하며 술잔이 한두 순배 돌고서야 이내 화기애애해졌고 비로소 대화의 물꼬가 터졌습니다. 마치 금기처럼 서로의 직업을 묻지 않아 그 자리에서 호칭은 모두 '사장님'이었습니다.

애초 난방비 폭등과 단지 내 불법 주차 문제 등의 애로 사항을 나누는 자리였는데, 대화가 무르익어가는 와중에 느닷없이 자녀 교육 문제가 화두가 됐습니다. 온 국민이 '교육 전문가'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 문제만큼은 도중 끼어들기가 힘들 정도로 모두가 할 말이 많은 듯했습니다. 알다시피, 자녀 교육 문제는 팔 할이 학교와 교사에 대한 비난입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만약 그들이 제가 교사라는 걸 알고 있었다면, 아마 자녀 교육 문제는 화제가 되지 않았거나 됐더라도 서로 눈치 보며 자녀의 성적 이야기가 오가는 정도로 마무리됐을 겁니다. 그 자리가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듯 불편하고 심히 불쾌했지만, 본의 아니게 맞장구치는 시늉까지 해가며 욕설에 가까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이미 온 국민의 '레저 스포츠'가 된 마당에 학교와 교사를 향한 비난이야 딱히 새삼스럽진 않습니다. 듣다 보면, 설마 그랬을까 싶은 황당한 사례도 있고 극우 유튜브에서나 나올 법한 가당찮은 이야기도 많아 곧이곧대로 믿기 힘든 게 많긴 했습니다. 언론의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뉴스까지 들먹일라치면, 숫제 교사들을 죄다 범죄자로 보는 건가 싶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무질러버리자니 뒤통수가 따가웠습니다. 물론, 뉴스나 남들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라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이라면, 다소 과장된 것이라 해도 교사로서 반성할 점이 있는 법입니다. 그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들을 여기에 간추려봅니다. 당신 자녀의 일상에 관한 것이니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치부할 건 아닙니다.

교사로서 가장 뼈아팠던 대목

"수업 시간에 걸핏하면 자습을 시키고 대충대충 근무하는 선생님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한 학기가 지났는데도 학년 전체는커녕 반 아이들의 이름조차 헷갈리는 선생님들도 있어요."
"교과서는 내팽개친 채 허구한 날 문제집만 잔뜩 사서 풀게 하는 선생님들이 많아요."
"수업 시간에 인터넷 강의를 틀어주고 종일 스마트폰만 쳐다보는 선생님도 있다고 해요."
"정작 상담이 절실한 대다수 하위권 아이들은 나 몰라라 하고, 공부 잘하는 몇몇 아이들만 챙겨주는 선생님들이 태반인 것 같아요."
"아이들 보는 앞에서 종일 부동산과 주식 시세만 들여다보는 선생님도 있다고 들었어요."
"수업 시간 아이들이 떠들거나 잠을 자도 내버려 둔 채 시간만 때우는 로봇 같은 선생님도 있는 듯해요."
"조회나 종례도 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학교의 안내 사항도 제때 전달하지 않는 담임 선생님도 있어요."


여기에는 '선생님'이라 적었지만, 솔직히 대화 중에 '님'을 붙인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냥 '선생'이었고, 굳이 뒤에 '놈'이라 부르며 발끈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멸칭 따윈 아무런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저로선 가장 뼈아픈 대목은 이것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당신의 자녀를 가르친 여섯 분의 담임 중에 교사다운 교사를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는 한 분의 경험담.

맨날 담임 선생님을 흉보는 아이 앞에서 마냥 두둔하기도 힘들었다는 이야기부터 느닷없이 여름방학 때 담임이 바뀐 적이 두 차례나 있었다는 하소연까지 거침이 없었습니다. 아이가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걸 싫어했다거나 퇴근 후엔 안 된다며 학부모와의 상담을 꺼리는 교사도 많았다고 했습니다. 아예 아이들과 부대끼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것 같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나마 촌지를 요구하는 교사는 없었다는 게 다행스러울 만큼 교사를 향한 온갖 비난이 줄을 이었습니다. 급기야 전교조를 향한 뭇매가 시작됐습니다. 초심을 잃었다거나 이해관계에만 매몰돼있다고 지적하면서 공교육 붕괴의 주범인 양 몰아세웠습니다. 교실의 아이들은 방치하면서 자기 자식들은 자사고와 특목고 보낸다는 이야기는 어느새 전가의 보도였습니다.

잠자코 듣자니 모멸감에 술잔 든 손이 다 떨렸습니다. 그런데도 전교조의 헌신 덕에 우리 교육이 이나마 깨끗해진 것 아니냐며 소심하게 항변한 게 고작이었습니다. 차마 그들 앞에서 조합원이 전국의 교사 열 명 중 한 명에 불과하다는 말을 꺼낼 순 없었습니다. 변명으로 들릴 게 뻔한 데다 자칫 전교조가 교사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는 인상을 줄까 두려워서입니다.

참다못해 도중에 말을 끊었습니다. 교총 소속 교사가 훨씬 많고 다른 교원단체도 여럿인데, 전교조를 우리 사회의 온갖 교육 문제의 원흉이라 단정하고 뭇매를 가하는 건 지나치다고 말했습니다. 나아가 교사의 자질과 능력을 문제 삼을 때마다 전교조를 지목하는 건 보수 언론의 편파적인 주장에 부화뇌동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백 보 양보해서, 전교조 교사들 모두 자질과 능력이 훌륭하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함께 근무하는 동료 교사들이 죄다 그 모양인데, 전교조 교사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다는 말이잖아요. 동료 교사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면, 전교조의 존재 이유가 대체 뭐죠?"

자녀가 심각하게 자퇴를 고민하고 있다는 한 분의 돌발적인 반문에 순간 당황했습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 전교조의 존재 이유를 물을 때면, 반사적으로 아이들이 민주시민으로서 자주적이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는데, 더는 그렇게 답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의 나날이 강퍅해지는 삶이 눈에 밟히기 때문입니다.

전교조는 이제 친목단체일 뿐이란 자조 섞인 목소리

언제부턴가 전교조가 교사들의 처우 개선과 권리 보장을 위한 이익단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곳으로 전락한 느낌이 듭니다. 학생을 중심에 놓기보다 교사 자신의 이해관계에 매몰돼있다는 질타가 학부모들은 물론, 아이들의 입에서조차 튀어나오는 실정입니다. 심지어 교육자적 소명 의식은커녕 교육의 효능감마저 잃었다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솔직히 억울한 마음이 없진 않으나, 마냥 의도적인 폄훼이며 오해라고 대꾸하기도 어렵습니다. 임용시험에 합격한 초임 교사들이 전교조 가입을 당연시하던 것도 어느덧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가 됐습니다. 취지에 공감해서라기보다 개인적 친분 때문에 가입한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이젠 전교조가 친목 단체일 뿐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들립니다.

조합원 대다수가 40~50대라는 것도 이미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20대는커녕 30대 조합원조차 드문 전교조의 노쇠화를 정치권과 보수 언론의 '좌표 찍기'와 개인주의가 만연한 사회 분위기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일선 학교의 전교조 교사들이 닮고 싶은 선배 교사로서 동료 교사들의 존경을 받는다면, 그깟 '외풍' 정도는 웃어넘길 수도 있습니다.

전교조가 뼛속 깊이 편파적인 보수 언론에 맞서 싸우는 건 허공에 대고 주먹질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상식적인 언론의 팩트 체크와 정치권의 법적 대응을 통해 해결해야 할 몫입니다. 교사라면 그럴 시간에 아이들을 더 자주 만나야 합니다. 아이들이 교사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면, 그들이 가장 든든한 지지자가 돼줄 것입니다.

요컨대, 아이들로부터 존경받는 교사가 다른 동료 교사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되고, 그것이야말로 학교의 변화를 추동하는 교육 개혁의 밑바탕이라고 믿습니다. 맹목적인 폄훼와 비난의 억울함을 아이들에 대한 더 큰 사랑과 실천으로 삭힙시다. 무릇 전교조라면 '아이들만 바라보는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전교조도 살고, 교육도 살고, 대한민국도 삽니다.

태그:#전교조, #교육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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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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