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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1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반월시화 공단 내 한국와이퍼 공장 내부. 지난 2021년 10월 노사가 맺은 고용안정 협약에도 불구하고 한국와이퍼 측이 1월 1일부터 일방적으로 회사 문을 닫고 청산 절차에 돌입하자, 노동자들이 1월 2일부터 공장에서 먹고 자며 현장을 지키고 있다. 이곳 노동자들은 이곳에서 대부분 10~20년 이상 일했고, 50대 중반 여성이 주축이었다.
 1월 31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반월시화 공단 내 한국와이퍼 공장 내부. 지난 2021년 10월 노사가 맺은 고용안정 협약에도 불구하고 한국와이퍼 측이 1월 1일부터 일방적으로 회사 문을 닫고 청산 절차에 돌입하자, 노동자들이 1월 2일부터 공장에서 먹고 자며 현장을 지키고 있다. 이곳 노동자들은 이곳에서 대부분 10~20년 이상 일했고, 50대 중반 여성이 주축이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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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간 주야 맞교대로 밤낮 없이 돌아가던 공장 라인이 멈춰 섰다. 간이 의자도 없이 꼬박 12시간을 서서 만든 자동차 와이퍼들은 행거에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 와이퍼를 싣던 박스들은 텅텅 빈 채 공장 곳곳에 쌓여 있었다. 매일 드나들던 작업장 문은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기계음으로 정신 없던 와이퍼 공장 안에는 적막과 냉기가 흘렀다.

지난 1월 31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반월공단에 있는 한국와이퍼 공장 내부 모습이다. 한국와이퍼는 지난 1월 1일 갑자기 공장 문을 닫고 1월 8일부터 청산 절차에 들어가겠다고 노동자들에게 일방 통보했다. 1월 12일에는 노동자 209명에게 오는 2월 18일부로 해고된다는 해고 예고 통지서를 보냈다.
  
한국와이퍼 공장 내부
 한국와이퍼 공장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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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초부터 집단해고 위기에 내몰린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1월 2일 아침부터 공장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사측의 실수로 1층 작업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 하나가 열려 있었던 것이다. 10~20년 이상 이 공장에서 일했다는 노동자들은 자기가 서서 일하던 라인 바닥에 요와 장판을 깔고 이불을 덮었다.

혹여 회사가 공장 설비들을 팔아버릴까 감시하기 위해서다. 15명씩 돌아가며 잠을 자면서 작업장을 지키고 있다. 전기 사용이 제한적이고 온풍기도 고장 나 보온을 위해 비닐막을 쳐놓고 있었다. 한 여성 노동자는 "20년 넘게 일한 공장 바닥에서 맨몸으로 잠을 자려니 첫날밤엔 눈물이 났다"고 했다.

생산직 대부분 50대 여성... "지금 해고 당하면 어디 취직하겠어요?"
  
최윤미 금속노조 경기지부 한국와이퍼분회 분회장
 최윤미 금속노조 경기지부 한국와이퍼분회 분회장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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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와이퍼는 일본 자동차 부품 기업인 '덴소'의 한국 자회사로, 이곳에서 생산된 와이퍼들은 현대자동차 등으로 납품돼왔다. 회사 측은 가격 경쟁 심화와 임금 상승으로 인한 경영난을 이유로 지난해 7월 주주총회를 열고 청산을 결정했다.

하지만 노조는 고의 적자로 인한 기획 청산을 의심하고 있다. 한국와이퍼 등 관계회사들이 외국투자기업 혜택을 받아 지방세 감면을 비롯 220억원이 넘는 세제 혜택을 챙긴 뒤 기획 청산을 계획해왔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한국와이퍼의 대량해고 통보에 더 화가 난 건 불과 1년 2개월 전인 2021년 10월, 사측이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을 약속했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와이퍼는 노조와 맺은 협약에서 "회사는 청산·매각·공장이전의 경우 반드시 노동조합과 합의해야 하고, 부득이 사업의 전부 또는 일부를 양도·매각할 경우 모든 직원 또는 해당 직원의 고용을 승계하는 조항을 반드시 포함한다"고 약속했다.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덴소가 한국 공장을 철수시키려 한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 지난 2018년 노조를 세웠다. 한국와이퍼 공장에서 일하는 총 300여 명 노동자들 중 노조에 가입된 노동자는 250여 명이었다. 이중 40여 명은 사측이 제안한 '조기 퇴직'을 받아들여 현장을 떠났다. 나머지 209명은 사측이 제시한 위로금과 조기 퇴직안을 거절하고 공장에 남아 '고용 안정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와이퍼 공장에서 19년 일한 박명자(59)씨의 손. 오랫동안 조립 라인에서 일해 손가락이 틀어졌다.
 한국와이퍼 공장에서 19년 일한 박명자(59)씨의 손. 오랫동안 조립 라인에서 일해 손가락이 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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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하루 12시간씩 주야 맞교대로 일해왔다. 주간 조는 아침 8시 20분부터 저녁 8시 50분까지, 야간 조는 저녁 8시 50분부터 그 다음날 아침 8시 20분까지 일한다. 일주일 동안 주간 조를 했으면 그 다음주에는 야간 조 순번이 돌아오는 식이었다.

잔업이 많아 자연스레 수당이 높아지기 때문에 50대 여성 중에서도 가장 역할을 하는 노동자들이 많았다. 12시간 내내 서서 일해서 다리, 허리, 목, 어깨가 아프다는 노동자들이 많았고, 특히 조립 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손가락은 눈으로 보기에도 심하게 틀어져있었다.

19년 동안 한국와이퍼에서 일한 안상금(60)씨는 "명절에 나와달라면 나오고, 일요일에도 나와달라면 나오고, 바쁠 땐 점심 시간도 30분으로 쪼개가며 일했다"라며 "우리는 회사에서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치니 배신감이 너무 크게 든다"고 했다.
 
1월 31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반월시화 공단 내 한국와이퍼 공장 내부
 1월 31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반월시화 공단 내 한국와이퍼 공장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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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공장에 남아있는 노동자들의 주축은 50대 중반 이상의 생산직 여성 노동자들이다. 한국와이퍼 공장에서 18년간 일한 최윤미(46)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기지부 한국와이퍼분회장은 "회사에선 퇴직금의 3배나 되는 위로금을 주겠다며 '조기 퇴직'을 유도했지만, 우리는 위로금 때문에 싸우고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우린 여기서 최소 10년, 대부분 20년 이상 일했어요. 이곳 반월, 시화 공단 현실을 너무 잘 알아요. 만약 지금 여기서 해고당하고 다시 직장을 구하려면 우린 어떻게 될까요? 누가 50대 중반이 지난 여성들을 쓸까요? 잘 가야 대부분 파견 인력시장일 거예요. 고용은 불안정할 테고, 새 일은 고돼서 몸 아프면 또 한두 달 쉬어야 할 거고.

이 생활 2~3년 정도만 반복해도 아마 위로금 다 털어먹을 겁니다. 결국 남는 건 아픈 몸뚱어리와 이미 털어먹은 퇴직금, 아무런 대책 없는 노후겠죠. 저희 바람은 늘 소박했어요. 그저 고용 보장해달라는 것뿐이었어요."


공장의 한기를 피해 난로 앞에 옹기종기 모인 여성 노동자들도 입을 모았다. 21년간 이곳에서 일한 박옥년(58)씨는 "거진 다 50대를 넘겼으니 이제 여기서 나가면 갈 데가 없지 않나. 한 평생 여기다 청춘을 바쳤는데 나이 먹어서 하루 아침에 쫓겨나는 게 억울하고 서글프다"고 했다. 임정매(55)씨는 "여기서 18년을 일했다. 혼자 살기 때문에 날 먹여 살릴 사람도 없고, 내 스스로 먹고 살아야 하는데 여기서 해고되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암담하고 까마득하다"고 했다.

"약속 지켜야" 한국와이퍼 '집단해고'에 제동 건 법원... 노동자들 "모처럼 기뻤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반월시화 공단 내 한국와이퍼 공장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반월시화 공단 내 한국와이퍼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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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농성 한 달째를 향해가던 지난 1월 30일 밤, 공장 농성장에 모처럼 낭보가 전해졌다. 법원이 이번 한국와이퍼의 해고 통보가 부당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제10민사부(재판장 남천규 판사)는 노조가 한국와이퍼를 상대로 낸 단체협약위반금지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며 "한국와이퍼는 단체협약상 절차에 따른 노조와의 합의 없이 소속 조합원들을 해고해선 안 된다"고 못박았다. 지난 2021년 10월 한국와이퍼가 노조와 맺은 고용안정 합의를 지켜야 한다며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은 이번 판결에 "너무 다행이고 기쁘다"며 함께 웃었다. 하지만 사측은 여전히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법원 판단 이후인 1월 31일 오후에 열린 노사 교섭은 단 5분만에 끝났다. 최윤미 분회장은 "그간 사측은 고용합의를 위반 해놓고도 우리들에게 '위로금 받고 조기 퇴직 안 하면 한 푼도 없이 떠나게 될 것'이라는 식의 고압적인 태도였는데, 이번 법원 판단으로 유의미한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 분회장은 지난 11~12월 국회 앞에서 한국와이퍼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을 요구하며 무려 44일간 단식을 하기도 했다.

사측이 통보한 해고 예고 시점이 10여 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한국와이퍼 공장에 남은 노동자들의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이들은 "회사로부터 받은 상처를 동료들에 의해 치유 받고 있는 것 같다" "10년 넘게 바로 옆에서 일하면서도 서로 바빠서 못 나눴던 사사로운 얘기도 이젠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오히려 더 친해졌다"고 했다.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동료가 보이면 서로 김치를 나르고 밑반찬 하나라도 더 챙겼다. 불안함을 달래려 뜨개질로 수세미를 만들다가 서로 모양을 고치라며 웃었다. 공장 벽면에 붙인 손 팻말들엔 '하나되어', '끝까지', '함께'란 단어가 많이 보였다. 이들의 목소리를 여기 싣는다.

"20년 넘게 일한 공장은 내 삶 자체... 하루 아침에 쫓겨날 수 없다"
 
한국와이퍼 공장 내부
 한국와이퍼 공장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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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지(52/ 여/ 10년차)

"저희도 그냥 다 이웃에 있는 엄마들, 아줌마들이잖아요. 저희 다 안산 사는 주민인데. 저희같은 보통 시민이 이렇게까지 싸우고 있다는 건 다 무슨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저희가 원래 투쟁도 모르고 노동조합도 모르고. 평생 모르고 살았으면 좋은 거긴 한데. 다른 공장에서 다들 그랬어요. 회사에서 위로금 준다고 1, 2, 3차 조기 퇴직자 받을 때, 저기 이제 다 나갈 거라고. 절반 이상은 무너질 거라고. 근데 아니었거든요. 저희 다 남았거든요.

왜냐면 여기는 우리한테 그냥 일터가 아니라 삶 자체인 거예요. 여기서 10년, 20년, 30년 일한 언니들이 수두룩한데 여기서 다 애들 키웠잖아요. 저도 애 유치원 때 여기 들어왔는데 지금 벌써 대학생이거든요. 여기가 '내 삶이고 내 직장이고 내 회사다' 생각하고 평생 일했는데 이렇게 회사가 우리한테 한 입으로 두 말 하니까 억울한 거예요. 화가 나는 거예요."

안상금(60/ 여/ 19년차)

"우리는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어요. 정년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청산한다고 하니까 뒤통수 맞은 느낌인 거죠. 19년 동안 조립을 하다 보니 손이 이렇게 다 망가졌어요. 검지엔 철심을 박았고. 여기 일이야 늘 하던 일이니까, 내 몸에 익었으니까 할 수 있는데, 내가 지금 손이 이런데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하겠어요. 누가 받아주겠어요. 그렇다고 아직 놀 수 있는 나이도 아닌데."

박명자(59/ 여/ 19년차)

"저도 같은 조립라인에서 빡세게 일만 하다 손이 이렇게 틀어졌어요. 우리 라인은 손가락이 문제고, 다른 라인들은 목디스크, 허리디스크... 다 달라요."

박옥년(58/ 여/ 21년차)

"그렇게 힘들게 일한 걸 회사가 한 순간에 다 부정하는 거 같아서 서글퍼요. 늙은 것도 서글픈데. 애들도 다 컸죠. 처음에는 걱정하더니 이제는 엄마가 싸우는 것 열심히 하라고 응원해줘요."
 
 
1월 31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반월시화 공단 내 한국와이퍼 공장 내부. 지난 2021년 10월 노사가 맺은 고용안정 협약에도 불구하고 한국와이퍼 측이 1월 1일부터 일방적으로 회사 문을 닫고 청산 절차에 돌입하자, 노동자들이 1월 2일부터 공장에서 먹고 자며 현장을 지키고 있다. 이곳 노동자들은 이곳에서 대부분 10~20년 이상 일했고, 50대 중반 여성이 주축이었다.
 1월 31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반월시화 공단 내 한국와이퍼 공장 내부. 지난 2021년 10월 노사가 맺은 고용안정 협약에도 불구하고 한국와이퍼 측이 1월 1일부터 일방적으로 회사 문을 닫고 청산 절차에 돌입하자, 노동자들이 1월 2일부터 공장에서 먹고 자며 현장을 지키고 있다. 이곳 노동자들은 이곳에서 대부분 10~20년 이상 일했고, 50대 중반 여성이 주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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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영(53/ 여/ 10년차)

"지금은 이렇게 간이 의자라도 놓고 앉아있잖아요. 우리가 일할 땐 이런 의자 하나도 없었어요. 쉬는 시간에도 그냥 박스 놓고 앉거나 땅바닥에 앉아서 쉬고. 회사가 어렵다고 해서 우리도 지난 몇 년간 밖으로 외주 줬던 공정들 내부화하는 거 다 동의해서 우리가 더 일 많이 하고 그랬어요. 고통 분담한다고 생각하고. 근데 회사는 결국 이렇게 청산할 계획이었던 거죠. 정말 우리가 매일 일하던 공장에서 이렇게 자고, 농성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처음엔 정말 눈물 나더라고요."

최만복(43/남/ 11년차)

"1월 1일 날 딱 공장문이 닫혔는데. 우리가 드나들던 작업장도 샌드위치 판넬로 다 가벽을 세워버리고. 정말 화가 났어요. 내가 그래도 여기서 10년 넘게 일했는데 이런 대접을 받아야 되나 허탈감도 들고. 그리고 아직 해고자도 아니잖아요. 다들 기가 막혀 해요. '나 여기서 일했는데, 저기서 일했는데.' 자기 자리 가면. 근데 회사는 뭘 한 줄 아세요? 우리가 여기 들어온 뒤에 공장에 CCTV를 달았어요. 우리가 혹시 불법 저지르는 건 없나, 꼬투리 잡을 건 없나 감시하는 거예요. 처음엔 황당했는데, 이젠 정말 분노랄까, 그런 게 생겨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반월시화 공단 내 한국와이퍼 공장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반월시화 공단 내 한국와이퍼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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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미 분회장(46/ 여/ 18년차)

"공장에서는 별일이 다 있지만, 퇴근하고 집에 와서 하루종일 울었던 날이 기억나요. 다 나이 오십 넘으신 언니들이랑 같이 일했는데. 회사에서 야간 잔업시간에 간식으로 빵을 줬어요. 근데 어느 언니가 배가 고파서 다른 쉬는 시간에 빵을 먹다 상사한테 걸린 거예요. 근데 그 상사가 시말서를 써오게 했어요. 그래 거기까진 그렇다 쳐요. 근데 퇴근 시간이 지난 뒤에도 시말서가 마음에 안 든다고 다시 써오라고 계속 빠꾸를 시키는 거예요. 결국 통근차도 이미 떠났고, 차가 없는 언니는 집에도 못 가게 됐죠.

왜 우린 이런 인간적인 모멸감까지 당하면서 일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노조가 있어야겠다, 생각했죠. 문제제기 많이 하고 노조 활동 하니 회사에서 부서 이동을 시켰어요. 제가 임신했을 때인데 보통 남자들이 하는 헹거 작업 하는 부서로 보냈어요. 무거운 것 들어야 하는 부서로.

여기는 잔업도 많고 노동 강도가 높아서 언니들 중에서도 가장이신 분들이 많고, 그런 분들이 대개 오래 버티세요. 근데 회사는 지금 우리가 마치 위로금 조금 더 받으려고 싸우는 걸로 착각해요. 고용노동부도 비슷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근데 완전히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한국 사회에서 일자리가 있고 없고의 문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저만 해도 '해고'라고 하니까, 당장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존감 같은 게 많이 떨어져요. 저도 '설마, 설마' 했지, 제가 다니는 회사가 진짜로 청산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거든요.

지금 위로금 받고 해고 당한다 쳐요. 50대 여성들이 어디로 갈까요? 파견 인력시장 가서 안정적이지 않은 일자리 전전하다가 몸 아프면 한두 달 또 쉴 거고, 이렇게 2~3년만 지나면 위로금이고 퇴직금이고 다 털어먹을 거예요. 저희는 안정적인 직장을 바랐던 거죠. 회사가 했던 약속만 지키라는 거예요. 이런 당연한 요구를 위해서 이렇게 공장 바닥에서 노동자들이 잠을 자야 하고, 단식을 해야 하고. 이런 비인권적인 방식으로 나의 권리를 지켜야 한다는 게 참 속상해요."

유정선(50/ 여/ 10년차)

"저는 사실 노조 하면 빨갱이, 북한 이런 걸로만 생각했어요. 근데 내가 내 일이 돼서 당해보니까, 노조가 없으면 지금 내가 어떻게 됐을까, 싶어요. 그래서 내 자식들한테도 노조가 꼭 있는 회사로 취직하라고 하게 됐어요."

 
한국와이퍼 공장 내부에 조합원들이 모여있다.
 한국와이퍼 공장 내부에 조합원들이 모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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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매(55/ 여/ 18년차)

"저는 사실 일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돈은 벌어야 되니까 처음에 '1년만 견디자' 했던 게 벌써 18년이 됐어요.

저는 혼자 살아요. 여기 언니들도 걱정이 많겠지만, 저는 지금 좀 많이 막막해요. 누가 절 먹여 살릴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서 쫓겨나면 앞으로 어디서 먹고 살아야 하나, 또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하나, 이런 게 정말 까마득해요. 왜냐면 이제 저에겐 선택할 여지가 별로 없거든요. 오십을 훌쩍 넘었는 데다가 여자잖아요. 비정규직 자리 중에서도 저를 뽑아줄 회사가 얼마나 되겠어요.

18년 전에, 제가 이 회사 들어왔을 때가 서른여덟살이었어요. 그때는 젊어서 무서울 게 없을 때였는데도, 이력서를 20군데 넘게 넣었던 기억이 나요. 아무데든 다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근데 지금은 나이가 훨씬 더 먹었으니, 얼마나 더 많은 곳에다가 또 이력서를 내야 될지. 오래 일해서 이제 어깨도 많이 아파서 잠도 잘 못 잘 정도예요.

그나마 이렇게 옆에 언니들이 있어서 버티는 것 같아요. 혼자 있으면 불안하고, 되게 힘들거든요. 의지가 많이 돼요."

  
1월 31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반월시화 공단 내 한국와이퍼 공장 내부. 지난 2021년 10월 노사가 맺은 고용안정 협약에도 불구하고 한국와이퍼 측이 1월 1일부터 일방적으로 회사 문을 닫고 청산 절차에 돌입하자, 노동자들이 1월 2일부터 공장에서 먹고 자며 현장을 지키고 있다. 이곳 노동자들은 이곳에서 대부분 10~20년 이상 일했고, 50대 중반 여성이 주축이었다.
 1월 31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반월시화 공단 내 한국와이퍼 공장 내부. 지난 2021년 10월 노사가 맺은 고용안정 협약에도 불구하고 한국와이퍼 측이 1월 1일부터 일방적으로 회사 문을 닫고 청산 절차에 돌입하자, 노동자들이 1월 2일부터 공장에서 먹고 자며 현장을 지키고 있다. 이곳 노동자들은 이곳에서 대부분 10~20년 이상 일했고, 50대 중반 여성이 주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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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한국와이퍼, #해고, #청산, #덴소, #외국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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