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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위원회 신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위원회 신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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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씨, 둘째 낳아야겠는데?"

한창 업무 중인데, 책상 건너편에서 갑작스레 말을 걸어왔다.

"네? 갑자기 무슨 말씀인지?"
"애 낳으면 대출 탕감해준다는데, 지금 애 하나뿐이잖아. 더 낳아야지?"


대한민국에서 아이 하나를 키우는 부모(특히 엄마)는 '적어도 둘은 낳아야지'라는 말을 수시로 듣고 산다. 지하철에서 만난 할머니부터 명절마다 만나는 친인척까지 둘째 출산을 종용하는 분위기 속에서 아이를 키워왔다. 생면부지의 사람들로부터 느닷없이 '애국'을 이유로 불쑥 개인사인 가족 계획에 대한 충고를 들을 때마다, 무시하려고 애쓰면서도 상처받거나 분노한다.

대출을 탕감이라니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어 인터넷 창을 띄워 뉴스를 검색해 보았다. 지난 5일,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청년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을 미루거나 출산을 포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라며 신혼부부의 주택자금이나 전세자금 대출액 일부를 지원해주고 탕감해주는 '저출산 대책'을 내놓았다.

이미 신혼부부의 유효기간은 한참 지나서 나와는 무관한 일이다. 하지만 대상이 아니라는 실망감보다 대출 부담을 줄여준다는 이유로 아이를 더 낳으라는 말에 착잡했다. 아마 여러 가지 이유로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예비부부들, 기혼자들, 나처럼 한 자녀를 둔 젊은 부모들도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돈과 출산,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지만...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에는 많은 돈이 든다. 그러나...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에는 많은 돈이 든다. 그러나...
ⓒ photoripey,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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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알다시피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에는 많은 돈이 든다. 생활비는 물론이고, 교육비와 주거비용 등 경제적인 부담이 만만찮다. 아이를 키우고 가계를 꾸리는데 직접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은 물론이고, 아이를 키움으로써 부모(주로 여성)의 경력단절이나 단축근무 등을 통해 발생하는 소득의 감소가 낳는 간접적인 비용도 있다.

아이가 초1 때 육아휴직을 하는 동안 급여는 나라에서 정한 최저 기준보다 한참 낮은 수준이었다. 건보료와 연금을 제외하고 나면 늘 마이너스여서 회사에 4대보험 개인부담금으로 도리어 돈을 보냈다. 휴직을 대비해 미리 저축을 해뒀기 망정이지, 대출원금과 이자를 납입하고 생활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래도 급여를 받는 휴직은 나은 상황이다. 경력단절이 되면 그마저도 어려운 일이다. 월급을 받고 아파트 대출금과 카드비용이 빠져나간 계좌를 확인하다 보면, 대출을 상환하려고 일하고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전세를 살 때는 전세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집을 산 후에는 대출금을 갚느라 바삐 산다. 그런데 대출을 탕감해 준다고 하니 언뜻 듣기에 매우 매력적인 제안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돈을 줄 테니 아이를 낳으라는 말에는 결국 돈 때문에 사람들이 아이를 안 낳는다는 현재 상황에 대한 나경원 부위원장의 해석이 읽힌다. 분명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에는 현재 결혼적령기 세대의 경제적 부담이 매우 큰 원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과연 '돈'이 문제의 핵심일까? 오로지 돈 때문에 결혼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을까? 오랜 기간 동안 엄청난 지원금을 쏟아부어도 개선되기는커녕 심각해져 가는 현 상황이 조금 더 큰 단위의 지원금을 준다고 개선될까? 육아 지원부터 노동, 의료, 교육, 사회적 분배 문제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있는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다각적으로 접근해서 풀지 않는 이상 또다른 세금 낭비가 되지 않을까?

여성에게 가중되는 출산과 육아의 간접비용

요즘은 출산과 영유아에 대한 의료비, 보육비 지원, 아동 수당 지급이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직접 비용의 일부를 단기적으로 지원하고 있고 출산과 양육, 교육에 들어가는 고정적인 직접 비용은 대부분 개인의 부담이다. 나경원 부위원장의 의견대로 주택마련 자금의 일부를 탕감해준다 해도 다른 직접비용과 더불어 주로 여성에게 가중되는 출산과 육아의 간접비용 문제는 고스란히 남는다.

세계가 주목하는 경제 선진국으로 인식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우리나라는 육아, 교육과 노후 등의 많은 영역을 대부분 개인에게 부담시키고 있고 통계지표상으로 국민의 행복 수준은 매우 낮다. 많은 여성들은 아이를 떼놓고 직장으로 돌아갔다가도 결국 다시 돌봄이나 교육의 문제로 일을 그만두고 경력단절을 겪는다.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아이 양육과 노인 돌봄 등의 문제를 많은 경우 여성의 경력과 시간을 희생하는 방식으로 주로 해결하고 있다. 국가 차원의 사회 시스템에서 지원책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경제와 문화가 발전한 국가일수록 여성은 출산과 양육을 이유로 경력을 단절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즉, 우리 경제가 발전한 만큼,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를 기피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를 먼저 겪은 국가에서는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출산율을 높임과 동시에 여성의 일할 기회도 늘리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여전히 아이는 엄마가 키우는 것이 좋다는 지배적인 정서 아래 여성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긴 노동시간으로 인해 주로 근로를 담당하는 남성이 가사와 육아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도 제약을 받는다.

많은 복지를 개인의 영역에 맡겨둔 빈약한 사회 시스템, 갈수록 줄어가는 일자리,이로 인한 과열된 교육 환경 또한 젊은 세대들이 자신과 자신의 자식 세대에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게 되는 큰 이유가 아닐런지.

정부와 정치인들의 깊은 고민과 성찰의 부재

우리보다 먼저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겪은 일본은 문제의 심각성을 직시하고,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방안을 고려해왔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일과 양육의 양립과 성평등 제도를 추진해 오면서 1989년 1.57명이었던  합계출산율을 2021년 현재 1.3명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우리가 소위 선진국이라 여기는 유럽의 국가도 가족수당과 같은 직접비용 지원과 더불어 여성에게 국한되던 육아휴가를 부모 휴가로 확대, 출산과 육아 후에 회사에 복귀하는 여성들의 불이익을 줄이고자 노력했다. 더불어 유아부터 공교육과정으로 의무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한 프랑스의 사례는 보육과 교육의 직간접 비용을 줄여, 과도한 사교육비를 지출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면서 출산을 장려할 수 있는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문제는 돈이 아니다.
▲ 출산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을 때 가능하다 진짜 문제는 돈이 아니다.
ⓒ Monsterkoi,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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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백이면 백 모두 출산의 이유는 다를 것이다. 하지만 많은 부모에게 있어 출산은 나의 삶보다 내 아이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한 일 아닐까. 단군 이래 가장 많은 교육을 받았지만 부족한 일자리, 부담되는 주거와 교육비용, 여전히 뿌리 깊은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오는 불합리와 차별, 과도한 경쟁을 하면서 현실에서 느끼는 피로들이 지금의 젊은 세대가 결혼과 출산이라는 희망을 품지 않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주택마련을 위한 대출 탕감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나 부위원장은 현재 세대들의 선택을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것은 아닐지. 그 발언에는 젊은 세대들이 왜 이러한 선택을 하는지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고심이 빠져 있고, '돈이면 다 된다'는 쉽고 빠른 자본주의적인 사고방식이 깔려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쉬운 사고방식은 자칫하면 국민 분열 등 또다른 부작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나 부위원장의 발언을 전한 기사 댓글을 살펴보았다. 대출금 혜택을 노리고 쉽게 아이를 낳고 무책임하게 방임하는 등 부작용에 대한 자조와 우려가 상당히 많았다. 

다시 말해, 진짜 문제는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 하는 문제에 대한 정부와 정치인들의 깊은 고민과 성찰의 부재다. 당장 표심을 얻는데 급급한 나머지, 선심성 발언을 일삼으며 귀중한 혈세를 낭비하기 전에, 국민들의 진짜 고민에 귀를 기울여 보길 바란다. 더 늦기 전에 이들의 고민을 반영한 진지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올 수 있기를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간절히 기다린다.

태그:##신혼부부출산을위한대출탕감정책,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문제는돈이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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