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그리고 대중교통에 대한 최신 소식을 전합니다. 가려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속터지는 부분은 가차없이 분노하는 칼럼도 써내려갑니다. 교통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전하는 곳, 여기는 '박장식의 환승센터'입니다.[기자말]
병원에 들어갔다 나왔더니, 양 팔에 목발을 낀 '교통약자'가 되었습니다.
 병원에 들어갔다 나왔더니, 양 팔에 목발을 낀 '교통약자'가 되었습니다.
ⓒ 박장식

관련사진보기

 
하루아침에 교통약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예정되었던 일이긴 합니다. 원체 발목이 좋지 않았던 데다, 최근 자주 발목이 접질리는 통에 일상생활에 많은 불편을 겪었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발목 인대를 새로 해넣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입원 기간도 그리 길지 않았고, 우락부락한 통깁스 외에 겉으로 달라진 점도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경과가 좋다고 해서 바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커다란 깁스에 싸인 발이라고 해서 바로 땅에 닿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혹여나 수술한 부분이 상할 수도 있었습니다. 입원 전날까지 어디든 자유롭게 오갔던 저는 과장을 좀 섞어서 하루아침에 '노약자석에도 앉을 수 있는' 교통약자가 되었습니다.

하루아침에 큰 벽이 된 계단

예정된 수술이었고, 수술 전에 어지간한 일정들을 모두 정리했다고는 해도 외출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집 밖을 나서는 길부터 험난했습니다. 가까운 목적지는 택시로 간다지만, 어느 정도 먼 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첫 외출이야 택시를 탔다지만, 내내 택시만을 탈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병원 진료를 받은 뒤 다른 목적지로 가려면 버스와 전철을 이용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목발을 짚으니 걷는 거리는 줄이면서, 최대한 저상버스만, 엘리베이터만 타기로 나름의 전략을 짰습니다.

다행히도 지하철역까지 가는 버스는 저상버스가 왔습니다. 잠깐 목발에 무게를 실어 한 걸음만 옮기면 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잠시 숨을 돌리다 도착한 지하철역. 역시 다행히도 역 출구에서 대합실까지는 에스컬레이터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목발만 잘 움직이고, 손잡이만 잘 잡으면 되니 에스컬레이터는 걷는 것보다도 쉽게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찌저찌 교통카드를 찍고 승강장으로 내려가려는 순간, 에스컬레이터가 올라가는 한 방향만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승강장 언저리를 둘러보아도 엘리베이터 타는 곳 역시 보이지 않습니다.

계단 끄트머리에 있는 장애인 리프트를 보고서야 '맞다, 이 역에는 승강장 가는 승강기가 없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목발과 손잡이를 지지대삼아 계단을 내려가야 합니다. 삐끗하면 데굴데굴 구르기 십상인 계단은 낭떠러지 위에서 한 발 한 발을 내딛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가파른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을 피할 수 없을 때는 온몸에 긴장을 하게 됩니다.
 가파른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을 피할 수 없을 때는 온몸에 긴장을 하게 됩니다.
ⓒ 박장식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한 발로만 뜀뛰듯, 목발로 바닥을 대듯 내걸으며 꾸역꾸역 승강장으로 내려오고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내가 가려는 목적지로 가는 열차는 반대편 승강장으로 온다는 사실 말이죠. 다시 올라가야 하나 고민한 순간, 몇 미터에 불과한 계단이 암벽등반을 하는 것 같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반대 방향 열차에 올라탔습니다.

계단을 피하는 계획을 세워봤습니다. 상하행선 열차가 같은 승강장을 쓰는 역까지 갔다가 원래 방향으로 돌아오는 것. 이른바 '섬식 승강장'을 쓰는 역까지는 다섯 정거장 남짓이 걸립니다. 그렇게 그 역에서 내린 뒤, 승강장을 건너가 원래 방향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도보에 더욱 많은 힘을 쏟게 된 시간만 빼더라도, 계단을 이용한 시간만 빼더라도 반대 방향까지 다녀오는 데 더 쏟은 시간은 20분 남짓. 결국 소중한 시간을 '계단' 탓에 버렸던 셈입니다. 이날 첫 외출의 귀가 수단은 결국 택시가 되었습니다. 할증까지 겹으로 붙어 비싼 택시를 타고 귀가하면서 시쳇말로 '멘붕'한 것은 덤입니다.

경로를 시뮬레이션하게 된다

목발은 걷는 것에 비해 느리고 금방 지치기까지 합니다. 그러니 외출을 할 때 자연스럽게 경로를 다시 '세팅'하게 되었습니다. 최대한 덜 걷고,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가 가까울 것이며, 계단을 이용할 일은 최대한 없어야 합니다. 버스는 어지간하면 저상버스여야 합니다.

이렇게 되니 집 앞 마을버스도 타기가 쉽지 않고, 역까지는 꽤나 긴 거리를 걸어가야 하니 전철을 타려면 택시를 타야 합니다. 택시도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역 출구 앞까지 타야 내린 뒤 목발을 짚고 먼 거리를 걸어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시뮬레이션'이 필수입니다.

그러니 외출할 때마다 '내가 걸을 수 있는 최대 거리는 몇 미터인지', '어떻게 해야 가는 길에 계단을 만나지 않아도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가야 무리 없이 안전하게 갈 수 있는지'를 찾아보고, 택시를 어느 정도 거리까지 타야 예산에 맞는 요금을 내고 이동할 수 있는지 견주어보게 됩니다. 
 
지하철역 바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목발을 잠시 얹어봤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없었다면 목적지를 지하철로 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텝니다.
 지하철역 바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목발을 잠시 얹어봤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없었다면 목적지를 지하철로 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텝니다.
ⓒ 박장식

관련사진보기

 
결국 이동 전날이나 당일이면 지도 어플리케이션의 '거리뷰'나 '로드뷰'를 뒤져보게 되는 일은 당연지사. 우주선 궤도를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이동길의 경로'를 시뮬레이션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간 편하게 지하철을 이용할 때는 몰랐던 계단과 좁은 통로의 위험함을 실감하게 됩니다.

다행히도 원하는 경로에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가 있으면 고맙지만, 공사중이거나 인터넷에는 있다고 나온 위치에 승강기가 없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사실 그럴 때만큼 난감할 때가 없습니다. 저야 목발을 짚으니 어떻게든 내려가고 올라갈 수야 있지만,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은 이런 상황에 얼마나 막막할지 가늠이 갑니다.

사람 때문에 위험할 뻔하고, 사람 덕분에 고맙고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이라면 어려운 사정에 놓인 사람을 도우려는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을 때는 "멀쩡해 보이는데 왜 여기 앉느냐"며 호통을 치는 사람이 있을까 봐 걱정했지만, 막상 열차에 오르니 "아픈 사람이 먼저"라며 황급히 자리를 비켜주는 어르신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버스에 탈 때도 목발을 편히 두기 위해 2인석이 있는 뒷자리 쪽으로 가면 "위험하지 않겠느냐"며 걱정해 주시는 기사님의 말 한 마디가 참 고마웠고, 자리가 꽉 찬 버스에 올라 잠시 걱정할 새도 없이 누가 먼저랄까 봐 일어나 양보해주시는 시민 분들이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다만 반대로 사람 때문에 위험천만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언젠가 붐비는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려는데, 한 사람이 자신이 지나갈 길을 만들기 위해 저를 확 밀쳐 고꾸라진 일이 있었습니다.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물론 나쁜 기억은 한두 번에 그쳤고, "어쩌다 다리가 이러냐"며 살갑게 걱정해주시거나, 대중교통 안에서 배려해주셨던 분이 훨씬 많았기에 목발을 짚고 열심히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지하철 승강장을, 버스 정류장 앞을 오갈 수 있었습니다. 다른 분들이 배려해주신 만큼, 나도 교통약자를 만난다면 양보하고 배려해 드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동이 어려워지면 보이는 것들
 
지하철 노약자석 픽토그램에 목발을 짚은 사람이 있는 이유, 목발을 짚어보니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지하철 노약자석 픽토그램에 목발을 짚은 사람이 있는 이유, 목발을 짚어보니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 박장식

관련사진보기

 
물론 지금이야 수술 경과가 좋아져서 목발을 쓰지 않아도 되고, 두꺼운 통깁스를 벗고 보호대도 차고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딘가 목적지를 갈 때 운전을 해서 간다는 선택지도 다시 생겨났죠. 하지만 여전히 좁은 주차장에 차를 두고 내릴 때면 발을 어디에 디뎌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기는 합니다.

사실 두 다리로 멀쩡하게 오갈 수 있을 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누구나 편하게 내딛는 계단이 노인 분들에게는 암벽처럼, 휠체어 장애인 분들께는 천 길 만 길 낭떠러지처럼 느껴진다는 것을 목발을 짚고서야 실감했으니까요. 하다못해 지하철의 긴 환승통로조차 교통약자들에게는 '십리길' 같다는 것 역시 이제야 알았습니다.

물론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경험한 것이 다는 아닙니다. 지방으로 갈 때 고속버스와 KTX를 타는 것 역시 교통약자들은 일반인에 비해 불합리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이른 시간에 나와야 겨우 탈 수 있다는 것도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고, 이동의 횟수도 그리 많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그래도 앞으로 전철과 버스를 타고 내릴 때,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구름다리를 오르내릴 때 한 번쯤은 교통약자들의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목발을 짚고 겪은 한 달'은 생각보다 국내 대중교통이 교통약자들에게 친절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으니 말이죠.

그러니 교통수단이 약자에게 가까워지는 것은 교통약자는 물론, 아닌 사람도 편리하다는 것만큼은 같이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비단 내가 다치거나 아플 때를 빼더라도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갈 때, 출퇴근길 이유 없이 몸이 무거울 때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태그:#교통약자, #체험기, #대중교통, #배리어 프리, #지하철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