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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장산마을의 연못정원. 연못의 가운데에 있는 석조건축물이 모현관이다. 지난 1월 24일 풍경이다.
 담양 장산마을의 연못정원. 연못의 가운데에 있는 석조건축물이 모현관이다. 지난 1월 24일 풍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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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방학 때면, 가장 큰 숙제가 일기쓰기였다. 날 일(日) 기록할 기(記), 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을 날마다 적는 게 일기다. 하지만 방학숙제였던 일기는 개학을 앞두고 한꺼번에 쓰기 일쑤였다.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기억나지 않는 지난날의 날씨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심지어 한 달 전의 날씨도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내용도 문제였다. 날마다 자고 일어나서, 먹고, 놀고, 다시 자는 거 외엔 특별히 기억나는 게 없었다. 재밌는 하루였다, 어제보다 더 재밌는 하루였다는 말이 되풀이됐다. 선생님의 검사가 기다리고 있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 솔직한 생각이나 느낌을 쓰기가 쉽지 않았다.
  
이순신 장군이 쓴 '난중일기'는 사료 가치가 높다. 여수 충민사 유물전시관에 난중일기가 사본으로 전시돼 있다.
 이순신 장군이 쓴 '난중일기'는 사료 가치가 높다. 여수 충민사 유물전시관에 난중일기가 사본으로 전시돼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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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는 개인의 기록이다. 사회와 국가의 중요한 기록으로 쓰이기도 한다. 이순신의 '난중일기'가 대표적이다. 우리는 이순신의 일기를 통해 임진왜란의 전황을 소상히 알았다. 이순신이 어떻게 전쟁을 준비했는지, 누가 도왔는지, 어디에서 어떤 싸움을 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이순신의 인간적인 고민과 번뇌도 일기를 통해 엿볼 수 있었다.

난중일기뿐 아니다. '조선왕조실록'도 기록을 통해 전해진 우리의 역사다. 1980년 5월의 상황을 적은 학생과 시민의 일기, 기자의 현장취재 수첩도 기록을 통해 전해진 사실이었다.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하여, 일기는 당시 시대상을 보여주는 타임캡슐이다.
  
미암박물관 전경. 유희춘이 쓴 ‘미암일기’를 토대로 만들어진 박물관이다. 지난 1월 24일 풍경이다.
 미암박물관 전경. 유희춘이 쓴 ‘미암일기’를 토대로 만들어진 박물관이다. 지난 1월 24일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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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마을의 연못에 반영돼 비치는 미암박물관 풍경. 지난 1월 24일이다.
 장산마을의 연못에 반영돼 비치는 미암박물관 풍경. 지난 1월 24일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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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선인의 일기를 엿볼 수 있는 담양 미암박물관으로 간다. 전라남도 담양군 대덕면 장산리에 있다. 뒷산이 노루의 형상이라고 '노루봉(獐峰)'으로 불렸다. 그 아래에 들어선 마을이라고 노루골, 장동(獐洞), 노랑골, 장산으로 불리는 마을이다.

장산마을은 조선 중기의 문신 미암 유희춘(1513-1577)이 쓴 <미암일기>를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다. 일기를 쓴 유희춘은 기록의 달인으로, 미암일기는 16세기의 타임캡슐로 불린다.

미암일기는 유희춘이 1567년 10월 1일부터 1577년 5월 13일까지 썼다. 근 10여 년에 걸친 기록이다. 모두 14권이었다. 지금은 11권만 전해지고 있다. 글자 수만 한자로 90만 자에 이른다. 현존하는 개인의 일기 가운데 가장 방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암박물관에서 만난 유희춘의 '미암일기'. 현존하는 개인의 일기 가운데 가장 방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물로 지정돼 있다.
 미암박물관에서 만난 유희춘의 '미암일기'. 현존하는 개인의 일기 가운데 가장 방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물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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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암박물관 내부. 미암집 목판 396개가 전시돼 있다.
  미암박물관 내부. 미암집 목판 396개가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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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암일기에는 개인의 일상이 소상히 적혀 있다. 대학자였던 그의 일상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일기를 보면서 인간적인 친밀감까지 느껴진다. 유희춘이 아내(송덕봉)와 주고받은 알콩달콩한 이야기는 덤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일기에 적힌 내용이 당시의 정치와 경제 상황, 사회와 문화, 사상과 물산, 의술, 교육 등을 망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승정원일기'가 불에 타 버렸다. 광해군 때 '선조실록'을 펴내면서 이이의 '석담일기', 기대승의 '논사록'과 함께 '미암일기'가 참고자료로 쓰였다. 역사자료의 가치도 지닌 일기다. 미암일기가 보물(제260호)로 지정된 이유다.
  
미암 유희춘이 가마를 타고 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 미암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미암 유희춘이 가마를 타고 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 미암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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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춘은 1513년 해남에서 태어났다. 하서 김인후와 신재 최산두의 문하에서 공부했다. 유생들 사이에서 '척척박사', '글 귀신'으로 통할 만큼 박학다식했다고 전한다. 정미사화 때 유배돼 19년 동안 살았다. 정미사화는 명종 때 수렴청정을 하던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이 반대파를 숙청한 사건을 가리킨다.

유희춘은 선조 때 유배에서 풀려나 다시 벼슬길에 나섰다. 미암일기는 그때부터 썼다. 미암박물관이 있는 담양은 유희춘의 처가 동네다. 24살의 유희춘이 16살의 덕봉과 혼인을 하면서 담양과 인연을 맺었다.

미암박물관은 유희춘이 쓴 '미암일기'와 일기의 일부분을 골라 목판으로 인쇄한 '미암집'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미암일기, 미암집, 396개의 미암집 목판을 볼 수 있다. 그의 부인 덕봉의 재치 넘치는 글도 만날 수 있다.
  
담양 장산마을의 연못정원 풍경. 고목이 된 느티나무와 모현관이 한데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그리고 있다. 지난 1월 24일이다.
 담양 장산마을의 연못정원 풍경. 고목이 된 느티나무와 모현관이 한데 어우러져 그림 같은 풍경을 그리고 있다. 지난 1월 24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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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가에 있는 누정 연계정. 유희춘이 말년에 후학을 가르친 곳이라고 전한다.
 연못가에 있는 누정 연계정. 유희춘이 말년에 후학을 가르친 곳이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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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암박물관의 바깥 풍경도 한 폭의 그림이다. 선산유씨 종가가 있고, 미암과 덕봉을 모시는 사당이 있다. 미암박물관이 들어서기 전까지 '미암일기'를 보관했던 모현관도 자리하고 있다. 모현관은 화강암으로 지어졌다. 네모난 연못 안에 자리하고 있다.

모현관은 1959년에 지어졌다. 편액을 남종화의 대가 의재 허백련이 썼다. 연못정원의 중심이 되는 석조건축물이다. 건물이 연못에 반영돼 비치는 모습도 환상적이다. 연못가에 오래된 느티나무와 어우러진 누정 연계정도 있다. 연계정은 유희춘이 말년에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라고 전한다.
  
장산마을에 있는 선산유씨 종갓집. 한쪽에 미암 유희춘과 부인 덕봉을 모시는 사당이 있다.
 장산마을에 있는 선산유씨 종갓집. 한쪽에 미암 유희춘과 부인 덕봉을 모시는 사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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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김제중 기념비. 미암박물관이 자리한 장산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지난 1월 24일 모습이다.
 애국지사 김제중 기념비. 미암박물관이 자리한 장산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지난 1월 24일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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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마을에 애국지사 김제중 기념비도 있다. 김제중 지사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군자금을 모으다가 일제에 붙잡혀 8년간 감옥살이를 한 독립운동가이다. 정원이 아름답다고, 담양군에서 '예쁜정원'으로 지정한 집도 기념비 옆에 있다.

돌담과 한옥이 한데 어우러지는 무월마을도 미암박물관에서 가깝다. 대덕면 무월리는 산봉우리에 달이 차오르면 더없이 아름답다는 마을이다. 한옥의 안마당이 하나같이 아담하고 예쁘다. 마을의 역사가 800년을 웃돈다. 농식품부 선정 농촌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이서의 재실 몽한각의 설경. 앞면 5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을 얹었다. 지난 1월 24일 풍경이다.
 이서의 재실 몽한각의 설경. 앞면 5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을 얹었다. 지난 1월 24일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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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면 매산리에 있는 이서의 재실 몽한각도 멋스럽다. 몽한각은 이서를 추모하려고 지은 앞면 5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을 얹은 집이다. 양녕대군의 증손인 이서는 모반을 이유로 1507년 때 창평으로 유배돼 15년을 살았다. 유배에서 풀린 뒤에도 한양으로 돌아가지 않고 담양에 눌러앉았다. 가사문학작품 '낙지가(樂志歌)'를 지었다.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담양의 경치와 풍속을 노래한 글이다.
 

태그:#미암박물관, #미암일기, #미암유희춘, #담양몽한각, #담양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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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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