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SBS에서 방영됐던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마치 수면에 던진 작은 돌이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듯 드라마를 본 이들 사이에서 열렬한 반응을 끌어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판타지의 서사가 난무하는 드라마들 속에서 음악대학을 배경으로 한 이십대 후반 젊은이들의 현실적인 사랑과 고뇌가 보는 이들의 진한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연출했던 조영민 피디는 2023년 또 한 편의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를 들고 돌아왔다. 첼로와 피아노를 오가던 사랑 대신 실적과 승진이 관건이 되는 한 은행 점포를 배경으로 한 사랑 이야기다.   
 
 사랑의 이해

사랑의 이해 ⓒ jtbc

 
우리 사이의 가로 세로, 나뉘어진 선들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는 이혁진 작가가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독특하게도 티저 포스터에는 주인공 4명의 직원 카드가 등장한다. 그런데 걸려있는 박미경(금새록 분), 하상수(유연석 분), 안수영(문가영 분), 정종현(정가람 분) 네 사람의 카드 높이가 다르다. 안수영, 정종현 카드는 색깔도 다르다.

이야기는 하상수 대리로부터 시작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은행, 연수원 성적은 일등이라는데 막상 점포 현장에서 그는 그저 실수를 연발하는 '새내기 직원'일뿐이다. 그때 안수영이 다가와 도와줬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이 담긴 수첩을 준다. 수첩에 쓰인 이름처럼 하상수의 마음에는 안수영이 아로새겨졌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하상수는 계장이 되었다. 그런데 안수영은 여전히 주임이다. 2화에서 내레이션을 이어받은 안수영, 그녀는 은행 직원들 사이에 '영포점 안수영을 봤냐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소문난 미녀이다. 어디 얼굴만 아름다운가, 신참 하상수를 도와줄 정도로 능력도 뛰어나다. 그래서 누구나 안수영을 한번쯤 '흠모'하지 않은 적은 없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은행은 계급사회이기 때문이다. 

가방 하나 들고 서울로 온 수영은 설거지부터 서빙까지 안해본 알바가 없을 정도다. 그러다 KCU 신협 은행에 텔리마케터로부터 시작해서 정규직 주임자리까지 올라왔다. 제 아무리 경험이 많고, 능력이 출중해도 은행에서 그녀에게 허락한 곳은 창구자리다. 심지어 대출 등 중요한 업무는 그녀의 몫이 아니다. 그런데도 팀장은 거들먹거리며 자신의 대학 4년을 보상하기 위해서라도 직급간 엄격한 차별과 대우가 있어야 한다고 대놓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와 청경 정종현이 사귄다는 소문이 돌자 격이 맞는 커플이란다. 

그래도 안수영은 늘 웃는다. 그 웃음의 방패 뒤에 철저하게 숨는 것이다. 가급적 직원들과 식사도 따로하며 어울리지 않는다. 앞에서 하하호호 웃고 어울려봐야, 그들과 자신 사이에 선은 분명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 자신은 '선 밖의 사람'일 뿐이다. 아무리 애써도 '선'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이제 그녀는 굳이 선 안의 그들과 섞이지 않으려 한다.

사랑 하나로 모든 걸 감당할 수 있나요?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 한 장면.

JTBC 드라마 <사랑의 이해> 한 장면. ⓒ JTBC

 
그런데 그 선을 뛰어넘는 사람이 있다. 하상수다. 그녀가 좋단다. 

은행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답게 사랑을 인출사고에 비유한다. 내 마음의 '인출사고'인 것이다. 은행에 돈을 맡기면 이자가 쌓이지만 마음은 도통 그런 메커니즘과 상관없이 흐른다. 

하상수의 동기 소경필(문태유 분)은 인출 사고가 난 하상수를 달랜다. 네 마음을 책임질 수 있냐는 것이다. 연수원에서 썸만 타도 두고두고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좁은 동네에서, 안수영에 대한 마음을 책임질 수 있냐고 묻는 것이다. 그 말인즉 본점 발령을 기대하는 대졸 출신 계장 하상수가 대학도 못 나와 주임으로 창구 업무만 맡는 안수영을 감당할 수 있냐는 질문이다.  

대졸 출신이라고 하지만 하상수 역시 스스로를 또 다른 의미에서 선 밖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마사지숍을 운영하는 어머니는 어린 시절 그와 함께 강남의 반지하같은 빌라로 이사를 왔다. 1년만 살자는 어머니의 말과 달리, 그곳에서 5년을 살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말이 좋아 8학군이지 하상수가 할 수 있는 건 공부 밖에 없었다. 실적을 위해 모처럼 나간 고등학교 동창회, 그가 살았던 빌라의 건물주가 된 친구는 그 자리에 빌딩을 세운단다.  

어쩌면 그랬기에 안수영과 자신의 다름이 선뜻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은행원들은 그녀와 자신들 사이에 분명한 선을 그었는데, 하상수에게 그녀는 제대로 대접을 못받는 능력자일 뿐이다. 그런데 외려 안수영이 그와의 사이에 선을 긋는다. 그리고 자신은 청경 정종현을 좋아한단다. 

원금에 이자는 커녕, 원금 손실에, 술병을 부여잡고 아침을 맞이하는 정도면 파산 수준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사랑은 가장 불안전한 투자 상품이다. 불안전하니 포기해야 할까? 그렇게 <사랑의 이해>는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 '질문'을 시작한다. 

사랑보다 은행이자가 더 절실한 시대, 아마도 이게 우리 시대의 청춘을 대변한 말일 것이다. 과연 현실을 뛰어넘어 우리는 사랑할 수 있을까. 아니 그렇게라도 해서 사랑이라는 걸 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드라마는 솔직하게, 그리고 서늘하게 묻는다. 

감정은 인출사고이지만, 사랑은 '관계'이다. 불안전한 투자 상품을 믿고 투자하는 것이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피아니스트와 첼리스트는 사랑도 하고, 그 사랑을 통해 자신의 인생도 찾아갔다. 과연 계장 하상수와 주임 안수영도 이 인출사고를 통해 자기 자신과 서로에 대한 이해에 도달할까? 또 한 편의 '리얼 청춘극' 결말이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cucumberjh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사랑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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