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설날은 필자의 조카들뿐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아이들과 청소년, 청년들의 최대 수금날이 분명하다.
 설날은 필자의 조카들뿐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아이들과 청소년, 청년들의 최대 수금날이 분명하다.
ⓒ 오마이뉴스

관련사진보기

 
아침에 일어나 간략하게 차례를 지내고 일찍 집을 나섰다. 집 근처 은행에 현금을 찾으러 갔다. 오늘(22일)은 민족의 큰 명절, 설날이다. 동시에 조카들의 최대 수금날이기도 하다. 아니, 필자의 조카들뿐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아이들과 청소년, 청년들의 최대 수금날이 분명하다.

이번 설에 필자는 조카 6명에게 모두 5만 원씩 총 30만 원을 주기로 했다. 삼촌이라고 용돈도 변변히 준 적도 없어 '1년에 한번인데' 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필자의 한 지인은 조카가 9명이란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또 대학에 입학한 조카는 4명이라고 한다. 그분은 머리가 복잡한 상황인 듯했다. 

설날엔 '단기 재벌'이 목표라는 조카

필자의 조카 ○○이는 이번 설 명절에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단기 설 재벌'이 목표라며 "까르르" 웃었다. 나도 덩달아 웃음을 지었지만, 약간 슬픈 현실이 담긴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직장을 다니기는 하지만 20대 초반 직장인의 주머니 사정은 불을 보듯 뻔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또 다른 조카 △△이는 설날 하루 전날, 심부름을 왔다며 음식을 담아서 싸 가지고 왔다. 잠시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이에게 물었다.

"△△아 너는 세뱃돈 얼마가 적당한 것 같아?"

"에이 무슨 세뱃돈은. 직장 다니는데 안 줘도 돼. 나는"

"정말이야? 진짜 안 줘도 돼?" 


그러자 △△이는 주저주저하더니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또 주면 받지. (웃음)" 


누구나 다 마찬가지 마음일게다. 성인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역대급 고물가 시대에 20대 초반 필자의 조카들은, 그리고 이 사회를 살아가는 20대 청년들의 주머니는 너무나 가볍다.

하지만 20대만 그런 것 아니다. 대다수의 서민들도 주머니 사정이 안 좋은 건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이번 설날엔 유난히 이 세뱃돈에 신경 쓰는 것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다.

예전에는 '취업은 언제 하냐', '결혼은 언제 하냐' 등등의 질문들이 청년들과 구직자들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었지만, 이번 설 명절에는 세뱃돈이 스트레스의 주범이라고 한다.

인크루트가 지난해 12월 성인남녀 82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설 명절 스트레스 1순위가 이 세뱃돈을 포함한 명절 비용 지출(21.8%)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최근 직장인 103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날 경비' 여론 조사 결과에서도 직장인들 평균 설 연휴 경비는 54만 원으로 조사됐는데, 이 중 16만 4000원이 세뱃돈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가수 이적씨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쓴 3만원권 지폐 제안이 수만명의 공감을 얻고 있다.
 가수 이적씨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쓴 3만원권 지폐 제안이 수만명의 공감을 얻고 있다.
ⓒ 가수 이적 인스타그램

관련사진보기

  
이적의 그 제안, '격하게' 공감했다 

세뱃돈은 지금 나이와 직업에 따라 조금씩 편차는 있겠지만 보통 5만 원으로 형성된 상황이다. 하지만 이 5만 원은 자의 반 타의 반의 성격이 강하다. 이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가수 이적씨가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쓴 글이다.

"3만 원권 지폐가 나오면 좋을 듯싶다. 1만 원권에서 5만 원권은 점프의 폭이 너무 크다. 1, 3, 5, 10으로 올라가는 한국인 특유의 감각을 생각해보면 3만 원권 지폐는 필시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중략) 오랜만에 만난 조카에게 1만 원을 주긴 뭣하고, 몇 장을 세어서 주는 것도 좀스러워 보일까 봐 호기롭게 5만 원권을 쥐여 주고는 뒤돌아 후회로 몸부림쳤던 수많은 이들이 3만 원권의 등장을 열렬히 환영하지 않을지."

필자는 이 글에 너무나도 격하게 공감을 했다. 최근 들어 남의 글을 보고 마치 내 이야기인 것처럼 이렇게 크게 공감해 본 적은 거의 없다.

필자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 가수의 글에 전폭적인 공감을 하는 듯하다. 무려 2만여 개가 넘는 '좋아요'가 눌렸다고 하니, 이건 그저 가십거리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필요성을 갈구해 왔는지 보여주는 방증인 듯하다.

이 공감대는 정치인에게까지 미친 형국이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설날 당일인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3만 원권 발행을 적극 찬성한다. 3만 원권 발행 촉구 국회 결의안을 추진하겠다"라며 3만 원권 지폐 필요성 대열에 합류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설날 당일인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3만원권 발행 촉구 국회 결의안을 추진하겠다”라고 밝혔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설날 당일인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3만원권 발행 촉구 국회 결의안을 추진하겠다”라고 밝혔다.
ⓒ 이태경 의원 페이스북

관련사진보기

    
수많은 삼촌들의 몸부림이 해소될 날을 꿈꾸며

하 의원은 "세뱃돈은 우리 국민 모두가 주고받는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전통문화다. 1만 원 세배돈은 좀 작고 5만 원은 너무 부담되는 국민들이 대다수일 거다. 미국 달러도 10, 20, 50 단위가 있고 유럽의 유로도 그렇다. 한국은 축의금 부조 단위가 1, 3, 5로 커지기 때문에 2만 원권보다는 3만 원권이 적합할 것 같다"라는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현재 한국은행은 3만 원권 도입에 여러 이유를 들어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필자도 높은 필요성과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해서 3만 원권 지폐가 바로 추진돼 빠른 시간 안에 실현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3만 원권 지폐 도입에 대해선 이미 그 논의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즉, 시간의 문제인 것이지 필요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설 명절은 시간이 흐르면 다시 또 돌아오고, 우리는 우리의 미래들에게 주머니를 열어 세뱃돈을 줄 것이다. 아이들의 수금날은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될지 모르지만, 호기롭게 5만 원권을 쥐여 주고 뒤돌아 후회로 몸부림쳤던 수많은 어른들이 또 생겨날 것이다.

언제쯤 3만 원권이 나와 수많은 삼촌들의 몸부림을 해소시켜줄까. 벌써부터 그 미래를 생각하니 미소와 함께 해방감이 느껴진다.

태그:#세뱃돈, #3만원권, #가수 이적, #설날 스트레스, #하태경 의원
댓글1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학부와 대학원에서 모두 NGO정책을 전공했다. 문화일보 대학생 기자로 활동했고 시민의신문에서 기자 교육을 받았다. 이후 한겨레 전문필진과 보도통신사 뉴스와이어의 전문칼럼위원등으로 필력을 펼쳤다. 지금은 오마이뉴스와 시민사회신문, 인터넷저널을 비롯, 각종 온오프라인 언론매체에서 NGO와 청소년분야 기사 및 칼럼을 주로 써오고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