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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코로나로 관광객이 줄어 오히려 좋아한다고 한다. 관광세를 부과해도 줄어들 기색 없는 '너무 많은 관광객'이 사회 문제가 되는 곳이 바르셀로나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바르셀로나로 몰려 가는 이유는 딱 하나,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기 위해서다.

정형을 거부하고 파격을 넘어 우스꽝스러운 장난 같아 보이는 가우디의 건축 작품이 도시 곳곳에 있다. 그중 천재 건축가의 전설을 지금도 써 내려가고 있는 작품이 있으니, 가우디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이다. 착공(1882년)된 지 141년째 짓고 있고 가우디 탄생 100주년인 2026년 완성 예정이던 성당은 코로나로 지연되어 2050년에야 완공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바르셀로나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있다면 서울에도 그에 비견할만한 종교 건축물이 하나 있다. 물론 나의 주관적 감동의 크기 기준이다. 

지도앱은 인간에게 드론 뷰를 안겨주는 놀라운 신문물이다. 서울 정동의 덕수궁 부근을 지도앱으로 보다가 깜짝 놀랐다. 커다란 십자가 하나가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 드러누워 있는 게 아닌가. 서울 땅 한복판에 간밤에 성령이라도 임하셨단 말인가.

십자가의 정체 
 
위에서 내려다 본 성공회 서울 성당의 모습
 위에서 내려다 본 성공회 서울 성당의 모습
ⓒ 카카오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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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도 십자가의 정체는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이었다. 성당을 실제로 보고 두 번째로 놀랐다. 건축 문외한의 눈에도 너무 예뻤기 때문이다. 주황색 지붕만으로도 도심의 무채색 빌딩 숲 사이에서 단연 시선을 끌었다. 성당은 근엄하게 군림하지 않고 화사하고 따뜻했다.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 김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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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낮이가 다른 건물과 종탑 배치가 율동감을 주었고 자세히 보니 지붕은 기와로 덮여있고 한옥의 서까래도 장식되었다. 실내로 들어가 창문을 보는 순간 조각보가 떠올랐다. 창문에도 전통적인 격자무늬 창살을 넣었고 스테인드글라스는 오방색(황, 청, 백, 적, 흑)을 사용해 단아하다. 전체적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에 한옥 건축 요소를 섬세하게 가미했다.
 
창문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의 스테인드글라스
ⓒ 김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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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건축에서 보여준 '종교의 토착화' 노력이 감동적이라면 성당이 지어진 이야기는 드라마틱하다. 초대주교 고요한(Chares Jhon Corfe)이 1891년 한옥 성당을 지었던 자리에 1922년 영국 건축가 아서 딕슨(A. Dixon)의 설계로 지금의 성당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금 사정으로 양쪽 날개와 아래쪽 일부를 뺀 미완의 건물로 지어졌고(1926년) 이후 70년간 성당으로 사용된다.
 
1892년과 1926년에 건축된 성당의 모습
 1892년과 1926년에 건축된 성당의 모습
ⓒ 성공회 서울성당의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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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100주년을 기념해 재건축 논의가 진행되던 때 영국에서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던 원설계도가 어느 영국 관광객에 의해 렉싱턴 지역 도서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설계도를 복사해 와서 재착공한 결과 1996년 현재 모습으로 완공되었다.

원래 터에 초대성당을 지은 지 100년을 훌쩍 넘겼고 같은 건물로 착공한 지 74년 만이다. 레고 조립하듯 하루하루 화강암을 쌓아 '입체 십자가 성당'을 완성해 가는 과정을 지켜본 교인들은 얼마나 감격했을까? 100여 년 전 첫 삽을 떴던 이들의 기도가 현재 교인들의 기도와 맞닿았다.

건물 뒤편으로 가니 한옥을 차용해 지은 사목관이 있다. 성당을 감싸안은 모양새로 원호를 그리는 배치다. 뜰 한편에 1987년 6월 항쟁 기념비가 있다. 1987년 6월 10일 이곳 종탑에서 민주대표들이 종을 쳐서 6월 시위의 불길을 당긴 곳이다. 
 
성당 뒤에서 성당을 감싸안듯 위치한 사목관
 성당 뒤에서 성당을 감싸안듯 위치한 사목관
ⓒ 김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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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가장 기품있는 로마네스크 성당으로서 이제는 문화재가 된 이곳의 관람법은, 먼저 성당 주변과 내부를 둘러본다. 그런 다음 성당에 이웃한 전망대 세실마루로 가보자. 십자가의 평면 구조를 오롯이 볼 수는 없지만 성당의 정측면의 전체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선물한다. 건물 벽체의 색을 비교해 새로 올린 부분을 추정해 봐도 재미있다. 성당 주차장에 위치한 카페 그레이스에서 차 한잔 하며 감상의 여운을 즐겨도 좋겠다.

한국에도 있는 멋진 성당 건축물

성공회의 로마네스크양식 성당이 더 궁금하다면 인천의 내동교회를 찾아가 보길 권한다. 선교 초창기 조선인들에게 이질적이었을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성공회가 고민한 흔적에 관심이 더 간다면 강화도 성공회 성당을 추천하고 싶다. 이곳은 서양 양식에 한옥을 가미한 게 아니라 아예 한옥으로 지은 성당이다. 노아의 방주를 형상화한 한옥 건물에 바실리카 양식의 성당을 앉힌 곳이다.
 
한국 최초의 성공회 성당인 인천의 내동 성공회성당(1890년 건축)
 한국 최초의 성공회 성당인 인천의 내동 성공회성당(1890년 건축)
ⓒ 김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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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강화성당(정면4칸, 측면10칸, 1900년 건축)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정면4칸, 측면10칸, 1900년 건축)
ⓒ 김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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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의 내부
 대한성공회 강화성당의 내부
ⓒ 김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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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도시를 가면 시내 관광의 절반은 성당 구경이다. 사그리다 파밀리아처럼 웅장하고 경외로운 성당이 많다. 그러나 해외 유명 성당 못지않은 한국적인 개성과 아름다움을 갖춘 성당 건축물이 뜻밖에도 가까이에 적지 않다. 혹 덕수궁이나 시청 광장으로 간다면 잠시 멈추어 고개를 두리번거려보라. 오렌지톤의 성당이 보석처럼 빛을 내고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성공회서울성당, #정동여행, #서울여행, #서울근대건축물, #로마네스크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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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여행자입니다. 여행이 일상이고 생활이 여행인 날들을 살고 있습니다. 흘러가는 시간과 기억을 '쌓기 위해'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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