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란 때로 양날의 검과 같다. 험난한 세상과 맞설 때는 나를 지켜주는 누구보다 든든한 한 편이지만, 반대로 너무 가까이에 있기에 가장 치명적인 급소를 찌를 수도 있는 적보다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서로에게 평생 얽힌 마음의 응어리를 풀지 못한 채 영원히 이별해야했던 한 부자(父子)의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27일 방송된 채널A <오은영의 금쪽상담소>에는 '원조 국민 남동생'으로 불리우는 가수 김승진이 의뢰인으로 출연했다. 김승진은 1980년대 '스잔'을 히트시키며 당대의 인기가수이자 원조 하이틴 스타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김승진은 당시에도 많은 궁금증을 자아냈던 스잔의 정체에 대한 비밀을 밝혔다. 당시 첫사랑이나 외국인 여자친구의 이름이 아니냐는 등, 여러 가지 소문이 무성했다. 김승진은 "작곡가와 작사가가 부부였다. 작사가였던 아내가 남편에 대한 사랑을 성별에 맞게 여자 이름으로 수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승진은 "노래가 히트한 이후, 이태원에 있던 사무실에 실제 스잔이라는 이름의 외국인 여성이 찾아온 일도 있다. 방송에서 자꾸 제 이름을 부르길래 기분이 묘했다고 하더라. 식사를 대접하고 졸지에 한국 가이드까지 해줬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히여 '경아'를 히트시켰던 박혜성과는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기도 했다. 소녀 팬덤이 '스잔파 VS. 경아파'가 나뉘어 파벌싸움을 벌이기도 했다고. 공개방송에서 한 가수가 나오면 해당 팬덤은 환호하고 상대 팬덤은 침묵하는 식의 기싸움을 벌였다.
 
김승진은 한창 인기를 누리던 시절에는 하루에 전국에서 쏟아진 팬레터만 800통이 넘었다고 고백했다. 또한 배우 차인표의 아내이기도 배우 신애라와는 대학 동기라는 친분이 있었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던 아웃사이더였던 김승진에게 먼저 친근하게 다가와준 추억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김승진의 고민은 '결혼'이었다. 올해 56세인 김승진은 여전히 음악활동에만 매진하여 싱글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모친은 아직도 김승진이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기를 소망하고 있었고, 김승진은 "저는 음악이랑 결혼했다고 이야기한다. 자꾸 했던 말을 하니까 귀찮다"며 모자간에 갈등을 빚고 있었다.
 
김승진은 결혼이 어려운 이유로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어도 설레는 감정이 오래 가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오은영은 김승진처럼 늦게까지 미혼인 사람을 일컬어 '황혼솔로'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황혼솔로가 결혼은 둘째치고 연애조차 안하는 이유는, 50대 이상이 되면서 사랑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조건에 대한 눈높이가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라고. 결혼에 대한 생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해 두해 시간이 흐르고 적령기를 놓치면서 결혼 자체가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김승진 역시 황혼솔로라는 진단에 공감했다.
 
김승진은 "신경이 쓰이고 답답하다"면서 이성과의 만남 자체가 스트레스라고 고백했다. 연애에서 필수적인, 서로를 맞춰가는 과정이 어렵고 불편하다는 것. 연애도 이런데 심지어 결혼에 대해서는 "불안하다. 결혼은 서류를 통한 공식화된 약속인데, 구속되는 느낌을 받을 것 같다"고 두려움을 드러냈다. 오은영을 이를 듣고 "김승진은 본인에게 불편하면 연애 감정조차도 칼같이 끊어내고 무관심한 '절식남'이다"라고 규정했다.
 
오은영은 김승진이 절식남이 된 배경을 차근차근 분석했다. 김승진은 한창 가수로 인기를 모았던 20대 초반에 첫 연애를 한 뒤, 놀랍게도 줄곧 솔로로 지내왔다고 밝혔다. 당시에는 부모님이 김승진의 이성교제를 싫어했다고 한다. 특히 아버지는 김승진이 연애한다는 사실을 알고 대노하여 결사반대했다고.
 
오은영은 "사람에게 연애란, 부모로부터 독립의 신호탄"이라고 규정하며 "나와 다른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 생긴다는 것은 심리적인 독립을 기본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김승진은 이른 나이에 일찍 연애활동을 시작하며 온전히 부모님이 정해주고 시키는대로만 따라가는 삶을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가부장적이었던 김승진의 아버지는 엄격한 독재자이자 폭군같은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고. 김승진은 중고등학교때 아버지의 기상시간인 새벽 4시에 맞춰서 기상하여 공부를 해야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생각을 존중하기 보다는 자신이 살아온 방식을 그대로 따르기를 강요했고 본인과 다른 생각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심지어 수시로 체벌을 가장한 폭력도 서슴치 않았다. 김승진은 언제 어디서 벌어질지 모르는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다가 트라우마가 생겨서 경기를 일으킨 적도 있다고 밝혔다. 자녀교육 문제로 김승진의 부모간에는 부부싸움도 잦았고 어머니가 김승진을 때리는 아버지를 말리다가 기절한 일까지 있었다. 반면 아버지는 딸인 김승진의 여동생에는 소외감을 느끼게 할 정도로 큰 관심이 없었다. 김승진이 여동생이 휴대폰에 아버지의 전화번호를 '독재자'로 기입해놓은 일화를 밝혔다.
 
아버지는 김승진이 출연한 방송을 매일 빠짐없이 확인하며 매니저처럼 노래, 표정, 자세 등 모든 것을 모니터링했다. 김승진은 아버지에게 칭찬을 받아온 일이 한번도 없고, "잘했을때는 침묵, 조금이라도 못하거나 아버지 본인의 마음에 안 들면 질책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김승진은 어느날 자신이 옛날에 불렀던 노래들을 오랜만에 듣다가, 녹음을 하면서 아버지에게 호된 질책을 당하던 트라우마가 떠올라 눈물을 쏟았다고.
 
오은영은 "독재자형 부모가 맞다"고 지적하면서 "사랑을 바탕으로 강요와 통제를 정당화하는 부모들이 있다. 상대의 마음과 상황을 나를 위해 조작하는 것이다. 부모-자식간에도 이러한 '가스라이팅(Gaslighting, 심리적 지배) '이 발생할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충고와 가스라이팅의 차이는 무엇일까. 오은영은 "충고는 상대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가스라이팅을 상대를 위하는 척하지만 결국은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부모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하며 "잘 알아보고 결정해, 너무 다 믿으면 안 돼"라고 한다면 조언이지만, "다 필요없고, 내 말만 믿고 따르라. 널 걱정하는건 나 밖에 없어"라고 한다면 가스라이팅에 가깝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흔적은 김승진의 인생에 여전히 낙인처럼 새겨져있었다. 김승진은 어린 시절의 영향으로 항상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고 정리를 하는 생활패턴이 몸에 익었고, 루틴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불안하다고 밝혔다. 김승진은 "쉬면 죄인이 된 기분"이라며 하다못해 옷사이즈조차 조금만 맞지 않으면 불편해서 직접 측정까지 할 정도로 강박적인 면을 드러냈다. 오은영은 "그것이 모두 '아버지의 기준' 같다"라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김승진은 한때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 독립을 시도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해외활동을 위하여 진출한 일본에서 만난 소속사 대표는 김승진에게 또다른 가스라이팅을 일삼으며 심리적-신체적 가학행위에 시달렸다고. 김승진은 일본에서의 2년을 겪으며 "결과적으로 아버지가 했던 말이 다 맞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오은영은 "아버지가 김승진을 사랑했다고 해도 독재자적인 방식은 성숙한 사랑이 아니다."라고 과거 미화에는 선을 그었다.
 
김승진은 재작년에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길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식사 제안을 받았으나 부담감 때문에 거절했고, 하필 그것이 아버지와의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는 죄책감을 고백했다. 김승진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이 아버지의 희생과 사랑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후회와 그리움에 시달렸다고. 방에서 아버지를 찾으면서 목놓아 운 적도 있다는 일화는 모든 이들을 뭉클하게 했다.
 
오은영은 "김승진이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원망이 공존하는 '양가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아버지의 강압적인 부분까지 사랑이라고 미화할 필요는 없다. 아버지를 미워한다고 김승진이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 부분은 마음껏 싫어해도 된다."라고 격려했다.
 
아버지가 생전에 김승진에게 남겼다는 편지가 공개됐다. 오은영이 직접 낭독했다. 아버지는 마치 김승진의 마음을 미리 헤아리기라도 한 것처럼 "지금 생각해보면 너에게 한번도 칭찬을 해준 일이 없더구나. 나는 아버지로, 너에게 항상 강한 사람이어야했고 그래서 채찍질을 더 했던 것 같다. 아들에게 내가 살아온 힘든 것을 겪게 하고 싶지않았으니까"라고 속내를 전했다.
 
이어 아버지는 "승진아, 한번도 다정스럽게 불러본 적이 없지만 편지로나마 이렇게 전해보고 싶다. 세상이 변할 때 그 변함을 두려워하지 말고 즐거워하거라. 그렇다면 너는 더욱 많은 아름다움과 가치를 누릴 수 있을 거란다. 이제는 그 문을 열고 나와서 마음껏 누렸으면 좋겠다. 고맙다, 내 아들이라서, 사랑한다 승진아"라고 뜨거운 부정을 고백했다. 그 먹먹한 진심에 모두가 눈시울을 붉혔다.
 
김승진은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아버지와 어깨동무를 하고 다정하게 지내봤으면 좋겠다"며 그리움을 드러냈다. 오은영은 "김승진이 어린 시절부터 약 50년간 본인의 생각을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실천하는 경험이 적었다"고 분석하며, 자신의 출연작인 <금쪽같은 내 새끼>를 정주행하며 부모-자식관계에 대하여 간접체험하는 시간을 가져볼 것을 조언했다.
 
"방송에 나오는 아이와 부모의 상황을 자신에게 대입해서 '내면의 힘'을 키우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 오은영은 오늘부터 새롭게 태어난 김승진의 인생 2회차를 시작하는 1일을 기념하며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금쪽상담소 김승진 가스라이팅 양가감정 아동학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