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01 18:17최종 업데이트 23.02.01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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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지수 1위' 덴마크의 비결을 찾아 봅니다. 오마이뉴스 '꿈틀비행기 16호'는 2023년 1월 16일부터 24일까지 쇠토프 숲유치원, 바흐네호이 애프터스콜레, 트레크로네르 스콜레, 코펜하겐 티에트겐 학생 기숙사 등을 직접 방문했습니다.[편집자말]

인어공주 동상 덴마크의 상징중 하나인 인어공주 동상. 인어공주 동상을 일주일 보기 위해 덴마크 여행을 떠난 게 아니다. 꿈틀비행기는 교육과 여행을 동시에 느끼는 독특한 프로그램이다. ⓒ 이정혁

 
덴마크로 여행 간다고 했을 때, 유럽여행 좀 다녀봤다는 지인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북유럽까지 가는데 덴마크서만 일주일을 보낸다고? 혹시 인어공주 애착증이야? 아니면 레고 덕후?' 애프터스콜레라고 중학교 마치고 가는 학교가 있는데, 주절주절... '근데 네가 거길 왜가?'(...) 봉황은 뱁새의 이해를 더 이상 구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나의 덴마크 여행 목적은 관광이 아닌, 배움의 길이었음을 차근히 설명할 때가 됐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의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2014년에 초판으로 읽었다. 큰아이가 여섯 살 때 일이다. 내 아이는 한국 교육 방식과 다르게 키워보리라 마음먹고, 여러 각도로 고민하던 시기였다. 책을 읽고, 강연을 듣고, 어느 정도의 방향을 잡았다. 교육은 백 년짜리 계획이다. 조심스러웠지만,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있었기에 용기를 냈다.

한국에서 '다른 초등학생'으로 살기... 그 우여곡절
 

사랑숲마을학교협동조합 필자를 기준으로 왼쪽으로 두 번째 아이가 큰아들이다. 이제는 키가 나만큼 커진 아이를 데리고 이번에 덴마크 여행을 다녀왔다. ⓒ 이정혁

 
2015년 5월, 뜻이 맞는 부모들과 공동육아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일주일에 하루, 오후 업무를 빼고 아이들과 함께 놀았다. 부모들이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아이들의 아빠·엄마(줄여서 '아마'라는 호칭을 씀)가 됐다. 직접 요리하고, 텃밭도 가꾸고, 연극 놀이 등을 했다. 아이들은 행복했다. 겨울 들판에서 아이들과 함께 쥐불놀이하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이듬해,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아파트와 접해 있는, 걸어서 3분 거리의 초등학교를 마다하고 통학버스로 20분 걸리는 시골의 학교를 택했다. 물론 입학 전에 아이에게 몇 개의 초등학교를 보여주고 선택의 기회를 줬다. 일곱살짜리 아이였지만, 학교 뒷산과 넓은 운동장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점이 좋다고 했다. 아이는 한 학급이 한 학년이고, 한 반이 17명인 초등학교에 입학했다(둘째도 같은 이유로 같은 학교에 다녔다).


3~4년의 시간이 흘렀고, 공동육아협동조합은 서서히 붕괴했다. 아이들이 고학년이 되면서 하나둘 학원으로 빠져나갔다. 학부모들 사이에 격한 논쟁이 붙었지만, 누구도 아이들의 미래를 확신하지 못했다. 결국 협동조합은 폐쇄됐고,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의 쳇바퀴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 경쟁을 기본 바탕으로 하는 교육시스템 앞에서, 개인의 다양성은 바위 앞의 계란에 불과했다.

또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코로나는 아이들의 학습 형태를 비대면으로 바꿨고, 점차 사회와 단절돼 갔다. 독립이 아닌 고립의 시간을 겪으며, 아이들의 친구는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대체됐다. 시골 아이들조차 학원 서너 곳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세상.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일방통행의 길 위를 무거운 발걸음으로 걷는 아이들. 지켜보는 부모로서 답답하고 미안했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코로나의 시대가 저물기 시작한 얼마 전, 우연히 '꿈틀비행기' 이륙을 알리는 공지를 봤다. 한 줄기 빛이 보였다. 때마침 큰 아이는 중학교 1학년을 마친 겨울방학이고, 아빠에게도 시간이 많았다. 아이에게 덴마크의 교육환경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신청했다. 아니, 그만큼 절실했다.

책에서만 접했던 '애프터스콜레'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 덴마크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아빠 어깨에 기대어 잠든 아이는 이미 내 키만큼 커 있었다. 아이의 내면을 채워줄 적절한 시기와 내용으로, 운명처럼 꿈틀비행기가 등장한 것이다.

이것은 학교인가 농가인가... 그러나 기우였다
 

바흐네호이 에프터스콜레 입구 주차장을 지나면 말 사육장부터 눈에 들어온다. 덴마크의 자연 환경은 자체로 아름답다. ⓒ 이정혁

 

바흐네호이 에프터스콜레 학교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대강당이다. 얼핏보면 한국의 농가 분위기가 난다. ⓒ 이정혁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간 전쟁으로 인해, 거의 한나절 만에 덴마크 땅을 밟았다. 이틀간의 일정이 지난 1월 19일, 마침내 애프터스콜레를 향하는 날이 밝았다. 당일 방문할 학교는 '바흐네호이 애프터스콜레(Baunehoj Efterskole)'.

덴마크엔 250여 개에 달하는 애프터스콜레가 있다. 9학년의 과정을 마친 15세 청소년들이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설계하도록 만들어진 1년짜리 교육과정이다(애프터스콜레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책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 참조).

버스를 타고 코펜하겐 교외 지역으로 1시간가량 이동한다. 자연과의 교감을 중요시하는 덴마크인들답게 편의점 하나 없는 바닷가의 외딴곳에 학교를 만들었다. 버스 창가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초록 밭과 자작나무 숲이 한눈팔 틈을 주지 않는다. 이국의 풍경은 그림이 되고, 추억이 돼 아이의 자양분으로 차곡히 쌓여간다.

학교 초입은 버스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시골의 오솔길이다. 그런데 주차장에서 내려 학교를 바라보는 순간, 착각에 빠진다. 이것은 학교인가 농가인가? 아이들은 이곳에서 인생을 설계하는가? 노동의 의미를 깨우치는가? 학교 전반의 건물들은 생각보다 허름해 보였고, 기대 이상으로 소박했다. 기대가 살짝 어긋나는 느낌은 잔뜩 찌푸린 하늘 탓만은 아니었다. 물론 기우였지만.

일행을 가장 먼저 맞이한 건 교문도 안내판도 아닌 말과 마구간이다. 군데군데 말똥이 떨어진 흙탕길을 조심스레 걷는다. 북유럽 특유의 찬 기운과 푹신한 흙길이 일말의 불안감을 덜어낸다. 그렇지, 이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구나. 고정관념을 한 번 걸러낸 맑은 정신으로 일행을 따라 강당으로 향한다.

이곳에 '한국적 기준'은 없다
 

바흐네호이 교장선생님과 학생들 교장선생님께서 덴마크 아이들에게 주의사항을 설명하고 있다. ⓒ 이정혁

 

바흐네호이 에프터스콜레(Baunehoj Efterskole)의 이버슨 교장이 학교 소개를 하고 있다. ⓒ 김지현

 
큰 교실 크기의 소강당에서 이버슨 교장(Ulrik Goos Iversen)의 간략한 학교 설명이 시작됐다. 현재 이 학교엔 100여 명의 학생이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재학 중이다. 자연 친화적인 환경 덕분에 소위 말하는 경쟁률이 5대 1가량 된다고 한다. 학생 선발은 인터뷰 후 추첨을 통해 이뤄지는데, 남녀 비율을 1:1로 맞춰 뽑는 것 외에 성적이나 부모의 인맥 같은 한국적 기준은 전혀 없다고 했다.

지난가을, 한국 강화도에 있는 '꿈틀리인생학교' 학생들이 3일 일정으로 이곳을 다녀갔다고 한다. 일종의 단기 교환학생인 셈이다. 학교 연혁과 입학 과정 등에 관한 설명이 이어지는 찰나, 뒷문이 열린다. 학생들이 다소 어색하지만, 치아를 드러낸 밝은 미소로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소년티를 아직 벗지 못한 키 자란 아이들. 우리나라로 치면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인 셈이다. 외국인을 접한 호기심에서일까? 아이들의 눈망울은 개구쟁이의 원색으로 가득 찬 채 빛나고 있다.

이제 애프터스콜레 탐방의 하이라이트. 현지 학생들의 인솔하에 기숙사와 학교를 둘러보는 순서가 왔다. 참가자를 다섯 조로 나누고 학생들 두세 명이 앞장선다. 우리 조는 '구스타우(Gustau)'라는 남학생과 '린(Linh)'이라는 여학생이 안내를 맡았다. 이방인들에게 무언가를 자랑하고픈 경쾌한 발걸음으로 아이들이 앞장선다. 이제 본격적인 궁금증을 해소할 차례다.

(* 다음 기사로 이어집니다. http://omn.kr/22ic7 )
 

북유럽의 나무 소강당으로 향하는 교내길은 북유럽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 이정혁

덧붙이는 글 - 꿈틀비행기 17호는 오는 8월 출발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http://omn.kr/1mleb'를 참고해주세요.
-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irondownbros 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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