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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어머니 제사는 내가 '병중'이라는 이유로 건너뛰었다. 이러한 사정을 이해해주시리라 믿지만 불효자가 된 거 같아 마음이 허하다. 겨울이면 절로 생각나는 어머니는 32년 전 12월 대통령 선거일 투표하고 나와 식사까지 한 후 저녁에 홀연히 돌아가셨다. 제삿날이 대통령을 선출한 날이기에 남다르기도 하다.

꽤나 오랜 세월이 흘러도 어머니는 살아 있는 것만 같다. 이제 나는 그 어머니보다 더 오래 살았지만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어머니가 보고 싶다. 한번은 꿈속에서 어머니가 내게 '아파도 곧 나을 거다'며 용기를 주었다. 하지만 불쑥불쑥 떠오르는 어머니 추억들은 가엽고 측은함이 앞서는 시간들이었다.

내 기억에 어머니는 늘 바쁘게 살았다. 우선 우리 집은 '이사'를 밥 먹듯 했다. 직업군인 아버지를 따라 새 근무지 명령이 떨어지면 딸린 네 식구도 함께 이사를 해야했다. 1년에 두 번 이사하는 때도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무려 10번을 이사했다. 집안 살림은 이사에 편하도록 단출하고 이른바 '하꼬방'을 전전했다.

이사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팥죽'이다. 어머니는 이사할 때마다 팥죽을 쑤었다. 팥죽이 집안 악귀를 쫓는다고 믿었다. 이삿짐을 풀기도 전에 팥죽부터 만들었다. 팥죽을 장독대에 올려놓고 정성껏 빌면서 집 주변 곳곳에 뿌려 잡귀를 물리치고 이웃들에 죽 몇 그릇 돌리고서야 이사가 마무리됐다.

어머니 팥죽은 집 없는 서러움을 의미한다. '이사 그만 해달라'는 소원과 가난을 벗어나려는 의지를 포함하고 있다. 남들이 1년에 한 번 먹을 동지 팥죽을 우리는 이사할 때마다 한두 번 더 먹었다. 지금 내가 팥죽이 지겨워 멀리 하는 배경이다. 펄펄 끓는 팥죽 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철이 들고도 한참 만에 알았다.

연례 행사인 겨울 김장도 어머니 혼자 감당했다. 다섯 식구에 200여 포기는 기본이었다. 배추를 다듬고 소금에 절이고 양념까지 만들어 땅속 김장독에 묻을 때까지 이삼일 내내 김장하느라 씨름했다. 초인적인 과업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힘들다고 내색하거나 불평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내가 성인이 돼서 일손을 일부 도왔지만 그건 돕는 흉내에 불과했다. 아버지와 우리들은 새 김장을 신나게 먹기만 할 뿐이다. 우리집 '김치말이 국수'는 어머니가 생전에 물려 준 전통 음식이다. 국수를 먹을 때마다 어머니 김장과 돕지 못한 미안함이 혼재하는 감정들이 스쳐 지나간다.

겨울에 또 하나의 의례가 장(醬) 담그는 것이다. 어머니는 가을부터 메주를 만들 콩을 마련했다. 이맘때 콩을 삶아 네모 메주를 빚은 후 아랫목에 한동안 놓아 숙성시켰다. 나는 메주를 뛰어넘어 지나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부정탄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솔직히 메주 냄새가 싫었다. 양조간장이 나와도 어머니가 직접 만든 정월간장은 우리집을 대표하는 맛이었다.

이뿐 아니다. 어머니는 일년 내내 돌아오는 집안의 크고 작은 차례와 제사도 혼자서 챙겼다. 아버지는 진설할 때마다 어머니 솜씨와 정성이 담긴 푸짐한 제물들을 칭찬하곤 했지만 어머니는 살아계실 때 아무리 해도 표나지 않는 집안행사를 도맡아 했다. 그리고 그걸 운명적으로 받아들였다.

어머니의 무수한 치성들은 아내에게 전수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아내도 나이를 먹으면서 이제는 받아내기 힘든 모양이다. 젊을 때 척척하던 집안일들이 닥치면 마음이 부산해진다. 이른바 '명절증후군'이다. 집안 대소사 모두가 귀찮고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것이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보다는 많이 간소화됐어도 막상 일을 준비하는 사람은 그게 아니다.

나도 사실 명절증후군이 있다. 집안 행사가 있으면 나름대로 아내를 돕는 것으로 증후군을 극복하려 하지만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이에 나는 아내에게 될 수 있으면 집안일을 생략하는 방향으로 타협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일테면 내 생일상 대신 외식으로 대체한다거나 김장을 담그지 말고 김치를 사 먹자는 식이다.

집안 대소사를 맡은 아내에게 늘 미안하고 죄인된 심정이다. 실제 그는 "이럴 줄 알았으면 나와 만나지 않았을 거라"며 무시로 내게 푸념을 쏟아낸다. 그러면서도 어머니 기일제사는 아내가 아이디어를 내 어머니가 좋아하는 꽃을 집안에 꾸미는 것으로 대신해 고인을 추모했다. 이걸 보면 특색 있는 집안 전통 하나쯤은 새로 만들어가는 것도 좋을 듯하다.
 
간편용기에 담긴 전통간장. 비주얼이 그럴듯하다.
 간편용기에 담긴 전통간장. 비주얼이 그럴듯하다.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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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내가 간장 담그는 이야기를 넌지시 꺼냈다. 정월대보름 즈음해 만들 의도를 간파하고 그건 꿈에도 생각하지 말라고 나는 엄포를 놨다. 말이 쉽지 장 담그는 일이 얼마나 힘드는 작업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아내도 내 말에 선뜻 수긍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웬일? 며칠 후 간장을 만들었다고 해 놀랐다.

내가 모르는 사이, 아니 내가 없는 시간에 집에서 그 힘든 장을 담갔다니 어이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요즘엔 배달 재료를 용기에 넣어 섞어만 주면 자동으로 숙성되는 간편식 전통간장이다. 간장용기에 담긴 메주를 보고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나왔다. 옛날 항아리 속 메주 비주얼 그대로다.

나는 안도의 숨을 쉬면서 아내 장맛이 제대로 나기를 함께 응원했다. 어쨌든 덕분에 오랜만에 집에서 만든 정월장을 맛보게 생겼다. 말릴 일도 아니었다. 아내가 하는 집안일들이 조금 수월하게 진화되고 있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에도 게재할 계획입니다.


태그:#어머니제사, #정월대보름, #팥죽, #김장, #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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