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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자 하고 자리에 앉고도 마음이 잡히지 않을 때가 있다. 시와 소설, 수필 같은 문학부터 거창하지 않은 일상의 끄적임에 이르기까지, 무슨 글이든지 벽에 부닥칠 수 있다. 손끝에서 쓰이는 글이란 높은 눈에는 영 닿지 못하는 것이어서 어떻게든 되는대로 마무리 짓고 말기 일쑤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등 뒤에 흐르는 물을 두고 젖먹던 힘까지 짜내봐야 하겠다, 그렇게 결심한 날이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목표한 문학부터 출판사와 계약된 에세이며 온갖 평론들에 이르기까지, 한 편 한 편에 온 마음을 실어보아야겠다 마음을 먹은 것이다. 글로 삶을 꾸려가는 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겼기에.

이런 생각은 어디서 왔을까 하고 돌아보니 어릴 적부터 즐겨 읽어온 책들 탓은 아닌가 싶었다. 내가 애정한 책을 쓴 이들과, 그 책 속에 등장한 이들, 그로부터 삶의 방향을 구한 수많은 이들이 내 등을 밀어가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엔 아주 독특한 사람들이 있다. 도자기를 구우면서도 일생일대의 작품을 빚는 듯이 여기고, 요리 한 접시를 만들면서도 대단한 예술을 하는 양 온 정신을 쏟는 사람들 말이다. 어느 소설가는 소설로 세상을 움직이겠다 호언하고, 어느 화가는 보는 이의 마음을 빼앗아 작품을 대하기 이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만들겠다 장담한다. 세상에 그런 방법만이 예술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일 수는 없는 것이겠으나 그런 이들의 작품엔 특별한 무엇이 깃들어 있단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책 표지
▲ 소설가의 각오 책 표지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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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괴짜 소설가가 문학청년들에 날리는 일침

<소설가의 각오>는 일본의 명성 높은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산문집이다. 마루야마 겐지는 삼년 차 직장인이던 스물셋 어린 나이에 처음 쓴 소설 <여름의 흐름>으로 등단에 성공한 소설가다. 한국의 박완서가 나이 마흔에 첫 소설인 <나목>으로 등단한 걸 가지고도 대단한 천재라 말이 많았는데, 고작 스물셋에 첫 작품으로 등단을, 그것도 일본 문단 최고로 꼽히는 아쿠타카와상을 받았으니 어마어마한 관심이 쏟아졌을 게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마루야마 겐지의 선택은 세간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통상 어느 작가가 명성을 얻게 되면 수고로운 노력을 들여 장편을 집필하는 대신 온갖 인터뷰와 TV출연, 산문 등 잘 팔리고 가벼운 글의 출판 등을 하는 것이 보통인 것인데 그는 이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그는 일본의 알프스라 불리는 깊은 숲 속에 틀어박혀 거듭 소설쓰기에 매진하니, 이후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괴짜라는 평가와 함께 여러 작품을 남기기에 이르렀다.

<소설가의 각오>는 마루야마 겐지가 젊었던 시절부터 쓴 산문 모음집이다. 1968년부터 1991년까지 쓴 글이 묶여 있는데, 그가 1967년 일본 제일의 문학상이라 불리는 아쿠타카와상을 받았으니 이십대 중반부터 오십대까지 쓴 글을 모은 것이라 하겠다. 통신사 출신답게 기계적인 독특한 문장을 쓰는 마루야마 겐지의 글을 일본 문학 번역가로 첫 손가락에 꼽히는 김난주가 번역했으니 읽는 맛도 단연 일품이다.

마루야마 겐지는 일본의 문학가임에도 일본문학의 흐름과는 제법 떨어져 있는 인물이다. 그건 그가 책을 거의 읽지 않기 때문이고 일본 문학을 더욱 접하지 않기 때문이며, 문단과도 거리를 두고 지내는 영향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모든 문학상을 거부하고 심지어는 심사를 보는 일조차 거부한 채 살아왔을 정도다. 이쯤 되면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류의 은둔 소설가 가운데 하나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다.

고집과 괴팍함, 편견이 만든 고귀함에 대하여

이쯤이면 그의 성품이 어떠한지 대략 잡힐 것도 같은데, 딱 그런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괴팍하고 옹고집이며 세상과 제도와 규율과 사람들을 거침없이 비판하고 깎아내리는 인간, 그럼에도 제가 쌓아올리는 작품에 한없이 엄격하여 매번 특별하고 매혹적인 무엇을 빚어내는 작가 말이다. 이 글 역시 거침없이 나아가는 산문이며 문학을 대하는 그의 자세가 고스란히 드러나 작가를 지망하는, 혹은 이미 작가인 이들에게 무척이나 큰 자극을 줄 것이 분명하다.
 
몇 년 전, 장편소설의 소재를 취재하기 위해 대형 유조선을 타고 바다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물론 거기에서 내가 접한 것은 <백경>의 무대와는 전혀 다른 바다였다. 승무원들은 샐러리맨 같았고, 거대한 파도와 파도 사이를 항해하는 배는 자동 조타 시스템 덕택으로 거의 흔들리지도 않았다. 위험하고 두려운 것은 바다가 아니라 적재한 기름과 따분함으로 인한 정신의 뒤틀림이었다. 그때는 마도로스가 되지 않길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백경을 야만성과 악과 증오의 상징으로 간주한다면 현대의 백경은 차라리 대형 유조선 그 자체가 아닐까. 그리고 에이헙 선장에 해당하는 인물은 아예 없다.

소설의 재미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백경>이야말로 소설의 재미를 다 갖추고 있다고 대답하면 간단하지만, 쓰는 쪽의 입장으로는 <백경>에만 사로잡혀 있을 수는 없다. 그것은 아주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현대의 바다를 직접 목격했으니 어쩔 수 없다. <백경> 너머에 있는 것을 포착하지 않으면 안 된다. -108p
 
어떤 편집자가 내게 물었다. "어떤 독자들을 상정하고 소설을 쓰는가?" 나는 곧바로 이렇게 대답하였다. "목적을 갖고 전력투구하며 살아가는 젊은이나,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여 처자식을 먹여 살리는 남자들이다." 그러자 편집자는 이렇게 반박했다. "이해는 하겠지만, 그런 사람들에게는 문학이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잠시 생각한 뒤 되물었다. "그렇다면 문학이란 대체 어떤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인가?"

편집자는 입을 다물었다. 나 역시 한참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후 그는 두 번 다시 그 점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228p
 
마루야마 겐지가 소위 꼰대이고 수많은 편견을 가진 오만한 이가 아니라고 쉽게 말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공감이며 위로에 집중하고 말초적 자극에나 집착하는 이 시대의 많은 문학가에 대하여 유의미한 일침을 날리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겠다.

마루야마 겐지가 거듭 여성이며 사소설과 문단, 심지어는 나약한 모든 이들에 대하여 거친 비난을 쏟아 붓고 있음에도 섬세한 문장이며 감수성으로 명성 높은 김난주가 그의 산문집을 연달아 번역하며 상당한 관심을 내보이는 데는 그런 관계가 있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소설가의 각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문학동네(1999)


태그:#소설가의 각오, #마루야마 겐지, #김난주, #문학동네, #김성호의 독서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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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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