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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된 30일 오전 울산시 남구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여전히 마스크를 쓴 채 수업을 받고 있다.
▲ 실내마스크 해제됐지만... 실내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된 30일 오전 울산시 남구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여전히 마스크를 쓴 채 수업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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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제 마스크 10장 남았어~ 새로 주문해 줘~"

설 연휴가 시작되기 이틀 전, 열네 살인 큰아이가 말했다. 1월 30일부터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될 거란 뉴스를 본 터라, 마스크를 더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아이는 다른 마스크가 많이 있어도, 자기 얼굴에 잘 맞는 한 가지 마스크만 사용한다. 당분간은 불편하더라도 다른 마스크를 좀 쓰면 되지 싶기도 했다.

"이제 실내에서 안 써도 된다던데, 교실에서도 안 쓰겠지~" 하고 답했더니, "그래? 그래도 난 마스크 계속 쓸 건데? 코로나가 안 끝났잖아. 코로나 걸렸을 때 너무 아팠어~"라는 말이 돌아왔다.

설연휴가 지나고 주문을 해 주겠다고 했지만, 사실은 상황을 좀 더 지켜보고 주문을 하려고 미룬 거였다. 아이네 학교 개학은 1월 26일인데 이틀만 학교에 다녀오면 주말이고 곧 30일이다.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전면 해제되어서 학교에서 쓰지 않게 된다면, 이미 있는 마스크에 새로 주문한 것까지, 그대로 짐이 되는 게 싫었다.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벗지 않는 이유

하지만 내 걱정이 무색하게도 3년 동안 마스크를 착용하던 일상은, 1월 30일이 되었다고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집은 밖으로 나갈 때 꺼내 쓰기 쉽도록 마스크를 신발장에 수납해 둔다. 출근하는 남편도, 학교에 가는 아이들도 현관에서 신발을 신듯 마스크를 꺼내 썼다. 나도 실내마스크가 해제됐다는 생각조차 못 한 채 그들을 배웅하고, 외출할 때도 마스크를 쓰고 타로 공부 모임에 갔다.

한 친구가 마스크를 벗고 오다가 먼저 도착한 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앉아 있는 걸 보고 "오늘부터 실내 마스크 의무 해제된 거 맞지?"하면서 마스크를 다시 썼다. "아, 그게 오늘이었구나!"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다들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또 다른 친구가 학교나 학원에서 마스크를 계속 쓰자는 공지를 보내 주어서 오히려 안심이 되었다고 하니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아직 코로나가 끝난 게 아니니까 실내에서는 당연히 써야 하지 않겠냐면서 말이다. 학교에서 아이들도 잘 쓰고 있을 테니, 엄마들인 우리도 잘 쓰자면서 마스크를 쓰고 모임을 진행했다.

그러고 보니, 야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지 한참이 지났지만, 밖에서도 여전히 마스크를 쓴다. 잠깐씩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때 마스크를 벗어 보지만, 뭔가 어색해서 다시 쓰게 된다. 코로나 시기에 출산과 육아를 하느라 외출을 많이 하지 않던 나도 마스크를 벗고 집 밖에 있는 일이 낯선데, 매일 마스크를 쓰고 학교나 운동을 가던 아이들은 훨씬 더 그렇겠구나 싶었다. 한 번은 큰아이와 같이 외출했다가, 밖에서 잠깐 마스크를 벗었더니 "엄마, 마스크 얼른 써~"하던 아이였으니 말이다.

인생의 1/4을 마스크와 함께 보낸 둘째아이
 
실내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 다음날인 31일 서울의 한 영화관에 마스크 착용 안내문이 놓여있다.
▲ 영화관 실내마스크 자율착용 실내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 다음날인 31일 서울의 한 영화관에 마스크 착용 안내문이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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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아이의 마스크를 주문하는데 둘째 아이가 집에 들어왔다. 쓰고 갔던 마스크를 벗어서 쓰레기통에 버리기에, "오늘도 학교에서 마스크 계속 썼어?"하고 물었더니, "응, 그럼! 선생님이 아직 위험하니까 우리 반은 당분간 쓰고 있자고 하셨어" 했다. 그래도 조금 답답하지 않더냐는 내 말에 아이가 "아니, 오히려 교실에서 마스크를 벗는다고 생각하니까 이상해. 이제 밖에서 마스크는 나하고 한 몸 같아~" 하는 게 아닌가.

올해 4학년이 되는 둘째 아이는 초등생활 내내 마스크를 썼다. 2020년 2월에 코로나가 급속히 퍼지기 시작해, 첫 초등학교 입학식도 하염없이 미뤄지다 5월이 되어서야 온라인으로 했다. 이후 1주일에 하루 이틀씩만 학교에 갈 때도 마스크를 쓰고, 친구와 대화나 서로 물건 빌려주기가 같은 것들이 금지된 교실 생활을 했다. 그렇게 3년을 보냈다.

입고 있던 옷을 벗는 것 같은 기분일까. 11살인 아이는 초등학교 생활의 전부를, 제 인생의 4분의 1을 마스크와 함께 보냈으니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아이는 어차피 놀이터에서 친구들하고 놀때도 마스크를 써야 하니 그냥 내내 쓰고 다니는 편이 낫다고도 했다. 괜히 벗었다가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낭패라면서. 뛰어놀 때라도 좀 시원하게 숨을 쉬었으면 싶어 이제 밖에선 안 써도 된다고 말해주었지만, 혹시라도 친구에게 코로나를 옮기면 안 된다면서 꼭 쓸 거라고 했다. 친한 친구가 코로나에 걸려 학교에 못 나오고 있는데, 같이 놀 때 마스크를 써서 자기는 괜찮은 거라면서.

그 말에 '아차!' 싶었다. 아이들에게 처음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말해 줄 때, 어른들이 정한 의무니까 무조건 따르라고 하지 않았다. 무서운 바이러스가 퍼지고 있어 나와 친구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했다. 1월 30일 기준 확진자가 1만 9천 명이 넘고 위중증 환자 387명, 사망자 24명이 발생하는 상황에, 그 의무가 해제되었다고 마스크를 벗으라고 할 수 없는 거였다. 친구에게 옮고 옮기는 위험까지 해제된 건 아니니 말이다.

많은 것들이 낯설게 바뀌었다

둘째 아이와 마스크 얘기를 하고 있었더니, 큰아이가 보던 책을 내밀었다. 코로나도 언젠간 끝날 거라는 걸 아이들과 함께 믿고 싶어서 봤던(책을 보면서 '끝난다'는 건 뭘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돈 브라운의 그래픽 노블 <코로나 팬데믹을 닮은 스페인 독감>이었다.

한쪽 귀를 접었던 데를 펼치면서 "엄마, 이것 봐. 마스크가 고통과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구했다잖아요. 그러니까 계속 써야지~" 둘째 아이도 맞장구쳤다. 다른 의견도 있었지만, 딱 그 말풍선을 꼬집어서 마스크를 계속 쓰겠다는 아이들과 앞으로도 우리는 마스크를 잘 쓰고 손을 잘 씻자는 얘기로 마무리를 했다.

책을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천천히 다시 보는데 에필로그에 인용한 작가 캐서린 앤 포터의 말에 눈길이 멈췄다.

"독감 이후에는 낯선 방식으로 바뀌어 버렸어요. 정말로요(91쪽)."

낯선 방식, 낯선 방식... 낯선 방식이란 말이 자꾸 맴돈다. 이미 많은 것이 낯설게 바뀌었구나 싶었다.
 
아이가 콕 집어서 말한 말풍선. "마스크가 고통과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구했습니다."
▲ 책 <코로나 팬데믹을 닮은 스페인독감> 60~61쪽 아이가 콕 집어서 말한 말풍선. "마스크가 고통과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구했습니다."
ⓒ 돈브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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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실내 마스크 해제, #스페인 독감, #마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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